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72화 (272/425)

272. 드라코니안 (2)

에단은 세베스티아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여섯 등급으로 나뉜 용족 중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등급, 드래곤.

그 드래곤은 다시 여섯 종류로 구분되며, 현재 제국에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은 모두 네 종류다.

‘레드 드래곤.’

‘그린 드래곤.’

‘골드 드래곤.’

‘화이트 드래곤.’

네 드래곤은 제국에서 가장 우수한 용기사와 페어링했고, 4인의 드래곤 마스터를 탄생시켰다.

여섯 종류의 드래곤 중 제국에 등장하지 않은 드래곤은 두 종류인데.

세베스티아의 말로는, 그중 하나인 블루 드래곤의 아에스투스는 남부 대륙의 어느 강력한 망자의 힘에 굴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드래곤이 바로.

여섯 종류로 나뉜 드래곤 무리 중 유일하게 단 하나의 개체만을 지닌.

그럼에도 다른 드래곤 무리를 압도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뽐내며.

그 강력한 힘 탓에 여섯 등급으로 나뉜 용족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드라코니안(Drakonian)’이란 새로운 등급을 만들어 낸 드래곤.

세상 유일의 블랙 드래곤이자 용중용(龍中龍)이라 불리는 존재.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라고?’

에단의 눈이 커졌다.

세베스티아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어떻게 이곳에!

에단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등장보다 세베스티아의 변화에 더욱 크게 놀랐다.

이렇게까지 흥분한 세베스티아는 에단으로서도 처음이었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으으!

세베스티아가 요툰과의 전투를 무시하고 블랙 드래곤을 향해 날았다.

에단이 저지했지만 소용없었다.

‘세베스티아!’

그사이 블랙 드래곤 위의 전사는 사슬을 당겨 동료로 보이는 남녀를 끌어올렸다.

네 명의 인간이 하나의 드래곤에 올라탄 모습을 보며 에단은 다급한 와중에도 신선함을 느꼈다.

물론 블랙 드래곤은 네 명의 인간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러나 세베스티아에 비하면 마치 어른과 아이만큼이나 크기 차이가 있었다.

세베스티아가 아가리를 벌렸다.

블랙 드래곤을 향해 브레스를 뿜었다.

키랴랴랴랴랴랴!

에단은 당황했다.

그는 아직 저 블랙 드래곤과 인간들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제국의 적이라면 지금 없애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 드래곤은 제국에 큰 힘이 될 존재다.

‘멈춰! 세베스티아!’

그러나 세베스티아는 에단의 의지를 거부했다.

불의 브레스가 블랙 드래곤을 집어삼킬 듯이 쇄도했다.

화르르르르르!

세베스티아는 지금 독단적인 판단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에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에단과 세베스티아는 주종 관계가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세베스티아와 함께 저 미지의 드래곤을 처리하는 편이 낫다.

그때였다.

고오오오오오.

푸른 로브의 여자가 블랙 드래곤의 비늘을 손으로 짚었다.

그 자리에 붉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고, 마력으로 보이는 어떤 힘이 여자의 손으로 흘러들어갔다.

에단은 저런 광경을 처음 보았다.

그 자신도 드래곤의 마력을 사용하는 용기사이자, 황실 마법사들의 마법을 수없이 보아왔음에도.

‘저건 무슨?’

에단은 푸른 로브의 여자를 응시했다.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드러난 몸의 선은 분명 여자였다.

후드 사이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밝은 레몬빛을 띠었고, 언뜻언뜻 보이는 입술은 피처럼 붉었다.

여자의 반대편 손이 세베스티아를 겨눴다.

파아아앙!

에단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갑작스레 시야가 맑아졌고,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의 뺨을 스쳤다.

맑아진 시야 속에서 에단은 푸른 로브의 여자를 봤다.

후드 아래 붉은 입술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매혹적인 미소를 보며 에단은 상황을 파악했다.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를 무력화시켰다고?’

정확히 말하면 완전히 무력화시킨 건 아니었다.

푸른 로브의 여자는 송곳처럼 예리한 풍압을 발산시켰고, 그것이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를 관통했다.

그 반동으로 세베스티아의 브레스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크르르르르르……!

블랙 드래곤의 아가리가 벌어졌다.

녀석의 목구멍이 꿈틀대며 검은 마력이 집약됐다.

에단은 저것이 브레스의 전조라는 것을 알아봤다.

‘세베스티아!’

퍼어엉!

블랙 드래곤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소리도, 모양도 이상했다.

분명한 것은 푸른 로브의 여자가 뚫어 낸 브레스의 구멍 사이로, 블랙 드래곤의 마력이 빛줄기처럼 쏘아졌다는 것이다.

마치 직전에 푸른 로브의 여자가 발산했던 송곳 같은 풍압처럼.

파아아앙!

세베스티아의 몸이 기울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형태의 브레스는 창날처럼 날아와 세베스티아의 한쪽 날개를 관통했다.

세베스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흔들었다.

에단은 당황했다.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는 세베스티아의 것과 달랐다.

아니, 많은 용족의 브레스를 봐왔던 에단으로서도 처음 보는 형태의 것이었다.

‘세베스티아!’

다행히 세베스티아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한쪽 날개에 제법 커다란 구멍이 생기긴 했지만, 강한 수복력을 지닌 드래곤에겐 그리 치명적이지 않은 상처였다.

다만 세베스티아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으로 큰 데미지를 입은 듯했다.

날개를 마구 휘두르며 몸을 비틀었다.

‘진정해 세베스티아!’

에단은 자신의 의지를 세베스티아에게 불어넣었다.

그러면서 느꼈다.

마구잡이로 몸을 휘두르는 것과 달리, 세베스티아의 흥분은 직전보다 가라앉아 있었다.

블랙 드래곤에게 일격을 허용한 뒤, 조금이나마 이성이 돌아온 듯했다.

‘지금이라면.’

에단은 세베스티아를 진정시켰다.

이윽고 세베스티아가 활짝 날개를 펼치며 허공에 멈춰 섰다.

그런 세베스티아의 머리 위엔 다른 드래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크르르르르르……!

블랙 드래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 오랜만이군. 세베스티아.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검은 눈이 세베스티아를 내려 봤다.

그 사나운 눈동자를 보며 에단은 덜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는 블랙 드래곤의 등 위에 올라탄 네 명의 인간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얼굴이 파악되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후드와 투구 등으로 교묘하게 얼굴을 가렸다.

에단은 그들 모두에게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실력을 지닌 자들이었다.

세베스티아의 눈이 드라콘 이스메니오스를 노려봤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네가 어떻게.

세베스티아의 붉은 눈은 증오로 떨리고 있었다.

그 눈동자를 내려보며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말했다.

- 내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세베스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그 순간 요툰의 공격이 날아왔고,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브레스로 그것을 무력화시켰다.

그러고는 말했다.

- 우리는 먼저 저 요툰을 쓰러뜨려야 한다.

세베스티아는 치를 떨었지만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오랜 은원을 정리할 시간이 아니다.

요툰은 드래곤의 가장 강대한 적.

게다가 저 요툰은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 세베스티아. 네가 공중을 맡아라. 난 다시 지면으로 내려가 요툰의 핵을 찾아 부수겠다.

그 말 또한 맞았다.

분명 지면 어딘가엔 요툰의 핵이 있을 테고, 그것을 찾는 일의 적임자는 덩치가 작으면서도 더욱 정교한 비행술을 갖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쪽이었다.

게다가 세베스티아의 날개를 관통했던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브레스는 대단했다.

광범위하게 퍼지는 것이 아닌, 단 하나의 극점으로 집중된 변종 브레스.

요툰의 핵을 파괴하는 데 특화된 것만 같은 힘이었다.

-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드라콘 이스메니오스.

재차 날아오는 요툰의 공격을 세베스티아가 브레스로 막았다.

에단도 검기를 활용해 세베스티아를 도왔다.

어느새 드라콘 이스메니오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 *

“이런 미친 바토리 할망구! 그렇게 느닷없이 내 힘을 뽑아 사용하면 어쩌자는 거냐! 갑자기 덜미가 서늘해져서 깜짝 놀랐잖아!”

요툰의 숲으로 내려온 도롱뇽이 투덜댔다.

도롱뇽은 지면 가까이 날며 킁킁, 요툰의 핵을 찾고 있었다.

“덕분에 세베스티아의 브레스를 효과적으로 막고, 반격까지 성공하지 않았더냐.”

바토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도롱뇽은 이렇게 간단히 세베스티아에게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틸라가 말했다.

“그런 기술을 숨기고 있었나?”

바토리가 도롱뇽의 마력을 흡수해 사용한 것에 대한 물음이었다.

아틸라가 알기로 바토리에게 그런 주문은 없었다.

바토리가 배시시 눈웃음을 지었다.

“흐응.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생각했던 것이냐.”

“뭐라는 거야 또.”

“그래. 그런 식으로 네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더냐. 그렇다면 좋다.”

바토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틸라를 향해 가슴을 폈다.

“언제든 괜찮느니라. 난 너에게, 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 말에 오토가 꿀꺽 침을 삼켰다.

카스피도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란 눈을 떴다.

아틸라는 바토리에게 물어보는 것을 포기했다.

“빌어먹을 또 시작이군.”

아틸라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바토리가 도롱뇽의 마력을 흡수해 사용했던 그 기술은, 불과 얼마 전까지의 그녀는 지니지 못한 힘이었으니까.

‘용혈의 반지.’

그랬다.

바토리는 스테로페스의 감옥에서 용혈의 반지를 손에 넣었고.

그 반지는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자신의 심장 일부로 만들어 낸 아주 특별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바토리는 용혈의 반지를 통해 도롱뇽의 마력을 뽑아낼 수 있었다.

모든 생명체가 마력을 저장하고 운영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심장이었으므로.

‘엘이 알려 줬던 지식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바토리는 인간이었던 시절, 엘에게서 많은 것을 들었다.

그중엔 용혈의 반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그래서 바토리는 처음 반지를 보자마자 그것이 용혈의 반지라는 것을 알았고, 도롱뇽에게서 갈취했다.

또한 이 반지의 힘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래서 도롱뇽을 꺼내자고 말했던 거군. 음흉한 할망구 같으니.”

아틸라가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방에서 난입하는 요툰의 공격을 적극적으로 무력화시켰다.

도롱뇽을 요툰의 핵을 찾는 일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냄새 잘 맡아라. 도롱뇽 새끼.”

“아, 지금 열심히 맡고 있다고!”

도롱뇽의 후각은 뛰어나다.

당연히 성체가 되면 후각은 더욱 발달한다.

지금의 도롱뇽이라면 분명 요툰의 핵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용기사 말이우.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수.”

오토가 말했다.

그는 에단에게서 특별한 힘을 감각했다.

“그래. 네 말대로 보통내기가 아니더군.”

아틸라는 에단이 발현했던 붉은 검기를 떠올렸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기술.

그런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원거리의 적을 상대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순간 아틸라의 머릿속에 도롱뇽의 마력을 뽑아 사용하는 바토리와, 레드 드래곤의 위에서 붉은 검기를 휘두르던 에단이 겹쳐졌다.

아틸라의 눈에서 예기가 발했다.

‘가만. 그렇다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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