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94화 (294/425)

294. 무가치의 악마 (4)

세베스티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모습은 작아졌지만 분명했다.

저 도마뱀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다.

그리고 세베스티아는 깨달았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약해졌다.

그런데 그 약해진 정도가 자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직전처럼 거대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 제약이 있다.’

그 모습마저 이전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 비하면 형편없이 약해진 상태임에도 말이다.

세베스티아가 눈에 강한 살기가 깃들었다.

‘지금,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세베스티아는 이 순간이야말로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제거할 다시없을 기회라는 걸 직감했다.

지금을 놓친다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세베스티아는 망설였다.

세베스티아에겐 아직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제거하기 위해 어린 드래곤을 희생시킬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고민의 시간이 아틸라에게 강한 운으로 작용했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득……!

[ 성검, 무휼의 공격이 적중했습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합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합니다. ]

[ 축성의 인장이 발동…… ]

아틸라는 레드 드래곤의 몸 위에서 위태로운 칼질을 계속했다.

바토리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도롱뇽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며, 바토리 또한 마력의 공급원을 잃었다.

지금의 바토리는 제대로 된 마법을 발현할 수 없는 상태다.

[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아틸라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레드 드래곤의 몸을 타격하면서도 세베스티아의 상황을 주시했다.

세베스티아는 주저하고 있다.

그 주저의 시간이 아틸라로 하여금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를 한계까지 축적하도록 만들었다.

“각오는 되었나. 세베스티아.”

흡사 수라(修羅)와도 같은 얼굴로 아틸라가 말했다.

그 모습에 세베스티아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다.

쏴야 한다.

지금이라도 브레스를 발현해 저들을 한줌 잿더미로 만들어야 한다.

그 순간 레드 드래곤의 몸이 세베스티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묵직한 소음과 함께였다.

퍼어어엉!

세베스티아는 이내 레드 드래곤을 발견했다.

드래곤은 지면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망치에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이게 무슨……!’

세베스티아는 위화감을 느꼈다.

추락하는 어린 드래곤.

바토리 에르제베트.

그녀의 품 안에서 비명을 지르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그것이 전부다.

보이지 않는다.

용기사 아틸라의 모습이.

‘위다! 세베스티아!’

에단의 의지가 세베스티아의 정신을 깨웠다.

세베스티아는 고개를 들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다만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가공할 충격이 척추를 지르밟았다.

* * *

아틸라는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를 한계까지 축적한 뒤 도약 스킬을 시전했다.

그 여파로 상처 입은 레드 드래곤은 지면으로, 아니 거대한 나무 위로 추락했다.

레드 드래곤이 형편 좋게 나무에 떨어진 이유는 아틸라가 그리 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다.

도약 스킬을 시전하기 전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보호막을 시전할 여력이 있는지 물었고.

‘한 번 정도는 가능할 것 같구나.’

대답을 확인한 뒤, 이번 작전을 실행했다.

바토리는 레드 드래곤과 함께 추락했다.

물론 아틸라는 바토리의 안전을 나무로부터의 충격 흡수와, 보호막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펀치에게도 의지를 전달해 두었다.

[ 거대화(巨大化) ]

바토리가 추락하는 나무 꼭대기엔 이미 펀치가 올라와 있었다.

펀치는 먼저 추락한 드래곤은 무시하고, 한발 늦게 떨어지는 바토리를 온몸으로 받았다.

그 직전에 바토리가 펀치에게 보호막을 둘렀다.

우어어어!

펀치의 커다란 몸과, 촘촘한 털과, 푹신한 뱃살이 바토리의 보호막과 나무의 쿠션 효과와 합쳐지며 충격을 흡수했다.

펀치는 바토리와 도롱뇽을 안은 채 수많은 나뭇잎을 뚫으며 추락했다.

그러고는 먼저 떨어진 드래곤의 몸에 부닥치며 다시 한번 충격을 흡수했다.

그렇게 바토리는 지면으로의 안착에 성공했다.

게다가 펀치는 다 죽어가던 드래곤에게 운 좋게도 막타를 날렸다.

펀치가 레벨업했다.

“고맙구나 펀치야.”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바토리에게 오토와 카스피가 엉금엉금 다가왔다.

그들은 제 한 몸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바토리를 보호하려 했다.

“바토리!”

“바, 바토리 아가……!”

오토의 외침을 자르듯 거대한 충격이 지상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도약의 타점이 된 세베스티아가 지면에 처박혔다.

“힉! 아, 아틸라 님!”

떨어진 건 세베스티아만이 아니었다.

아틸라와 에단도 추락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크흑……! 컥……!”

가장 먼저 몸을 일으킨 건 아틸라였다.

아틸라가 이렇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세베스티아 덕분이었다.

세베스티아는 강력한 드래곤이었고, 그래서 아틸라의 도약 스킬에 대책 없이 당하지 않았다.

세베스티아는 추락하는 와중에도 날개를 움직여 중력에 저항했다.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믿었다.

물론 확신은 없었다.

만약 세베스티아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아틸라는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혹은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

“네놈……! 아틸……라……!”

에단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단은 아틸라보다 늦게 일어섰지만 몸 상태는 훨씬 좋았다.

세베스티아가 에단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에단은 한쪽 눈과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세베스티아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와 에단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그에게 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어어어어!

펀치가 달려왔다.

아틸라는 펀치가 레벨업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 환수, 펀치가 스킬을 개방할 수 있는 레벨에 도달했습니다. ]

[ 세 번째 스킬이 개방됩니다. ]

[ 광폭화(狂暴化) ]

‘뭐?’

[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狂暴)의 힘을 개방하면 자동으로 발현되는 조건부 패시브 스킬입니다. ]

[ 스킬, 야수의 발톱의 효과가 두 배로 증가합니다. ]

[ 공격 속도가 15% 빨라지며, 모든 공격력이 30% 증가합니다. ]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

[ 광폭화는 환수의 주인이 권능, 광폭을 유지하는 동안 계속됩니다. ]

엄청난 스킬이 나왔다.

야수의 발톱은 펀치에게 가격 당한 타깃의 회복력을 10퍼센트 저하시키는 스킬.

두 배로 효과가 증가하면 20퍼센트가 된다.

게다가 공격 속도 증가, 공격력 증가, 모든 저항력 증가까지.

‘거대화한 펀치는 웬만한 영웅급 등장인물 정도로 강한데, 거기에 광폭화까지 더해진다면.’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해질 거다.

오토를 능가하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카스피마저 압도할지 모른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버서커의 힘을 발현해야만 발동되는 것이기에, 여러 제한 요소가 있다는 것.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발현할 수 없는 스킬이었다.

아틸라는 버서커의 힘에 기댈 생각이 없었다.

버서커의 힘을 발현한다면, 그래서 펀치의 광폭화마저 유도한다면 아틸라는 눈앞의 적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료들의 안전은 보장할 수 없다.

물론 아틸라에겐 비장의 수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달렸다.

그의 목표는 에단이 아닌 세베스티아였다.

[ 돌진(突進) ]

아틸라의 신형이 세베스티아에게 닿았다.

아틸라가 에단보다 세베스티아를 먼저 쓰러뜨리려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세베스티아가 공중전을 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아틸라에겐 세베스티아의 공중전을 막을 수단이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에단을 먼저 쓰러뜨릴 경우, 페어링이 해제되며 세베스티아가 직전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용기사와 페어링한 용족은 약해진다.

아벨의 머릿속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내용이다.

파캉!

아틸라가 휘두른 흑철검을 세베스티아가 쳐냈다.

에단이 세베스티아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

그 앞을 펀치가 가로막았다.

우어어어!

아틸라는 서둘러야 했다.

에단과 겨뤄 본 그는 알고 있었다.

에단은 펀치보다 강하다.

카아앙!

아틸라의 흑철검은 또다시 막혔다.

세베스티아는 강했다.

아틸라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홀로 쓰러뜨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지금의 세베스티아는 약화됐지만 그럼에도 칼날 산맥의 드레이크보다 강했다.

칼날 산맥의 드레이크는 샤를, 키릴, 슈시아, 카스피와 같은 최강의 동료들과 힘을 합쳐 간신히 쓰러뜨린 괴물이다.

‘그러나 세베스티아에게도 약점은 있다.’

칼날 산맥의 드레이크는 언데드를 불러 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놈은 자신의 권속인 언데드들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세베스티아는 달랐다.

세베스티아는 에단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

게다가 아틸라는 세베스티아가 다 죽어가는 어린 드래곤을 차마 희생시키지 못하고 주저했던 것을 분명하게 기억했다.

‘세베스티아는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다.’

그 마음에 대해 아틸라는 잘 알았다.

그 역시 언젠가부터 동료들을 지키는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아틸라가 눈앞의 승리에만 집중하는 사내였다면 바토리가 보호막을 시전할 마력을 공격으로 전환시켰을 것이다.

또한 지금과 같은 상황에 주저 없이 버서커의 권능을 발현했을 것이다.

그에겐 아직 한차례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이무기의 독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틸라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세베스티아를 이해했다.

그래서 그것을 파고들 생각을 했다.

‘세베스티아는 에단에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틸라는 일부러 펀치와 에단을 등지며 싸웠다.

세베스티아가 브레스를 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세베스티아는 브레스를 시전하지 않았다.

에단을 두고 공중전을 펼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브레스를 사용하지 않아도, 공중전을 펼치지 않아도 세베스티아는 아틸라보다 강했다.

누가 봐도 아틸라에게 불리한 싸움이었다.

연달아 앞발로 흑철검을 쳐내는 세베스티아를 보며 아틸라는 기회를 노렸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러나 분명 기회는 올 것이다.

정말로 기회는 왔다.

카카캉!

세베스티아의 이빨이 아틸라의 검날을 물었다.

계속해서 몸통을 공략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발 구르기’와 함께 세베스티아의 얼굴을 노린 공격이었다.

그 공격은 세베스티아의 이빨에 막혔다.

세베스티아는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웃었다.

[ 모든 성력을 무휼의 형상 변환에 집중합니다. ]

아틸라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휼의 성력을 개방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순간을 위해서였다.

아틸라는 무휼의 길이를 최대한 길게 늘이기로 했다.

[ 성검, 무휼이 ‘성스러운 창’으로 형상을 변환합니다. ]

그리고 당연히.

지금 세베스티아의 입에 물린 검은 흑철검이 아닌 무휼이다.

“어디, 네 뱃속이 얼마나 단단한지 한번 보자고.”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무휼의 날이 세베스티아의 목을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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