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89화 (289/425)

289. 남부로 돌아갈 방법 (2)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요. 검은늑대의 아틸라.”

남자가 말했다.

그는 상당한 격식을 차린 듯한, 그러나 한편으론 장난스럽게 보이는 붉은 의복을 입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마법처럼 손 위로 생성된 장작을 모닥불 안에 던져 넣었다.

투트틋…….

모닥불이 자그만 춤을 추었다.

직전처럼 혼탁하게 커지는 연기 장막 따윈 없었다.

아틸라는 흔들리는 모닥불 너머로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무심한 표정과 달리 아틸라는 다소 놀란 상태였다.

저 남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아틸라는 조금의 기척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의 오른손이 흑철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런이런. 그 무지막지한 검을 휘두르는 건 잠시 자제해 주시지요. 난 싸우기 위해 당신을 기다렸던 게 아닙니다.”

아틸라는 상대의 말속에 숨은 의미를 간파했다.

또한 상대의 기척을 직전까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의 가정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그래. 우리가 이곳으로 올 줄 알고 둥지를 틀고 기다렸다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한둘 정도는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요툰의 힘을 사용하는 북부인과 시카리오 암살단의 실력은 대단한 편이니까요.”

시카리오 암살단이라.

“나와 바토리가 있는데도?”

“당신의 말대로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규격 외의 실력자입니다. 그녀가 만약 인간으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녹초가 된 지금의 몸으로도 나의 기척을 충분히 간파했을 테지요.”

남자의 눈이 잠든 바토리를 흘끗 바라봤다.

“사실 난 당신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이번 패배의 가장 큰 이유겠지요.”

“날 찾아온 이유가 뭐지.”

아틸라의 입술이 사나운 미소를 그렸다.

“플루토.”

플루토도 마주 웃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당신이 기대할 만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기대할 만한 소식이 아니라면, 그 목이 일곱 번 정도 잘릴 각오는 해야 할 거다.”

“듣기만 해도 무서운 이야기군요. 아울러 그 말은 으레 하는 농담 또한 아닐 테지요.”

“물론.”

“버서커 카르타고가 회색 마탑을 장악했습니다.”

짧은 정적이 일었다.

“카르타고는 그가 지닌 사악한 마력을 발현해 회색 마탑의 탑주를 리치로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라든 왕국과 에이시스 왕국이 지도에서 사라졌지요.”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댔다.

라든 왕국과 에이시스 왕국이 카르타고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은.

카르타고의 언데드 군단이 두 왕국의 병력만큼 세를 불렸다는 뜻이다.

아니, 민간인까지 언데드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면 그 수는 가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조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당신이 기대할 만한 소식이니까요.”

“그 사실을 내게 알려서 네가 얻게 되는 이득이 뭐지.”

플루토가 웃었다.

아틸라는 플루토의 얼굴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플루토의 눈동자는 아틸라를 똑바로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벌어져 있었다.

‘사시인가.’

플루토의 사시안(斜視眼)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아니 아틸라의 입장에서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양옆 풍경을 보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의 파트너인 레비아가 ‘통찰(洞察)의 관조자’라 불리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을 테지요.”

아틸라는 얼마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요툰의 숲을 퇴치하고 케렌시아의 영주성을 다시 찾았을 때, 바토리는 레비아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었다.

‘오해라 하였느냐. 통찰(洞察)의 관조자라 불리는 레비아, 네가 요툰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였다고?’

“그 이야기가 이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

“레비아와 마찬가지로 내게도 특별한 이름이 있습니다. ‘유희(遊戲)의 관조자’ 플루토. 많은 관조자와 불사의 존재들이 날 그렇게 부르고 있지요.”

“바토리를 통해 들었다. 네가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분쟁을 일으킨 뒤, 그것을 관음하는 걸 즐기는 변태 새끼라는걸.”

플루토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의 목소리가 방출하는 파장은 묘했다.

정확히 말로 설명하긴 어려웠지만, 아틸라는 그의 육성이 잠든 동료들의 귀에 닿지 않는다는 걸 직감했다.

‘오토와 카스피는 물론이고, 바토리마저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다.’

아틸라는 확신했다.

플루토는 지금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준비를 했다.

요툰의 힘을 지닌 북부 야만인들과 암살단을 전멸시키면서까지.

“당신의 말은 다소 과격하군요. 하지만 부정은 않겠습니다. 난 오랜 세월 동안 지금과 같은 상황을 기다려 왔습니다.”

플루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보이지 않는 관중을 향하듯 두 팔을 벌렸다.

“죽음으로부터 부활해 남부 대륙을 장악 중인 버서커 카르타고. 그에 맞서 연합군을 일으킨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 용계와 요툰헤임의 세계가 간섭을 시작한 북부 제국. 그 인과로 발생한 용기사. 요툰의 힘을 지닌 야만인들…….”

플루토의 사시안이 광기로 번들댔다.

“어떻습니까 아틸라.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 세계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습니다!”

밤하늘을 향해 외치던 플루토의 얼굴이 아틸라를 내려 봤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두 눈은 아틸라를 보고 있지 않았다.

아틸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저것 때문인가. 심안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아틸라는 플루토가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심안의 권능을 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지금 플루토가 오롯이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상대는 아틸라뿐이었는데도.

‘아니야. 놈의 사시안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심안은 반드시 서로의 눈을 마주 봐야만 발현되는 권능이 아니야.’

아틸라는 플루토에게 심안이 통하지 않는 것에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것은 플루토가 둥지로 변모시킨 이 공간과, 플루토의 음성이 기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말을 빙빙 돌리지 마라. 난 네가 남부 대륙의 상황을 내게 전달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아틸라. 당신은 예기치 못한 변수입니다.”

“변수라고?”

“그렇습니다. ‘그’의 예정대로라면 당신은 아직 북부에 등장해서는 안 되는 인물. 그래서 ‘그’는 당신을 다시 남부로 돌려보내고 싶어 하고 있죠. 그래서 내가 나선 것입니다.”

‘그’라고?

아틸라는 플루토의 말에서, 플루토와 뜻을 함께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라면 누구를 말하는 건가.”

“그에겐 여러 이름이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의 이름을 굳이 말씀드리자면.”

플루토의 입꼬리가 귀 끝까지 찢어졌다.

“무가치(無價値).”

“무가치?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을 말하는 건가.”

플루토는 의미를 특정할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언뜻 행복한 미소를 가장한 그 웃음 속엔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갖가지 감정이 뒤섞여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중심에 군림하는 단 하나의 감정.

‘유희(遊戲).’

흡사 광대 같군, 아틸라는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자 플루토의 길게 찢긴 붉은 입술과 구불구불한 긴 머리, 한껏 격식을 차렸지만 장난스럽게 보이는 의복과 괴기스러운 사시안이 그를 더욱 광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무가치의 바람대로 난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물론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발현한 ‘배리어(Barrier)’가 나의 관조를 가로막았죠. 그렇지만 내겐 최근 얻은 특별한 힘이 있었고, 그 힘을 통해 제한적으로 당신을 관조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또한 당신을 시험에 빠뜨려 볼 수도 있었죠.”

“시험?”

“난 무가치가 당신에게 보이는 관심의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최강의 관조자라 불리던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아닌, 한낱 남부의 야만인에 불과한 당신에게 보이는 ‘특별한 관심’이 말이지요.”

아틸라는 생각했다.

플루토가 말하는 ‘무가치’가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이 맞는다면.

‘벨리알은 남부 대륙과 북부 대륙의 대격변, 양쪽에서 마수를 드리우고 있다.’

벨리알은 카르타고에게 ‘벨리알의 눈’을 주었다.

벨리알의 힘을 통해 카르타고는 생전보다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남부 대륙을 송두리째 장악하려 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벨리알은 북부 대륙에서마저 혼돈을 준비한다는 건가.’

그 이유에 대해 아틸라는 아는 것이 없었다.

왜일까.

왜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은 크리엘도라 대륙에 혼돈을 불러일으키려는 걸까.

그리고 왜 신들은 그런 벨리알의 행동을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당신을 시험한 뒤, 난 깨달았습니다. 검은늑대의 아틸라. 당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플루토는 먼저 울딘과 발더를 보내 아틸라의 힘을 시험해 봤다.

울딘과 발더는 아틸라의 손에 죽었다.

이후 아틸라는 케렌시아 남서쪽의 숲으로 진입해 요툰의 집합체를 쓰러뜨리고, 요툰헤임으로 통하는 통로를 파괴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틸라는 비욘과 시거드, 그리고 시카리오 암살단마저 격퇴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덕에 난, 이렇게 당신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말대로 플루토는 북부인과 시카리오 암살단의 목숨을 제물 삼아 이곳에 둥지를 만들었다.

산 제물의 피를 흡혈해 둥지를 일구어 내는 이 강력하고도 음습한 능력은 무가치에게서 선물 받았다.

아틸라에게 강한 흥미를 느낀 플루토가, 바토리의 시선을 피해 이렇게 아틸라와 독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넌 내게 남부 대륙의 상황을 알린다는 목적이 있었다. 굳이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만약 내가 무작정 당신을 찾아왔다면,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토리가?”

“바토리 에르제베트는 날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오랜 친우이자 나의 파트너인 레비아의 바람을 이뤄 주기 위해서죠.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레비아는 인간의 삶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하나. 파트너인 날 ‘구슬’로 만드는 것이지요.”

플루토의 눈동자가 진한 흥미를 머금었다.

“당신이 리베르에게 그리했던 것처럼. 그래서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네가 말한 남부 대륙의 상황을 사실이라 단정할 수 없다. 무가치가 정말로 날 남부로 되돌려 보내고 싶어 한다면, 네가 적당히 거짓을 말하는 방법도 있을 테니까.”

“믿고 말고는 당신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난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거짓을 말하는 순간 나의 유희는 의미를 잃고 마니까요.”

“게다가 난 남부로 돌아갈 마땅한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애초에 북부로 올라오게 된 이유도 남부로 되돌아갈 수 없어서였지.”

“물론 몬스터들의 땅, 수해는 위험합니다. 그 위대하신 신들마저도 수해의 깊은 어둠 속은 완전히 헤아리지 못하고 있죠. 그러나 당신이 남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실제로 그 방법을 통해 제국의 용기사들은 강철바위 드워프족의 대장장이들을 납치하는 것에 성공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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