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무가치의 악마 (6)
플루토의 이마에서 경악의 땀방울이 흘렀다.
‘뭐, 뭐지 저건?’
검은늑대의 아틸라가 변모했다.
그는 아틸라가 지닌 버서커의 힘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아틸라를 보며 크게 놀랐다.
‘직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됐다.’
플루토는 조금 전, 제2의 둥지를 발현해 아틸라와 세베스티아의 세계를 분리하려 했다.
처음부터 플루토의 둥지는 두 겹이었다.
이 역시 무가치에게서 선물 받은 힘.
플루토가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에게서 전달받은 임무는, 세베스티아와의 전투를 통해 아틸라가 남부 대륙으로 떠나도록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플루토는 문제없이 그렇게 되리라 여겼다.
그는 아틸라가 세베스티아에게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무리 약화되었어도 상대는 드래곤.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한, 아틸라에겐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릴 힘이 없다.
애초부터 플루토는 벨리알이 세베스티아에게 두 마리의 레드 드래곤을 붙여 준 것부터가 의아했다.
‘설마 벨리알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것 말고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벨리알은 아틸라가 세베스티아에게 패배할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세베스티아가 아틸라를 압도할 거라 생각한 건 플루토 자신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벨리알은 왜 두 겹의 둥지를 꾸리도록 지시한 것인가.
직전까지 플루토는 세베스티아에 의해 위기에 빠진 아틸라를 구하는 용도로 두 겹의 둥지를 이용하려 했다.
그런데 벨리알의 의중엔 다른 이유가 숨어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왜 벨리알은.’
플루토는 생각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벨리알은 처음부터 아틸라가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릴 힘을 지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두 마리의 레드 드래곤을 추가로 붙여 놓았다.
왜 벨리알은 아틸라를 세베스티아와 싸우도록 만든 것인가.
만약 아틸라가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리는 것에 성공한다면 아틸라가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인가.
그리고 벨리알이 얻게 될 이득은.
파카아앙!
아틸라의 흑철검이 세베스티아의 배를 찔렀다.
그의 성스러운 창 무휼은 이미 세베스티아의 가슴 깊숙이 박혀 있었다.
세베스티아가 반격했고, 아틸라는 짐승 같은 몸놀림으로 그것을 피했다.
플루토는 떨리는 눈으로 아틸라를 봤다.
‘어떻게 저런……!’
나약한 인간의 몸을 이끌고, 저 거대한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를 몰아치는 전사.
그리고 마침내 플루토는 아틸라의 변모한 외형과 인간같지 않은 움직임에서 낯익음을 느꼈다.
플루토의 눈이 부릅떠졌다.
‘버서커 카르타고!’
그제서야 플루토는 바토리가 아틸라와 함께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검은늑대의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뒤를 이은 승천 후보자다.
플루토는 아틸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나태하기 때문이 아니다.
바토리의 ‘배리어(Barrier)’는 다른 관조자가 그녀의 일행을 관조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플루토는 남부에서 샤를 아인하르트만이 새로운 승천 후보자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생각은 틀렸다.
“세베스티아!”
에단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당황의 이유는 아틸라 때문이 아니었다.
아틸라에게 공포의 감정을 드러낸 세베스티아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르……!
아틸라의 입에서 광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짐승처럼 내달린 그의 흑철검이 세베스티아의 목을 찔렀다.
키에에에!
세베스티아가 목을 비틀어 아틸라를 떨쳐 냈다.
그사이 에단이 세베스티아의 등에 올라탔다.
마침내 용기사와 드래곤은 하나가 됐다.
세베스티아가 날개를 움직였다.
공중으로 떠오르면 아틸라는 세베스티아를 공격할 수단이 없다.
그러나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순조롭게 공중에 오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손을 뻗어 세베스티아의 가슴에 박힌 무휼의 창자루를 쥐었다.
도끼를 휘두르듯 밀었다.
그의 근육이 무섭게 팽창하며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크아아아아아!”
세베스티아의 몸이 기울었다.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한 아틸라의 완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거대한 드래곤을 지면에 처박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무휼의 형상 변환 시간이 끝났다.
스스스슷.
기다란 창이었던 무휼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 탓에 세베스티아와 함께 공중에 떠오르던 아틸라가 지면으로 떨어졌다.
아틸라는 광기에 찬 눈으로 세베스티아를 올려 봤다.
그는 이성의 힘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였다.
중요한 아이템 하나를 카스피에게 건넸기 때문이다.
‘헤헤 아틸라……. 내가 걱정되는 거야……?’
아틸라는 카스피의 부상을 우려해 그녀의 손에 ‘나이아드의 눈물’을 쥐여 줬었다.
나이아드의 눈물은 착용자의 정신력을 강화시키는 아이템.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한 아틸라가 조금이나마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드는 중요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상승한 정신력은 착용자의 의지마저도 강력하게 만든다.
만약 아틸라의 손에 나이아드의 눈물이 있었다면 무휼의 형상 변환도 더욱 극적으로 이뤄졌을 테고, 유지 시간 역시 길어졌을 것이다.
“아우우우우우우!”
아틸라가 늑대처럼 포효했다.
이어 근처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의 본능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눈앞의 타깃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때 귓가로 묵직한 소음이 울렸다.
소리는 위쪽이었다.
아틸라는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나무의 잎새를 뚫고 튀어나온 무언가가 세베스티아를 덮쳤다.
우어어어어어!
모습을 드러낸 건 펀치였다.
펀치의 앞발이 세베스티아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세베스티아의 몸이 크게 기울었다.
펀치는 세베스티아의 비늘 사이에 발톱을 욱여넣으며 공중에 매달렸다.
- 나 왔어.
- 내가 왔어 아틸라.
아틸라는 펀치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귀를 뚫고 밀려든 펀치의 목소리는 이성을 잃은 아틸라의 의식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 나 더 강해졌어.
- 아틸라의 힘이 내게도 전해졌어.
지금의 아틸라는 알지 못했지만, 펀치가 강해진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 광폭화(狂暴化) ]
[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狂暴)의 힘을 개방하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조건부 패시브 스킬입니다. ]
그랬다.
바토리, 오토, 카스피와 함께 도주하던 펀치에게 광폭화가 발동됐다.
[ 스킬, 야수의 발톱의 효과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
펀치의 일격은 세베스티아에게 야수의 발톱 디버프를 생성시켰다.
세베스티아의 회복력이 20퍼센트 감소했다.
[ 공격 속도가 15% 빨라지며, 모든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
모든 공격력 30퍼센트 증가.
펀치의 일격에 세베스티아의 몸이 기울어진 이유였다.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
세베스티아는 불의 드래곤이고, 에단 역시 불의 검기를 사용한다.
펀치는 그들의 마법 공격에 대해 20퍼센트의 내성을 확보했다.
[ 광폭화는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
펀치의 광폭화는 아틸라가 버서커의 권능을 유지하는 동안 지속된다.
지금의 아틸라에게 이보다 든든한 지원군은 없었다.
“아우우우우우우!”
아틸라가 포효했다.
몸이 기울며, 조금이지만 하강한 세베스티아를 노리며 몸을 날렸다.
콰드득! 무휼의 날이 비늘의 틈에 박히며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몸에 매달리는 것에 성공했다.
마침 펀치의 옆이었다.
- 아틸라.
- 내가 카스피에게서 받아 왔어.
펀치의 입엔 ‘나이아드의 눈물’이 물려 있었다.
아틸라는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나이아드의 눈물이 발하는 영롱한 빛에 반응했다.
손을 뻗어 보석을 쥐었다.
두근, 심장이 크게 박동했다.
그의 정신 일부가 무의식의 세계를 벗어나 의식의 세계로 진입했다.
‘펀치.’
아틸라는 펀치를 알아봤다.
그러자 펀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틸라는 직전까지의 기억이 없었지만, 펀치가 무언가 목소리를 전해 왔었다는 희미한 감각만은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펀치가 가져온 건가. 나이아드의 눈물을.’
아틸라는 자신과 펀치가 세베스티아의 옆구리에 매달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개를 들자 아래를 향해 검기를 발산하려는 에단이 보였다.
그 순간 아틸라의 정신은 다시 무의식의 세계로 침잠했다.
화르르르르!
에단의 검이 불의 검기를 토했다.
그러나 그는 검을 완전히 휘두르기도 전에 무서운 속도로, 흡사 유령과도 같은 흐릿한 잔상을 그리며 솟아오른 아틸라의 붉은 눈을 봤다.
새빨간 안구가 에단의 시야를 덮었다.
피분수가 흩어졌다.
에단은 지상으로 낙하하는 자신의 검과, 오른팔을 봤다.
“아틸……라……!”
에단의 오른팔을 절단한 흑철검이 빙글 회전했다.
에단은 한쪽 팔을 잃은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았다.
반격의 곡선을 그리는 흑철검을 막아 내려 했다.
그러나 아틸라의 몸놀림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빨랐다.
인간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마치 짐승 같았다.
콰드득!
에단의 가슴에 흑철검이 박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세베스티아는 에단과의 페어링이 급속도로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쿨럭……!”
에단이 핏물을 토했다.
그의 무릎이 세베스티아의 등 위로 떨어졌다.
그러고는 미끄러져 지면으로 추락했다.
- 에단!
세베스티아는 날개를 접으며 하강했다.
지금 세베스티아의 머릿속엔 에단을 구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등 위의 버서커를 간과했다.
세베스티아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콰드득! 콰득! 콰지지짓……!
아틸라는 양손에 든 무휼과 흑철검으로 세베스티아의 한쪽 날개를 잘랐다.
쉽지는 않았다.
드래곤의 비늘은 단단했고, 날개 근처엔 다른 부위보다 강한 근육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아틸라는 해냈다.
펀치의 도움 또한 주효했다.
- 네 이놈! 인간……!
지면에 도달한 세베스티아가 사납게 울부짖었다.
세베스티아는 날개 한쪽을 잃은 것보다 에단이 생존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에 더욱 분노했다.
에단의 심장은 완전히 파괴됐다.
죽는 것은 시간문제다.
“세베스……, 세베스티아…….”
지면에 부딪히기 직전에 세베스티아가 몸으로 받아 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세베스티아는 에단과의 페어링이 해제됐다는 것을 알았다.
에단은 죽었다.
세베스티아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꼈다.
에단은 자신의 일부였다.
용족과 용기사의 페어링은 상당한 정신적 교감을 동반한다.
그것이 갑자기 깨졌다.
저 아틸라라는 이름의 인간에 의해.
키랴랴랴랴랴!
세베스티아가 하늘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극도의 상실감에 울부짖었다.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온 하늘을 태워 버리려는 듯했다.
그런 세베스티아의 눈에 무휼이 꽂혔다.
한쪽은 오토에 의해, 다른 한쪽은 아틸라에 의해 시력이 날아갔다.
물론 드래곤은 안구를 잃어도 회복할 수 있다.
약간의 시간이 걸릴 뿐이다.
실제로 오토에게 당한 눈은 이미 수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시력을 회복할 틈을 주지 않았다.
세베스티아의 목에 무휼을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비틀었다.
핏물이 치솟아 아틸라의 얼굴을 적셨다.
아틸라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새빨갛게 젖은 얼굴은 악귀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