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 다시 남부로 (3)
제국 남쪽의 수해 앞엔 많은 용기사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의 이번 임무는 위험했다.
상당수의 용기사가 무사히 복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눈빛은 결연했고,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국의 하늘을 수호하는 날개.
그것이 이들, 암피테르 용기사들을 칭하는 말이다.
“이번 임무를 무사히 마친다면, 제국은 더욱 강력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용기사대장이 외쳤다.
그는 이곳에 있는 암피테르 중 가장 커다란 개체에 올라타 있었다.
“이번 임무의 목표는 강철바위 드워프의 성에 존재한다는 ‘스테로페스의 모루와 망치’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임무를 완수할 것이다! 우린 제국의 하늘을 수호하는 암피테르 용기사다!”
“우와아아아아!”
용기사대장의 외침에 용기사들이 화답했다.
이들 대부분은 얼마 전 강철바위의 드워프 대장장이들을 납치했을 때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날아라 용기사들이여!”
용기사대장의 암피테르가 허공에 떠오르는 것을 신호로 나머지 암피테르도 지면을 박찼다.
수십 마리에 달하는 암피테르가 활짝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았다.
그 안엔 아틸라도 있었다.
아틸라는 며칠 전 만났던 플루토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제국의 암피테르들은 각각 커다란 나무상자를 들고 이륙할 겁니다. 그 안엔 마법사들이 만든 폭약이 들어 있죠.’
‘폭약이라고?’
‘폭약은 미완성 단계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선 아직 활용할 수 없으나, 얼마 전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습니다.’
플루토가 입가를 찢으며 말했다.
‘그 폭약이 수해의 몬스터들에게만은 제대로 반응한다는 거죠.’
펄럭! 암피테르들이 수해의 하늘로 진입을 시작했다.
아틸라와 카스피는 바토리의 잡기술로 용기사들과 같은 복장을 한 채 암피테르를 몰았다.
그들이 조종하는 암피테르의 발목엔 밧줄이 감겨 있었다.
밧줄의 끝엔 커다란 나무 상자가 매달렸고, 그 안엔 폭약 대신 다른 것이 숨겨졌다.
아틸라의 나무 상자엔 바토리, 펀치, 도롱뇽이.
카스피의 상자 안엔 오토가 있었다.
사실 오토는 자신이 나무 상자에 들어가는 것을 결사반대했었다.
‘히익! 날 나무 상자에 넣고 수해 위를 지나겠단 말이오! 그, 그냥 내가 암피테르를 조종하고, 살쾡이 암살자가 상자에 들어가면 안 되겠수?’
‘시, 싫어! 영주 나리는 왠지 못 믿겠단 말이야! 날 수해 한가운데로 떨어뜨릴 것만 같다고!’
‘설마 내가 그럴 리 있겠소!’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뭐, 뭐야 영주 나리. 설마 날 못 믿는 거야?’
‘아니 살쾡이 암살자가 먼저 날 못 믿겠다 하지 않았소!’
‘야만전사야. 난 상자에 들어가도 괜찮느니라. 왜냐하면 나는 저 둘과 다르게 널 신뢰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틸라 님을 신뢰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요!’
‘나, 나도야 아틸라! 이럴 거면 차라리 아틸라가 날 운반해 주면 좋겠는데!’
‘흐응. 그건 안 되겠구나 카스피. 난 아틸라는 믿지만 철혈귀검은 믿지 않으니 말이다.’
‘바, 바토리 아가씨까지……!’
‘오해 말거라 철혈귀검아. 너라는 사람을 못 믿겠다는 말이 아니라, 너의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니라.’
‘그게 그거 아니요!’
한동안 투닥대던 그들이었지만 결국 암피테르의 기수는 아틸라와 카스피, 상자에 들어가는 건 바토리와 오토로 정해졌다.
아틸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위험한 작전이다.
그는 수해 심층부 위의 하늘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아틸라는 도롱뇽을 성체로 변화시킨 뒤 동료들과 함께 최대한 남쪽으로 전진할 생각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 해도 완전히 수해를 넘을 수는 없겠지.’
도롱뇽의 해방 스킬은 일행이 남부 대륙으로 진입할 때까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결국 일행은 수해의 몬스터들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을 이어 가는 동안 암피테르들은 심층부 수해 가까이 도달했다.
“곧 심층부 영공이다! 각자의 진을 지켜라! 진을 유지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다!”
“우오오오오!”
용기사들의 표정이 변했다.
공기가 급속도로 무거워졌다.
하늘을 날고 있음에도 물속을 비행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아틸라와 카스피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틸라의 얼굴 표정이 굳었다.
카스피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오, 온다! 심층부 몬스터다!”
어느 용기사의 외침과 함께 수해에서 무언가 쏘아졌다.
그것이 암피테르 한 마리를 요격했다.
키에에에에!
암피테르의 용기사는 중상을 입은 와중에도 검을 들어 밧줄을 잘랐다.
나무 상자가 수해로 떨어졌고, 커다란 폭발이 일었다.
용기사대장이 외쳤다.
“제1진! 투하!”
명을 받은 용기사들이 상자를 투하했다.
그것들이 수해의 나무와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콰콰콰쾅! 콰아앙!
수해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울렸다.
잠시 후 수해로부터의 공격이 멈췄다.
아틸라는 카스피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플루토가 말한 대로였다.
‘그 폭약은 수해의 몬스터를 처치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사실 연막과 비슷하지요.’
‘연막?’
‘폭약은 수해의 몬스터들로 하여금 지상에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착각을 유도할 겁니다. 폭약에서 터져 나온 마력이 생명체와 비슷한 형태를 띠며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죠. 다만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이 역시 플루토의 말대로였다.
심층부 수해의 몬스터들은 하늘로의 공격을 멈췄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콰드드드득!
수해에서 솟아오른 기다란 촉수 하나가 암피테르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위에 타고 있던 용기사의 머리가 날아갔다.
암피테르와 용기사는 수해로 떨어졌고, 거대한 입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그들을 삼켰다.
실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오토 녀석이 상자에 들어가 있던 게 다행이었군.’
저 광경을 봤다면 오토는 분명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아틸라는 고개 돌려 카스피를 봤다.
눌러쓴 투구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카스피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행인 것은 아직도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하늘보다 지상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용기사들은 최소한의 피해만 입은 채 남하할 수 있었다.
“또 온다!”
“몬스터들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아니야! 조금 더 버텨야 해!”
“비행술을 발휘해 견뎌라! 폭약은 무한정으로 존재하지 않아!”
몬스터의 공격이 점점 거세졌다.
용기사들은 놀라운 비행술을 발휘하며 그것을 피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상당수의 용기사가 당했고, 지면으로 추락했다.
“제2진! 투하!”
추가로 폭약이 떨어졌다.
다시금 수해에 폭발이 일었다.
이번에도 한동안 수해는 하늘 위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때 최대한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아직까진 순조롭다.’
용기사대장은 생각했다.
용기사의 피해는 적은 편이다.
그때였다.
휘리리릭!
채찍처럼 보이는 기다란 무언가가 하늘 위로 뻗쳤다.
파카카카카캉!
이번의 공격은 대단했다.
그 한 번의 공격에 용기사대장을 포함한 일곱 명의 용기사가 당했다.
“크헉……!”
“사, 살려 줘!”
“끄아아아아악!”
그리고 아틸라 일행의 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카스피의 암피테르에 묶인 밧줄이 방금의 공격에 끊어진 것이다.
“어! 어어! 영주 나리!”
카스피가 놀란 얼굴로 암피테르를 하강시켰다.
추락하는 오토의 상자를 향해 비행했다.
“거기! 진을 이탈하지 마라!”
용기사들이 외쳤지만 카스피는 상관하지 않았다.
무서운 속도로 하강한 암피테르의 발이 오토의 나무 상자를 붙잡았다.
“휴. 다행이…….”
그 순간 수해 안에서 개구리를 닮은 거대한 몬스터가 뛰어올랐다.
놈의 아가리에서 시커먼 혀가 쏘아졌다.
조금 전 채찍처럼 보였던 공격은 놈의 혀였다.
“물러서! 카스피!”
콰앙! 아틸라의 흑철검이 개구리의 머리 한가운데 박혔다.
아틸라는 개구리 몬스터에게 추가 공격을 가한 뒤 카스피의 암피테르에 올라탔고, 곧장 자신의 암피테르에게 이동했다.
개구리가 분노의 비명을 질렀다.
아틸라와 카스피는 최대한 빠르게 상승하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아틸라는 수해의 틈새에서 번득이는 사나운 눈동자들을 봤다.
놈들이 동시에 하늘로 뛰어올랐다.
아틸라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 해방(解放) ]
콰콰콰쾅!
나무 상자가 파편처럼 흩어지며 성체가 된 도롱뇽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위엔 펀치와 바토리가 앉아 있었다.
도롱뇽이 뛰어오르는 몬스터들을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키랴랴랴랴랴랴!
도롱뇽의 브레스가 몬스터를 덮쳤다.
몬스터들은, 특히 정통으로 브레스에 맞은 개구리 녀석은 이렇다 할 반응도 못하고 녹아 버렸다.
용기사들이 경악했다.
“드, 드래곤 마스터?”
그러나 무언가 달랐다.
그들이 알기로 제국의 드래곤 중 블랙 드래곤은 없다.
“그렇다면 저건 대체……!”
도롱뇽은 수해를 향해 무차별로 브레스를 쐈다.
아틸라가 외쳤다.
“카스피!”
그와 동시에 도롱뇽이 카스피의 아래쪽으로 이동했다.
카스피는 아틸라의 생각을 알아챘다.
귀수를 이용해 나무 상자를 부쉈다.
혼비백산한 얼굴의 오토가 도롱뇽의 등으로 떨어졌다.
“히익! 힉!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요!”
상황은 엎질러진 물이었다.
도롱뇽의 브레스는 심층부 몬스터들을 자극했다.
몬스터들이 무차별로 하늘을 공격했다.
수많은 암피테르가 놈들의 공격에 당했고, 예정을 넘은 폭약이 수해를 덮쳤다.
그것이 몬스터들을 더욱 자극했다.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도롱뇽을 수해 가까이로 이동시킨 뒤 암피테르를 몰아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도롱뇽을 방패 삼아 암피테르를 보호할 생각이었다.
카스피도 눈치 좋게 아틸라의 뒤를 따랐다.
‘암피테르를 잃어선 안 돼.’
도롱뇽의 해방 스킬이 끝나면, 암피테르 없이 수해를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때였다.
도롱뇽은 등 뒤에서 익숙한 살기를 감지했다.
키랴랴랴랴랴랴!
불의 브레스가 하늘을 덮었다.
그것이 암피테르를 습격하던 몬스터들을 활활 불태웠다.
생각지도 않은 존재의 등장에 일행은 크게 놀랐다.
‘레드 드래곤이라고?’
아틸라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레드 드래곤을 봤다.
그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저 드래곤은 세베스티아가 불러 냈던 두 드래곤 중 하나가 틀림없다.
‘덩치가 커졌다. 세베스티아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게다가 레드 드래곤의 등 위에 앉아 있는 자는.
“……아벨?”
도롱뇽에 이어 또 다른 드래곤이 등장하자 몬스터들도 놀란 듯했다.
제아무리 심층부 몬스터가 대단하다 해도, 드래곤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드래곤이 두 마리나 등장했다.
그래서 수해는 잠시 두 드래곤을 무시하고, 암피테르를 사냥하는 것에 집중했다.
용기사들의 비명이 하늘을 울렸다.
아틸라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던 레드 드래곤은 용기사들이 당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았다.
브레스의 방향을 틀어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아틸라에겐 기회였다.
지금은 아벨과 싸울 때가 아니다.
힘을 합쳐 수해의 벽을 돌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