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302화 (302/425)

302. 남부 전쟁 (1)

빌어먹을.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보며 아론은 욕설을 뱉었다.

조금 전까지 그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은 데스나이트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날아갔다.

지금의 아론에겐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떠오르는 첫 번째 기억은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을 공터에서 목검을 휘두르던 것.

젊은 시절 열심히 검을 수련했지만 기사 문턱에도 근접하지 못한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아론을 기사로 만들고 싶어 했다.

다행히 아론에겐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왕국의 견습기사가 될 수 있었다.

‘아론이 견습기사가 됐어! 내 아들이 왕국의 견습기사라고!’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행복해하던 아버지는 그로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병으로 급사했다.

아론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아버지의 오랜 꿈이자, 언젠가부턴 자신의 꿈이 되어 버리기도 한.

왕국 기사가 되는 것뿐.

‘반드시 정식 기사가 될 거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왕국 기사단에 입단한 아론은 정식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혹독한 훈련을 견디고, 잠을 줄여 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던 중 아론은 자신처럼 노력하는 두 명의 소년을 만났다.

‘난 로버트야.’

‘난 던컨.’

우연히도 아론, 로버트, 던컨은 모두 고아였다.

가족이 없다는 공통점이 그들 사이에 유대감을 싹 틔웠다.

아론은 두 친구와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로버트! 던컨! 우리 모두 반드시 정식 기사가 되자!’

당시 소년들의 교관은 혹독한 가르침으로 유명한 로잘린 란틴크 경이었다.

그렇게 아론, 로버트, 던컨이 검술 훈련에 매진하던 어느 날, 로잘린이 은밀히 소년들을 찾아왔다.

‘오토마이어 왕자를 국외로 도피시켜라.’

세 소년은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들은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로잘린 경을 무척이나 존경했다.

‘이건 나바라 왕국을 위한 길.’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 로잘린 경은 우릴 믿고 계신 거야.’

‘룽겔 공작의 마수로부터 왕자 전하를 지켜야 해.’

소년들은 왕자의 어머니인 이본 왕비의 도움을 받아, 왕자와 함께 국외로 도주했다.

남쪽 관문에서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긴 했지만, 때마침 등장한 로잘린의 도움으로 벗어났다.

‘어서 달리십시오! 왕자 전하!’

‘로잘린!’

대륙을 떠돌며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겪었다.

그때마다 소년들은 왕자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왕자는 심각한 약골이었다.

‘후……. 적을 쓰러뜨리는 것보다 왕자 전하를 지키는 일이 몇 배는 힘들군.’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것이 바뀌었다.

왕자의 기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검술에 맞춰 체격도 커졌다.

왕자는 더 이상 병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머지않아 왕자는 아론, 로버트, 던컨을 웃도는 실력자가 됐고, 관계는 역전됐다.

왕자를 보호하기 바빴던 견습기사들이 왕자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것이 반복되며 견습기사들은 점차 왕자에게 의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쯤부터였다.

‘대장!’

‘으하하하! 대장!’

그들은 왕자를 대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왕자도 왕자라는 호칭보다는 대장이란 말을 더욱 마음에 들어 했다.

‘대장? 거 듣기 좋군. 하하하하하!’

이후에도 여러 일들이 있었다.

도적떼를 만나고.

어느 귀족의 기사들에게 사흘 밤낮을 쫓기기도 하고.

배고프면 용병단에 들어가 일을 하고.

한 번은 왕자가 어느 작은 마을의 영주가 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리 길진 못했다.

그러던 중 그들은 무시무시한 야만전사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아틸라였다.

카앙!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아론의 눈앞에서 번개가 쳤다.

“뭘 멍하니 서 있냐 아론!”

“뒈지고 싶어 환장했냐! 이 정신 나간 새끼야!”

로버트와 던컨.

그들이 아론을 공격하는 데스나이트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로버트. 던컨…….”

로버트와 던컨은 피투성이였다.

그럼에도 둘은 목숨을 걸고 아론을 돕고 있었다.

“뭘 새삼스럽게 이름을 부르고 지랄이야!”

“빨리 검이나 들어 새끼야!”

아론은 본능적으로 주위에 떨어진 검을 쥐었다.

그러고는 데스나이트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카카캉!

데스나이트가 크게 검을 휘두르자 아론, 로버트, 던컨 모두가 뒤로 밀려났다.

로버트가 킬킬대며 말했다.

“……빌어먹을. 오늘이야말로 우리 제삿날인가 보다.”

던컨도 웃었다.

“그러게. 그래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대장 얼굴은 보고 싶었는데.”

“대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뭐, 아틸라 님과 신나게 여행 중이겠지.”

“대체 얼마나 신이 났으면 대륙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거냐고.”

“북부 제국에라도 놀러 간 게 아닐까?”

파카아앙!

쇄도하는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세 기사가 힘을 합쳐 막았다.

어금니를 악물며 아론이 말했다.

“……하지만 대장은 왕국이 위기에 처하면 돌아오겠다고 했어.”

그의 눈이 살기로 빛났다.

“대장은 반드시 돌아올 거야.”

아론이 포효했다.

아론은 세 기사 중 대장 격의 사내였다.

견습기사 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다.

그의 검술은 로버트와 던컨보다 뛰어났다.

“시, 시벌 아론 저 새끼 눈깔 뒤집었다!”

“으하하하! 데스나이트! 넌 이제 죽었다!”

로버트와 던컨이 킬킬대며 데스나이트의 검을 밀쳤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아론이 데스나이트를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영웅의 면모를 개화하지 못한 그들은 결코 데스나이트의 상대가 아니다.

“찔러! 아론!”

아론은 두 친구가 만들어 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리에 힘을 주고, 강하게 몸을 회전시키며 데스나이트를 공격했다.

지금까지와 다른 거대한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콰아아앙!

놀랍게도 아론의 공격은 통했다.

데스나이트의 투구가 반으로 쪼개지고, 갑옷마저 절단됐다.

로버트와 던컨의 눈이 부릅떠졌다.

“시, 시벌 아론이 해냈어……?”

“해, 해냈다! 아론이 데스나이트를 죽였다고!”

로버트와 던컨이 환호했다.

그러나 아론은 자신이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반으로 갈라진 채 무너지는 데스나이트 너머로 뜨거운 입김이 새어 나왔다.

아론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아, 아틸라 님……?”

입김을 내뿜는 건 아틸라였다.

처음엔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러나 로버트와 던컨마저 아틸라의 이름을 외치자 아론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직 살아 있었냐? 너희들.”

아틸라가 씨익 입가를 올렸다.

그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언데드를 향해, 보지도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 한 번의 칼질이 십여 마리의 언데드를 한꺼번에 부쉈다.

아론은 멍한 얼굴로 그것을 봤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아틸라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아, 아틸라 님! 오토 대장은……!”

아틸라는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아론은 하늘을 봤다.

로버트와 던컨의 시선도 같은 곳을 향했다.

그리고 보았다.

“시, 시, 시벌 저게 뭐야!”

키요오오오오!

드래곤을 닮은 거대한 새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위에서 이쪽을 보며 소리치는 낯익은 얼굴.

“으하하하하! 아론! 로버트! 던컨 이 새끼들! 아직 살아 있었구나!”

“대, 대장!”

“대장이 왔다! 대장이 왔어!”

“대자아아아앙!”

오토의 모습을 확인한 세 기사가 목청 높여 소리쳤다.

“나바라의 병사들은 들어라아아아!”

“왕께서 오셨다아아!”

“오토마이어 왕께서 나바라 왕가의 수호룡을 타고 오셨다아아아아!”

병사들도 오토의 모습을 발견했다.

거대한 날개를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용족.

그 위에서 강철검을 추켜든 오토가 웅혼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군! 돌겨어어억!”

오토가 지면 가까이 날며 앞장섰다.

그 뒤를 아틸라와 카스피가, 세 기사가, 나바라의 병사들이 따랐다.

“오토마이어 나바라 왕 만세!”

“우와아아아아!”

병사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이곳의 병사 대부분은 지난 내분에서 오토의 무력을 봤다.

게다가 드래곤을 닮은(사실 대부분의 병사는 드래곤이라 확신했다.) 암피테르를 타고 등장한 오토는 마치 하늘에서 강림한 신성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했다.

“왕께서 오셨다!”

“우린 이제 살았어……! 살았다고……!”

나바라 왕국은 왕에 대한 신뢰가 남다른 나라다.

오토의 등장만으로도 병사들은 생존과 승리의 희망을 보았다.

실제로 아틸라와 카스피는 괴물 같은 무력을 드러내며 언데드를 도륙했다.

한편 오토는 암피테르 위에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의 검은 지상의 언데드에게 닿지 못했다.

그러나 오토가 타고 있는 암피테르는 중상위종의 용족.

웬만한 언데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다.

게다가 암피테르는 오토와 페어링하며 ‘진화(進化)’의 단계를 밟았다.

퍼거걱! 퍼걱!

암피테르의 이빨과 발톱이 언데드들을 부쉈다.

되살아나는 언데드도 있었지만 아틸라와 카스피의 공격에 박살이 났다.

“왕가의 수호룡이 언데드들을 조각내고 있다!”

“오오오오오!”

기사와 병사들이 반색했다.

힘차게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기사와 병사들은 아직 왕의 동료들이 지닌 진정한 힘을 보지 못했다.

비행하는 암피테르의 등 위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돌레비츠 쿠엣 에바니테.”

허공에 생성된 균열을 뚫고 수많은 불의 구체가 튀어나왔다.

그것이 언데드의 몸을 불태웠다.

키에에……!

키에에에엑……!

언데드들이 시커먼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바토리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바토리가 주문을 외울 때마다 언데드들이 완전한 죽음의 세계로 돌아갔다.

“저, 저게 무슨……!”

기사와 병사들은 그 압도적인 힘을 보며 경악했다.

언데드들은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들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수많은 언데드가 일행을 향해 달려왔다.

그러나 바토리의 마법과, 아틸라의 칼질과, 카스피의 귀수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흐응. 끝도 없이 밀려드는구나.”

바토리는 전장을 바라봤다.

이대로라면 끝이 없을 것이다.

완전히 파괴되지 못한 언데드는 되살아날 것이고, 아군의 시체 또한 머지않아 언데드가 되어 놈들을 도울 것이다.

‘그렇다면.’

바토리는 잡기술을 활용해 안력을 높였다.

그녀의 발달된 시력이 세심하게 전장을 훑었고, 이윽고 찾아냈다.

언데드들을 지휘하는 존재를.

‘거기 숨어 있었더냐.’

바토리만 상대를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타깃도 바토리를 발견했다.

타깃이 주문을 읊었다.

한때 회색 마탑의 빼어난 마법사 중 하나였을 그는 리치(Lich)가 되어 있었다.

“먼저 오려무나. 회색 마탑의 아이야.”

바토리의 속삭임과 동시에 타깃의 손에서 마법이 발사됐다.

그것이 앞을 가로막은 언데드들을 도륙하며 바토리에게 접근했다.

“제법이구나.”

바토리가 왼팔의 마력을 개방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 마멸의 칼날이 떠올랐다.

쇄도하는 마법을 향해 발사됐다.

카카카카카카캉!

회전하는 핏빛 칼날이 타깃의 마력을 조각냈다.

리치의 안광이 차가운 빛을 뿜었다.

리치는 강력한 방어 마법을 발현하려 했다.

그러나 그전에 마멸의 칼날을 맞고 몸이 분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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