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5. 숲속의 전투 (3)
뭐라고?
아틸라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이제야 알겠군. 네놈이 울딘을 죽인 이유를 말이야.”
“길게 이야기할 것 없다. 녀석을 해치우고 일단 부족으로 돌아간다. 이번 기회에 검은늑대 부족 놈들을 모조리 쓸어 버려야 해.”
비욘과 시거드가 아틸라에게 달려들었다.
“이미르시여!”
파지짓……! 비욘과 시거드의 도끼에 재차 뇌전의 힘이 깃들었다.
아틸라는 검과 방패로 그들의 공격을 막았다.
기회를 노려 반격했다.
그러자 비욘과 시거드도 방패를 꺼내 아틸라의 공격을 막았다.
“이것으로 검은늑대 부족이 변절자라는 게 밝혀졌다!”
“요호호호호호!”
비욘의 외침에 시거드가 포효로 답했다.
바위처럼 묵직한 공격이 아틸라의 검과 방패를 강타했다.
확실히 두 전사는 울딘보다 강한 공격력을 갖고 있었다.
마치 두 명의 키릴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방어 태세로 전환했다.
[ 방어력이 20% 증가하고, 공격력이 20% 감소합니다. ]
공격력은 저하됐다.
그러나 20퍼센트 향상된 방어력이 두 전사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았다.
[ 모든 마법과 독,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
10퍼센트 상승한 마법 저항력이 요툰의 힘을 상쇄시켰다.
물론 아틸라는 도롱뇽의 저항 오러도 켜 둔 상태였다.
[ 바람 저항의 오러 ]
[ 바람 마법에 대한 저항력이 30% 상승합니다. ]
그동안의 레벨업으로 도롱뇽의 오러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사용 반경도 20미터에서 30미터로 늘었다.
두 요툰전사가 사용하는 전격의 힘은 바람 속성에 포함되기 때문에, 도롱뇽의 오러는 아틸라에게 상당한 도움이 됐다.
비욘과 시거드도 그것을 느꼈다.
‘이미르의 힘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
‘이상하군. 놈의 방어력이 갑자기 상승한 것 같은데.’
그들은 마음속으로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팽팽한 공방이 이어지던 어느 순간 아틸라가 시거드를 몰아쳤다.
“이제서야 공격다운 공격을 시작하는 건가! 변절자!”
시거드는 방패를 들어 막았다.
그러나 아틸라의 힘은 직전보다 비약적으로 강해져 있었다.
그 갑작스러운 변화에 시거드는 크게 놀랐다.
‘뭐지? 갑자기 다른 사람이라도 된 건가?’
이유는 있었다.
[ 전사의 외침 ]
[ 모든 파티원의 근력과 체력이 10% 상승합니다. ]
아틸라는 전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전사의 외침을 숨겼다.
그는 자신이 지닌 모든 힘을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아틸라는 전사의 외침을 시전하기 직전, 검투 태세로 돌아섰다.
즉 시거드가 감지한 아틸라의 공격력은 순간적으로 30퍼센트 가까이나 상승해 있었다.
‘빌어먹을……! 힘을 숨겨 두고 있던 건가!’
그것만이 아니었다.
[ 발 구르기 ]
쿠웅! 아틸라의 오른발이 세차게 지면을 밟았다.
비욘과 시거드는 강하고 노련한 전사였지만 지면으로부터 올라오는 진동마저 방어할 순 없었다.
“크윽……!”
“이건 무슨……!”
비욘과 시거드가 발 구르기에 적중당했다.
[ 진동에 노출된 대상은 일정 시간 평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민첩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
이번의 공격으로 아틸라는 두 요툰전사가 키릴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걸 알았다.
키릴이라면 지금의 공격을 충분히 피했을 것이다.
실제로 키릴은 아틸라와 처음 조우했을 때, 발 구르기 스킬을 회피했었다.
그때의 대결을 떠올리며 아틸라는 웃었다.
그의 흑철검이 시거드의 가슴을 향해 매서운 기세로 쏘아졌다.
“건방진!”
시거드가 아틸라의 공격을 도끼로 튕겨 냈다.
그러나 완전하진 못했고, 흑철검은 시거드의 목에 자상을 남기며 지나갔다.
그 순간 비욘은 아틸라의 공격에서 허점을 발견했다.
시거드를 향해 너무도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아틸라는 수비에 구멍이 뚫렸고, 비욘은 그것을 알아봤다.
‘하지만 왜.’
비욘은 의심했다.
지금까지 아틸라는 안정적인 전투를 이어 갔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나 빈틈을 드러내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함정이다.’
비욘은 원래 공격하려던 경로를 포기하고 다른 공격 루트를 찾았다.
그대로 공격했다면 분명 아틸라의 머리를 쪼갤 수 있었을 테지만.
본능적으로 찾아든 불길함이 그것을 막았다.
‘역시 한 번엔 넘어오지 않는 건가.’
흑철방패로 비욘의 공격을 차단하며 아틸라는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예상한 일이었다.
아틸라는 더욱 맹렬하게 시거드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확인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바토리였다.
‘바토리는 슬슬 한계로군.’
인간의 몸이 된 바토리는 마법 사용의 지속성이 떨어진다.
오토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연신 숨을 헐떡이며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살수였고, 살아남은 야만인은 거의 없었다.
아틸라는 펀치에게 거대화를 시전해 바토리의 보호를 맡겼다.
마지막으로 카스피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살수 하나를 상대 중이었다.
‘살수들의 우두머리인가.’
한눈에 봐도 그 살수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았다.
하싸씬의 마스터급, 혹은 그 이상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틸라는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의 카스피는 초특급 경지를 코앞에 둔 살수였으니까.
“한눈을 파는 건가! 검은늑대의 아틸라!”
분노한 시거드가 도끼를 뻗었다.
아틸라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섬광처럼 흑철검을 마주 뻗었다.
‘놈은 발 구르기의 영향으로 민첩 능력이 저하됐다.’
아틸라는 시거드의 도끼가 닿기 전에 먼저 찌를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비욘이 미끼를 물지 않긴 했지만, 이대로 시거드를 제압한 후 비욘을 상대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비욘도 아틸라를 적당히 공격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시거드의 목이 날아간다.’
비욘은 불안감 속에서도 아틸라의 빈틈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회수가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다.
그것을 아틸라가 감지했다.
그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 위치 교환 ]
아틸라와 시거드의 위치가 바뀌었다.
시거드는 눈앞의 아틸라를 제외한 풍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을 봤고, 비욘의 도끼질에 목이 날아갔다.
카앙!
이어 비욘의 도끼와 흑철검이 부닥쳤다.
아틸라 역시 시거드의 목을 노리며 검을 뻗었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게 무슨!”
자신이 시거드의 목을 날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비욘이 얼빠진 얼굴로 외쳤다.
그 찰나를 노려 몸을 회전시킨 아틸라가 비욘에게 검을 뻗었다.
그러나 비욘은 그 와중에도 아틸라의 공격을 막았다.
비욘이 울딘과 시거드를 능가하는 전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가! 검은늑대의 아틸라!”
비욘의 눈은 혼돈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지금껏 아틸라 같은 전사를 상대한 일이 없었다.
아틸라는 그의 머릿속에 혼돈이 머무는 동안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전했다.
[ 도약(跳躍) ]
휘둘러진 비욘의 도끼를 피하듯 아틸라의 두 발이 지면을 밟고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아틸라는 비욘의 머리 위로 타점을 특정했다.
상황을 깨달은 비욘이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아틸라의 몸에서 발산된 가공할 충격파를 온몸으로 맞았다.
콰아아앙!
비욘의 몸이 지면을 뚫고 처박혔다.
그 와중에도 비욘은 아틸라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러나 아틸라의 손짓 한 번에 오른팔이 절단됐고, 도끼와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크으윽……! 네놈……! 검은늑대의 아틸라……!”
아틸라는 널브러진 비욘의 목에 흑철검을 겨눴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위치 교환 스킬이 아주 쓸 만하군.’
처음 위치 교환 스킬을 얻었을 때 아틸라는 고개를 갸웃했었다.
별달리 쓸모가 없는 스킬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스킬은 카르타고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빛을 발했다.
칼날 산맥에서 샤를과 함께 언데드 예티를 쓰러뜨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원념의 괴물, 그리고 울딘과 발더를 상대할 때도 위치 교환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검은늑대 부족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라.”
아틸라의 물음에 비욘이 되물었다.
“네놈이 검은늑대 부족이면서…… 뭘 묻겠다는 건가……!”
“네 말대로 난 검은늑대의 아틸라다. 하지만 네가 아는 검은늑대 부족과는 다른 것 같거든.”
“……뭐라고?”
비욘의 눈빛이 의구심으로 흔들렸다.
비욘이 깊은 눈을 뜨며 아틸라를 노려봤다.
그 순간 아틸라의 안광이 번득였다.
그는 비욘에게 심안을 발현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시 묻겠다. 검은늑대 부족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라.”
* * *
아틸라가 시거드와 비욘을 쓰러뜨리기 얼마 전.
카스피는 우두머리 살수를 상대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대단한 실력자였다.
또한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송곳을 닮은 암기를 사용했다.
전신갑주의 전사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무기로 보였다.
‘전사를 상대하는 일이 많은 자들인가? 그렇다면 제국의 기사와?’
카스피는 귀수 대신 단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귀수는 상당한 양의 귀기를 필요로 한다.
마법사가 마법을 운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카스피는 영구적으로 귀수의 힘을 발현할 수 없었다.
“그 괴상한 힘은 지속성이 떨어지는 모양이군.”
우두머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수 분 전까지 그는 숲속에 은닉해 타깃의 실력을 주시하고 있었다.
‘신기한 힘을 사용하는 살수다. 마치 마법 같군.’
부하들이 쉼 없이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를 엿보는 것이야말로 부하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마법과 비슷한 구동 원리를 가진다면, 저 힘엔 지속 시간이 존재할 테지.’
우두머리의 판단은 옳았다.
머지않아 타깃의 오른손에서 무기가 사라졌다.
온몸에서 타오르던 붉은 기운도 점점 약해졌다.
‘지금이다.’
우두머리가 타깃을 기습했다.
그러나 타깃은 어떻게 알았는지 그 공격을 회피했다.
‘저 붉은 눈에도 무언가의 힘이 탑재된 모양이군.’
그러나 상관없었다.
우두머리는 카스피의 실력을 확인했고, 분석을 마쳤다.
피핏! 핏!
송곳을 닮은 날붙이가 카스피를 공격했다.
카스피는 마주 단검을 뻗어 그것을 막았다.
“뭐야. 쥐새끼처럼 숨어서 날 훔쳐보고 있던 모양이지?”
“살수의 기본을 지켰을 뿐.”
카스피는 우두머리가 자신이 사용했던 모든 기술을 확인했고, 대처 방법을 찾았으리라 예상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카스피는 이번 전투에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기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안을 해제했다.
확실한 마무리 일격을 위해서라도, 얼마 남지 않은 귀기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귀안의 힘이 사라지자마자 우두머리가 맹공을 펼쳤다.
우두머리는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
카스피의 팔과 어깨에서 핏물이 터졌다.
‘엄청난 공격. 하지만 이 정도가 딱 좋아.’
어느새 카스피의 몸에선 상당량의 피가 흘렀다.
확실히 귀살의 힘 없이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카스피는 우두머리의 눈을 노려봤다.
이 순간에도 우두머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지 않았다.
‘아직은 안 돼. 조금 더. 조금 더 버텨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