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75화 (275/425)

275. 남부의 상황

두 마리 군마가 북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갈기가 멋진 흑마 위엔 아틸라와 바토리가 나란히 앉아 있었고, 털결이 고운 갈색마 위엔 오토와 카스피가 있었다.

바토리의 얼굴에선 시종일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고맙구나 야만전사야.”

“뭐가.”

“레비아를 틈새에 진입하도록 만들려던 것이 아니었더냐.”

“그렇게 하고 싶었지.”

“허나 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이니라.”

레비아는 바토리가 친구라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다.

물론 지금의 바토리에겐 아틸라, 오토, 카스피 외에도 동료라 부를 만한 이들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바토리와 레비아의 관계는 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네가 레비아의 바람을 꺾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적 없다. 단지 그 여자가 틈새로 진입하자마자 도망쳐 버리면 곤란하니까.”

“넌 정말 마음에 없는 말을 질리지도 않고 하는구나.”

바토리가 흘기듯 아틸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더니 아틸라의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리 오는데.”

“네 커다란 등에 가려져서 풍경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구나.”

“풍경은 양옆에도 있고 뒤에도 있다.”

“정면이 보고 싶구나.”

기어코 바토리는 아틸라의 허벅지를 넘어 앞쪽으로 왔다.

고삐를 쥔 아틸라의 양팔 사이에 낀 모양이 된 바토리가 소녀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정면의 풍경이 최고로 아름답구나.”

“아름답긴 개뿔. 사방이 똑같은 풍경이구만.”

“가슴이 뛰면 같은 풍경도 달라 보이는 법이란다.”

오토가 물어왔다.

“근데 바토리 아가씨. 아무리 그래도 말은 인원수대로 네 마리를 받는 편이 낫지 않았수?”

“뭐라?”

바토리의 불만족스러운 시선에 오토가 흠칫 놀라 변명했다.

“아아니, 벼, 별뜻은 없수. 이러다 갑자기 그 드래곤 마스터나 북부 야만인들이 덤벼오면 도망치기 힘들지 않겠느냐, 이 말이오.”

“도망칠 이유가 무어 있느냐. 아틸라가 이렇게 슝슝, 흑철검으로 베어 버릴 텐데 말이다.”

그 말에 아틸라가 피식 웃었다.

뭐? 슝슝?

“아이고 바토리 아가씨. 북부 야만인들은 몰라도 그 레드 드래곤을 탄 용기사는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었소. 게다가 녀석이 날개가 있는 이점을 이용해 덤벼들면 우린 서서히 말라죽을 거요. 저 요망한 도마뱀도 성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지 않소.”

“저 종복 미물 새끼가 또! 카아아아앗!”

‘요망한 도마뱀’ 소리를 들은 도롱뇽이 오토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언제나처럼 오토는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댔다.

잠시 후 아틸라가 도롱뇽을 떼어 냈고, 오토가 투덜대듯 말했다.

“제국 말이 아무리 덩치가 커도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면 속도도 늦어지고 금세 지칠 거요. 그렇지 않수? 살쾡이 암살자.”

“으응. 응?”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는지 카스피가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나, 난 둘이 타는 거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한 카스피가 괜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야만전사야.”

“왜 또.”

“남부에 두고 온 친구들이 걱정되는 것이더냐.”

“친구?”

“네 절친 샤를 말이다.”

“걔가 왜 내 친군데. 그리고 샤를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 할 거다.”

“흐응. 역시 절친의 실력을 신뢰하는 것이더냐.”

“친구 아니라니까.”

그러나 말과 달리 아틸라는 샤를을 신경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키릴, 슈시아, 라일 등 한때 동료였던 자들을 떠올렸다.

이번에 드래곤 마스터, 에단 트라쿠스를 만나며 아틸라는 새삼 깨달았다.

‘카르타고는 강하다.’

아틸라가 예상하기로.

현재 제국에서 가장 위협적인 힘을 지닌 건 4인의 드래곤 마스터와, 그들과 페어링된 네 마리의 드래곤이다.

아틸라는 에단의 검술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카르타고와 비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에단 트라쿠스는 카르타고보다 강하지 않다.’

아틸라는 지금껏 카르타고와 두 번 격돌했다.

두 번 모두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실력으로 보자면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에단 트라쿠스는 달랐다.

아틸라는 에단을 쓰러뜨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내가 이긴다.’

그러나 에단은 혼자가 아니다.

그의 곁엔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가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다.

세베스티아는 레드 드래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포악한 개체.

관조자 시절의 바토리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한 괴물이다.

즉, 지금의 일행 안에 세베스티아를 쓰러뜨릴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한 가능성은 도롱뇽이지만.

오토가 말했던 대로 도롱뇽의 해방 스킬은 지속시간이 짧다.

‘카르타고가 길들인 아에스투스는 이전보다 약해졌다. 세베스티아 또한 용기사와 페어링하며 어느 정도의 힘은 잃었겠지. 하지만 아에스투스 정도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카르타고와 에단이 승부를 벌인다면 쉬이 결과를 점칠 수 없었다.

일신(一身)의 무력은 카르타고가 우위에 있지만.

‘드래곤끼리의 승부에선 세베스티아가 아에스투스를 압도할 가능성이 클 테니까.’

아무튼 아틸라는 의도치 않게 제국에 왔다.

오는 길에 만났던 심층부 수해의 몬스터.

용족과 용기사.

북부 야만인.

그리고 요툰까지.

그런 강력한 존재들을 상대할 때마다 아틸라는 자연스레 카르타고를 떠올렸고, 또 그럴 때마다 남부 대륙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물론 아틸라는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생각은 실제 남부 대륙의 현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카르타고는 카스티야를 먹은 것에서 만족하지 않을 거다. 분명 주변 왕국들을 추가로 삼킬 테지. 놈에겐 놈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데스나이트들과 망자의 군대가 있으니까.’

‘반면 인접 왕국들은 쉬이 힘을 합치지 못할 거다. 다급한 와중에도 서로의 잇속을 챙기려 들 것이 뻔하지. 물론 중앙 마탑을 포함한 5대 마탑의 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

‘결국 샤를이 주변국과 힘을 합쳐 연합군을 결성할 거다. 시작점은 불가침 조약을 맺은 나바라와 샹크리스일 테고. 변수는 샤를이 과연 5대 마탑과 슈시아의 발키리 부대까지도 연합군에 소속시킬 수 있느냐인데.’

아틸라 역시도 남부 대륙의 상황이 자신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흘러가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예상이 아닌, 확인을 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미 샤를의 연합군과 카르타고의 군대는 격돌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바람직한 결말은 연합군이 승리하는 것.’

가능성이 그리 낮다고는 할 수 없다.

오른팔의 힘을 완전히 되찾은 지금의 샤를은 아틸라마저 쓰러뜨리지 못할 정도의 강자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샤를의 곁엔 제롬과, 제롬이 만든 특별한 무기가 있다.

그 무기를 들고 싸우는 금사자 기사단과 피핀이 있다.

‘키릴과 크레센시아 성기사단도 있지. 어쩌면 슈시아의 발키리 부대와 5대 마탑까지도.’

그럼에도 아틸라는 샤를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었다.

‘연합군은 카르타고에게 패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샤를은 카르타고에게 죽임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틸라는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겼다.

이전에도 생각했듯, 카르타고는 샤를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

아틸라가 가장 염려하는 상황은 연합군의 패배가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절대로 찾아와선 안 될 최악의 상황은 따로 있다.

그리고 아틸라는 그 최악의 가능성을 점차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 아틸라는 궁금했다.

현재 남부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남부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 * *

카잔 군주령은 케렌시아가 속한 에레트리아 군주령의 북동쪽에 접해 있었다.

즉, 아틸라 일행이 최단거리로 황도로 향하려면 반드시 지나치게 되는 곳.

그리고 일행은 마침내 카잔 군주령의 대도시, ‘이스마라’에 도착했다.

“여긴 에레트리아 군주령과는 완전 딴판인 것 같소 아틸라 님.”

오토의 제국어는 제법 들어줄 만하게 변했다.

물론 특유의 억양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것이 의외로 에레트리아 군주령 토박이들의 억양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 아틸라는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오 정말이네? 같은 제국이 아니라 꼭 다른 왕국으로 건너온 것 같아.”

카스피의 제국어는 오토보다 능숙했다.

아틸라가 말했다.

“다른 왕국 맞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에레트리아도, 카잔도, 이전엔 독립된 왕국이었다는 말이지.”

군주령이라는 호칭은 그런 것이다.

한때 왕국이었던 이곳은 제국의 정복 전쟁에 삼켜졌고, 속국으로 전락했다.

황도에서 가까운 왕국들은 ‘제국령’으로 취합된 곳도 있지만, 에레트리아와 카잔은 황도와는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다.

이런 상황에선 기존 왕국의 틀을 유지시키며 세금을 걷어들이는 편이 이득이다.

이곳, 카잔 군주령까지 이동하며 아틸라는 머릿속에 담긴 제국의 설정과 레비아의 지도를 융합해 새로운 정보들을 도출했다.

그것에 대해 설명하자 카스피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예전 발루아 왕국 안의 카스코뉴 공작령과 아키텐 백작령 같은 거네?”

“같지는 않지만, 뭐 비슷한 거다.”

“헤헤. 들었어 영주 나리?”

카스피가 오토에게 잘난 척을 하는 동안 아틸라는 주위를 살폈다.

레비아의 짝인 플루토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또한 플루토가 말했던 카잔 군주령에서 벌어진 재밌는 일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뭐, 군주령에 들어서자마자 보란 듯이 나타날 리도 없지.’

아틸라는 일단 여관에 들르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먹고 마시고 푹 쉴 생각이다.

“저 여관이 마음에 드는구나.”

바토리가 가리키는 곳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레비아에게서 받은 금화가 있었기에 아틸라는 고민할 것 없이 여관으로 향했다.

마치 지구의 고급 호텔이 그러하듯, 여관 밖에 서있던 잘 차려입은 직원들이 다가와 일행의 말고삐를 쥐었다.

덕분에 일행은 편안하게 여관 식당으로 입장했고, 가까운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주문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큰 소리로 아틸라의 이름을 불렀다.

“아틸라!”

놀라움과 반가움을 동시에 드러내며 등장한 건 수해에서 만났던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 아벨이었다.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북쪽으로 이동한다더니,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됐군.”

“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았지.”

아벨도 웃었다.

그러고는 바토리, 오토, 카스피와 인사를 나눴다.

다시 만난 그는 이전보다 허물없는 모습이었다.

헤어질 때 아틸라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듯했다.

‘다음에 만난다면 편한 말투를 썼으면 좋겠군 아벨.’

“괜찮다면 이쪽으로 와 주겠나? 소개하고 싶은 동료가 있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아벨은 낯선 제국 땅에서 아틸라에게 우호적이면서도 나름의 힘을 지닌 인물이다.

게다가 아틸라는 아벨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심안을 시전해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아벨은 다시 만난 아틸라를 그저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당히 어울려 줄 생각 정도는 있다.

“그러지.”

그러나 아틸라는 자리에서 일어선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덜미가 서늘하게 굳어졌다.

자신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아벨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늦었다.

저만치 구석진 자리에서 아벨의 일행으로 보이는 자가 빤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틸라도 그자를 봤다.

아틸라는 그의 이름이 에단 트라쿠스라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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