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03화 (303/425)

303. 남부 전쟁 (2)

바토리가 리치를 죽이자 언데드들은 와해됐다.

우두머리를 잃은 그들은 군대의 힘을 잃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산 자를 죽인다’는 유일한 본능만은 충실히 수행하려 했다.

아틸라와 카스피가 그리 둘 리 없었다.

파카앙!

퍼거거걱!

그렇게 살육이 시작됐다.

* * *

연합군과 언데드 군단은 북에서 남으로 긴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즉각적인 지휘 체계를 성립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래서 연합군은 현재 북부, 중부, 남부 연합군으로 세력을 나눈 상태였다.

“그러니까 여기가 바로 북부 연합군이라는 거로군.”

아틸라의 말에 아론, 로버트, 던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틸라 일행과 세 기사는 넓은 천막 안에 들어와 있었다.

밖에서는 병사들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승리를 자축했다.

아론이 말했다.

“카르타고가 카스티야에 이어 라든, 에이시스, 델로스 왕국까지 점령했습니다. 덕분에 센트럴 왕국은 완전히 고립된 상태죠.”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라든 왕국과 에이시스 왕국이 카르타고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은 플루토를 통해 들었지만.

델로스 왕국마저 점령됐을 줄은 몰랐다.

‘왕국을 집어삼키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그러나 델로스 왕국이 점령됐다는 것보다 더욱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조금 전 아론이 말했다시피, 센트럴 왕국이 고립된 것이다.

‘센트럴은 원래부터 카스티야, 라든, 델로스 사이에 낀 왕국이다.’

그리고 카스티야, 라든, 델로스는 이미 카르타고의 손에 떨어졌다.

문자 그대로 센트럴 왕국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것이다.

“다행인 점은 수오미 왕국과 탈리 왕국이 연합군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아울러 적색 마탑과 청색 마탑, 황색 마탑도 연합군 소속이 됐죠.”

“회색 마탑과 중앙 마탑은 빼앗겼고 말이지.”

“회색 마탑은 카르타고가 직접 멸망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의 마법사들은 모두 리치가 되어 언데드를 조종하고 있죠.”

아론의 말은 사실이다.

조금 전 바토리가 죽인 리치도 회색 마탑의 마법사였다.

“중앙 마탑은 아직 카르타고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샤를 아인하르트의 중부 전선이 중앙 마탑을 되찾기 위해 압박을 가하고 있는 거니까요.”

바토리가 물었다.

“적색과 청색, 그리고 황색 마탑의 마법사들은 무얼 하고 있는 것이더냐.”

“적마탑은 전쟁을 앞두고 우수한 마법사를 잃었습니다. 얼마 전 중앙 마탑을 다녀오던 라일 플라마 탑주가 카르타고의 습격을 받았죠. 탑주를 호위하던 적마탑 서열 1위부터 3위까지의 마법사가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아틸라의 우려한 대로였다.

카르타고는 라일을 습격했다.

“그럼 라일은?”

“라일 플라마 탑주는 살아 있습니다. 상당한 부상을 입긴 했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고 하죠. 라일 플라마 탑주는 현재 남부 전선 총사령관인 키릴 크레센시아와 함께 활약 중입니다.”

초기 연합군은 샤를이 총사령관, 키릴이 부사령관이었다.

그러나 수오미 왕국과 탈리 왕국이 연합군에 가세하고, 때마침 시작된 전면전으로 전선이 길어지며 부대는 크게 셋으로 나뉘었다.

그에 따라 각 전선마다 총사령관이 생겨났다.

키릴은 남부 전선 총사령관이 됐다.

아울러 샤를은 중부 전선 총사령관이자, 연합군 전체를 다스리는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청색 마탑은 중부 전선에, 황색 마탑은 우리 북부 전선에 편입됐습니다.”

오토가 물었다.

“엥? 아군에 마법사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데?”

“아이고 대장. 북부 전선이 어디 여기뿐이요? 마법사 수는 정해져 있고, 여긴 북부 전선에서도 북쪽 끝자락 중의 끝자락이요. 당연히 마법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울 수밖에.”

“마법사 없이는 절대 못 이길 거 같던데?”

오토는 떠올렸다.

조금 전 전투엔 그저 그런 언데드 무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데스나이트, 그리고 리치.’

데스나이트와 리치는 평범한 기사와 병사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상대다.

로버트가 말했다.

“그러게나 말이우. 오늘은 정말 우리도 깜짝 놀랐소. 원래 이 근처는 언데드가 그리 많이 나타나는 지역도 아니었거든. 그래서 북부 총사령관께서도 우리 같은 일반 기사와 병사들만 보냈던 건데…….”

“빌어먹을 머저리 같으니. 북부 총사령관이 누군데.”

오토의 물음에 세 기사는 잠시 무언갈 생각하는 얼굴이 됐다.

아론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부터는 대장이 해야겠는데요?”

“뭐?”

“얼마 전부턴 로잘린 란틴크 경이 맡고 있지만, 대장이 돌아왔으니 당연히 대장이 총사령관을 해야죠. 그래도 명색이 나바라 왕국의 왕인데.”

“맞아.”

“음음. 당연하지.”

로버트와 던컨도 긍정했다.

오토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아틸라를 돌아봤다.

“뭘 봐 새끼야.”

“아아니, 저 새끼들이 갑자기 나더러 총사령관을 하라니, 놀라서 그러는 거 아니우.”

“근데 왜 날 보는데.”

“그, 그냥 좀 봤소! 하여간 쳐다보기만 해도 저러신다니까. 못돼처먹어가지고…….”

“왕이 돼가지고 부하들 앞에서 먼지 나게 처맞고 싶냐”

“아니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틸라 님. 헤헤.”

나바라 왕국의 다른 기사나 병사들이 봤다면 기겁할 일이었지만 아론, 로버트, 던컨은 그저 웃기만 했다.

이들은 모두 아틸라 일행과 함께 싸운 적이 있다.

세 기사에게 웃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오토가 말했다.

“아무튼 총사령관이라니. 난 그런 거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럴 순 없을걸요?”

“왜.”

“이미 로잘린 경에게 전령을 보냈으니까. 그 로잘린 경이라면 대장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맨발로라도 달려올 거요. 그러고는 냅다 총사령관직에 앉히겠지.”

“이 새끼가 진짜! 그새 전령을 처 보냈어?”

억울하다는 듯 아론이 외쳤다.

“아니 안 보냈다가 들키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란 말이요! 로잘린 경이 분명 우릴 개 패듯 두들겨 팰 텐데!”

“그건 그렇지만…….”

문득 오토는 의아함을 느꼈다.

“근데 왜 로잘린이 총사령관이냐? 세이론 숙부가 아니고.”

오토가 나바라 왕국을 떠나 있는 동안 왕의 빈자리는 세이론, 로잘린, 라시드가 공동으로 수행하기로 했었다.

그중 가장 서열이 높은 이는 당연히 세이론 클로비스 경이었다.

아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원래는 세이론 경이 북부 총사령관이었소. 하지만 얼마 전 전사했고, 그렇게 부사령관이던 로잘린 경이 총사령관이 된 거요.”

오토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 가깝진 않았지만, 지난 전쟁에서 오토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었던 숙부였다.

카스피가 머뭇대듯 입을 열었다.

“그, 그럼 우리 아빠는…….”

“아, 라시드 경께서는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소. 그분께서는 왕국에서 갖가지 집무를 보고 계시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카스피가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아틸라가 물었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 이곳은 원래 탈리 왕국의 땅이다. 그런데 왜 탈리 왕국의 지휘관이 보이지 않는 거지?”

탈리 왕국은 북부 제국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기에, 예부터 강한 기사들이 많은 곳이다.

“탈리 왕국은 이미 언데드 군단과 붙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잘 싸운다는 기사 대부분이 죽었죠. 탈리 왕국이 뒤늦게 연합군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재 탈리 왕국의 정예 기사단은 중앙 마탑에서 파견된 일부 마법사와 함께 제국 관문을 지키고 있다.

아틸라는 알게 된 사실을 정리했다.

‘원래 크리엘도라 남부 대륙은 13왕국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발루아, 아스투리아, 후마이야, 노르드를 샤를이 정복하며 아인하르트 왕국으로 통합했다.

그리고 카르타고는 카스티야, 라든, 에이시스, 델로스를 정복했다.

‘남은 왕국은 나바라, 샹크리스, 수오미, 탈리, 그리고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센트럴뿐이로군.’

그렇게 13왕국은 7왕국이 됐다.

센트럴이 카르타고에게 먹힌다면 6왕국으로 줄어든다.

물론 센트럴 왕국은 그리 쉽게 카르타고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센트럴엔 중앙 마탑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르타고도 직접 센트럴을 공격하지 않고 주변 왕국을 점령한 거겠지.’

카르타고가 카스티야부터 점령을 시작한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카르타고는 센트럴 왕국을 완전히 포위했다. 통합한 4개 왕국에서 만들어 낸 언데드 군단으로 서서히 말려 죽일 생각이겠지.’

중앙 마탑은 다른 마탑과 달리 강력한 결계로 둘러싸여 있다.

제아무리 카르타고라 해도 무턱대고 달려들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아니, 어쩌면 센트럴 왕국은 이미 점령되었는지도 모른다. 중앙 마탑만이 결계의 힘으로 버티는 중일 지도.’

그러나 결계의 힘은 무한하지 않다.

지속적인 타격을 입으면 무너진다.

게다가 중앙 마탑의 마법사들이 아무리 빼어난 마법사라 해도, 그들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은 먹어야 살 수 있다.’

그렇지만 언데드는 다르다.

언데드는 먹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없다.

중앙 마탑을 향한 보급로를 차단하고, 자살특공대처럼 결계로 들이밀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중앙 마탑이 카르타고의 손에 떨어진다면 상황은 크게 어려워진다. 샤를도 그걸 알고 어떻게든 센트럴을 탈환하려는 거겠지.’

아론의 말대로라면, 샤를이 이끄는 중부 전선은 현재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언데드 군단을 몰아치고 있다.

아틸라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물론 그보다 최악의 상황은 따로 있지만.’

그래서 아틸라는 샤를을 직접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전에 할 일이 있다.

“엘프와 드워프들은 참전하지 않았나?”

“황금바위 드워프족은 중부 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황금바위의 왕인 크누트 스톤핸드와 그의 아들 보에몽 스톤핸드가 상당한 실력을 뽐내고 있다 하더군요.”

아론은 이곳으로 파견되기 전 로잘린의 측근이었다.

그래서 전선의 상황을 제법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아틸라에겐 잘 된 일이었다.

“엘프들은 아직이라는 거로군.”

아틸라는 이곳 전선에 합류하기 전 강철바위성에 들렀었다.

예상대로 강철바위 드워프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워드 스틸숄더를 구하기 위해 제국으로 떠났다.

아직 남부 어딘가에 있는 것인지, 혹은 벌써 제국에 도착한 것인지, 아니면 무리해서 움직이다 수해에서 죽었는지는 아틸라도 모른다.

아틸라는 강철바위 드워프에 대한 생각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엘프들을 규합하는 일이다.

‘샤를도 그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겠지.’

엘프는 중간계의 지성 종족으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중간계가 아닌 어떤 미묘한 틈새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엘프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의 거처를 완전히 숨길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안전하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세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엘프들이 살아가는 틈새 또한 머지않아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장소가 될 공산이 크다.

슈시아 또한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아틸라는 슈시아를 만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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