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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98화 (29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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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다시 남부로 (1)

아벨은 멍한 얼굴로 에다드의 시체를 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이곳에 오기 전의 아벨은 이스마라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어느 숲을 조사 중이었다.

숲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살벌한 전투의 흔적 또한 역력했다.

놀라운 점은 시체가 한 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흔적을 봤을 때, 여기선 얼마 전까지 전투가 벌어졌다.’

아벨은 에다드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불현듯 에다드가 아벨에게 지휘를 맡기고는,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아벨은 에다드에게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그래서 기사대장에게 현장 지휘를 명한 뒤 에다드를 쫓았다.

‘저렇게 다급히 어딜 가는 거지? 에다드는.’

에다드는 매우 서두르고 있었다.

아벨이 뒤를 쫓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듯했다.

에다드의 승마술이 뛰어난 것인지, 아니면 군마가 훌륭했던 것인지 아벨과 에다드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아벨은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에다드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을 달렸다.

기묘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주위 공기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에다드가 사라졌다.

그는 마치 다른 차원으로 진입이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레 모습을 감췄다.

아벨은 에다드가 사라진 곳 근방을 샅샅이 뒤졌다.

어느 샌가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저건……?’

아벨은 무언갈 발견했다.

목이 잘린 채 죽은 레드 드래곤이었다.

‘드래곤이 왜……!’

그것만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옆엔 에다드가 쓰러져 있었다.

“에다드!”

아벨은 허겁지겁 달려가 에다드의 상태를 확인했다.

에다드는 오른팔이 절단돼 있었다.

그리고 숨을 쉬지 않았다.

에다드는 죽었다.

아벨은 망연자실했다.

“이게 무슨…….”

심지어 레드 드래곤의 시체는 하나가 아니었다.

등에 수많은 자상을 입은 채 죽은 개체가 하나 더 있었다.

혼란스럽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아벨은 에단의 시체를 수습했다.

그러던 중 그의 품 안에서 무언갈 발견했다.

찬란한 금색으로 빛나는 메달.

아벨의 눈이 커졌다.

‘드래곤 마스터의 메달!’

제국에 오직 4명만이 존재한다는 드래곤 마스터.

그들의 메달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떠올랐다.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의 마스터, 에단 트라쿠스.’

에다드.

에단.

이름부터 비슷하다.

아벨은 목이 잘린 레드 드래곤을 자세히 살폈다.

그는 눈앞의 드래곤이 세베스티아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가 지닌 용기사의 감(感)이 그렇게 말했다.

“에다드는…… 드래곤 마스터 에단 트라쿠스였던 건가.”

아벨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에다드의 시체를 들고 3군단장을 만난다면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가공할 살기가 아벨을 엄습했다.

아벨의 몸이 거대한 그림자에 덮였다.

아벨은 고개 돌려 그림자의 본체를 봤다.

“드래곤……?”

그림자의 본체는 레드 드래곤이었다.

세베스티아보다는 작고, 저만치 죽은 다른 레드 드래곤과 비슷한 크기의.

‘상처를 입었다.’

드래곤의 복부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곳에서 주룩주룩 피가 흘렀다.

드래곤은 상처를 수복하는 힘이 뛰어나다 들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이 드래곤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드래곤이 고개를 내려 아벨을 노려봤다.

아벨은 난생처음 보는 드래곤에게 압도당했다.

그 역시 ‘드래곤에 가장 근접한 용족’이라 불리는 드레이크의 용기사였지만, 실제로 마주한 드래곤의 위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아벨은 이 드래곤이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체라는 것을 직감했다.

‘공격할 셈인가. 지금의 내겐 세로스도 없는데……!’

그러나 아벨이 우려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벨을 노려보던 레드 드래곤이 세베스티아와 에단에게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잠시 후엔 자신과 비슷한 크기의 또 다른 레드 드래곤의 상태를 확인했다.

드래곤의 목울대가 떨렸다.

아벨의 눈에 비친 그 광경은 동족의 죽음에 분노하는 것 같기도, 혹은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크르르르르…….

이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르르 몸을 떨던 드래곤이 죽은 드래곤의 흉부를 이빨로 뜯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콰드득. 콰직. 콰드드득.

드래곤은 동족의 심장을 아가리에 물었다.

미약하지만, 죽은 드래곤의 심장은 아직 박동하고 있었다.

하늘을 보며 크게 울부짖은 드래곤이 꿀꺽 심장을 삼켰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드래곤의 복부에 생겼던 커다란 상처가 수복을 시작했다.

투트틋. 투트트트틋…….

그것만이 아니었다.

드래곤의 몸집이 커졌다.

좌우로 펼친 날개가 더욱 광활해졌고, 머리의 뿔도 길어졌다.

전신을 덮은 붉은 비늘에서 촤르르 광채가 흘렀다.

키랴랴랴랴랴랴!

드래곤이 포효했다.

나무들이 거칠게 흔들렸다.

드래곤을 중심으로 폭풍이 휘몰아쳤다.

아벨은 두 눈을 부릅뜨며 그 광경을 봤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드래곤들은 누구와 싸운 것인가.

어떤 무시무시한 존재와 싸웠길래, 레드 드래곤 두 마리와 드래곤 마스터가 죽임당한 것인가.

드래곤의 포효가 잦아들었다.

번들대는 파충류의 눈동자가 아벨을 바라봤다.

그 눈에서는 경계의 빛이 사라져 있었다.

레드 드래곤이 다가왔다.

아벨의 몸에 제 주둥이를 비비기 시작했다.

아벨은 그 행위가 무얼 뜻하는 건지 알았다.

드래곤은 페어링을 원하고 있었다.

아벨은 크게 놀랐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용기사는 오직 한 마리의 용족과 페어링할 수 있었으니까.

‘난 이미 세로스와 페어링했다.’

그러나 아벨은 이내 깨달았다.

시체가 되어 쓰러진 에다드.

아니 에단 트라쿠스는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의 마스터이자, 자신과 같은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였다.

아벨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는 것은, 즉.

‘용기사는 두 마리 이상의 용족과 페어링할 수 있다.’

구르르르륵.

드래곤이 부드러운 목 울림을 냈다.

아벨은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의지를 열어 레드 드래곤의 인사에 답했다.

익숙한 감각이 심장을 타고 흘렀고, 아벨은 머릿속으로 직접 파고드는 드래곤의 목소리를 들었다.

“네 이름은 ‘카르노피아’구나.”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온화한 눈으로 아벨을 바라봤다.

“내 이름은 아벨. 아벨 카리누스.”

아벨이 손을 뻗어 카르노피아를 쓰다듬었다.

카르노피아의 입에서 구르륵,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벨은 드래곤 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에단과 세베스티아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 * *

아틸라는 눈을 떴다.

무언가 지독한 꿈을 꾼 것 같았다.

“이제 깨어났느냐.”

아틸라는 눈을 깜빡이며 시야의 초점을 맞췄다.

걱정하는 얼굴의, 그러면서 한편으론 안도하는 얼굴의 바토리가 눈에 들어왔다.

“…….”

상체를 일으켰다.

아틸라는 이곳이 여관이고,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방 안엔 아틸라와 바토리뿐이었다.

멍한 얼굴로 생각을 더듬던 아틸라가 불현듯 얼굴을 굳혔다.

“걱정 말거라. 철혈귀검과 카스피는 완전히 회복했으니.”

아틸라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바토리가 말했다.

굳었던 아틸라의 얼굴이 풀어졌다.

“두 사람은 현재의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나갔느니라.”

“…….”

“몸은 어떠하느냐.”

그제서야 아틸라는 떠올렸다.

자신은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리기 위해 이무기의 독액을 마시고,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했다.

그 뒤의 상황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광폭화를 개방한 펀치가 나이아드의 눈물을 가져왔고.

그때 펀치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으며.

세베스티아의 옆구리에 매달린 자신을 향해 에단이 불의 검기를 발현했던 것 정도가 떠오르는 내용의 전부였다.

“펀치는?”

“비좁은 방 안이 답답했는지 철혈귀검과 카스피를 따라가더구나. 도롱뇽도 함께 나갔다.”

“그렇군.”

“걱정했느니라.”

의자에서 일어난 바토리가 아틸라의 옆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아틸라의 손 위에 포개어졌다.

“몸은 좀 어떠하느냐.”

아틸라는 몸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눈이 조금 커졌다.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했던 것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몸 상태가 좋았다.

아틸라는 조금 전 바토리가 말했던, 오토와 카스피가 완치했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내가 오랜 시간을 누워 있었나?”

타당한 질문이었다.

카스피는 몰라도, 오토는 결코 빠른 시간에 회복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아니, 완벽하게 회복한다는 게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오토는 중상을 입었다.

아틸라는 오토가 세베스티아에게 엉망진창으로 당한 것을 기억했다.

특히 세베스티아의 발톱에 맞고 부러진 다리는 극도로 심각했다.

바토리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린 이 여관에 지난밤 도착했단다.”

“여긴 이스마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가?”

“아니란다. 세베스티아가 죽은 장소에서 수 시간도 채 떨어지지 않는 마을이지.”

아틸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정오의 태양빛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 아래서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넌 세베스티아의 심장을 먹고 회복했다.”

아틸라의 곁으로 다가오며 바토리가 말했다.

그 말을 통해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죽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그런데.

‘세베스티아의 심장이라고?’

아틸라는 드래곤의 심장이 여러 용도로 쓰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치유제다.

그러나 그냥 심장을 씹어 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강한 마력을 불어넣어 심장을 정제해야 한다.

“네가 한 건가.”

그렇게 물으면서도 아틸라는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의 바토리는 마법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벨리알이 세베스티아의 심장을 정제했다. 그는 가장 큰 심장의 조각을 네게 먹인 것 같더구나. 게다가 네 손에 두 개의 크고 작은 심장의 조각을 남기고 떠났다. 철혈귀검과 카스피는 그것을 먹고 완전히 회복한 것이니라.”

벨리알이 나타났었다는 것과, 심지어 그가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을 치유했다는 말에 아틸라는 놀랐다.

벨리알은 세베스티아를 찾아 아틸라를 공격하도록 사주한 존재다.

그것만이 아니다.

벨리알은 세베스티아에게 두 마리의 레드 드래곤을 붙여 주기까지 했고, 플루토를 이용해 아틸라의 발을 묶었다.

그런 자가 자신을 치유했다니.

“빌어먹을 악마 새끼. 지 맘대로 병 주고 약 주고인가.”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토리의 목소리는 직전과 달라져 있었다.

“벨리알의 정체 말이다.”

바토리는 떠올렸다.

세베스티아를 죽이고 혼절한 아틸라 앞에 서있던 자를.

둥지의 벽을 해제하며 나타난 플루토는 그가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이라 말했다.

그리고 바토리는 벨리알의 얼굴을 또렷이 확인했다.

“벨리알은 아자젤이었다.”

아틸라가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오토와 카스피가 들어왔다.

두 사람은 깨어난 아틸라를 보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달려왔다.

“아이고 아틸라 님! 이제 깨어난 거요!”

“아틸라아아앙!”

펀치가 아틸라의 어깨에 올라왔다.

펀치의 입안에서 도롱뇽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바토리가 웃으며 말했다.

“산책은 즐거웠더냐 도롱뇽아.”

“억지로 쫓아내놓고선 뭔 헛소리야 미친 할망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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