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드라코니안 (1)
아틸라는 바토리의 허리를 한 팔로 안고 도롱뇽의 등에 올라탔다.
낌새를 느낀 펀치는 그전에 아틸라의 어깨에 올라가 있었다.
카스피도 날렵한 동작으로 도롱뇽의 비늘을 붙잡고 곡예하듯 등 위에 올랐다.
그 순간 요툰의 숲에 변화가 일었다.
도롱뇽의 힘을 감지한 요툰이 아틸라 일행에게 엄청난 공격성을 드러냈다.
그오어어어어!
나무와 바위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공격성.
어쩌면 요툰은 하늘 위의 레드 드래곤보다 도롱뇽에게서 더욱 강한 위협을 느낀 듯했다.
“날아! 도롱뇽!”
아틸라의 외침에 도롱뇽이 활짝 날개를 폈다.
그러고는 쇄도하는 나무와 바위를 피하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런데 아틸라는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아틸라! 영주 나리가!”
오토가 아직 밑에 있었다.
저 멍청한 새끼. 아틸라는 도롱뇽을 하강시켰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요툰의 공격은 지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롱뇽은 요툰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브레스를 사용하면 파괴시킬 수는 있겠지만 오토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도롱뇽은 브레스 없이 요툰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아틸라도 강화된 드라칼리온을 휘둘러 도롱뇽을 도왔다.
다행인 점은 요툰의 모든 공격이 도롱뇽에게 집중된 탓에, 오토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히익! 나, 나도 데려가쇼! 제발 날 버리지 마시오오오!”
오토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말을 달렸다.
도롱뇽도 오토를 향해 몸을 낮췄다.
그러나 요툰의 공격은 점점 더 매서워졌다.
“내가 마법으로 철혈귀검을 끌어올려 보겠다.”
“아니야 바토리! 내가 갈게!”
카스피가 나섰다.
카스피는 바토리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도롱뇽! 이거 물어!”
카스피가 자신의 사슬낫을 도롱뇽의 입에 물렸다.
그러고는 사슬의 반대편 끝을 쥐고 훌쩍 뛰어내렸다.
요툰이 카스피를 공격했다.
도롱뇽의 몸과 이어진 카스피를 녀석은 한 몸으로 인지한 모양이었다.
화륵, 카스피의 몸이 귀기로 타올랐다.
“하아압!”
손끝에서 뻗친 귀수가 요툰의 공격을 저지했다.
거대한 나무가 말끔하게 절단됐다.
카스피는 점점 사슬을 길게 늘이며 오토와 가까워졌다.
“영주 나리!”
“사, 살쾡이 암살자!”
오토가 손을 뻗었다.
카스피도 귀수를 해제하고 오토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간격은 아직 멀었다.
“말을 밟고 뛰어! 영주 나리!”
오토는 그렇게 했다.
달리는 말 등 위에 발을 올리고, 카스피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내뻗은 오토의 손을 카스피가 잡았다.
카스피의 입가가 히죽 올라갔다.
“헤헤. 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 영주 나리.”
카스피가 오토를 붙잡은 것을 확인한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하늘로 솟아오르라 명령했다.
그러면서 긴장했다.
지금까지는 요툰의 숲에 가려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하늘 위에 오르면 일행의 모습이 완전히 노출될 것이다.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와 용기사에게.
“바토리.”
바토리는 아틸라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직한 주문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요툰의 수풀에서 벗어나 창공으로 솟은 일행의 모습은 직전과는 다소 달라져 있었다.
* * *
제국의 용기사 에단 트라쿠스는 제국 남서쪽의 어느 숲에 요툰으로 의심되는 존재가 등장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요툰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했던 우수한 용기사가, 북부 야만족의 용기사 사냥꾼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에단은 세베스티아를 이끌고 직접 요툰의 숲을 찾기로 했다.
에단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이 광활한 제국에서 오직 네 명만이 존재하는 ‘드래곤 마스터(Dragon Master)’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레드 드래곤, 세베스티아의 용기사였다.
‘가자. 세베스티아.’
에단은 세베스티아와 함께 남서쪽으로 향했다.
그가 주둔하고 있던 3군단의 병영은 목표지와 그리 멀지 않았다.
목표지로 떠나기 앞서 에단은 몇 명의 용기사를 파견해, 최근 용기사가 살해됐던 케렌시아를 조사하도록 명했다.
‘용기사는 제국 최강의 창이다. 그런 용기사를 살해한 일당에겐 그에 합당한 벌을 내려야겠지.’
에단이 요툰의 숲에 거의 도착할 무렵.
세베스티아가 의지를 전해 왔다.
- 요툰의 숲에서 낯익은 기운이 느껴진다. 에단.
‘낯익은 기운?’
- 이 힘은. 아니. 하지만 그럴 리가.
에단은 세베스티아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세베스티아의 정신에 집중했다.
세베스티아의 감정은 의문, 불신, 놀라움, 분노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무슨 일이지? 세베스티아.’
세베스티아는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에단은 세베스티아의 생각을 읽어 보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요툰의 숲에서 벌어진 무언가의 상황이 그의 이목을 집중시켰기 때문이다.
- 에단.
세베스티아도 그것을 확인했다.
요툰의 숲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렸다.
‘저게 뭐지? 세베스티아. 저런 요툰도 있었던 건가.’
- 나로서도 처음 보는 종류다. 아마도 다른 차원으로 이전한 요툰헤임에서 발생한 변종이겠지.
제국의 드래곤 마스터들은 자신의 드래곤을 통해 먼 옛날 고대인과 요툰의 전쟁에 대해 들었다.
물론 제국에서는 요툰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신화처럼 이어지고 있었지만.
드래곤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요툰 전쟁은 더욱 세부적이고, 정확했다.
‘그렇다면 저 요툰의 힘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다는 거로군. 세베스티아.’
- 두려운가? 에단.
세베스티아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느껴졌다.
에단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에단과 세베스티아는 요툰의 숲을 향해 더욱 빠르게 이동했다.
그러면서 세베스티아는 숲 안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세베스티아가 감지 중이던 낯익은 기운이 돌연 사라졌다.
세베스티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 기척이 사라졌다고?
세베스티아는 숲을 향해 다시금 감각을 집중했다.
그런데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에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미약하지만 낯익은 그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 잘못 감지했던 건가. 하지만 이상하군. 분명 저기에선.
세베스티아는 생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퍼엉! 퍼엉! 퍼퍼퍼퍼펑!
세베스티아와 에단을 발견한 요툰이 선공을 날려 왔다.
가시처럼 곤두선 나무들이 화살처럼 공중에 쏘아졌다.
‘온다. 세베스티아.’
에단이 세베스티아의 정신에 의지를 불어넣었다.
의지를 받아들인 세베스티아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키랴랴랴랴랴랴!
불의 브레스가 나무들을 불태웠다.
이어 지상마저 잠식하며 요툰의 숲을 활활 불태웠다.
- 저 숲 자체가 요툰인 것 같군. 에단.
‘그렇다면 숲 전체를 모조리 불태워야 하는 건가.’
- 그래도 되겠지만 영리하지 못한 방법이지.
‘그럼 영리한 방법은?’
- 숲 안 어딘가에 요툰의 핵이 존재할 거다. 그것을 찾아 파괴한다면 단번에 요툰을 쓰러뜨릴 수 있다.
세베스티아는 먼 옛날 요툰 전쟁에서 요툰들과 싸웠다.
그러면서 세베스티아는 거인이 지닌 낙뢰의 힘과, 무시무시한 괴력을 경험했다.
또한 수많은 거인의 숨통을 끊어 요툰 전쟁의 승리에 이바지했다.
- 혹시 모를 낙뢰만 조심하면 된다. 낙뢰가 없다면 요툰은 드래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세베스티아는 착각을 했다.
눈앞의 요툰은 먼 옛날 세베스티아가 상대했던 요툰과는 달랐다.
나무가 봉쇄되자 이번엔 바위가 무더기로 날아왔다.
세베스티아는 브레스의 힘으로 저지했지만 완전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리저리 허공을 비행하며 바위를 피해야 했다.
전세를 뒤집은 요툰이 나무 공격을 병행했다.
- 귀찮은 공격이로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베스티아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 감정은 그대로 에단에게 전달됐다.
에단은 검을 뽑았다.
세베스티아와 페어링하며 얻게 된 새로운 힘, ‘불의 검기’를 운용해 요툰의 공격에 대항했다.
세베스티아가 외쳤다.
- 조심해라 에단! 거인이다!
요툰의 숲에서 솟아오른 지면의 파도가 거인의 팔로 형상을 바꿨다.
세베스티아는 긴장했다.
거인은 드래곤의 천적.
저절로 찌릿찌릿 몸이 반응했다.
‘거인이라고?’
에단도 자신에게 날아드는 거대한 손아귀를 봤다.
그는 세베스티아와 합심해 거인의 손가락을 잘랐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세베스티아!’
에단의 의지를 받은 세베스티아가 날개를 펼쳤다.
그러나 직전보다 더욱 길어진 거인의 팔이 방해했다.
거기에 더해 거인의 손과 팔에선 나무와 바위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세베스티아는 불안감을 느꼈다.
‘빠르게 승부를 낸다. 세베스티아!’
에단은 세베스티아의 감정을 읽었다.
세베스티아의 입에서 브레스가 쏟아졌다.
에단도 검을 휘둘러 불의 검기를 쏘아 냈다.
그러나 요툰은 강했다.
에단과 세베스티아는 이 전투를 빠르게 종결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파캉! 파카캉!
키랴랴랴랴랴랴!
그어어아아아!
격렬한 싸움에서 발생된 수많은 전투의 파편이 불꽃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승기는 점차 에단과 세베스티아 쪽으로 기울었다.
요툰이 약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요툰은 아틸라 일행에게 공격을 분산하고 있었고, 에단과 세베스티아도 그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세베스티아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 역시. 이 기운은!
세베스티아가 고개를 돌려 지면을 내려 봤다.
이번엔 분명히 느껴졌다.
조금 전과 같은 종류지만,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해진 기운이.
‘앞을 봐! 세베스티아!’
에단의 외침에 세베스티아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날아드는 요툰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회피했다.
그러나 세베스티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 아래 숲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지의 상황이 세베스티아의 집중력을 극심하게 흐트러뜨렸다.
‘왜 그러는 건가! 세베스티아!’
-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에단은 세베스티아가 왜 저러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요툰의 공격은 다소 소극적으로 변했다.
저 아래 숲속에서 벌어진 어떤 상황에 요툰은 더욱 집중하는 듯했다.
그리고 에단은 보았다.
퍼어어어엉!
숲의 그늘을 뚫고 솟아오르는 흑빛의 드래곤.
그 위에 올라탄 남자와 여자.
‘제국의 용기사?’
에단이 눈가를 좁혔다.
남자의 금빛 갑주는 언뜻 제국의 용기사를 연상시켰다.
여자의 푸른색 로브는 제국 황실의 마법사와 비슷했다.
‘아니다.’
에단은 남녀의 복장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어 에단은 흑빛의 드래곤이 기다란 사슬을 입에 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슬의 끝엔 조금 전 보았던 사내와 마찬가지로 금빛 갑주를 입은 남자와, 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매달려 있었다.
에단은 다시 드래곤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에단으로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드래곤이었다.
덩치는 작다.
하지만 에단은 알 수 있었다.
저 자그만 덩치의 드래곤의 몸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세베스티아의 외침이 에단의 의문을 해소시켰다.
- 드라콘 이스메니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