309. 드라콘과 드라칸 (3)
“역시 그랬군.”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성스러운 샘물 속 틈새에서 특별한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그것이 마기(魔氣)일 거라 짐작했다.
이유는 뻔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검은 마력, 즉 ‘마기’를 다루는 드래곤.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태어난 도롱뇽은 선천적으로 지닐 수 없는 마력이다.
‘마기는 한때 신이었던 존재가 타락해 악마가 되며 변질된 힘.’
마기를 손에 넣은 악마들은 여러 방법으로 권속들을 늘려갔다.
악마들이 주신과 신들에게 대항하려면 그에 걸맞은 군단이 필요했으니까.
또한 악마들은 신들과 마찬가지로, 두 드라콘(드라칸)에게 놀라운 힘이 잠재돼 있다는 걸 감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성스러운 샘물에 틈새를 만들어 마기를 흘려보낸 것이겠지.’
신계를 벗어나기 원했던 두 반신이 제 손으로 마기를 흡수한 뒤, 심장에 융합시킬 것을 기대하며.
그 계획은 성공했다.
“악마는 나와 코르키코스에게 말했다. 머지않아 중간계에서 신과 요툰 간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며, 그로 인해 수많은 요툰과 고대인이 죽을 거라고.”
고대의 인간은 신과 천사의 시체 속에서 태어난 종족.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도 중간계를 탐험하며 고대인을 봤다.
놀랍게도 그들은 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 악마는 말했다. 신계에서 추방된 아버지가 고대인들 속에 숨어 살고 있다고.”
악마의 말에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크게 놀랐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신과 요툰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부모가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악마는 속삭였다. 다가올 전쟁을 대비하려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그래야만 부모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당시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나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존재였지만, 정신은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둘은 신계에서 방치된 존재였다.
그 어떤 신도 도롱뇽과 코르키코스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둘은 신계를 포함한 여러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에게 기댔고, 부모를 찾겠다는 목표에 몰두했으며, 부모가 위험해질 수 있는 전쟁의 발발을 두려워했다.
특히 코르키코스는 도롱뇽보다도 더욱 그것을 겁냈다.
‘이스메니오스. 우리가 전쟁을 막아야 해. 그래야 부모를 지킬 수 있어.’
코르키코스는 도롱뇽이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코르키코스는 그 책임을 받아들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동생인 이스메니오스를 지키고, 부모를 찾길 원했다.
“악마는 우리에게 힘을 약속했다. 자신의 의지를 받아들이면 더욱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말했지.”
도롱뇽의 말에 카스피가 반문했다.
“하, 하지만 도롱뇽! 상대는 악마잖아. 악마는 강한 힘을 부여해 주는 대가로 몹쓸 짓을 한다고 들었어. 아, 아무래도 꺼림칙한데 난!”
“나도 같은 생각이요! 악마란 놈들은 죄다 요사스럽고 흉악한 족속들이 아니요! 그 뭐냐, 악귀와 혈귀를 만들어 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소!”
카스피와 오토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도롱뇽은 눈앞의 악마를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 여겼다.
도롱뇽은 악마를 경계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중간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단지 저 악마의 혓바닥에서만 나온 말이다.
그것을 믿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악마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이때의 도롱뇽은 알지 못했지만, 도롱뇽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난 코르키코스는 신과 요툰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눈치채고 있었다.
코르키코스가 도롱뇽을 설득했다.
‘우리에겐 힘이 있어 이스메니오스. 우린 특별한 존재야. 우린 신과 요툰의 피를 지녔고, 이젠 악마의 힘도 발현할 수 있게 되었어.’
그때의 코르키코스는 자신의 힘에 어느 정도 도취되어 있었다.
또한 그것을 자만이라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코르키코스는 강했다.
도롱뇽은 코르키코스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더해 틈새의 마력, 즉 마기를 흡수하고 융합한 뒤 둘의 격차는 점점 벌어졌다.
그러던 것이 중간계로 넘어와 날개를 획득하고, 이후 이 세계를 탐험하기 적합한 육체로 진화하며 힘의 차이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코르키코스. 우린 저 악마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도롱뇽은 신을 믿지 않았다.
더욱이 악마는 터럭만치도 믿을 수 없는 존재라 여겼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우린 오래 전부터 신계를 벗어나고자 했어. 그리고 저 악마는 우릴 신계로부터 꺼내 준 존재야. 그것만은 이스메니오스, 너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그렇지만 그 사실이 우리가 악마를 믿어야 하는 근거는 되지 못해.’
‘아니, 난 저 악마를 믿겠어. 설령 저 말이 거짓이라 해도 우리가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는다면 부모를 찾는 것에 큰 보탬이 될 거야.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야.’
도롱뇽의 만류에도 코르키코스는 악마의 힘을 흡수했다.
그것은 성스러운 샘물의 틈새에서 발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코르키코스의 몸이 커졌다.
날개가 길어지고, 송곳니가 단단해지고, 네 발톱이 갈퀴처럼 자라났다.
‘이스메니오스. 보여? 내가 강해졌어. 더욱 강해졌어.’
코르키코스가 위협적으로 몸을 부풀렸다.
대지가 들끓고 하늘이 진동했다.
도롱뇽은 바르르 몸을 떨며 그 모습을 봤다.
코르키코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긴 목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벌어진 아가리 사이로 마기의 불꽃이 뿜어졌다.
키랴랴랴랴랴랴!
그것이 이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최초의 브레스였다.
코르키코스가 발현한 놀라운 마력을 보며 도롱뇽은 경악했다.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의 눈을 봤다.
길게 세로로 찢긴 그의 눈동자는 희열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코르키코스…….’
‘이스메니오스. 넌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우리 관계는 변치 않을 거야. 우린 서로에게 하나뿐인 형제야.’
코르키코스는 도롱뇽에게 악마의 힘을 취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도롱뇽을 아꼈고, 도롱뇽의 선택을 존중했다.
‘난 힘을 얻었어. 내가 널 지켜 줄 거야. 널 위협하는 존재는 모두 내가 제거하겠어.’
코르키코스의 눈동자가 살의로 번들거렸다.
그의 사나운 눈이 첫 번째 타깃을 찾았다.
‘그 시작은 저 악마가 될 거야.’
코르키코스가 악마에게 브레스를 뿜었다.
코르키코스 또한 이곳에 등장한 악마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힘을 얻은 뒤, 후환을 없애기 위해 악마를 공격했다.
악마의 힘은 거대했지만, 이제 코르키코스는 저 무시무시한 악마마저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게 변모했다.
그러나 악마는 이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던 듯했다.
- 재미있구나 드라칸 코르키코스. 신과 요툰의 아이야.
악마는 코르키코스의 브레스를 막았다.
그것을 넘어 너무도 손쉽게 코르키코스를 제압했다.
도롱뇽은 코르키코스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코르키코스!’
도롱뇽은 몸을 떨었다.
두렵고도 기묘한 경험이었다.
도롱뇽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감각은 사실이었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현실의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다.
둘은 악마의 환술에 빠져 있었다.
“환술이라고?”
아틸라가 도롱뇽의 말을 끊었다.
저렇게나 강력한 드라칸 코르키코스를 어린아이처럼 다룰 정도의 환술.
떠오르는 악마는 하나다.
“그래 야만 미물.”
고개를 끄덕이는 도롱뇽의 눈이 비수처럼 빛났다.
“대악마 아몬(Amon). 그것이 우리 형제를 찾아왔던 악마의 이름이다.”
바토리의 눈빛도 변했다.
그녀는 대악마 아몬의 고서를 갖고 있다.
또한 바토리는 먼 옛날 아몬의 힘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바토리는 생각했다.
‘아몬은 도롱뇽과 드라칸 코르키코스에게 접근했다. 그래서 둘에게 힘을 부여하려 했다.’
또한 아몬은 바토리에게 힘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고.
그의 고서는 현재 바토리의 수중에 있다.
‘아몬. 그리고 벨리알.’
그들은 원래 주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다섯 신에 속해 있었다.
그러던 중 무슨 이유에선가 주신을 배신하고 전쟁을 일으킨 뒤, 악마가 됐다.
게다가 벨리알은 얼마 전, 사도 아자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오래전 엘은 말했었다.’
자신과 같은 사도는 모두 다섯이 존재한다고.
바토리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또한 그것은 얼마 전부터 아틸라의 머릿속에서도 쉴 새 없이 벌어지던 일이었다.
바토리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쩌면.’
대악마 아몬의 정체는.
그리고 다섯 사도의 정체란 바로…….
“아몬은 코르키코스를 제압한 뒤 우리 곁을 떠났다.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서.”
- 드라칸 코르키코스. 넌 지금보다 강한 힘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너는 더 이상 자유로운 몸이 아니겠지.
‘자유로운 몸이…… 아니라고……?’
아몬은 코르키코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코르키코스를 짓밟고 선 아몬의 시선이 도롱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취를 감췄다.
그제서야 도롱뇽은 자신의 몸이 움직여진다는 것을 감각했고, 코르키코스에게 달려갔다.
‘코르키코스!’
도롱뇽은 코르키코스를 안고 목에 얼굴을 문질렀다.
‘……이스메니오스.’
코르키코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아몬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코르키코스를 도롱뇽이 올려봤다.
코르키코스는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롱뇽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코르키코스의 내면 속 무언가가 이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 삶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린 탐험을 계속했다. 변화한 점이라면 코르키코스가 이전보다 많은 먹이를 사냥했다는 것 정도였지. 우린 부모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어. 부모는 마치 우리에게 발견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것 같았다. 아니면 무언가의 이유로 소멸된 것이거나.”
그러던 중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서쪽의 칼날 산맥에 호기심이 생겼다.
이전에도 둘은 칼날 산맥에 가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산맥의 괴수들은 강했고, 당시의 그들은 지금만큼 강하지 않았기에 탐험을 중도 포기했었다.
코르키코스가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꼭대기까지 올라 보자. 아니, 꼭대기를 넘어 새로운 세상으로 가 보는 거야. 어쩌면 그곳에 우리 부모가 있을지도 몰라.’
코르키코스가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의 우리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야.’
그 무렵 중간계에선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었다.
고대인과 요툰들이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나와 코르키코스는 아몬의 말처럼 전쟁이 시작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코르키코스는 더더욱 칼날 산맥을 향하려 했다.
당시의 도롱뇽은 몰랐지만, 코르키코스는 자신의 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울러 그 방법은 대악마 아몬의 마기를 받아들이지 않은 도롱뇽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