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6. 다시 만난 용기사 (1)
제국에 4인밖에 존재하지 않는 드래곤 마스터.
그중 하나이자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의 용기사인 에단 트라쿠스.
그가 저기 있었다.
‘저자가 왜 여기에.’
아틸라는 의아했다.
분명 일전에 아벨의 머릿속을 심안으로 관찰했을 때, 아벨은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그들이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정도만 알았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아벨은 에단과 독대를 하고 있던 것으로 보였고, 심지어 ‘동료’라는 표현을 썼다.
어떻게 된 일인가.
그사이 아벨과 에단이 가까워진 계기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 아틸라 님.’
오토가 속삭였다.
그 역시 에단을 알아본 듯했다.
아니, 자리의 모든 일행이 에단을 알아봤다.
아틸라는 침착을 가장하며 빠르게 생각했다.
‘에단 트라쿠스는 요툰의 숲에서 우리 얼굴을 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때의 우린 바토리의 잡기술로 외모까지 바꿨던 상태.’
펀치도 오토의 망토로 가려 뒀었다.
‘그렇다면 에단이 우릴 그때의 4인조로 판단할 가능성은 적다.’
도롱뇽을 펀치의 인벤토리 안에 넣어 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틸라는 아직 용기사와, 드래곤 마스터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은 도롱뇽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4인의 드래곤 마스터와 페어링한 네 드래곤은 분명 도롱뇽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틸라는 에단을 향해 발을 움직였다.
나머지 일행은 그대로 자리에 있으라고 눈짓했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내겐 심안이 있다.’
그것을 활용한다면, 저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 앞에서 실수할 일은 없다.
“반갑소.”
에단이 먼저 악수를 청했고, 아틸라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극한으로 단련된 전사의 손.
에단 또한 아틸라에게서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북부에서 오신 것 같군.”
그렇게 말하며 에단은 아틸라의 뒤쪽 저만치의 테이블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바토리, 오토, 카스피, 그리고 펀치를 주의 깊게 응시했다.
“내 이름은 ‘에다드’. 여기 있는 아벨과는 같은 군에 소속돼 있지.”
“아틸라. 동료 몇과 용병 일을 하고 있소.”
아틸라가 턱짓으로 일행을 가리켰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기억했다.
에단 트라쿠스가, 자신을 본명이 아닌 ‘에다드’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는 것을.
‘정체를 숨기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아벨은 에단이 드래곤 마스터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걸지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틸라는 이유를 알게 해 줄 특별한 스킬, 심안을 갖고 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심안을 성공시키려면 에단이 자신에게 충분히 집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에단이 말했다.
“언뜻 보니 동료분들은 북부 출신이 아닌 것 같소.”
“난 본래 혼자 움직이는 편이었지. 저들은 용병 일을 하던 중에 만났소. 호흡이 잘 맞아 자연스레 함께 움직이게 됐지.”
“흐음. 과연.”
에단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맹이 없는 말들과 함께 몇 순배 술이 오갔다.
에단은 아틸라에게 점점 관심을 보였다.
때가 무르익었다는 것을 직감한 아틸라는 에단에게 심안을 시전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심안이 안 통한다고?’
드래곤 마스터의 특별한 능력인가.
그러나 상태창을 확인한 아틸라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심안은 원작자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켰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저 메시지가 뜨는 이유는 하나다.
자신과 에단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것.
쉽게 말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에단이 아틸라에게 집중하고 있지 않다는 거다.
‘왜지? 겉으로는 날 보는 척하며 다른 생각을 하는 건가.’
아틸라는 에단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또한 에단이 일행을 알아봤는지, 혹은 약간의 의심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처음의 생각보다 긴 시간을 그곳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에단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다시 한번 심안을 시전했다.
결과는 전과 같았다.
[ 권능, 심안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 ]
[ 심안은 원작자의 세계와 상대의 세계가 강한 교감을 일으켰을 경우에만 발동되는 제한적 권능입니다. ]
‘빌어먹을.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라는 녀석이 저렇게까지 산만하다고?’
아틸라의 생각은 틀렸다.
에단은 산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에 상당히 집중하고 있었다.
그 대상이 아틸라가 아니었을 뿐이다.
‘저 여자.’
에단이 주시하는 건 바토리였다.
‘저 여자의 붉은 입술.’
에단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등 위에 앉아 있던 푸른 로브의 여자를 기억했다.
그리고 에단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그때 있었던 4인의 남녀 중 한 명과 페어링했다면, 푸른 로브의 여자일 것이라 단정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단의 눈에 비친 그날의 짧은 전투는, 푸른 로브의 여자가 강력한 마법을 발현해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를 막고.
그 직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뿜어낸 독특한 브레스가 세베스티아의 날개를 상처 입혔으니까.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에게 용기사가 있다면 분명 그 여자다. 그리고.’
에단은 저만치 앉은 그림처럼 아름다운 여자의 입술이, 그날 봤던 붉은 입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4인의 일행. 게다가 남자 둘에 여자 둘. 그때의 조합과 같다.’
그날, 그들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함께 요툰의 숲으로 하강한 뒤 요툰의 핵을 찾아 부쉈다.
그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단은 요툰의 숲이 소멸한 뒤 근처를 이잡듯 뒤졌다.
그러나 찾을 수 없었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와 4인의 일행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그것이 만약 저들이라면.’
걸리는 점은 있다.
외모와 복장이 다르다.
그러나 에단은 마법적인 힘으로 사물의 형상이나 색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세베스티아가 있다면 단번에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세베스티아의 후각은 뛰어나다.
저들이 그때의 4인이 맞는다면, 세베스티아는 단숨에 그것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베스티아는 지금 이곳에 없다.
‘아쉽게 됐군.’
물론 에단은 자신의 가정이 틀렸을 경우의 수를 배제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는 틀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는 알았다.
지금의 자신이 그날의 4인과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찾기 위해, 다소 침착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그럼에도 에단은 확인하기로 했다.
“당신의 동료들과도 이야기해 보고 싶군. 그래도 되겠소?”
“동료들 또한 원한다면.”
그렇게 답하긴 했지만 아틸라는 에단의 뜻대로 해 줄 생각이었다.
저 질문을 통해 아틸라는 확신했다.
‘에단 트라쿠스는 우리를 의심하고 있다.’
그렇다면 괜한 의심의 싹을 키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당당하게 대면하고, 의심의 여지를 지우는 편이 낫다.
또한 대화가 길어질수록 아틸라가 에단에게 심안을 성공시킬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것엔 시간을 들일 충분한 가치가 있다.
“물어보고 오겠소.”
그렇게 말하고 아틸라는 자리를 벗어났다.
아틸라가 떠나자마자 에단이 아벨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저 아틸라라는 사내는 어떻게 알게 된 건가.”
“뭐 대단한 일은 아니고, 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네.”
아벨은 이번에도 아틸라를 수해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는 에단에게 아틸라와 동료들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했다.
아틸라는 엄청나게 강한 북부의 전사고.
오토와 카스피는 상당히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며.
바토리는 나머지 셋과 달리, 그리 특별한 힘을 지니진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를 경청하던 에단이 바토리의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 붉은 로브의 여자는 마법사가 아닌가?”
아벨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 자신이 보지 못했을 뿐이지, 바토리가 마법사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애초부터 아틸라, 오토, 카스피의 무력을 아벨은 직접 보았다.
그렇다면 바토리 또한 무언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무릇 인간이란 끼리끼리 어울리는 법이니까.
“아틸라와 그의 동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군. 에다드.”
아벨은 에단을 자신과 같은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로 알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는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가장 강력한 창날임과 동시에, 황제의 특명을 받아 움직이는 특수한 임무를 병행한다.
에단은 자신의 수하 몇과 함께 3군단에 위장전입했다.
3군단 내에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3군단장을 포함한 극소수의 인원뿐.
잠시 후 아틸라가 바토리, 오토, 카스피와 함께 돌아왔다.
“동료들이 괜찮다는군.”
그렇게 아틸라, 바토리, 오토, 카스피, 에단, 아벨은 한자리에서 술을 마셨다.
여관의 술맛은 매우 좋았고, 안주 또한 훌륭했다.
사실 두 명의 용기사가 여관을 찾았기에 주인장이 특별히 신경을 쓴 결과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술자리는 깊어졌고, 오토와 카스피는 신이 난다며 웃고 떠들다가 둘만 아는 괴상한 노래까지 불렀다.
아벨은 그 광경을 입을 쩍 벌리며 바라봤다.
에단이 속삭였다.
‘아벨. 저 둘이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이라 말하지 않았었나.’
아틸라가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아벨.”
오토와 카스피의 극적인 변화를 멍하니 바라보던 아벨이 푸르르, 머리를 털었다.
“전에 관문도시에서 내가 말했던 것 기억나나? 북으로 움직일 일이 있다고.”
“그랬지.”
“그 북쪽이 이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호오. 이유는?”
“이유야 뭐 뻔하지. 이곳 근처에서 인간에게 위해를 가하는 용족들이 목격됐거든.”
그 말대로 아벨은 인간에게 해로운 용족 퇴치를 위해 이곳에 왔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위험 용족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고, 아벨은 3군단에 지원 요청을 했다.
3군단에선 용기사를 추가 지원할 테니 이스마라의 여관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고.
그렇게 지원을 온 것이 에단이었다.
“에다드는 나와 같은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다. 이 근방에서 출현한 위험 용족은 중위종에 속하는 개체이니 큰 무리는 없을 테지.”
사실 아벨은 이보다 막강한 지원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온 것은 에단 한 명.
물론 아벨은 알지 못했다.
에단 한 명이 아벨과 같은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 수십, 아니 수백의 비견될 정도로 무지막지한 전력이라는 것을.
한편 에단은 지금의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듣기로 이번에 출현한 위험 용족은 개체 수가 상당하다고 들었네. 솔직히 나와 아벨만으로는 위험할 수 있지. 어떤가 아틸라. 내게 용병으로 고용돼 함께 용족을 쓰러뜨릴 생각은 없나?”
아틸라는 웃었다.
“그거 재밌겠군. 게다가 즐겁게 놀고 동전까지 벌 수 있다니, 내겐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에단도 웃었다.
그렇게 정체를 숨기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가 협력의 가장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