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97화 (297/425)

297. 무가치의 악마 (7)

플루토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아틸라가 세베스티아와 싸우는 광경을 봤다.

‘인간이 아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아니 버서커 아틸라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에단 트라쿠스를 저렇게 순식간에……!’

에단은 손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죽었다.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플루토는 아틸라가 에단을 죽게 했던 몸놀림을 떠올렸다.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몸에 박힌 무휼을 무시무시한 힘으로 당겼고, 그것은 그의 몸을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플루토가 놀랄 정도의 속도였으니, 코앞에서 경험한 에단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을 터다.

그렇게 에단의 오른팔이 날아갔다.

마법적인 힘이 아닌, 순수한 완력으로 이뤄 낸 결과.

심지어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하강하는 그 짧은 사이, 세베스티아의 한쪽 날개를 잘랐다.

그 과정에 플루토는 전율을 느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아난 목을 매만졌다.

그럴 리 없었건만, 아틸라에게 한차례 잘렸던 목의 단면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그대로 계속 싸웠다면 구슬이 되었을지도.’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한쪽 날개에 이어, 하나 남은 안구마저 파괴했다.

그리고 이제는 세베스티아의 두꺼운 목을 절단하려 하고 있었다.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검으로 드래곤의 목을 자른다는 생각을.

키에에에에!

세베스티아는 앞발을 휘둘러 아틸라를 쳐내려 했다.

아틸라는 곡예하듯 반대편으로 넘어가 칼질을 계속했다.

부드득. 부득. 뿌드드득……!

세베스티아가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목이 잘리면 죽는다.

물론 드래곤의 목은 두껍고, 비늘과 근육으로 보호되고 있다.

세베스티아는 아틸라가 자신의 날개 한쪽을 잘라 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더욱이 목마저 절단할 기세로 매달릴 거라는 건 상상조차 못했다.

애초부터 인간이 드래곤에게 덤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드래곤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다.

그런데.

아틸라는 그 진리를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빠드드드득……!

세베스티아의 목이 절반 가까이 잘렸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핏물 탓에 아틸라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틸라는 달아오르는 쾌감을 느꼈다.

세베스티아의 입이 에단을 물었다.

그러고는 하나만 남은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에 떠오르려 했다.

드래곤의 본능이 그렇게 하도록 부추겼다.

그것을 펀치가 막았다.

우어어어어!

펀치가 세베스티아의 날개를 공격했다.

아틸라처럼 말끔히 잘라 낼 순 없었지만 비행을 방해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 아틸라.

- 내가 드래곤 날개 잡았어.

아틸라는 펀치의 목소리를 들었다.

다시금 완전한 무의식의 세계에 진입했다는 증거였다.

한편 세베스티아는 점점 덜미가 싸늘해지는 것을 감각했다.

목에서 뜨거운 피가 분출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

세베스티아는 인정해야 했다.

궁지에 몰렸다.

‘이대로라면 위험하다.’

조금 전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낭비하는 바람에 당장은 브레스도 뿜을 수 없었다.

세베스티아는 두 앞발로 아틸라를 떼어 내려 했다.

그때마다 아틸라는 매달린 방향을 바꾸며 회피했다.

그의 동물적인 감각은 대단했다.

그러나 세베스티아가 두 눈을 잃은 상황이 더욱 회피를 손쉽게 만들었다.

세베스티아도 그것을 느꼈다.

게다가 망가진 몸이 민첩성과 적중률을 감소시켰다.

세베스티아는 두 눈을 잃은 것에 더불어 몸 곳곳에 깊은 자상을 입었고, 날개 한 쪽과 발가락 몇 개가 절단됐다.

물론 그 정도 상처가 괴멸적이라 할 수는 없다.

세베스티아는 그 모든 상처를 완전히 수복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들을 수복하기엔 목의 상처가 너무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세베스티아는 목에만 집중하던 수복력의 일부를 한쪽 눈으로 나누었다.

일단은 앞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콰드득!

마침내 세베스티아의 앞발이 아틸라를 움켜쥐었다.

거대한 발톱이 아틸라의 몸을 파고들었다.

아틸라는 신음 한 번 흘리지 않고 칼질을 계속했다.

지금의 아틸라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그를 흥분하게 만들었다.

빠드득……! 빠득……!

세베스티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베스티아는 자신의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이 내가. 죽는다고?’

드래곤은 신이 만들어 낸 가장 완벽한 피조물.

신을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도 죽임 당하지 않는 최강의 생명체다.

그런 불멸자인 자신이.

한낱 인간의 손에 죽어 가고 있다.

- 네놈…… 인간…….

세베스티아는 지난 얼마의 시간을 반추했다.

‘나는 이길 수 있었다.’

세베스티아는 아틸라보다 강했다.

세베스티아가 처음부터 필사의 각오로 아틸라를 공격했다면, 아틸라는 이길 수 없었다.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세베스티아와 에단은 강력한 파트너였고, 정면 승부로 아틸라는 결코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약점을 이용했다.

흉포한 성정만큼은 레드 드래곤 중에서 최고라 불리는 세베스티아였지만, 한편으로 세베스티아는 동족을 사랑하는 개체였다.

그는 어린 드래곤들을 희생시키지 못했다.

‘그 둘이 없었다면.’

벨리알이 지원한 어린 드래곤들은 세베스티아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짐이었다.

세베스티아는 한쪽 안구가 거의 회복됐다는 것을 감지했다.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고는 본능처럼 숲의 어느 지점을 바라봤다.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죽는 거야. 넌. 지금.’

벨리알이 입모양으로 말했다.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세베스티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벨리알. 처음부터 넌.’

세베스티아는 깨달았다.

벨리알은 세베스티아를 돕기 위해 어린 드래곤들을 붙여 준 게 아니었다.

두 드래곤은 훼방꾼이었다.

세베스티아의 발목을 잡기 위한.

‘……그래. 그랬던 거군.’

세베스티아는 어린 드래곤들을 지키는 싸움을 했다.

에단을 지키는 싸움을 했다.

그래서 기회를 놓쳤다.

세베스티아에겐 아틸라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목이 잘렸다.

털썩.

세베스티아의 잘린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 잃은 육중한 몸이 쿠웅! 지면에 부닥쳤다.

세베스티아는 눈동자를 굴려 벨리알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아틸라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 너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겠군. 인간.

세베스티아가 보기에도 아틸라는 회복이 불가능했다.

목이 잘리지 않았을 뿐, 그의 몸은 세베스티아보다 훨씬 더 만신창이였다.

아틸라는 한계 이상으로 생명력을 태웠다.

버서커는 피를 흘릴수록 강해진다.

통증을 느끼지 않기에, 방어를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신이 죽기 전에 상대를 죽일 뿐이다.

그것이 버서커의 전투 방식.

버서커는 자신의 생명력을 소각해 적을 쓰러뜨린다.

털썩.

아틸라가 무릎을 꿇었다.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솟구치던 핏물이 잦아들었다.

널브러진 그의 몸 주위로 걸쭉한 피웅덩이가 고였다.

끼아옹! 펀치가 아틸라에게 달려왔다.

아틸라가 버서커의 힘을 잃었기에, 펀치도 원래의 자그만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펀치는 헥헥대며 아틸라의 몸을 핥았다.

아틸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숨소리가 꺼질 듯이 미약했다.

펀치의 동그란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아틸라는 죽어 가고 있다.

끼아오오오옹!

펀치가 울부짖었다.

아틸라의 어깨를 앞발로 밀었다.

그의 머리털을 물고 좌우로 흔들었다.

그래도 아틸라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세베스티아의 눈이 소리가 울리는 곳을 향했다.

- 벨리…… 알…….

다가오는 그림자는 벨리알이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세베스티아는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저것이야말로 진정한 벨리알의 모습일는지도 모른다.

벨리알은 원래 신이었으니까.

“드래곤은 목이 잘려도 제법 오래 살아 있을 수 있는 모양이군.”

벨리알이 말했다.

세베스티아가 중얼거렸다.

- 날…… 죽여라.

“그럴 수는 없다.”

벨리알이 미소했다.

“난 그의 공적을 가로챌 생각이 없으니까.”

벨리알의 붉은 눈이 아틸라를 봤다.

그 옆에서 잔뜩 털을 곤두세운 펀치를 봤다.

끼아옹!

펀치가 벨리알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벨리알의 손짓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플루토.”

벨리알이 속삭였다.

그러자 어느새 그의 옆엔 플루토가 서 있었다.

“둥지의 벽을 해제해라.”

플루토가 고개를 숙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벨리알은 저만치 배를 드러내며 기절한 펀치를 바라봤다.

이어 발밑의 아틸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넌 여기서 죽어선 안 돼.”

벨리알이 세베스티아의 몸통을 향해 팔을 뻗었다.

뼈와 근육이 갈라지는 소음을 내며, 세베스티아의 심장이 꺼내어졌다.

허공에 떠오른 그 심장은 여전히 힘차게 맥동하고 있었다.

“드래곤의 심장은 죽어 가는 이에게 훌륭한 치유제가 되지.”

세베스티아는 자신의 심장이 벨리알의 손에 자석처럼 끌어당겨지는 것을 봤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심장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이윽고 둘로 나뉘어지며, 호두알 크기로 변했다.

그 위에 벨리알의 마력이 더해졌다.

벨리알은 세베스티아의 심장을 재료로 아틸라가 흡수할 수 있는 치유제를 만들었다.

벨리알은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핥았다.

이것이 꺼져 가는 그의 심장을 되살릴 것이다.

“자. 그럼.”

벨리알이 손을 내젓자 아틸라의 몸이 한 바퀴 옆으로 돌았다.

벨리알은 자리에 그대로 선 채 손짓만으로 아틸라의 입을 벌리고, 그 안에 치유제를 넣었다.

꿀꺽, 아틸라가 치유제를 삼켰다.

그의 심장이 뜨거운 박동을 시작했다.

죽어 가던 몸이 활기를 찾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세베스티아에게 당했던 상처들도 회복하고 있었다.

“네 동료들에게도 선물은 남겨야겠지.”

벨리알은 나머지 하나의 치유제를 두 조각으로 잘랐다.

이 작업엔 손짓조차 필요 없었다.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작았다.

벨리알은 소리 없이 웃었다.

바토리 에르제베트라면 이것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크기로 완성된 두 치유제가 아틸라의 손에 쥐여졌다.

벨리알은 물끄러미 아틸라를 내려다봤다.

머지않아 기척이 느껴졌다.

“벽이 해제되기 무섭게 달려오고 있군.”

벨리알은 다가오는 기척이 아틸라의 동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즉, 자신이 이곳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벨리알은 고개 돌려 바토리를 봤다.

바토리도 벨리알을 보고 있었다.

인간의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거리는 못 된다.

그러나 바토리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충분히 자신을 알아봤을 것이다.

“당신은 너무 빨리 이곳에 당도했어.”

벨리알의 눈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무리 내가 북쪽을 목적지로 삼으라 했어도 말이야.”

아틸라의 혈색은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벨리알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행복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요? 김도현 씨.”

그 말을 끝으로 그의 몸이 종적을 감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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