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 다시 만난 용기사 (2)
“괜찮겠느냐.”
바토리가 물었다.
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왔다.
아틸라는 마지막까지 에단에게 심안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에단은 바토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괜찮을 거다. 에단 트라쿠스는 우리가 그때의 4인조라는 걸 확신하지 못했을 테니.”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니니라.”
“뭐?”
바토리가 은근하게 말했다.
“그 에단이라는 드래곤 마스터가 식사하는 내내 날 음흉한 표정으로 봤느니라. 함께 용족 사냥을 떠나면 앞으로도 날 그런 눈으로 볼 터인데, 그것이 괜찮겠느냐고 물은 것이다.”
아틸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토와 카스피가 방 안을 뛰어다니며 외쳤다.
“내 이렇게 좋은 여관은 처음 보는 것 같소!”
“맞아 영주 나리! 이렇게 방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는 여관이라니. 이러면 우리 다 함께 잘 수 있는 거잖아! 아하하하!”
“하, 함께 잔다고……?”
“이상한 상상하지 마! 다, 당연히 방은 나눠서 써야지!”
카스피의 말대로 방은 하나가 아니었다.
마치 지구의 현대식 호텔처럼 거실과 방 두 개가 있는 구조.
“바토리! 우리가 이쪽 방 쓰자!”
두 개의 방을 모두 둘러본 카스피가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바토리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아틸라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다. 세베스티아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더구나.”
그 말에 아틸라가 가늘게 눈을 떴다.
아틸라도 세베스티아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그는 도롱뇽이나 바토리만큼의 감지 능력은 없었기에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토리도 느끼지 못했다면.’
무언갈 생각하던 아틸라가 펀치를 불렀다.
펀치의 인벤토리에서 도롱뇽을 꺼냈다.
“켁! 잘 자고 있었는데 왜 꺼내!”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세베스티아의 기척이 감지되는지 물었다.
이것은 다소 위험한 수였다.
만약 세베스티아가 근처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다면.
‘도롱뇽의 기운을 감지할 테지.’
그러나 아무리 세베스티아가 기척을 숨겨도 바토리의 감지 능력을 피하긴 어렵다.
그래서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아틸라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확실히 확인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에단이 드래곤 감지력을 지녔다면 말짱 도루묵이지만.’
그러나 아틸라는 그 가능성을 낮게 내다봤다.
오늘 아틸라가 마주한 에단은 이전에 봤을 때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물론 전투 상황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틸라는 세베스티아의 부재가 에단의 전반적인 능력을 이전보다 떨어뜨린 것이 아닌가 하는 가정을 했다.
“갑자기 그 성질머리 더러운 드래곤 새끼는 왜……! 아, 알았어! 알았다고! 지금 냄새 맡고 있잖아!”
정신 교육의 전조가 느껴지자마자 도롱뇽은 열심히 콧구멍을 발름댔다.
잠시 후 도롱뇽이 말했다.
“없다.”
“없다고?”
“그래 이 야만 미물 새끼야.”
도롱뇽은 결국 정신 교육을 당했다.
“꾸에에엑……!”
아틸라는 확신했다.
에단은, 혹은 세베스티아와 함께하지 않는 지금의 에단은 도롱뇽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녀석이 기척을 느꼈다면 이렇게 무반응일 리가 없지.’
에단과 아벨의 방은 여기서 가깝다.
도롱뇽의 기운을 느꼈다면 에단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아틸라가 일행에게 말했다.
“에단도, 아벨도 도롱뇽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군.”
“에단은 몰라도 아벨은 원래부터 도롱뇽을 감지하지 못했단다.”
“뭐라고?”
바토리는 알고 있었다.
일행이 아벨을 처음 만났을 때, 바토리는 펀치에게 몰래 부탁해 도롱뇽을 인벤토리에서 꺼냈었다.
그러고는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회복력을 추출해, 아벨의 드레이크 ‘세로스’에게 주입했다.
성체가 된 상태가 아니어도 도롱뇽의 회복 능력은 상당했고, 또 상대가 드래곤에 가장 가까운 용족인 드레이크였기에 세로스는 놀라운 속도로 몸을 회복했다.
그런 이유로 그때의 세로스는 아틸라 일행을 군말 없이 등에 태웠다.
도롱뇽의 힘에 고마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도롱뇽은 세로스에게 단단히 입막음도 시켰다.
‘이 날개 없는 돼지 도마뱀 새끼야. 이몸의 정체를 까발리는 날엔 그 비곗살을 모두 짜낸 뒤 브레스로 지글지글 태워 주지. 카아앗!’
바토리는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아틸라에게 설명했다.
또한 도롱뇽의 힘으로 세로스를 치유하기 전까지, 세로스는 도롱뇽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말도 했다.
아틸라가 다소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그걸 왜 이제 말하는데.”
“안 물어봤지 않느냐.”
바토리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틸라는 작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의문을 느꼈다.
‘세베스티아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해답은 의외로 도롱뇽의 입에서 나왔다.
“빌어먹을 똬리를 틀러 간 성질머리 더러운 드래곤 새끼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다니……!”
“똬리?”
“지난번에 이몸의 멋진 브레스로 놈의 날개 한쪽을 뚫어 버렸잖아! 녀석은 그걸 회복하러 갔을 거다.”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지난번에 도롱뇽이 시전했던 독특한 브레스.
아마도 그것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이다.
“이몸의 마력을 하나의 극점으로 집중시킨 ‘초 레어 송곳 브레스’다. 아무리 드래곤 새끼라도 그리 쉽게 회복할리 없지. 게다가 레드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에 비해 날개가 약하거든.”
“도롱뇽아. 너의 그 ‘초 레어 송곳 브레스’는 내 도움이 있었기에 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단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건 내가 쏜 거라고! 내가 적은 힘으로도 야만 미물 새끼를 즉사시키기 위……, 아니! 아무튼 내가 계속 궁리하고 고심한 필살기란 말이다!”
“이런 미친 도롱뇽 새끼. 날 죽이려고 그 브레스를 만들고 있었다고?”
“힉! 마, 말이 헛나왔다! 지, 진짜 헛나온 거라니까…… 꾸에에에에엑!”
도롱뇽은 지금껏 경험한 중 가장 강한 정신 교육을 당했다.
혀를 빼물고 기절한 도롱뇽의 뱃가죽을 펀치가 날름날름 핥았다.
* * *
이튿날.
에단과 아벨,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와 병사들이 여관을 벗어났다.
두 용기사는 각자의 무익종 드레이크를 타고 이동했다.
기사와 병사들은 군마를 타고 움직였다.
가장 후미엔 아틸라 일행이 있었다.
하나의 말에 두 사람씩 함께 탄 일행을 보며 기사와 병사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떴다.
“왜 말을 함께 타는 거요?”
아틸라는 이렇게 하는 편이 손발을 맞추기 쉽다며 대충 둘러댔다.
말도 안 되는 답변이었지만, 의외로 그들은 진지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와 병사들은 생각했다.
‘북부 야만인들의 땅엔 말이 흔치 않다.’
애초에 제국인들이 북부 야만족과 처음 격돌했을 때 야만전사들은 군마를 활용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이란 길들여 타고 다니는 동물이 아닌, 양질의 고기를 제공하는 사냥감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북부 야생마는 매우 힘이 좋고 사납다고 하지.’
‘좀처럼 길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북부의 땅을 벗어나지 않는 보수적인 야만전사들은 오늘날에도 군마를 활용한 전술을 적극적으로 펼치지 못했다.
그들에게 길들여진 말이란 상당히 희소한 존재였다.
실제로도 북부의 전사들은 하나의 말에 두어 명씩 올라타 제국군에 맞서 싸웠다.
기사와 병사들도 그것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아틸라 일행이 그런 식으로 말을 운용하고 있었기에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기사와 병사들이 납득하고 있는 동안 아틸라는 생각했다.
‘그래. 아직 우릴 믿지 못하겠다는 거로군. 에단 트라쿠스.’
에단은 아틸라에게 후미 경계를 맡겼다.
이번 작전의 지휘권은 보다 경험 많은 용기사인 에단에게 넘어갔다.
아틸라는 드레이크에 올라탄 에단의 뒷모습을 보며, 이전에 아벨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페어링할 수 있는 용족은 한 번에 한 마리뿐인가.’
‘그렇소. 용기사는 하나의 용족과 페어링하면 다른 용족과는 페어링할 수 없지.’
‘이유를 알고 싶군.’
‘용인이 용족과 페어링한다는 건 상당한 정신감응력이 필요한 일이오. 게다가 용족의 자아는 인간보다 월등하지. 그래서 대부분의 용기사가 페어링한 용족의 힘을 50퍼센트도 채 발휘하지 못하는 거요.’
그러나 지금의 에단은 세베스티아 대신 무익종 드레이크를 타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에단 정도의 뛰어난 용기사는 두 마리 이상의 용족과도 페어링이 가능하다는 거군.’
아벨은 아틸라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여러 차례 심안으로 아벨의 속을 살펴본 아틸라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아벨은 제국의 용기사 중에서도 상당한 실력자.
따라서 뛰어난 용기사가 두 마리 이상의 용족과 페어링 가능하다는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비밀일 것이다.
일행은 수 시간을 이동해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근처 숲에서 위험 용족이 나타났기에 주민들은 모두 대피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목표는 ‘자이언트 리자드’다. 중하위종으로 분류되는 일반 리자드와 달리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개체이니 각별히 주의하도록.”
자이언트 리자드는 파충류라는 것을 제외하면 용족이 지닌 특성을 거의 발견할 수 없는 종이다.
전투 패턴은 오히려 트롤과 가깝다.
강한 회복력을 바탕으로, 커다란 덩치와 힘으로 밀어붙이는 타입.
그러나 보통 홀로 움직이는 트롤과 달리 자이언트 리자드는 무리 생활을 한다.
그런 면에선 오우거를 닮았다.
“자이언트 리자드를 직접적으로 상대하는 건 나와 아벨이다. 기사와 병사들은 두 용기사를 보조하는 것에 주력하도록.”
기사와 병사들이 큰 소리로 답했다.
확실히 제국의 군대는 남부보다 군의 기강이 강했다.
“아틸라의 용병 부대는 예비 전력으로서,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좋겠소.”
“그러지.”
에단은 아틸라를 예비 부대로 편성했다.
아틸라를 믿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팀의 호흡 때문이었다.
제국의 용기사와, 그들을 수호하는 기사와 병사들은 상당한 수준의 전술 훈련을 받는다.
아틸라 일행이 끼어들면 호흡에 방해가 된다.
게다가 에단의 말대로, 자이언트 리자드가 갑작스러운 후방 기습을 노릴 수도 있다.
아틸라 일행을 예비대로 편성한다면 조금이나마 대비가 가능하다.
“지금부터는 경계 태세로 이동한다.”
부대는 머지않아 숲으로 진입했다.
아틸라는 일부러 용기사 부대와 조금 더 거리를 벌렸다.
펀치의 입속에서 도롱뇽이 킁킁 콧구멍을 발름댔다.
예상대로 두 드레이크는 도롱뇽을 감지하지 못했다.
아틸라는 도롱뇽과 정신을 공유했다.
그가 이번 용족 토벌작전에 참여를 결정한 것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자이언트 리자드는 중위종의 용족.’
그리고 현재 도롱뇽의 포식 능력은.
[ 포식의 권능이 ‘20레벨’만큼 개화합니다. ]
[ 이제 동족 중에서, 중위종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도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아틸라는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