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79화 (279/425)

279. 테라루스 일족 (1)

‘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후미에서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는 건 오토와 카스피뿐이었다.

무언갈 느낀 에단이 드레이크를 몰아 둘에게 달려갔다.

“아틸라와 바토리는 어딜 간 건가.”

에레트리아 토박이와 비슷한 억양을 쓰며 오토가 답했다.

“뒤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확인하러 갔수.”

아틸라가 미리 주지시킨 대답이었다.

에단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오토를 봤다.

그 시선을 오토가 피했다.

에단은 오토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용기사가 된 후 에단은 이전보다 감각이 발달했다.

웬만한 거짓말은 한눈에 알아본다.

게다가 오토는 거짓말이 서툰 사내였다.

“두 사람을 찾으러 간다.”

에단이 말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아틸라가 움직인 방향으로 이동하면 자이언트 리자드를 추가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일리 있는 말이었기에 아벨은 그 뜻에 동조했다.

게다가 아벨은 아틸라가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아틸라는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전사지만, 다수의 자이언트 리자드는 위험하다.’

게다가 함께 움직인 동료는 아직까지 아무런 힘을 확인하지 못한 바토리.

‘에다드의 말대로 바토리는 마법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닐 수도 있지.’

두 명의 용기사가 의견을 좁힌 이상 명에 불복할 기사와 병사는 없었다.

에단은 오토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대를 움직였다.

뒤통수를 긁적이는 오토에게 카스피가 놀리듯 속삭였다.

‘으이구. 하여간 거짓말도 못해 영주 나리는.’

‘저, 저 용기사 눈깔 봤소? 그 레드 드래곤의 눈깔이 생각나서 도,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소!’

카스피가 킥킥대며 다시 속삭였다.

‘그치만 뭐, 나쁘지 않아.’

에단은 아틸라를 추격했다.

지면은 단단했고 별다른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에단은 오토가 일러준 방향과 자신의 감각만을 믿으며 움직였다.

머지않아 에단은 날붙이 소리를 들었다.

‘전투 소음.’

에단은 더욱 서둘러 부대를 움직였다.

이윽고 도달한 곳엔 아틸라가 있었다.

그는 검과 방패를 들고 자이언트 리자드 한 마리와 대치 중이었다.

“아, 아틸라가 위험해!”

카스피가 요란하게 외치며 단검을 뽑았다.

오토도 괴성을 지르며 아틸라에게 말을 달렸다.

바토리는 근처 나무 아래서 겁에 질린 얼굴로 펀치를 안고 있었다.

저만치 바닥에 아틸라에게 당한 것으로 보이는 자이언트 리자드 두 마리가 시체가 되어 쓰러진 모습이 보였다.

“네 이놈드으으을!”

오토가 말에서 뛰어내리며 자이언트 리자드를 공격했다.

카스피도 단검으로 두 전사를 도왔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사슬낫을 쓰지 않았다.

지난번 세베스티아와 조우했을 때, 오토를 구하기 위해 사슬낫을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금세 끝났다.

에단과 아벨이 도울 틈도 없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자이언트 리자드는 이미 죽어 가고 있었다.

쿠웅.

자이언트 리자드가 쓰러지자 바토리가 달려와 아틸라를 안았다.

잔뜩 겁에 질린 얼굴에서 안도한 표정으로 바뀐 그녀를 에단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바토리의 표정은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동안 잘못 본 것인가.’

그럼에도 에단은 아틸라 일행에게서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다만 에단의 관심은 이제 바토리보다 아틸라 쪽으로 넘어갔다.

‘혼자서 자이언트 리자드 세 마리를 처치한 건가.’

자이언트 리자드는 강하다.

물론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 아니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의 용기사인 에단으로서는 어려운 상대가 아니지만.

일반적인 전사의 입장에선 다르다.

‘저 정도의 실력을 지닌 전사는 결코 흔치 않다.’

당장 어느 왕국으로 가도 손꼽히는 강자로 군림할 수 있는 사내.

그제서야 에단은 왜 그토록 아벨이 아틸라의 무력을 칭찬했었는지 알게 되었다.

‘황궁 기사단만큼은 아니지만.’

황궁 기사단.

오직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만을 수호하는 제국 최강의 무력 집단.

그곳의 지휘관들은 드래곤 마스터인 에단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들이다.

“자리를 이탈해서 미안하군. 녀석들이 갑자기 기습을 하면 위험해질 것 같아서 그랬소.”

“그렇다기엔 상당히 먼 거리인데.”

“놈들이 날 여기까지 유인했지.”

에단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아틸라의 말엔 일리가 있다.

세 마리의 자이언트 리자드가 만약 일반 기사와 병사들의 뒤를 급습했다면 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아틸라를 후방에 배치시킨 이유가 그와 같은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또한 아틸라는 만약을 대비해 오토와 카스피는 전장에 남겨 두고 왔다.

아틸라를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군. 이해하오 아틸라. 그런데 정말로 무력이 대단하시군.”

에단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벨은 이전에 아틸라가 오우거를 단칼에 쓰러뜨리는 광경을 봤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일반 기사와 병사들은 아까부터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아틸라와 자이언트 리자드의 시체를 번갈아 바라봤다.

‘저, 저 야만전사가 혼자서 자이언트 리자드 세 마리를 처치했다고?’

‘미친! 저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북부 야만인은 다들 저렇게 강한 거야?’

그들이 알기로 중위종 정도 되는 용족은 용기사가 아닌 인간이 쉬이 쓰러뜨릴 수 없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선별된 기사들이 인명 피해를 감수하며 싸워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저 야만인은 홀로 세 마리의 자이언트 리자드를 쓰러뜨렸다.

막바지에 오토와 카스피가 돕긴 했지만, 그들의 도움이 없었어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었다.

“합류했으니 이동한다. 남은 자이언트 리자드를 모조리 소탕하고 복귀하겠다.”

에단이 부대를 움직였다.

처음과 달리 그는 아틸라 일행을 부대의 가장 앞쪽으로 배치했다.

보다 가까운 곳에서 아틸라를 관찰할 생각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아벨이 말했다.

“이상하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다니.”

그는 분명 며칠 전 이곳에서 상당한 수의 자이언트 리자드를 봤다.

그러나 자신들이 쓰러뜨린 숫자와 아틸라가 쓰러뜨린 숫자를 합해도 한참은 부족했다.

‘설마 아틸라가 쓰러뜨린 게 놈들만이 아닌 건가?’

수해 외곽부 최강의 몬스터 중 하나인 오우거를 눈 깜짝할 사이에 썰어 버린 전사다.

아벨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흔적이 없을 리 없지. 시체도 보이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아틸라가 그 많은 자이언트 리자드를 한 입에 꿀꺽 삼키지라도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로부터 한참을 이동했다.

그러나 자이언트 리자드는 찾을 수 없었다.

주위가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만 복귀한다.”

에단은 부대를 이끌고 숲을 벗어났다.

밤의 숲은 위험하다.

에단은 물끄러미 아틸라를 봤다.

그는 아틸라 일행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용기사 일당일 가능성을 아직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이젠 또 다른 가능성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용기사 학살자.’

최근 일부 북부 야만인들의 손에서 벌어지고 있는 용기사 살해 사건.

제국에서는 그 사실을 쉬쉬하고 있었고, 그 특정 북부인들을 ‘용기사 학살자’라 명명했다.

또한 그 북부인들은 다른 야만인과는 구별되는 힘을 갖고 있었다.

‘먼 옛날 요툰들의 후손.’

세베스티아는 그렇게 말했다.

원래 제국인과 북부 야만인은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고대의 인간.’

고대인의 기원은 드래곤보다 오래됐다.

또한 고대인은 신의 피조물이 아닌, 신과 천사의 시체 속에서 태어났다.

고대인은 원래 이 세계의 주인이었던 요툰과 전쟁을 했다.

신은 고대인을 돕기 위해 드래곤을 창조했다.

그렇게 고대인과 드래곤은 요툰을 북으로 밀어내는 것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다.

고대인 중 자연의 힘을 숭배하는 ‘테라루스 일족’이 요툰의 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요툰은 본래 이 세계의 주인이었다.’

‘우리는 요툰과 더불어 살아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

테라루스 일족은 요툰과 인간의 공생을 주장했다.

그러나 나머지 고대인들은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고대인은 둘로 나뉘었다.

테라루스 일족은 요툰의 편에 서서 고대인과 싸웠다.

‘동족끼리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대야 하다니.’

‘이 무슨 잔혹한 일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전쟁에서 패했다.

요툰의 왕 이미르는 다른 차원으로 요툰헤임을 옮겼다.

수많은 요툰이 이미르와 함께 중간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중간계에 남게 된 요툰과, 마지막까지 요툰과 힘을 합쳐 싸운 테라루스 일족을 이미르는 모른 체하지 않았다.

- 테라루스 일족.

- 그대들의 호의를 잊지 않겠다.

이미르는 그들에게 어떤 강력한 권능의 씨앗을 남겨 두었다.

또한 북부의 땅에 마지막 힘을 발휘해 고대인들이 쉬이 그곳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만들었다.

테라루스 일족은 북부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부터 비옥하지 않았던 북부의 환경은 이미르의 힘이 더해지며 더욱 척박해졌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주신은 고대인의 모습을 닮은 새로운 인류를 창조했다.

그들은 고대인과 자연스레 섞여들었다.

또다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완전한 고대인의 피를 지닌 자는 사라졌다.

그러나 고대인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균열을 뚫고 등장한 용족.

용족과 페어링할 수 있는 용기사.

용기사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많든 적든, 고대인의 힘을 체내에 간직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요툰의 힘을 사용하는 북부 야만인 역시 고대인의 힘을 지닌 자들이다.

결국 먼 옛날의 요툰 전쟁처럼, 테라루스 일족의 후손과 나머지 고대인의 후손이 서로의 목에 창끝을 드리우는 상황인 것이다.

에단은 격변하는 세계를 감각했다.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용족.

다시금 중간계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요툰.

요툰의 힘을 지닌 북부 야만인까지.

‘내가 지켜 내겠다. 제국을. 이 세계를.’

그 순간 에단의 눈이 커졌다.

아틸라가 웃고 있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것은 실로 소름 끼치는 광경이었다.

에단은 고개를 흔든 뒤 다시금 아틸라의 얼굴을 살폈다.

아틸라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저 표정이었는지도 모른다.

‘피로가 쌓인 건가. 세베스티아가 없으니 체력 회복도 전만큼 빠르지 않군.’

에단은 다시 정면을 봤다.

그러자 아틸라의 입가가 희미하게 다시 위를 향했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가 웃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숲속에서 상당한 양의 자이언트 리자드를 도롱뇽에게 포식시켰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에단의 정신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것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틸라가 마지막 남은 자이언트 리자드 세 마리를 굳이 도롱뇽에게 포식시키지 않고 직접 쓰러뜨린 것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아틸라는 에단이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느꼈고, 심안을 발동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후 에단의 머릿속을 모조리 들여다봤다.

아틸라는 테라루스 일족에 대해 알게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