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04화 (304/425)

304. 남부 전쟁 (3)

샤를은 짙은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연합군 내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중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싸워 왔다.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됐지만, 끝없이 길었다.

놈들은 말 그대로 정말 끝도 없이 아군을 괴롭혔다.

물론 대부분의 언데드는 금사자 기사단과 청마탑 마법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언데드는 쉬이 숫자가 줄지 않았다.

아무리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그 이상의 숫자가 계속해서 채워졌다.

심지어 언데드 군단에겐 식사도, 수면도 필요 없었다.

식사를 해야 하고, 용변을 봐야 하고, 일정 시간 잠을 자야 하는 인간과는 분명하게 달랐다.

언데드 군단은 연합군이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초월적인 육체를 지닌 샤를조차 피로가 쌓였다.

나머지 기사와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역시 센트럴 왕국은 이미 카르타고에게 점령됐었네. 샤를.”

피핀의 말에 샤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중앙 마탑은 건재해. 우리 목적은 어차피 센트럴 왕국 전체가 아닌, 중앙 마탑을 살리는 거였지.”

샤를과 피핀은 저 멀리 보이는 중앙 마탑을 응시했다.

먼 거리 탓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아직 카르타고의 어둠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마탑을 둘러싼 언데드가 너무 많아. 지금껏 우릴 공격한 놈들은 극히 일부로 보일 정도야.”

샤를과 피핀은 우여곡절 끝에 중앙 마탑 근방에 도달했다.

방금 전까지도 언데드들과 전투가 있었다.

해뜨기 전부터 시작된 전투는 해가 저물고도 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끝났다.

불침번을 제외한 병사들은 깊이 잠들었다.

샤를은 고개를 흔들었다.

전면전이 벌어진 이래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의 신체능력은 저하됐다.

신경도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샤를은 그런 상황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잠을 자는 게 좋겠어. 샤를.”

피핀만이 샤를의 상태를 짐작했다.

피핀은 샤를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친구다.

“난 괜찮아. 너야말로 조금 자두는 게 좋을걸. 눈 밑이 시체처럼 퀭하다고.”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샤를?”

피핀의 말에 샤를은 크게 웃었다.

이렇게 피핀과 허물없이 대화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피핀이 말했다.

“역시 황마탑과 적마탑도 중부 전선에 합류시킬 걸 그랬어.”

“아니. 그랬다간 북부 전선과 남부 전선이 위태로워질 거야. 특히 북부는 더욱 위험하지. 그곳엔 금사자 기사단도, 크레센시아 성기사단도 없으니까.”

“하지만 전투 코끼리 부대가 있잖아.”

샤를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취약한 북부 전선에 전투 코끼리 부대를 배정했다.

전투 코끼리는 마법적인 힘은 없지만, 언데드들을 납작하게 밟아 재생을 막을 수 있다.

“전투 코끼리는 일반적인 언데드 상대로는 충분히 강해. 하지만 데스나이트와 리치를 상대하긴 어렵지.”

문제는 데스나이트와 리치만이 아니다.

카르타고에겐 아에스투스가 있다.

기동성을 확보한 카르타고의 기습을 대비하려면 전선마다 마법사의 존재는 필수다.

“후……. 그래 샤를. 네 말이 맞긴 한데, 그렇다고 중부 전선의 병력만으로 중앙 마탑을 구할 수 있을까?”

현재의 병력만으로 중앙 마탑을 둘러싼 언데드 군단을 해치우는 건 힘들었다.

물론 금사자 기사단과 청마탑의 마법사들은 강하다.

제롬의 마력이 담긴 무기는 언데드에게 치명적이고, 생명의 기운을 포함한 물 속성 마법 역시 놈들에게 강력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하지만 상대의 수가 너무 많았다.

‘피핀의 말이 옳아. 중부 전선이 중앙 마탑을 회수하려면 다른 마탑들과 크레센시아 성기사단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 또한 멍하니 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전령들은 북부 전선과 남부 전선의 전투 피로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엘프라도 있었다면.”

피핀이 중얼거렸다.

엘프들이 있었다면.

그들이 지닌 발키리의 힘이 있었다면 전선의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좋았을 것이다.

샤를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엘프들의 은거지를 찾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찾지 못했다.

샤를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서일까.

그러나 샤를은 잠시라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서리나무숲을 방문한 적이 있는 제롬도 연이은 마법 부여로 바빴다.

서리나무숲을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는지도 모른다.

‘황금바위 드워프족이라도 끌어들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크누트 스톤핸드와 보에몽 스톤핸드는 강했다.

라그나 크림슨비어드를 위시한 나머지 드워프들도 한 명 한 명이 빼어난 강자였다.

그러나 그들만으론 부족하다.

게다가 드워프들은 언데드를 상대로 그리 파괴적인 모습을 보이진 못했다.

드워프에겐 언데드의 재생을 막을 수단이 없다.

드워프들이 쓰러뜨린 언데드는 계속해서 재생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드워프들은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며 재차 도끼를 휘두르곤 했다.

‘누음앗핫핫핫하!’

‘이거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살아나는구만!’

‘그건 네 도끼질이 약해서 그런 거지!’

‘너야말로 황금바위산으로 돌아가 장작이나 패라고!’

얼마 전 크누트 스톤핸드는 아틸라를 언급했었다.

그러자 보에몽과 라그나도 아틸라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들은 아틸라와 상당히 가까운 관계처럼 보였다.

샤를도 아틸라를 떠올렸다.

아니, 그는 언제부턴가 상당한 시간을 아틸라를 생각하는 데 할애했다.

아틸라가 있었다면 중부 전선엔 이미 발키리들이 포함됐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틸라와 그의 동료들이 지닌 힘은 그 어떤 잠재된 아군보다도 막강하다.

‘발키리보다 더욱 탐나는 힘이지.’

샤를은 여전히 아틸라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옆에 아틸라가 있다면, 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샤를은 든든함을 느꼈다.

카르타고를 제외한다면, 아틸라는 샤를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유일한 전사였다.

그리고 그건 피핀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이었다.

‘피핀은 강하다. 하지만 아틸라만큼은 아니다.’

사실 둘의 실력은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의 격차가 있다.

샤를은 아틸라의 힘을 자신과 호각으로 보았다.

피핀은 아인하르트 왕국에서 샤를 다음가는 실력자라 인정받고 있지만, 샤를이나 아틸라의 상대는 결코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어?”

피핀의 목소리가 샤를의 상념을 깨웠다.

샤를이 무심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아무것도.”

“우리가 원하는 세계가 올 수 있을까?”

피핀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이렇게 밤하늘을 보며 샤를과 이야기를 나눴었다.

두 사람은 마음속 이야기를 터놓는 각별한 관계였다.

피핀은 샤를의 목표를 알게 되었고,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전쟁이 없는 세상.

두 사람의 공통된 꿈이었다.

“대격변 이후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샤를.”

“글쎄.”

“우리가 카르타고를 물리치고, 남부 대륙을 규합하고, 그것을 넘어 북부 제국까지 통일하면 전쟁이 없는 세상이 찾아올까?”

“…….”

“아니면 그건 그저, 다가올 진짜 대전쟁의 서막에 불과한 것일까.”

피핀의 말은 샤를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샤를 역시 최근 들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샤를의 목표는 피핀과는 조금 달랐다.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은 같다.

그러나 샤를에겐 하나의 목표가 더 있었다.

샤를은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길 원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악마와 요정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다.

그것을 떠올릴 때마다 샤를은 외로움을 느꼈다.

자신을 따르는 많은 이들 사이에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인간이었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 인간.

‘어머니를 죽인, 인간.’

샤를은 인간의 손에 살해당한 어머니를 기억했다.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어머니를 죽였다.

샤를에겐 인간을 원망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그녀는 샤를이 인간을 용서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원했다.

그래서 샤를의 악의는 인간이 아닌, 요정과 악마에게로 집중됐다.

‘요정들은 어머니를 추방했다.’

어머니는 힘을 잃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인간에게 살해당했다.

‘요정들이 어머니를 추방한 이유는 아버지의 존재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악마다.

확신하진 못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정확히 말해 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샤를은 자신의 몸에 악마의 힘이 깃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에겐 요정과 악마의 힘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샤를은 직감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요정의 힘보다, 악마의 힘이 더욱 강력하다는 것을.

그래서 피핀의 말은 샤를의 정신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

아니, 그 파문은 이미 샤를의 마음속 깊숙이 드리워 있었다.

점점 더 커다란 원을 그리며 확장됐다.

샤를은 생각했다.

나는 진정으로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또한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대격변은 신계, 용계, 정령계 등 중간계의 지성 종족보다 월등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세상과의 겹침 현상을 의미한다.

그렇게 새로이 재편성된 세상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일 것인가.

샤를은 인간의 힘이 지닌 한계를 알고 있다.

최강의 관조자라는 바토리 에르제베트도 인간이 되며 많은 힘을 잃었다.

그와 반대로 카르타고는 망자가 되며 생전보다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인간의 육체는 힘의 한계를 규정한다.

어찌 보면 자신은 인간의 모습을 흉내 내느라 진정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틸라.’

샤를은 다시 한번 아틸라를 떠올렸다.

신비로운 사내였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 같지 않았다.

샤를은 아틸라가 자신과 같은 존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일는지도 모른다.

샤를의 눈이 피핀을 돌아봤다.

처음으로 피핀의 얼굴이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샤를은 그런 생각을 피핀에게 드러내지 않았다.

“다가올 대전쟁의 서막이라.”

샤를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글쎄. 미래의 일은 알 수 없겠지. 피핀.”

“하긴. 그래서 삶은 재밌는 것 같아. 정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니까 말이야.”

피핀이 웃었다.

피핀을 보며 샤를도 웃었다.

* * *

아틸라, 바토리, 오토, 카스피는 암피테르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펀치와 도롱뇽도 함께였다.

“진짜 뭐야 영주 나리. 하루 정도 푹 쉬고 출발해도 괜찮았잖아.”

“사, 살쾡이 암살자도 듣지 않았소! 아론 그 미친놈이 로잘린에게 전령을 보냈다고!”

“아무리 전령을 보냈어도 로잘린이 오려면 며칠은 걸린다잖아!”

“그건 그렇지만 왠지 로잘린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수 시간 만에 달려올 것 같았단 말이요! 왕 노릇도 하기 싫어 도망쳤는데 총사령관이라니! 난 그런 건 절대 하기 싫소!”

“쯔쯔……. 저런 새끼가 무슨 일국의 왕이라고.”

“그러게나 말이다 야만전사야.”

“근데 암피테르 타고 타니니까 빨라서 좋긴 하다. 그치? 바토리.”

“흐응. 그건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잠깐! 이쯤에서 다시 짚고 넘어가는데, 이 녀석은 암피테르가 아니라 ‘요롱이’요! 요롱이에겐 엄연히 요롱이란 이름이 있단 말이요!”

“대체 왜 이름을 그따위로 지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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