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숲속의 전투 (1)
아틸라는 전속력으로 말을 달렸다.
그의 옆을 바짝 따라붙으며 오토가 외쳤다.
“아틸라 님! 갑자기 왜 그렇게 서둘러 말을 달리는 거요!”
시작은 바토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아틸라는 도시를 벗어날 무렵, 자신을 향한 강한 살기를 느꼈다.
“바토리.”
“흐응. 역시 너도 느낀 것이더냐.”
바토리도 그것을 감지했다.
게다가 바토리는 그들에게서 익숙한 기운을 포착했다.
오토를 돌아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수상한 녀석들이 뒤를 추격하고 있다.”
“엥? 그, 그랬수?”
아틸라는 추격자들이 겁나서 도주하는 게 아니다.
다만 도시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
게다가 상대가 생각보다 강할 경우, 이쪽의 힘을 제대로 드러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아틸라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바토리처럼, 추격자에게서 낯익은 기운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에단과 아벨에게 그 모습을 보여선 곤란하지.’
과연 머지않아 뒤쪽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오토가 소리쳤다.
“힉! 저, 정말이우! 웬 놈들이 쫓아오고 있소!”
카스피가 귀안을 뜨며 뒤를 노려봤다.
그녀의 귀안은 언젠가부터 시력도 상승시켰다.
부옇게 이는 흙먼지 속에서 카스피는 상대의 머릿수를 헤아렸다.
“대략 열다섯 명 정도야. 흙먼지와 투구 때문에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아무래도 북부 야만인 같아.”
“으힉!”
오토가 비명을 질렀다.
지난번 만났던 울딘의 무시무시한 힘이 떠오른 것이다.
카스피의 말이 아틸라와 바토리의 가정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놈들은 울딘과 같은 북부 야만인이었다.
“역시 그랬군. 그런데 놈들이 왜 우릴 추격하는 거지?”
아틸라의 말에 바토리가 답했다.
“그야 뻔하지 않느냐. 우리가 울딘을 죽였다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어떻게 알고.”
아틸라 일행이 울딘을 포함한 북부 야만인들을 죽였을 때, 그것을 본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일행은 케렌시아의 남서쪽 숲에서 요툰을 제거한 후, 케렌시아 근처로 공간 이동했다.
일행이 울딘을 제거했다는 걸 의심받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능성이라면 한 가지가 있지 않느냐.”
바토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틸라도 웃었다.
“그래. ‘플루토’ 말이로군.”
애초부터 레비아에게 남서쪽 요툰의 숲에 대해 알린 건 플루토다.
그래서 레비아는 제국에 지원을 요청했고, 그녀의 청을 받아들인 제국이 요툰을 제거하기 위해 용기사를 파견했다.
그런 용기사를 울딘 패거리는 기다렸다는 듯 살해했다.
즉 울딘은 용기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플루토는 처음부터 레비아에게만 요툰에 대한 것을 알린 게 아니었군.”
분명 플루토는 울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래서 울딘은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었고, 큰 피해 없이 용기사를 살해할 수 있었을 거다.
‘미리 예상하지 못했군.’
그것엔 이유가 있었다.
레비아와 플루토는 아틸라가 알고 있는 관조자가 아니다.
그들의 성향을 모르는 이상, 앞날을 예측하는 것엔 상당한 제약이 따른다.
바토리가 말했다.
“어쩌면 플루토가 말했던 카잔 군주령의 재밌는 일이란, 우릴 유인하기 위한 미끼일지도 모르겠구나.”
아틸라의 생각도 같았다.
현재 일행의 뒤를 쫓는 북부 야만인들은 멀리서 봐도 확연한 살기를 머금고 있다.
아틸라 일행이 울딘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
당연히 그 사실을 알린 건 플루토일 테고.
‘하지만 어떻게.’
바토리는 인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마법사다.
파우스트의 모든 관조자들에게도 그랬듯, 바토리는 관조자의 ‘관조 행위’를 막을 수 있다.
그런데 플루토는 아틸라 일행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플루토라는 관조자에겐 바토리의 마력을 무시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는 건가.’
가능성 높은 추측은 아니다.
단순히 플루토는 심증과 예측만으로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플루토에게 그런 힘이 있다면 바토리도 알고 있을 테고, 아틸라에게 말해 줬을 가능성이 크다.
“레비아가 관련된 일은 아닐 것이다.”
바토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레비아를 염려했다.
그러나 바토리의 염려와 달리 아틸라는 레비아를 의심하지 않았다.
아틸라는 심안을 통해 레비아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레비아는 이번 일과 관련이 없다.
플루토의 독단으로 벌어진 일이다.
“알고 있으니 걱정 마라.”
아틸라는 최고 속도로 말을 달렸다.
그러나 두 명씩 올라탄 일행의 말은 속도가 느렸다.
반면 북부 야만인들의 말은 상당히 빨랐고, 그렇게 간격은 점점 좁혀졌다.
그러던 중 아틸라의 눈에 무언가 포착됐다.
“저기가 좋겠군.”
아틸라는 저만치 숲을 바라봤다.
어차피 아틸라는 놈들을 처리할 생각이다.
가급적 이스마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벌이고 싶었을 뿐.
마침 시야를 가려 줄 수 있는 숲을 만났다.
아틸라는 지체 없이 말을 달려 숲으로 진입했다.
그 순간 바토리의 손에서 마법이 펼쳐졌다.
퍼어어엉!
마법에 직격 당한 인간의 그림자가 뒤로 날아갔다.
그와 동시에 아틸라는 흑철검을 뽑았다.
쇄도하는 날붙이를 막아 내고, 반격했다.
“크허억……!”
흑철검에 가슴을 관통 당한 상대가 비명을 뱉으며 지면을 굴렀다.
오토와 카스피도 습격자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이, 이놈들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거요!”
“닥치고 앞이나 봐! 영주 나리!”
“뭐, 뭐가 이렇게 빨라! 잘 보이지도 않소!”
카스피는 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적은 등 뒤를 쫓아오는 야만인 무리가 전부가 아니었다.
‘놈들은 우리가 숲으로 진입할 걸 알고 있었어. 철저한 계획 하에 움직이는 거야.’
한 무리는 숲에 잠복하고, 다른 무리가 요란하게 뒤를 쫓는다.
당연히 일행의 주의는 뒤쪽의 야만인들에게 쏠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틸라 일행이 이런 기습을 허용할 정도로 무르진 않다.
‘숲으로 진입하기 직전까지 습격자의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어.’
이유는 하나였다.
‘살수!’
파카앙!
카스피의 단검이 상대의 무기와 부닥쳤다.
오토의 말대로 습격자들의 움직임은 매우 빨랐다.
사방에서 흐릿한 잔상이 일었다.
그러나 카스피는 평범한 안력을 지닌 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안구가 다시금 붉게 물들었다.
파캉! 팡! 콰드득!
그림처럼 휘둘린 카스피의 단검이 상대의 무기를 튕겨 내고, 목에 꽂혔다.
바람 빠지는 신음을 뱉으며 습격자가 바닥에 떨어졌다.
“영주 나리는 방어에 집중해! 놈들은 내가 처리하겠어!”
저만치 앞의 아틸라를 보며 카스피가 외쳤다.
아틸라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보아 이대로 숲을 통과할 생각이 분명했다.
‘아니,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아.’
아틸라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습격자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카스피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아틸라의 흑철검이 전보다 길어진 것 같았다.
카스피는 그 광경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그때와 같아. 샹크리스 왕국의 토너먼트 때.’
카스피의 생각은 맞았다.
지금 아틸라의 흑철검은 한층 긴 사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아틸라의 특별한 스킬, ‘기마 태세’ 때문이다.
[ 기마 태세 ]
[ 주무기의 공격 사거리가 10% 증가합니다. ]
[ 주무기로 검이나 창을 들었을 때, 공격 사거리가 5% 추가 증가합니다. ]
[ 군마의 이동 속도가 5% 증가합니다. ]
[ 기마 상태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
현재 아틸라는 주무기로 흑철검을 들었고, 그래서 도합 15퍼센트의 사거리 증가 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아틸라의 말이 빨라진 것 같다고 느낀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의 군마는 이동 속도가 5퍼센트 증가했다.
그 때문에 카스피와는 조금씩이지만 계속해서 거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잇! 굼벵이 영주 나리! 어서 달려! 달리라고!”
“지금 최선을 다해 다리고 있는 거요!”
“근데 왜 아틸라 말이 더 빠르냐고! 아틸라가 영주 나리보다 몸은 훨씬 더 무거울 텐데!”
“그, 그거야 당연하지 않소! 살쾡이 암살자가 바토리 아가씨보다 몸이 무겁기 때문…… 케헤에에엑!”
오토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카스피가 죽일 듯한 기세로 오토의 목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하, 하, 한 마디만 더해 봐! 그 나불대는 혀를 잘라 버릴 거야!”
“히이이익!”
카스피는 다급한 전투 와중에도 바토리의 몸매를 떠올렸다.
바토리와는 여관에 들를 때마다 함께 목욕하는 사이였기에, 그녀의 날씬한 몸매는 익히 알고 있었다.
카스피는 한 손으로만 단검을 들어 습격자를 상대했다.
나머지 손으론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바토리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나름 한 몸매 하는데.’
카스피는 제 몸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카스피는 아주 탄력적이고 건강한 몸을 가졌다.
허겁지겁 말을 달리며 방패를 휘두르는 오토를 보며 비죽 입술을 내밀었다.
‘뭐야 영주 나리.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야?’
그러나 잠시 후 카스피는 다시 양손으로 단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살수들의 움직임은 대단했다.
물론 카스피의 실력이 우위에 있긴 했지만 상대는 숫자가 많았고, 또 달리는 말 위에서 카스피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다.
다행히 아틸라는 오토와 카스피가 뒤처졌다는 것을 알고 속도를 줄였다.
카스피가 소리쳤다.
“거봐 영주 나리! 내가 무거운 게 아니라니까!”
“지, 지금 그런 이야기나 할 때요!”
“뭐, 뭐야? 내가 말하지 말랬지! 혀를 뽑아 버리겠어!”
“아니 먼저 말을 시켜 놓고!”
그렇게 외치던 오토의 눈이 부릅떠졌다.
오토의 방패가 등 뒤의 카스피를 보호하듯 펼쳐졌다.
그 위로 여러 발의 화살이 박혔다.
어느새 야만인들이 화살을 조준사격할 수 있을 정도로 근접한 것이다.
“크헉……!”
오토의 입에서 핏물이 흘렀다.
그는 카스피를 보호하기 위해 전방의 경계를 소홀히 했고, 그 틈을 노려 살수의 무기가 목을 찔렀다.
플레이트 아머의 작은 틈새를 노린 매서운 일격이었다.
살수의 무기가 마치 송곳처럼 얇고 뾰족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여, 영주 나리!”
오토는 오른손의 강철검으로 살수를 뿌리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후방으로 뻗은 방패를 회수하지 않고 버텼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카스피를 더욱 염려했다.
카스피의 눈에 핏발이 돋았다.
그녀의 몸에서 강력한 귀기가 타올랐다.
본래 귀살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힘.
카스피는 동료를 지키려 귀살을 발휘할 때마다 더욱 강해진 면모를 드러냈다.
“감히……!”
카스피는 알고 있었다.
아틸라가 전면전을 피해 일단 숲을 벗어나는 쪽을 택했다는 것을.
그러나 카스피는 그것을 무시했다.
말의 엉덩이를 밟으며 나비처럼 뛰어올랐다.
“다 죽여 버리겠어!”
카스피는 아틸라의 무언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녀가 전투 중 아틸라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 정도로 카스피는 오토의 부상에 강한 분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