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드라콘과 드라칸 (2)
“뭐?”
아틸라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도롱뇽이 다시 말했다.
“멍청한 야만 미물 새끼. 한 번 말하면 못 알아처먹는 거냐. 드라코리치의 원래 이름은 드라칸 코르키…… 꾸에에에엑!”
정신 교육으로 수 초간 사지를 뒤틀던 도롱뇽이 바르르 어깨를 떨며 말했다.
“흠흠. 그러니까 드라코리치의 원래 이름은…….”
“그건 됐으니 그다음부터 말해 봐라.”
“크흑……! 맨날 나만 갖고……!”
분한 얼굴로 고개를 떨군 도롱뇽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도롱뇽은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내 아버지는 원래 신이란 존재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후의 내용은 아틸라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태어난 도롱뇽.
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도롱뇽은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예상대로의 이야기였기에 아틸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나머지 일행의 반응은 달랐다.
“힉! 저, 저 도마뱀이 신의 핏줄이라고?”
“그, 그게 사실이야 도롱뇽? 네 아버지가 정말 신이라고?”
도롱뇽은 비죽 아랫입술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신의 핏줄을 가졌다는 건 도롱뇽에게 그리 달가운 경험은 아니었다.
“난 어릴 적 신계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난 언제나 눈엣가시였지.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태어난 변종이었으니까.”
신들은 도롱뇽을 경멸했다.
그래서 도롱뇽은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싶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미 신계에서 추방당한 뒤였다.
도롱뇽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
들리는 이야기론 중간계로 내려가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도롱뇽은 자신도 중간계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긴 나의 집이 아니야.’
그러나 신들이 그것을 막았다.
그 무렵 신들과, 중간계의 주인인 요툰들 사이에선 갈등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신들은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탄생한 변종이 요툰에게 넘어가게 될 것을 경계했다.
신들은 느꼈던 것이다.
자신들이 드라칸(혹은 드라콘)이라 이름 붙인 이 희귀한 변종이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존재라는걸.
“신계에서의 삶은 즐겁지 않았다. 신들은 신계 외곽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샘물’을 수호하라는 임무를 내게 맡겼지. 말이 수호 임무지 그건 추방령에 가까웠어. 그들은 날 그곳으로 보내 신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면서, 자신들의 눈에는 띄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는 도롱뇽은 서글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난 형제를 만났다.”
도롱뇽이 수호하던 성스러운 샘물은 ‘성스러운 숲’ 안에 있었다.
그리고 성스러운 숲은 온통 금으로 된 양털로 가득했는데, 성스러운 샘물을 보호하는 도롱뇽처럼 금 양털을 지키는 존재 또한 있었던 것이다.
그가 도롱뇽을 찾아와 말했다.
‘난 너의 형제야.’
도롱뇽은 그의 말을 한치의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외모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자신과 똑 닮아 있었으니까.
‘난 성스러운 숲 코르키코스를 지키는 자, 드라칸 코르키코스야.’
‘드라칸 코르키코스?’
‘네 이름은 뭐니?’
도롱뇽은 생각했다.
드라칸, 혹은 드라콘은 신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
그리고 코르키코스는 이곳 성스러운 숲의 이름이었다.
도롱뇽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해 냈다.
‘……난 성스러운 샘물 이스메니오스를 지키는 자,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야.’
드라칸 코르키코스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넌 나의 하나뿐인 형제야. 난 오랫동안 이곳에서 널 기다려 왔어.’
드라칸 코르키코스가 머리를 내밀어 도롱뇽의 목에 문질렀다.
도롱뇽은 그것이 친근함의 표시라는 것을 알았다.
이때의 도롱뇽과 드라칸 코르키코스는 날개는 물론이고 다리 한 짝도 달려있지 않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기실 드라칸과 드라콘은 ‘거대한 뱀’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였다.
물론 아직 둘은 거대하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자그만 뱀이었지만.
‘나 역시 오랫동안 널 기다려 왔는지도 모르겠어. 드라칸 코르키코스.’
도롱뇽도 머리를 뻗어 코르키코스의 목에 문질렀다.
둘은 순식간에 가까워졌고, 서로를 의지했다.
“…….”
거기까지 말한 도롱뇽이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고개 돌려 칼날 산맥 방향을 바라봤다.
아틸라는 놀랐다.
도롱뇽에게 형제가 있었고, 더욱이 그 하나뿐인 형제가 칼날 산맥의 드라코리치였다는 사실은 아틸라도 몰랐다.
바토리도 동그랗게 눈을 뜨며 도롱뇽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먼 옛날 엘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광룡이라 불리는 거야? 왜 다른 드래곤과 달리 특별한 존재라 불리는 거야?’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여타 드래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거든. 그래서 특별한 존재라 불리는 거야.’
그랬구나. 그랬던 것이로구나 도롱뇽아.
“……신계에서 얼마의 시간을 머물렀는지는 모른다. 나와 코르키코스는 반신이었고, 불멸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이후의 기나긴 삶에 비교한다면 신계에서의 삶은 불티처럼 짧았다. 드라칸과 난 신계를 벗어나 부모를 찾기로 했다.”
신계를 벗어날 수 있는 특이점을 발견한 건 도롱뇽이었다.
도롱뇽은 오랜 세월 동안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성스러운 샘물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샘물 안에 몸을 던졌고, 그곳에서 ‘틈새’를 찾았다.
“난 코르키코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코르키코스와 함께 샘물 속으로 들어갔지. 틈새에선 난생처음 경험하는 특별한 마력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저게 뭐지 코르키코스?’
‘나도 모르겠어 이스메니오스. 하지만 굉장한 마력인 것만은 분명해.’
“호기심이 생긴 코르키코스와 난 틈새의 마력을 연구했다. 그곳에서 방출되는 마력을 각자의 몸으로 흡수하고, 융합을 시도했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틈새의 마력과 우리의 마력을 융합해 섬세하게 가공한다면, 중간계로 이동이 가능한 균열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는 동안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의 몸에서 네 개의 다리가 돋아난 것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코르키코스? 우리 몸에 다리가 생겼어.’
‘틈새의 마력이 우리의 마력과 합쳐지며 새로운 힘을 주조한 것 같아. 놀라워!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이스메니오스!’
두 반신에게 이런 변화가 일었다는 것을 신계의 신들은 몰랐다.
그들은 도롱뇽과 코르키코스가 신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면 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둘이 신계를 탈출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랬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신계를 탈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코르키코스! 우리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어!’
‘걱정 마 이스메니오스! 연구대로라면 우린 곧 중간계에 도착할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게 될 거야!’
도롱뇽은 그 말을 믿었다.
코르키코스는 도롱뇽의 하나뿐인 형제다.
‘갑자기 풍경이 변했어 코르키코스! 구름이 보여! 저 멀리 지상이 보여!’
‘나도 마찬가지야 이스메니오스!’
‘우린 너무 높은 곳으로 이동했어! 이대로 추락하면 죽을지도 몰라!’
도롱뇽은 덜컥 겁을 먹었다.
몸이 경직되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코르키코스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마력과 틈새의 마력이 융합하며 네 다리를 주조했듯, 이 상황을 벗어날 새로운 기관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정신을 집중해 이스메니오스! 우린 신계라는 감옥을 벗어났어! 우리에겐 놀라운 힘이 있어! 너와 난 이 세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거야! 그러기 위해 우린 지금, 하늘을 정복해야 해!’
코르키코스의 몸에서 변화가 일었다.
네 다리 사이의 몸통이 두꺼워졌다.
뒷다리 너머의 기다란 몸체는 점점 짧아져 꼬리처럼 변했다.
부드득. 부득…….
그의 등에서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도롱뇽은 놀란 눈으로 그 위대한 진화를 바라봤다.
너무나 놀랍고도 환상적인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대단해! 대단해 코르키코스!’
‘너 또한 할 수 있는 일이야 이스메니오스! 너 자신을 믿어! 우리 몸엔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도롱뇽은 코르키코스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코르키코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도롱뇽은 자신의 마력과 틈새의 마력을 일깨웠다.
의지를 집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스스로의 몸에 찾아든 눈부신 진화를 목격했다.
‘성공이야! 내게도 날개가 생겼어 코르키코스!’
‘하하하! 그럼 이제 마음껏 하늘을 날아 볼까? 이스메니오스!’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날개를 마음껏 움직이며 하늘을 날았다.
어느새 코르키코스의 몸은 상당히 커다래져 있었다.
신계에 머물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도롱뇽은 그보다는 조금 작았다.
두 형제는 부지런히 하늘을 날며 잃어버린 부모를 찾았다.
그러나 중간계는 생각보다 넓었고, 생명체들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중간계가 이렇게 넓고 정신없는 곳인지 몰랐어 코르키코스.’
‘동감이야 이스메니오스. 이래선 부모를 찾는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겠는걸?’
그러나 두 형제는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의 삶은 무한했고, 그래서 이렇게 중간계를 낱낱이 파헤치다 보면 분명 부모를 만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이것 봐 코르키코스. 신기한 생물이 있어.’
‘와 진짜네? 중간계는 정말 신비로운 곳이야. 따분한 신계와는 비교할 수도 없어!’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세계를 탐험했다.
부모를 찾겠다는 의지로 신계를 벗어난 그들이었지만, 그 못지않게 이 세계를 탐구하는 일이 즐거웠다.
후에 안 일이었지만, 당시의 도롱뇽과 코르키코스는 세계의 절반 정도만을 탐험했다.
지금의 남부 대륙과 북부 제국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중 코르키코스와 난 만나게 되었다.”
도롱뇽의 말에 카스피가 짝! 손뼉을 쳤다.
“드, 드디어 부모를 만난 거구나 도롱뇽!”
“크흐윽……! 저, 정말 그런 것이냐! 아빠와 엄마를 만난 거냔 말이냐 이 불쌍한 도마뱀아아아!”
오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도롱뇽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코르키코스와 내가 만난 건 부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존재는 도롱뇽과 코르키코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가 신계 외곽으로 추방됐고, 그곳에 존재하는 틈새를 통해 중간계로 넘어왔다는 것 역시도.
도롱뇽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들의 정체를 아는 존재가 중간계에 있다는 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 존재의 몸에선 엄청난 힘이 발산하고 있었다.
자신보다도.
그리고 자신의 형제인 코르키코스보다도 더욱 강한 힘이.
그러면서 도롱뇽은 그 존재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낯익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기억했다.
‘틈새의 마력.’
성스러운 샘물 깊은 곳에 존재하던 틈새.
그곳에서 발산하던 마력과 같았다.
또한 그것은 자신과 코르키코스의 몸 안에도 존재하는 마력이었다.
“그 존재는 자신을 가리켜 악마(惡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