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3. 숨겨진 보상
아틸라는 드라칼리온을 내려다봤다.
그것을 쥔 오른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드라칼리온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어금니로 만들어졌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랄프의 말에 따르면, 강철바위성을 습격했던 암피테르의 용기사들은 마법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고 했다.
‘그들은 원래부터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용기사가 된 것인가. 아니면 용기사가 되며 힘을 개화한 것인가.’
순서가 어찌 됐든 평범한 인간이 사용할 만한 힘은 아니다.
용인의 힘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된 게 분명하다.
아울러 세베스티아의 용기사가 지닌 검기 또한 세베스티아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틸라의 손엔 드라칼리온이 쥐여 있었다.
‘드라칼리온은 도롱뇽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성체가 된 도롱뇽의 힘을 흡수하며 더욱 강력한 면모를 드러낸다.’
아틸라는 바토리가 용혈의 반지를 가지고 있고, 그것의 힘을 통해 도롱뇽의 마력을 끌어다 쓴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세베스티아의 용기사가 지닌 힘을 보며 자연스레 드라칼리온과 도롱뇽의 연관 관계를 생각했다.
‘만약 저 검기가 드래곤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가능성은 높다.
세베스티아는 레드 드래곤.
용기사의 검기 또한 그와 같은 붉은색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때였다.
[ 시나리오가 시작됩니다. ]
[ 요툰헤임 ]
‘응? 갑자기?’
아틸라 일행이 요툰의 숲에 들어선 건 한참 전이다.
게다가 이 요툰과는 전투도 벌어졌다.
그런데 이제 와 시나리오가 시작된다니.
[ 첫 번째 임무 ]
[ 요툰의 숲 어딘가에 존재하는 핵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
[ 그러지 않으면 요툰헤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완전히 열려, 수많은 요툰들이 중간계로 침입할 것입니다. ]
‘통로?’
그제서야 아틸라는 이 요툰이 특별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아마도 이곳은 요툰헤임과 중간계를 잇는 거대한 통로고, 이 통로가 완전히 열리면 요툰헤임의 요툰들이 대거 중간계로 들어올 수 있다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요툰은, 요툰헤임의 요툰들이 자신의 신체나 힘의 일부를 흘려보낸 것의 집합체인가.’
[ 임무 완료 시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
[ 또한 파티원 중 한 명에게도 무작위로 보상이 제공됩니다. ]
보상이 뭔지는 몰랐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었다.
기왕 할 일이라면 보상을 받는 편이 나은 건 당연지사.
게다가 시스템은 동료 중 한 명에게도 추가로 보상을 제공하겠다고 한다.
시스템은 지금까지 쓸모없는 보상을 준 적이 없다.
누가 보상을 받게 되든, 일행의 전력이 상승하는 건 달가운 일이다.
“야만 미물. 냄새가 난다. 여기서 멀지 않아.”
때마침 도롱뇽이 냄새를 찾아냈다.
“그럼 빨리 튀어가라. 도롱뇽 새끼.”
“날아가는 거거든?”
과연 도롱뇽의 후각은 정확했다.
일행은 빠르게 비행하는 도롱뇽의 등 위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을 돌파한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 가정을 증거하듯 주위 풍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중심부에 도착한 것 같구나.”
바토리의 말대로였다.
더 이상 숲은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대체 뭐요?”
“흐에에엣……!”
오토와 카스피가 신기하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바토리 또한 난생처음으로 보는 풍경에 다소 놀란 얼굴이었다.
아틸라만이 이곳을 보며 낯설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체 같군.’
지구에 있던 시절, 과학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다.
그때의 그는 인간의 몸 안에 마치 우주와도 같은 풍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었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또한 어떤 거대한 생명체의 몸속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 지구는 그 생명체의 미생물에 불과한 것이고. 그 지구 속의 인간은…….’
세포의 모양을 한 것들이 일행을 향해 밀려들었다.
핵의 수문장으로 보이는 그것들은 아틸라 일행을 침입자로 간주한 모양이었다.
물론 일행은 침입자가 맞다.
파캉! 파아앙!
아틸라가 드라칼리온을 휘둘러 놈들을 처리했다.
오토와 카스피도 아틸라를 도왔다.
그러나 핵의 수문장들은 마치 세포 분열을 하듯 계속해서 자신을 복제했다.
복제된 적들을 연이어 처리하며 아틸라는 문득 가슴이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자신이 세포처럼 작아져, 어느 생명체의 몸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빨리 핵을 처리하고 나가야겠군.’
머지않아 도롱뇽은 핵을 발견했다.
그것은 두 겹의 투명한 막으로 감싸져 있었다.
“부숴라. 도롱뇽.”
도롱뇽의 새로운 브레스는 강한 관통력을 지니고 있다.
저 막이 얼마나 단단하든 부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그 브레스는 뭐였지.’
바토리가 세베스티아의 브레스에 구멍을 낸 직후 도롱뇽이 발현했던, 송곳처럼 뾰족한 브레스.
그 브레스를 아틸라는 오늘 처음 보았다.
그리고 아틸라는 그 새로운 브레스를 쏘아 내려면 바토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틸라의 눈이 바토리를 돌아봤다.
“흐응. 알겠느니라.”
바토리의 손이 도롱뇽의 비늘을 짚었다.
아틸라의 의지를 전달받은 도롱뇽이 쩌억 아가리를 벌렸다.
바토리는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마력 방출에 개입했다.
퍼어어엉!
검은 빛줄기처럼 브레스가 쏘아졌다.
그것이 핵을 감싼 두 개의 막을 한꺼번에 관통한 뒤 핵에 부닥쳤다.
콰콰쾅!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막이 허공에 흩어졌다.
그러나 핵은 약간의 금이 생겼을 뿐 파괴되지 않았다.
‘역시 평범한 요툰이 아니라 도롱뇽의 브레스로도 부술 수 없는 건가.’
저 핵은 보통의 요툰들이 지니고 있는 핵, 즉 인간으로 치면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요툰은 개체가 아닌 통로. 그렇다면 저 핵은 요툰헤임과 중간계를 연결시키는 강력한 아이템이겠지.’
“제법 단단하구나.”
바토리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도롱뇽아. 네 힘을 조금 더 빌려야겠구나.”
도롱뇽의 비늘을 짚은 바토리의 손이 밝게 빛났다.
바토리는 도롱뇽의 마력을 흡수했다.
“이번엔 함께 공격해 보자꾸나.”
바토리의 머리 위에 세 자루의 마멸의 칼날이 생성됐다.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재차 의지를 전달했고, 도롱뇽은 다시금 변형된 브레스를 핵을 향해 발사했다.
그와 동시에 세 자루의 핏빛 칼날이 서로 다른 세 방향에서 요툰의 핵을 덮쳤다.
엄청난 폭음이 세계를 울렸다.
카스피가 두 귀를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사방의 세상이 흔들리고, 멸망하기 시작했다.
아틸라는 도롱뇽의 해방의 권능이 종료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일행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앞의 세상이 점멸하고, 긴 잔상을 그리며 이동하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사위가 새까맣게 변했다.
이어 자그맣지만 수많은 빛들이 아틸라의 시야에 잡혔다.
그것은 별이었다.
“에엥? 여긴 어디요?”
오토의 목소리.
오토뿐만이 아니었다.
카스피, 바토리, 펀치, 그리고 도롱뇽의 목소리와 기척이 느껴졌다.
아틸라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일행은 어두운 밤하늘 아래, 어느 들풀 위에 앉아 있었다.
화들짝 놀란 얼굴로 카스피가 말했다.
“뭐, 뭐야? 그 요툰의 핵을 파괴한 게 맞는 거야? 근데 왜 우린 갑자기 이런 곳에 와 있는 거지?”
아틸라는 상태창을 살펴봤다.
[ 첫 번째 임무 ]
[ 요툰의 숲 어딘가에 존재하는 핵을 찾아 파괴하십시오. ]
[ 임무를 완료하였습니다. ]
요툰헤임의 첫 번째 임무가 완료됐다.
그 말은 즉, 요툰의 핵을 무사히 파괴했다는 것.
[ 보상이 주어집니다. ]
달콤한 보상까지.
[ 새로운 전투 스킬이 개방됩니다. ]
[ 검기(劍氣) ]
‘뭐라고?’
아틸라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이번 임무는 평범하지 않은 타이밍에 등장했다.
세베스티아의 용기사가 사용하던 검기를 떠올리고, 그것의 구동 원리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내놓을 무렵 갑작스레 생성됐다.
아틸라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신기하군. 매번 그 상황에 걸맞은 보상이 나온다는 게.’
그때는 어차피 이 세계는 신기한 일 투성이라 생각하며 흘려 넘겼었다.
그러나 이번은 우연이라 치기엔 너무 작위적으로 보였다.
‘설마 시스템이 내게 검기 스킬을 주기 위해?’
[ 일정 시간 검에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특별한 마력을 주입시킵니다. ]
[ 1레벨의 검기를 발현하려면 반드시 성체가 된 도롱뇽과, 드라칼리온이 필요합니다. ]
[ 검기의 레벨이 향상될수록 조건은 완화되고, 위력은 강해집니다. ]
아틸라는 도롱뇽을 바라봤다.
녀석은 펀치의 등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지금 당장은 시험해 볼 수 없겠군.’
어차피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게다가 아틸라는 여기가 어디인지도 몰랐다.
“요툰의 핵이 파괴되며 그 충격으로 공간의 구김이 발생한 것 같구나.”
바토리가 내놓은 답이었고, 아틸라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이 생겼으리라 짐작했다.
“어찌 됐든 다행이로구나.”
바토리의 말에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일행이 이런 곳으로 튕겨나지 않았다면, 말도 잃고 도롱뇽마저 해방의 권능을 잃은 상황에서 세베스티아를 따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 파티원 중 한 명에게 보상이 제공되었습니다. ]
이어진 상태창을 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마침 하룻밤 쉬어 가기도 좋은 장소인 것 같군.”
[ 보상을 받은 파티원은 자신이 보상을 받았다는 사실과, 보상 내용을 알 수 없습니다. ]
주위엔 강물이 흘렀고, 바람을 막아 줄 커다란 나무들도 보였다.
일행은 모닥불을 피우고 하룻밤 쉬어 갈 채비를 했다.
역시나 오토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고, 잠시 후 일행은 통통하게 살이 오른 생선구이를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오늘 만난 적들을 강했다.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와 용기사.
그리고 두 개의 차원을 이으려던 요툰의 집합체.
그렇게 강한 적과 맞닥뜨린 뒤 하는 식사는 달콤했다.
“아하하! 아까 영주 나리 눈물에 콧물을 쏟으며 쫓아오는 모습이 얼마나 구질구질하던지! 아하하하하!”
카스피가 놀리자 오토는 그런 적 없다며 발뺌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바토리와 아틸라의 연이은 증언으로 못생긴 강아지 같은 표정을 했다.
그렇게 하룻밤을 푹 쉬고 아침 일찍 이동을 시작한 일행은 낯익은 도시의 성벽을 발견했다.
“엥? 여긴 분명.”
오토의 눈이 동그래져서 카스피를 돌아봤다.
카스피도 동그래진 눈으로 오토를 마주 봤다.
바토리가 웃으며 말했다.
“마침 들르려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다시 오게 되었구나.”
관조자 레비아가 영주로 있는 에레트리아 군주령의 대도시, 케렌시아였다.
* * *
아틸라 일행은 레비아와 마주 앉아 있었다.
바토리는 레비아가 들어오자마자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뭐야. 왜 그렇게 죽일 듯한 얼굴로 날 보는 거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레비아.”
“아니. 모르겠는데? 진짜 모르겠으니까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지 좀 마.”
“솔직히 말해 보거라. 남서쪽의 숲에 나타났던 요툰에 대해 넌 어디까지 알고 있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