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남부 전쟁 (5)
아틸라는 확신했다.
카르타고의 환수, 아에스투스가 무언가의 대상을 향해 브레스를 내뿜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라면 분명.
“이, 이런 시벌! 가까스로 제국의 드래곤에게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했더니! 또 드래곤인 거요!”
“바보 영주 나리! 지금 드래곤이 문제야? 카르타고가 있다잖아! 우리가 녀석을 쓰러뜨리면 남부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게 되는 거라고!”
“힉! 듣고 보니 그렇네!”
오토가 아틸라를 돌아봤다.
“아, 아틸라 님은 이미 레드 드래곤 두 마리와 드래곤 마스터까지 죽이지 않았소. 이참에 카르타고 녀석을 없애 버립시다. 지, 지난번처럼 내가 도와주겠수!”
오토가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실제로 그는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나, 나도 아틸라! 이번엔 나도 제 실력을 보일 수 있다고! 아무리 카르타고가 강해도 아틸라에 바토리, 그리고 나까지 합세하면 분명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아에스투스는 성체가 된 도롱뇽이 쓰러뜨리면 되고 말이야!”
“왜, 왜 난 빼먹는 거요!”
“영주 나리는 별 도움이 될거 같지 않아! 그냥 요롱이 타고 멀찍이 떨어져 있으라구!”
“지난번에 내가 얼마나 큰 활약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요!”
오토와 카스피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요롱이는 점점 더 높은 곳을 향했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눈보라 너머로도 칼날 산맥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하늘을 받치듯 솟아오른 광활한 벽.
용중용이라 불리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마저 넘어 본 적이 없는 대자연의 경이.
“상단부 괴수들이 보이지 않는구나.”
바토리가 말했다.
카스피도 귀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정말이네? 괴수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그럼 더 잘 된 거 아니요! 카르타고를 쓰러뜨리는 데 방해할 놈들이 없다는 거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단다 철혈귀검아.”
“무슨 소리요? 괴수들이 없으면 좋은 거 아니요?”
“괴수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상단부 괴수들마저 두려워하는 존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거란다.”
“어이 오토. 애초부터 카르타고가 왜 이런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리고 놈의 환수인 아에스투스는 누구를 향해 포효하고 있는 거고.”
“그, 글쎄 그건 나도 잘…….”
“산맥 중턱과 상단부의 언데드 비행종들은 직전까지 우릴 호위했다. 다가오는 다른 괴수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쫓아내면서까지.”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당최…….”
“어떤 강력한 존재가 언데드 비행종을 보내 우릴 이끌었다는 거다.”
오토와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그럼 설마……!”
“우, 우리가 가는 곳에 언데드들의 대장이 있다는 거요?”
“그래.”
아틸라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우린 지금 드라코리치의 둥지를 향해 가고 있다.”
“드, 드라코리치?”
“그게 뭔데 아틸라?”
“드라코리치는 드래곤이 죽은 뒤 무언가의 계기로 부활한 존재다. 아울러 모든 언데드를 통틀어 최상위 포식자로 불리고 있지.”
아틸라는 이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샤를의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해 산맥 중턱의 스켈레톤 드레이크를 상대하러 가는 길에, 드라코리치의 존재를 떠올린 적이 있었다.
카스피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아틸라. 그 드라코리치라는 녀석은 드래곤이 부활한 존재니까 엄청 강한 거 아냐? 어쩌면 지난번 우리가 상대했던 해골 드레이크보다 더…….”
도롱뇽이 콧방귀를 뀌며 나섰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드라코리치는 그깟 해골 드레이크 새끼들이 무더기로 덤벼도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이다. 게다가 놈은 애초부터 평범한 드래곤도 아니었지. 그래서 언데드가 된 지금도 규격 외의 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거다.”
카스피는 도롱뇽의 말에서 작은 의문을 발견했다.
“근데 도롱뇽은 드라코리치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넌 드라코리치를 본 적이 있어?”
도롱뇽이 괜한 이야기를 했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내뱉듯 말했다.
“……알다마다. 내가 녀석을 드라코리치로 만들었는데.”
그 말에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뭐? 네가 드라코리치를 만들었다고?”
아틸라뿐 아니라 바토리도 놀란 눈으로 도롱뇽을 봤다.
바토리는 엘을 통해 드라코리치에 대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칼날 산맥 상단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 말고는, 딱히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다.
“자세히 얘기해 봐라 도롱뇽.”
“지금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은데. 야만 미물.”
그 말과 동시에 시야가 환해졌다.
쏟아지던 눈폭풍이 개었다.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리고 일행은 보았다.
키랴랴랴랴랴랴!
아에스투스가 무언갈 향해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그 위엔 카르타고가 온몸에서 검은 기운을 흩뿌리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게다가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리치?’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뒤에 선 언데드 마법사를 노려봤다.
마법사의 정체는 바토리가 확인해 주었다.
“수블라 템페스타.”
회색 마탑의 탑주, 수블라 템페스타.
중앙 마탑을 제외한 4대 마탑 중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던 존재.
그리고 아틸라는 깨달았다.
태풍의 눈에 들어온 것 같다는 착각은 찰나에 불과했다.
펏퍼퍼퍼펑!
수블라의 손에서 검은 폭풍이 몰아쳤다.
그것을 가로막는 얼음 폭풍이 있었다.
드라코리치의 브레스였다.
채채채채채채챙!
검은 폭풍이 얼어붙으며 산산조각 났다.
수블라의 마법 공격은 드라코리치에게 통하지 않았다.
“저, 저게 드라코리치?”
카스피가 쩌억 입을 벌렸다.
드라코리치는 엄청나게 컸다.
지금까지 본 드래곤 중 가장 거대했다.
덩치뿐 아니라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어마어마했다.
성체가 된 도롱뇽과, 타락한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와, 세베스티아를 포함한 레드 드래곤들도 모두 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카스피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살갗을 타고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감각이었다.
벌레들은 카스피의 눈, 코, 입, 귀를 타고 들어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공포’라는 이름의 벌레였다.
“크흑……! 큭……! 크흐윽……!”
카스피는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오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흔들리는 오토의 정신은 요롱이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지금껏 마법에 홀린 듯 이곳으로 직진한 요롱이였지만, 드라코리치를 마주한 순간 마법은 깨졌다.
요롱이가 몸을 휘청거렸다.
“오토!”
아틸라가 외쳤다.
아틸라와 바토리는 강인한 정신력을 발휘해 드라코리치의 공포로부터 가까스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오토가 이를 악물었다.
와드득, 자신의 혀를 깨물며 일말의 정신을 회복한 그가 요롱이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요롱이가 날개를 뻗치며 흔들리는 몸을 지탱했다.
“버텨라 요로오오오옹!”
아틸라는 드라코리치와 카르타고의 격전을 봤다.
일대일의 대결은 아니다.
드라코리치는 혼자였지만 카르타고에겐 아에스투스와 수블라가 함께였다.
그럼에도 카르타고는 드라코리치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 오랜만이군. 버서커 아틸라.
카르타고가 말했다.
그의 음성은 돌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렸다.
- 네가 이곳을 찾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군. 그 하찮은 나바라의 왕이 용인의 힘을 얻은 것인가.
카르타고는 오토가 용인의 힘을 지닌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제국에 드래곤이 출현했다는 것과, 그 드래곤들과 함께하는 용기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 그렇다면 그자 역시 고대인의 피를 지녔다는 것이로군.
퍼컹!
드라코리치의 입김이 카르타고, 수블라, 아에스투스를 한꺼번에 밀어냈다.
제아무리 카르타고라 해도 최강의 언데드인 드라코리치를 압도할 순 없었다.
아에스투스와 수블라가 가세해도 마찬가지였다.
카스피가 떨리는 몸을 가누며 물었다.
“도, 도롱뇽……! 정말로 네가 저 드라코리치를 쓰러뜨린 거야……? 저 카르타고조차 꼼짝도 못 할 정도로 강한데……?”
“다, 당연하지! 전성기 시절의 이몸을 당해 낼 놈은 없었어! 저깟 드라코리치 녀석, 이몸이 힘만 되찾아도 한 방에 그냥……!”
도롱뇽이 말끝을 흐렸다.
입버릇처럼 외치긴 했지만, 도롱뇽은 드라코리치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 녀석만큼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어이, 살쾡이 미물. 종복 미물.”
드라코리치의 공포에 짓눌린 카스피와 오토를 보며 도롱뇽이 마기를 방출했다.
그리 강한 마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카스피와 오토는 머릿속을 기어 다니던 벌레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어어? 갑자기 몸이……!”
“벌레가 사라졌다! 벌레가 사라졌다고!”
이때의 카스피와 오토는 몰랐지만, 두 사람이 느낀 공포의 정체는 드라코리치의 권능, ‘피어(Fear)’였다.
도롱뇽은 드라코리치의 피어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
펄럭!
드라코리치가 거대한 몸을 흔들며 카르타고에게 쇄도했다.
카르타고의 검에서 오러가 뿜어졌다.
수블라는 폭풍의 마법을 시전했고, 아에스투스도 브레스를 쏟아 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들은 드라코리치를 제압할 수 없었다.
그들은 드라코리치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방어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카르타고가 왜 이곳에 온 것인지 추론했다.
‘드라코리치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다.
카르타고에 대항하는 샤를의 연합군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으로 날아와 드라코리치를 상대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드라코리치를 환수로 만들기 위해?’
그럴 가능성도 적다.
제국의 드래곤과 용기사에 대한 것까지 알고 있는 카르타고다.
물론 그 사실은 벨리알, 아니 아자젤이 전했을 터.
아무튼 카르타고는 드라코리치의 실력을 짐작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틸라가 보기에 드라코리치는 세베스티아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했다.
카르타고도 그 사실을 알았을 거다.
그래서 수블라 템페스타도 이곳에 데려왔을 테지.
‘카르타고는 드라코리치를 환수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드라코리치는 강하다.
사실 아틸라는 드라코리치가 얼마나 강한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다만 모든 언데드 중 최강의 포식자라 설정되었기에, 카르타고 이상의 강자라는 것만을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본 드라코리치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도롱뇽이 생전의 드라코리치를 쓰러뜨렸다는 말이 쉬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물론 도롱뇽이, 아니 전성기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드라코리치보다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용중용 드라코니안’이라 불리는 최강의 드래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다른 드래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태어났다.’
그것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다른 드래곤과 구별되는, 특별한 강함을 지닌 이유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이 세계에 드래곤으로서 탄생하지 않았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신과 요툰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