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5. 남부 전쟁 (4)
카스피의 물음에 오토가 정색을 했다.
“그따위라니! 요롱이라는 이름이 뭐 어때서 말이요!”
“아니 당최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니까?”
“뻔하지 않느냐 카스피. 아틸라가 도롱뇽을 도롱뇽이라 부르니, 그와 비슷한 이름을 흉내 낸 것이야.”
“응? 듣고 보니 그러네? 요롱이. 도롱뇽. 우와.”
“간사한 종복 미물 새끼. 이몸의 이름, 아니 별명을 따라 한 거였냐?”
“따라 하기는 무슨! 그런 적 없다 이 요망한 도마…… 케헥! 꾸에엑! 아, 앞이 안 보여! 추락한다! 누가 이 미친 도마뱀 좀 떼어주쇼오오!”
“흐에에엣! 그, 그만둬 도롱뇽!”
“후……. 미친 도롱뇽 새끼.”
아틸라가 정신 교육을 시전한 뒤에야 도롱뇽은 오토의 얼굴을 할퀴는 것을 멈췄다.
아틸라는 도롱뇽을 펀치의 입에 물렸다.
“나대지 않도록 꽉 물고 있어 펀치.”
끼아옹!
“어이 오토. 도롱뇽의 이름을 흉내 낸 게 아니면 뭔데.”
“그, 그건……!”
“새끼. 따라 할 게 없어서 도롱뇽 이름을 따라 하냐.”
“그, 그게 아니요! 요롱이는 그! 그러니까……!”
오토가 힐끔 카스피를 돌아봤다.
“그…… 살쾡이 암살자를 떠올리며 만든 이름이요.”
“엥? 나를?”
카스피가 솔깃하며 되물었다.
그녀의 얼굴 표정은 즐거움과 호기심이 반씩 섞여 있었다.
“헤헤 뭐야. 그런 거였어 영주 나리? 근데 왜 요롱이야? 요롱이가 무슨 뜻인데?”
“……요, 요롱이의 요(腰)는 허리라는 말 아니요.”
카스피가 눈을 빛내며 끄덕거렸다.
“응응 맞아. 그래서?”
“……그리고 롱(Long)은 길다는 뜻이고.”
“응. 응.”
오토는 물끄러미 카스피의 허리선을 바라봤다.
아틸라와 바토리도 같은 곳을 봤다.
가장 먼저 웃음을 터뜨린 건 바토리였고, 아틸라도 알겠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무슨 말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카스피가 불현듯 표정을 바꿨다.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뭐, 뭐뭐뭐, 뭐야. 그러니까 지, 지금 내 허리가 길다는 거야?”
“……짧은 편은 아니지 않수.”
“이 변태 영주 나리가아아아!”
카스피가 울분을 토하며 오토의 목을 후려쳤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얼굴을 마구 때린 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죽엇! 죽엇! 그냥 죽어 버리라구!”
“켁! 끄헤에엑! 나, 나 좀 살려 주쇼 아틸라 님! 바토리 아가씨이이이!”
“멍청한 종복 미물 새끼! 케헷헷! 케헷헷헷헤!”
펀치의 입안에서 도롱뇽이 박장대소했다.
펀치도 혀를 헥헥대며 두들겨 맞는 오토를 봤다.
바토리가 ‘이래선 비행을 할 수 없다’며 카스피를 말린 뒤에야 구타는 멈췄다.
직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적막이 흘렀다.
날카로운 바람 소리만이 공기를 울렸다.
아틸라가 중얼거렸다.
“머지않아 도달하겠군.”
탈리 왕국을 벗어난 일행은 수오미 왕국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일행은 달빛우물숲을 향해 이동 중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슈시아가 있는 서리나무숲이었지만, 중간에 달빛우물숲에 들르기로 했다.
‘엘프 지원군은 많을수록 좋을 테니.’
달빛우물숲의 수장이자 대드루이드인 요르그 문샤인웰은 아틸라에게 빚이 있다.
아틸라는 칼날 산맥에서 손에 넣은 ‘드레이크의 심장’으로, 요르그의 아들인 넬다의 희귀병을 치료한 적이 있다.
“저, 정말 그런 것 같소. 갑자기 이렇게 추워지는 걸 보니.”
오토가 바르르 몸을 떨었다.
바토리는 이미 펀치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카스피는 얼마 전까지 오토를 구타하던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오토의 등 뒤에 숨어 바람을 피했다.
“으으 영주 나리……. 너무 추워…….”
아틸라도 추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늘 위를 비행하며 찬 바람을 맞으니 더욱 참기 힘들었다.
그때였다.
휘이이이이잉.
바람이 변하며 급속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주위 풍경이 완전히 변했다.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여긴?’
일행은 칼날 산맥에 있었다.
오토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으힉! 가, 갑자기 이게 뭐요!”
“흐에에엣! 여기 칼날 산맥 아니야? 조금 전까지 분명 평원을 날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틸라도 놀랐다.
카스피의 말대로, 일행은 수오미 왕국 북서쪽의 대평원을 날고 있었다.
평원을 지나면 울창한 밀림이 있고, 그 안에 달빛우물숲으로 통하는 틈새가 존재한다.
그런데 일행은 밀림을 보지 못했다.
대평원을 지나는 도중 갑자기 풍경이 바뀌었다.
“이것도 대격변의 영향인 듯하구나.”
아틸라도 바토리의 생각에 동의했다.
“오토. 방향을 틀어. 왔던 길로 돌아간다.”
“아, 알겠수!”
오토가 요롱이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그런데 요롱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날던 방향을 유지했다.
“응?”
오토는 다시 한번 요롱이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토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엥? 이, 이거 왜 이러지?”
“무슨 일인데 영주 나리.”
“요롱이가 내 말을 듣질 않소.”
“응? 에에에엥? 그게 무슨 소리야!”
오토는 한 번 더 요롱이에게 의지를 전했다.
그러나 요롱이는 무시했다.
아니, 무시한다기 보다 오토는 자신의 의지가 무언가의 벽에 가로막혀 요롱이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히익! 이, 이게 무슨……!”
오토는 자신이 느낀 감각을 일행에게 설명했다.
먼저 입을 연 건 도롱뇽이었다.
“요롱 미물 녀석. 아무래도 마기에 홀린 것 같군.”
“마기라고?”
아틸라의 물음에 도롱뇽이 답했다.
“칼날 산맥 꼭대기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요롱 미물은 그 기운에 홀린 거야.”
아틸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칼날 산맥의 꼭대기.
그곳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마기라면.
‘설마.’
“야만전사야.”
바토리도 아틸라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마기의 정체를 짐작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는다면, 일행은 지금껏 마주했던 그 어떤 위기보다도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아틸라와 바토리의 얼굴을 본 오토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요.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요.”
아틸라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도롱뇽의 말이 사실이라면, 요롱이는 칼날 산맥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에게 날아가고 있다.
“전부 아래로 뛰어내려.”
“엥? 뭐요?”
아래를 내려다본 오토가 기겁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아틸라 님은 물론이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요!”
“바토리의 보호막이면 살 수 있다.”
그 말에 솔깃한 표정을 짓던 오토가 다시 얼굴을 굳혔다.
“그, 그럼 요롱이는 어떻게 되는 거요. 우리가 아래로 뛰어내려도 요롱이는 계속 산맥 상단부로 이동할 거 아니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오토는 아틸라의 말뜻을 이해했다.
아틸라는 요롱이를 버리고 자리를 이탈하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요롱이는 내 친구요!”
“이대로라면 일행 모두가 위험해진다.”
오토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틸라 님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 펀치만 두고 도망칠 수 있겠소?”
아틸라는 말문이 막혔다.
펀치의 얼굴을 봤다.
헥헥 혀를 내밀며 펀치가 고개를 갸웃했다.
“야만전사야. 우린 벌써 산맥 중턱에 이르렀다. 여기서 뛰어내린다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지.”
안력을 향상시킨 바토리가 아래를 내려 봤다.
“아래쪽에 괴수들이 상당수 보인다. 내 보호막으로 착지에 성공한다 해도 저 많은 괴수들을 상대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저, 정말이야 아틸라! 아래쪽에 괴수가 드글드글…… 흐에엣! 저건 또 뭐야!”
카스피가 손가락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댔다.
비행종 괴수들이 일행을 포위하듯 근방을 날고 있었다.
‘하나같이 언데드 괴수들뿐.’
스켈레톤 드레이크를 포함해 많은 언데드 비행종이 보였다.
다행히 이쪽을 공격하려는 듯한 개체는 없었다.
‘우릴 호위하려는 건가. 아니, 감시라고 해야 할지도.’
아틸라가 일행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요롱이를 따라간다.”
언데드 비행종들이 공격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는 거다.
게다가 놈들은 요롱이의 주변을 선회하고 있다.
키에에에에!
비행종 하나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다른 비행종을 공격했다.
그 비행종은 언데드가 아니었다.
나머지 언데드들도 괴수 비행종을 공격했고, 멀리 쫓아냈다.
이후로도 몇 차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던 중 일행은 상상을 초월하는 추위를 맞이했다.
추위뿐만이 아니었다.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일행을 습격했다.
산맥 중턱을 넘어 상단부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가 상단부인가.’
수해 최심부와 마찬가지로, 칼날 산맥 상단부는 아틸라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주위를 함께 날던 언데드 비행종들도 다른 개체로 바뀌었다.
‘중턱 괴수에서 상단부 괴수로 바뀐 거로군.’
“아틸라……. 나 너무…… 추워…….”
카스피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말했다.
고통스러운 건 아틸라, 바토리, 오토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롱이도 더는 날갯짓이 힘든지 조금씩 아래로 떨어졌다.
“요, 요롱아!”
오토가 턱을 바들바들 떨며 외쳤다.
오토는 요롱이와 정신 감응으로 이어져 있기에, 요롱이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아틸라가 고개 돌려 바토리를 봤다.
“바토리.”
“알겠느니라.”
아틸라의 눈빛을 읽은 바토리가 마법을 발현해 열의 구체를 띄웠다.
이전에 칼날 산맥을 찾았을 때도 바토리는 이런 구체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러 개도 아니었고, 중턱에 오르자마자 소거했었다.
괴수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 언데드 비행종들이 우릴 지켜 줄 것 같구나.”
열의 구체는 여러 개였기에 요롱이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나머지 일행도 구체에서 발산하는 열기 덕에 매서운 추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오토가 주섬주섬 말했다.
“저, 저기 아틸라 님.”
“왜.”
“요롱이를 버리지 않아 주어서 고맙소.”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근데 저 언데드들이 우릴 보호하는 이유가 뭔 거 같소?”
“난들 아냐.”
“언데드들이 갑자기 우릴 버리고 떠나면 어떻게 되는 거요?”
“상단부 괴수들이 몰려오겠지.”
“사, 상단부 괴수라면 지난번 중턱 괴수들보다 더 강한 놈들 아니요?”
“당연한 소릴 하는구나. 철혈귀검아.”
“히익!”
“따뜻해졌으면 좀 닥치고 있어라 딱따구리 새끼. 너 때문에 없던 괴수들까지 몰려올 판이니까.”
오토가 두 손으로 헙! 입을 막았다.
요롱이는 계속해서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았다.
주위를 함께 날던 언데드 비행종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어느새 비행종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니, 퍼붓는 눈보라 때문에 일행은 코앞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었다.
“……어이. 야만 미물.”
아틸라는 도롱뇽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말해라.”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이 있다.”
“녀석?”
“카르타고.”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바토리, 오토, 카스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익숙한 포효가 하늘을 울렸다.
키랴랴랴랴랴랴!
아틸라는 포효의 주인공을 직감했다.
‘아에스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