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92화 (292/425)

292. 무가치의 악마 (2)

세베스티아는 벨리알에 대한 어떤 가설을 세웠다.

그것이 세베스티아가 벨리알의 말을 따라 이곳에 온 이유였다.

- 어떻게 균열을 연 것이냐고 물었다. 세베스티아.

도롱뇽이 다시 물었다.

세베스티아가 답했다.

- 두 레드 드래곤을 소환한 건 내가 아니다. 벨리알의 힘이다.

- 뭐라고?

도롱뇽은 세베스티아와 같은 이유로 크게 놀랐다.

으르렁대듯 말했다.

- 벨리알은 고위악마다. 벨리알은 드래곤의 창조에 관여하지 않았다. 즉 벨리알은 용계에 간섭해 드래곤을 소환할 수 없다.

- 나 역시 알고 있는 내용이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그러나 나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벨리알이 용계에 간섭해 드래곤을 소환하는 광경을.

도롱뇽은 눈동자를 굴려 세베스티아의 뒤에 떠오른 두 드래곤을 봤다.

‘놈들은 정말로 레드 드래곤이다. 악마의 사악한 마력으로 창조된 존재가 아니다.’

세베스티아의 말과 도롱뇽의 의지를 읽으며 아틸라도 크게 놀랐다.

그 역시 고위악마가, 아니 설령 대악마라 할지라도 용계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틸라와 도롱뇽은 동시에 어떤 가설에 도달했다.

그것이 세베스티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 가능성은 두 가지겠지. 벨리알이 신의 권능을 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이거나, 혹은.

세베스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 그 자신이 신이거나.

도롱뇽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 넌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고 있다. 세베스티아.

- 자신의 판단을 부정하지 마라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너 역시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 물론 벨리알은 주신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다섯 신 중 하나였다. 그러나 벨리알은 주신 전쟁 때 반기를 들어 악마로 전락했다. 게다가 벨리알은 대악마도 아닌 고위악마. 네가 말한 두 가지의 가능성 중, 벨리알이 ‘신의 권능을 무시할 정도의 강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놈이 고위악마의 지위를 지녔다는 것으로 반박이 가능하다. 벨리알이 신이라는 가능성 또한 마찬가지다. 벨리알은 주신을 배신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놈은 결코 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 넌 벨리알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 내가 본 벨리알은 대악마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신에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다.

그 순간 아틸라의 뇌리에 번개가 쳤다.

신에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

그런 존재를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사도.’

그러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주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다섯 신 중 하나였던 벨리알.

그리고 얼마 전, 바토리가 했던 말.

‘엘은 자신과 같은 사도가 다섯이 존재한다고 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

조금 더 자세히 추론하자면, 사도는 ‘주신의 보냄을 받은 자’.

그렇다면 먼 옛날 엘이 바토리에게 말했던 다섯 사도란 어쩌면.

‘주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다섯 신과 동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능성은 존재한다.

주신 전쟁이 벌어질 당시.

주신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던 다섯 신 중, 둘이 주신을 배신하고 악마가 됐다.

하나는 고위악마 벨리알.

나머지 하나는.

‘대악마 아몬.’

아몬은 모든 신과 악마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환술을 지닌 존재다.

바토리가 메피스토펠레스와 호각의 환술 대결을 펼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대악마 아몬의 고서’를 획득했기 때문.

‘그렇다면 설마, 아몬은.’

아틸라는 불현듯 두통을 느꼈다.

무언가가 머리에 떠오를 것 같더니 연기처럼 지워졌다.

남은 건 날카로운 비수로 뇌를 긁는 듯한 날선 통증뿐.

바토리가 아틸라의 이상을 알아봤다.

그녀는 아틸라가 자신과 비슷한 결론에 도출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야만전사야.”

아틸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생각을 털어 내자 두통은 점차 잦아들었다.

아틸라는 이렇게 한가로이 대화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도롱뇽의 해방은 무한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아니다.

‘일단은 세 드래곤을 쓰러뜨린다. 도롱뇽.’

아틸라의 의지를 전해 받은 도롱뇽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 셋이 덤빈다고 날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세베스티아.

도롱뇽이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세베스티아도 아가리를 벌렸다.

도롱뇽과 세베스티아는 대화를 이어 가는 내내 브레스를 발현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 셋 모두 포식해 주겠다.

도롱뇽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이번의 브레스도 직전과 동류의 브레스였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하나의 좁은 극점을 노리는 ‘초 레어 송곳 브레스(도롱뇽 작명)’보다는 세 드래곤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산개(散開) 브레스가 적합했다.

파드드드드듯……!

도롱뇽과 세베스티아의 브레스가 요란하게 맞부딪쳤다.

그 여파로 세베스티아를 제외한 두 레드 드래곤이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리 큰 피해는 아니었고, 두 레드 드래곤은 허공을 선회해 도롱뇽의 측후면을 공격하려 했다.

“그렇게 둘 줄 아느냐.”

바토리는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마력을 끌어냈다.

성체가 된 도롱뇽의 마력 창고는 거대했다.

그래서 바토리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력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그녀의 손이 드래곤들을 향했다.

퍼어어엉!

바토리의 손에서 무형의 풍압이 발산됐다.

바토리는 그간 공격 마법을 시전할 때 화속성 마법을 주로 사용했었다.

그러나 레드 드래곤은 불을 다루는 드래곤.

그런 레드 드래곤을 상대로 화속성 마법을 구현할 정도로 바토리는 어리석지 않다.

파캉!

풍압에 적중 당한 드래곤이 몸의 균형을 잃었다.

남은 한 마리도 견제에 성공했다.

‘저 두 드래곤은 세베스티아만큼 강하지 않다.’

바토리는 확신했다.

일단 크기부터 작았고 몸의 움직임도 세베스티아처럼 날래지 않다.

한 마디로 아직 어린, 미숙한 드래곤이었다.

아틸라도 그것을 느꼈다.

‘벨리알은 왜 저런 미숙한 드래곤을 소환한 거지?’

어쩌면 저 정도의 드래곤을 소환하는 것이 벨리알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틸라가 도달한 가정대로라면, 벨리알은 저것보다 강한 드래곤을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벨리알은 의도적으로 미숙한 드래곤을 소환했다는 것인가.

아니면.

‘대격변의 징조가 소환을 방해하고 있는 건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미숙한 드래곤이라 해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목숨이 날아간다.

키랴랴랴랴랴!

두 레드 드래곤이 브레스를 뿜었다.

그것을 감지한 도롱뇽이 더욱 몸을 상승시켜 브레스를 피했다.

그러면서도 도롱뇽은 세베스티아에게 흔들림 없이 브레스를 유지했다.

아틸라가 보기에도 놀라운 움직임이었다.

‘확실히 해방 스킬이 업그레이드되며 도롱뇽은 눈에 띄게 강해졌다.’

아틸라가 히죽 웃었다.

그러나 지금의 도롱뇽은 전성기 때에 비해 한참 부족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도롱뇽은 앞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다.

파드드드드드!

이번의 브레스는 세베스티아가 먼저 숨이 다했고, 그래서 도롱뇽의 브레스를 온몸으로 맞았다.

세베스티아가 날개를 접으며 추락했다.

약간의 틈을 두고 호흡을 다한 도롱뇽이 세베스티아를 추격했다.

그런 도롱뇽을 두 레드 드래곤이 악착같이 방해했다.

캬오오오오오!

도롱뇽이 포효하며 드래곤들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두 드래곤은 도롱뇽의 날개와 뒷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화가 난 도롱뇽이 드래곤 하나의 목을 물었다.

앞발로 가슴을 후려쳤다.

퍼거걱!

레드 드래곤이 비명을 질렀다.

이어 바토리의 공격 마법이 드래곤의 날개를 강타했다.

한편 아틸라는 추락하는 세베스티아를 보고 있었다.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세베스티아가 도롱뇽의 브레스에 맞은 건 사실이지만, 그리 길게 노출되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형편 없이 추락할 정도의 타격은 결코 아니었다.

펄럭!

지면에 가까워진 세베스티아가 활짝 날개를 폈다.

날개가 일으킨 돌풍이 흙먼지의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그 사이로 보였다.

에단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에단 트라쿠스!’

그랬다.

세베스티아는 에단의 접근을 감지했다.

그래서 빠르게 지면으로 추락했고, 두 레드 드래곤으로 하여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붙잡아 시간을 벌게 만들었다.

“세베스티아!”

에단이 외쳤다.

그는 어금니를 악물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분명하게 위를 향한 상태였다.

그는 생각했다.

아틸라. 역시 네놈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용기사였구나.

부웅.

스치듯 지면을 지난 세베스티아가 하늘로 떠올랐다.

세베스티아의 등 위엔 에단 트라쿠스가 올라앉아 있었다.

“아틸라.”

아틸라를 노려보며 에단이 웃었다.

아틸라도 웃었다.

“에다드. 아니, 에단이라 부르는 편이 맞겠군.”

“알고 있었던 건가.”

“제법 유명하길래 말이야.”

에단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의 검에서 불의 검기가 타올랐다.

세베스티아 역시 더욱 화려해진 몸놀림을 과시하며 도롱뇽에게 날아왔다.

에단과 함께하는 세베스티아는 직전보다 강한 존재였다.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구나.”

바토리가 말대로 지금 상황은 아틸라에게 불리했다.

상대는 세 마리의 드래곤과 용기사.

대항할 수 있는 아군은 아틸라, 바토리, 도롱뇽이 전부였다.

‘게다가 도롱뇽이 성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해방 스킬이 업그레이드되며 유지 시간은 전보다 길어졌다.

그러나 저 세 드래곤은 그런 제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인 점은 바토리가 도롱뇽의 마력을 흡수해 제법 강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

“내가 두 드래곤을 막겠다. 그 사이 세베스티아와 에단을 쓰러뜨리려무나.”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에단의 검기가 아틸라를 습격했고,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을 뻗어 막았다.

파드드듯……!

도롱뇽이 성체가 된 덕에 드라칼리온은 강력한 마법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에단의 검기를 무리 없이 막아 냈다.

“세베스티아를 공격하는 이유가 뭐냐. 아틸라.”

“웃기는군. 먼저 공격한 건 내가 아냐.”

에단의 머릿속에 세베스티아의 의지가 흘러들어왔다.

세베스티아는 조금 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했던 말을 에단에게 전했다.

- 그렇다면 나 역시 그때와 같은 입장을 취하겠다.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전쟁에 개입하겠다. 너희 모두는 나의 숨결과, 송곳니와, 발톱에 부서질 것이다.

세베스티아가 덧붙였다.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이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놈은 이번에도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학살할 생각이다. 게다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는 이미 고대 왕국 하나를 멸망시킨 전력이 있다.’

에단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아틸라를 아군으로 전향시킨다는 가능성을 버렸다.

먼 옛날 인간들의 왕국을 멸망시켰다면,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망설임을 제거한 에단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의 검에서 재차 검기가 발산했다.

화르르르륵!

새빨간 검기가 아틸라를 향해 뻗쳤다.

아틸라도 가만있지 않았다.

드라칼리온의 검신을 타고 흑빛 오러가 타올랐다.

[ 검기(劍氣) ]

아틸라는 웃었다.

그래. 드디어 이걸 써먹어 볼 시간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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