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 무가치의 악마 (5)
세베스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목을 비틀었다.
세베스티아는 경악했다.
자신은 분명 상대의 검을 막았다.
‘그렇데 어떻게!’
세베스티아는 무휼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성검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 세베스티아는 무휼에서 성스러운 기운이 발산된다는 것을 알아봤다.
다만 저 짤막한 성검이 축성의 인장과 결합하며 제멋대로 형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키에에에에!
포효하는 세베스티아의 아가리에서 핏물이 흩어졌다.
아틸라는 ‘성스러운 창’으로 변한 무휼의 창자루를 움켜쥐었다.
더욱 안으로 밀어 넣었다.
부드드득! 근육이 파열되는 감각이 창자루로 전해졌다.
세베스티아가 고개를 휘둘렀다.
그 탓에 아틸라의 몸이 번쩍 위로 들어 올려졌고, 회전을 시작했다.
“크윽……!”
아틸라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무작위로 휘둘러지는 무시무시한 놀이 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몸 한쪽으로 피가 쏠리며 구역질이 났다.
그 와중에도 아틸라는 손에 피가 나도록 창자루를 쥐었다.
놓쳐선 안 된다.
지금의 기회를 살려, 어떻게든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
“세베스티아!”
펀치를 향한 에단의 공격이 더욱 거세졌다.
아틸라는 펀치의 방어가 위태롭다는 것을 느꼈다.
펀치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관성에 대항하며 창자루를 당겼다.
당겨진 창자루의 안쪽을 팔을 뻗어 쥐었다.
다시 반대쪽 팔을 뻗었다.
그렇게 그의 몸이 창자루를 타고 조금씩 전진했다.
가공할 용력을 지닌 아틸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정도로 세베스티아의 저항은 거셌다.
‘빌어먹을…… 빨간 도마뱀 새끼……!’
이윽고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이빨 하나를 붙잡는 것에 성공했다.
목 안으로 기어들어가 치명상을 입혀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 작전을 실행할 수 없었다.
세베스티아의 목구멍이 불길하게 꿈틀댔다.
브레스의 전조였다.
키랴랴랴랴랴랴!
아틸라의 몸이 강하게 뒤로 튕겼다.
그의 왼손엔 흑철방패가, 다른 손엔 무휼이 쥐여 있었다.
브레스의 전조를 감지하자마자 본능적으로 방패를 꺼내 막은 것이다.
“아틸라!”
달려가려는 카스피를 오토가 막았다.
“뭐야! 저리 비켜 영주 나리!”
“살쾡이 암살자가 간다고 달라질 건 없소! 오히려 방해만 될 거요!”
“그럼 구경이나 하자는 거야? 아틸라가 위험하다고!”
이번에도 카스피는 아틸라의 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오토 역시 아틸라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브레스를 맞고 튕겨난 아틸라는 거대한 나무에 부닥친 뒤 바닥을 굴렀고, 그 위로 세베스티아의 브레스가 이어졌다.
파드드드드드……!
아틸라는 흑철방패 하나에 의지해 그것을 막았다.
그의 어금니가 악다물어졌다.
골든핑거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흑철방패가 녹아내리고 있었다.
‘드워프 장인의 방패가……!’
그 정도로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는 뜨거웠다.
방패를 들고 있는 사람이 아틸라가 아니었다면 진즉 불에 타죽었을 것이다.
“영주 나리!”
카스피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지만 오토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카스피는 실력행사를 해서라도 돌파하려 했다.
하지만 오토의 벽을 뚫을 수 없었다.
“이잇……!”
오토가 카스피보다 부상이 덜했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의 오토는 이상할 정도로 강건했다.
믿기지 않는 완력을 발휘하며 오토가 카스피를 제압했다.
“놔! 이거 놓으라고 영주 나리! 진짜 부상만 나으면 먼지 나게 때려 줄 거야!”
“이거 좀 빌리겠수. 살쾡이 암살자.”
오토가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뒤돌아 세베스티아에게 달렸다.
“뭐, 뭐야 영주 나리!”
카스피가 어이없다는 듯 오토를 바라봤다.
오토의 손엔 사슬낫이 쥐여 있었다.
“일단은 지켜보자꾸나.”
바토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아틸라와 오토를 봤다.
현자의 돌을 움켜쥔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촤르르륵!
세베스티아에게 접근하며 오토가 사슬낫을 던졌다.
차랑한 소음과 함께 세베스티아의 목에 사슬이 감겼다.
“그 망할 브레스 멈춰라 도마뱀 새끼야아아아!”
오토가 몸을 날렸다.
힘차게 사슬낫을 당기며 세베스티아의 목에 매달렸다.
그 순간 세베스티아는 묘한 기운에 사로잡혔다.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목에 매달린 강철갑주의 인간을 봤다.
‘설마 저자는.’
분명했다.
저 강철갑주의 인간에게선, 에단과 동류의 기운이 발산되고 있다.
‘기운은 미약하다.’
세베스티아 정도 되는 드래곤이기에.
그리고 직접 몸이 맞닿은 상태였기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한 기운.
아울러 세베스티아는 그 기운이 ‘성장형(成長型)’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세베스티아는 혼란에 사로잡혔다.
이성은 저자를 공격하라 말한다.
그러나 신에게서 부여받은 신성한 본능은 그래선 안 된다며 외치고 있었다.
세베스티아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고민할 틈은 없다.
강철갑주의 인간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동료.
‘결코 살려 둬선 안 되는 존재다.’
세베스티아는 앞발을 들어 강철갑주의 인간을 공격했다.
“힉! 히익……!”
인간은 반은 우연이 겹친 동작으로 그 공격을 피했다.
세베스티아는 다른 발을 들어 공격했다.
이번에도 인간은 피했다.
마치 날파리 같았다.
그래서 세베스티아는 한쪽 날개를 접어 휘둘렀다.
과연 날파리는 앞발보다 표면적이 수십 배는 넓은 날개 공격마저 회피하진 못했다.
퍼걱!
거대한 날개가 오토의 등을 후려쳤다.
앞발이 아닌 날개였지만 그 위력은 엄청났다.
오토는 몸의 뼈가 부서진 것을 감각했다.
눈앞이 누렇게 변했다.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오토의 육체는 이미 한계였다.
카스피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그는 많은 피를 흘려 몸 상태가 매우 나빴다.
게다가 목의 상처가 터져 추가로 피를 쏟고 있었다.
붉은 피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염병 이러다 진짜 죽겠군.’
그러나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라면 아틸라는 죽을지도 모른다.
아틸라가 쓰러지고 나면.
다음은 동료들의 차례다.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오토가 키들키들 웃었다.
사슬낫의 한쪽 끝을 몸에 묶은 뒤, 세베스티아의 목을 타고 엉금엉금 기어갔다.
세베스티아의 발톱이 오토의 다리를 가격했다.
부러진 다리가 덜렁거리며 늘어졌다.
“영주 나리!”
카스피가 달려 나갔다.
바토리도 더 이상은 카스피를 막지 못했다.
오토가 소리쳤다.
“오지 마!”
그 외침이 어찌나 커다랬는지 카스피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간신히 세베스티아의 머리에 근접한 오토가 한쪽 손을 들었다.
그의 손엔 카스피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카스피에게서 훔쳐 온 건 사슬낫만이 아니었다.
콰드득!
단검이 세베스티아의 한쪽 눈을 찔렀다.
세베스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서 브레스에 틈이 생겼고, 아틸라는 녹아내리는 방패를 내던지며 세베스티아를 향해 달렸다.
사거리를 확인하며 시전했다.
[ 돌진(突進) ]
순식간에 세베스티아와 거리를 좁혔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는 돌진보다 도약이 훨씬 효과적인 스킬이지만, 바토리가 보호막을 시전할 수 없는 이상 자제해야 했다.
도약의 후폭풍은 강렬하다.
지금의 동료들은 견뎌 낼 수 없다.
특히 세베스티아의 머리에 매달린 오토는 무조건 즉사할 것이다.
퍼거걱!
내동댕이쳐진 오토가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그럼에도 오토는 놀라운 정신력을 발휘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시…… 부럴…….”
오토가 바닥에 엎어졌다.
출혈이 너무 심해 혼절한 것이다.
“저 병신 새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베스티아를 노려보는 아틸라의 눈빛엔 살기가 가득했다.
오토 덕분에 브레스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틸라는 오토의 희생을 무의미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콰드드득!
무휼의 창날이 세베스티아의 목을 관통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드래곤의 비늘은 단단하다.
웬만한 무기는 저렇게 쉽게 드래곤의 비늘을 뚫을 수 없다.
그러나 무휼은 아틸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치 도롱뇽의 ‘초 레어 송곳 브레스’처럼, 하나의 극점을 노리며 쏘아진 성스러운 창날은 비늘과 비늘 사이의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무휼의 성력과, 끝이 뾰족한 창날 고유의 특성과, 아틸라의 용력과 집중력이 일궈 낸 쾌거였다.
크르르르르르……!
세베스티아가 사나운 울음소리를 냈다.
쉭쉭, 바람 빠지는 소리도 함께였다.
세베스티아는 긴장했다.
이렇게까지 자신과 맞설 수 있는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파캉! 팡! 파아앙!
무휼의 창날이 세베스티아를 공격했다.
세베스티아는 발톱을 들어 막았다.
아틸라는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관통상은 만들 수 없었다.
세베스티아는 아틸라를 얕보지 않았고, 방어에 집중한 드래곤은 뚫리지 않는 성벽 같았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급속도로 체력이 소진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이미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로 상당한 체력을 잃은 상태였다.
- 고작 이 정도인가.
세베스티아는 승리를 자신했다.
생각지 못한 상처를 입긴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게다가 드래곤에겐 강한 수복력이 있다.
세베스티아의 상처는 벌써 회복을 시작하고 있었다.
-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인간.
아틸라도 그것을 느꼈다.
지금의 자신은 세베스티아를 이길 수 없다.
동료들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힘들었다.
바토리는 모든 마력을 소진했고.
카스피는 여전히 비틀거렸으며.
심지어 오토는 죽음을 코앞에 둔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
그 와중에 펀치만이 큰 힘이 됐다.
에단을 상대로 펀치는 생각 이상으로 잘해 주었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을 끌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이다.
아틸라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펀치!”
펀치는 아틸라의 의지를 받아들였다.
에단과의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해 오토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카스피와 바토리를 향해 달렸다.
“펀치야!”
바토리는 아틸라의 생각을 짐작했다.
말리고 싶었지만, 그것 말고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사실 다른 방법이 있긴 했다.
바토리는 왼팔의 마력을 완전히 개방하면 ‘신의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바토리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
바토리는 아틸라가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울러 그녀 자신 역시도.
바토리는 이를 악물며 펀치의 등에 올라탔다.
“카스피!”
바토리가 카스피의 손을 잡아끌었다.
카스피는 오토와 아틸라를 번갈아 바라보다 펀치의 등에 올랐다.
두 여인을 태운 펀치가 있는 힘껏 달렸다.
정해진 방향은 없다.
목표는 가급적 아틸라에게서 멀리 떨어지는 것.
흔들리는 펀치의 등 위에서 바토리가 뒤를 돌아봤다.
아틸라는 이무기의 독액을 삼키고 있었다.
세베스티아가 아틸라의 정면을, 에단이 후면을 공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근, 바토리의 심장이 울렸다.
아틸라의 갑주가 부서지고, 튕겨 나갔다.
그의 전신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세베스티아와 에단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공격은 아직 아틸라에게 닿지 못했다.
아틸라가 두 눈을 치켜뜨며 세베스티아를 노려봤다.
붉게 변한 안구는 우툴두툴한 혈관으로 덮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