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야만전사 (7)
제국 북부, 야만인들의 땅.
이곳은 아틸라로서도 전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제국인들이 말하는 북부 야만인의 땅 같은 건 아틸라의 머릿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아틸라가 설정한 제국 북부는 거인과 설인의 땅이었고.
이 거인과 설인들은 과거 요툰이었다.
이 세계가 중간계가 되기 전, 그러니까 ‘요툰헤임’이라 불렸던 시절 요툰들은 세계의 주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대한 격변이 일어났다.
쿠쿵. 쿠쿠쿠쿠쿵.
다른 세계에 있던 신들이 벌인 전쟁으로 인해, 그 세계와 요툰헤임을 잇는 통로가 생성된 것이다.
그 사건은 요툰헤임을 살아가던 요툰들에겐 재앙이었다.
통로를 통해 등장한 신과 천사의 시체들.
그것들은 요툰헤임의 세계를 완전히 다른 것으로 바꿔 버렸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과 천사의 시체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바로 ‘고대의 인간’이다.
고대의 인간은 주신 전쟁의 인과율로 인해 탄생한 특별한 종족.
고대인은 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짧은 생을 살아가는 필멸자였고.
신의 권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을 지닌 종족이었다.
고대의 인간은 그 특별한 힘을 가리켜 이렇게 불렀다.
‘마법.’
당시의 마법은 지금과는 달랐다.
오직 마법사만이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현시대과 달리.
고대의 인간은 전사, 마법사 할 것 없이 마법을 사용했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고대의 마법사는 자신의 마력을 형상화해 몸 밖으로 방출하는 것에 특화된 자들이고.
고대의 전사는 자신의 마력을 몸 안에 깃들여 육체 능력을 강화하는 것에 특화된 자들이었다.
고대의 인간들은 마법을 이용해 중간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툰과 격돌했다.
그오어어어어!
요툰들은 분노했다.
자신들의 고향인 요툰헤임이 다른 것으로 바뀌고, 심지어 자신들을 대체할 새로운 생명체가 태어난 것이다.
요툰들은 고대의 인간을 마구잡이로 사냥했다.
고대의 인간은 현시대의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종이었으나, 요툰은 더욱 강했다.
특히 요툰의 우두머리들은 신과 필적할 정도의 힘을 지닌 이들이었다.
- 한 놈도 남김없이 해치워라.
- 요툰헤임의 진정한 주인은 우리 요툰이다.
수많은 고대인이 요툰의 손에 죽었다.
이대로 고대의 인간은 멸종하는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들이 전쟁에 개입한 것이다.
이렇게 벌어진 것이 ‘주신 전쟁’에 이은 또 다른 거대한 전쟁인, ‘요툰 전쟁’이다.
전쟁에 참여한 신들은 요툰들이 대단히 강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신들은 주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즉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신들은 요툰이라는 강대한 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종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다.
키랴랴랴랴랴랴!
신들은 고대의 인간과, 드래곤과 함께 요툰과 싸웠다.
한편 최초의 요툰이자, 요툰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는 어떤 비밀스러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요툰헤임이 중간계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뀌기 전에, 요툰헤임의 일부를 다른 차원으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요툰의 왕은 직감했다.
중간계로 바뀐 요툰헤임은 더 이상 요툰들이 살아갈 터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이미 바뀌기 시작한 요툰헤임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또한 없다는 것을.
- 이대로라면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요툰은 요툰답게 살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을 증거하듯 요툰들의 힘은 점차 약해졌다.
요툰의 왕은 결단을 내렸다.
- 요툰은 요툰헤임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요툰의 왕은 요툰헤임 이전 계획을 진행시켰고, 마침내 다른 차원으로 옮기는 것에 성공했다.
그 무렵 신, 드래곤, 고대인의 연합군은 요툰들을 대륙의 북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요툰의 왕은 살아남은 요툰들과 함께 새로운 요툰헤임으로 이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연합군의 방해는 집요했다.
연합군은 요툰과, 요툰의 왕이 지닌 거대한 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요툰의 왕이 언젠가 요툰들과 함께 중간계로 돌아와 새로운 혼돈을 만들어 낼 것을 우려했다.
‘막아라! 요툰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해라!’
그러나 요툰의 왕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요툰의 왕은 자신이 지닌 거대한 힘의 일부를 거인과 설인들에게 부여하고, 그들을 앞세워 연합군을 가로막았다.
- 더 이상은 가지 못한다.
- 우리들이 요툰헤임의 방벽이다.
그들의 희생 덕에 요툰들은 이주에 성공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났다.
신들은 주신의 부름을 받고 천계로 돌아갔다.
그 즈음 천계는 신계와 악마계로 분리돼 있었고, ‘대악마’의 등장으로 인해 ‘악마 전쟁’의 서막이 열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주에 성공하지 못한 요툰들은 과거 지녔던 힘 대부분을 잃어버린 채, 여전히 대륙 북쪽에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그들의 왕 ‘이미르’가 자신들을 데리러 올 날을 기다리며.
그랬다.
‘이미르’는 최초의 요툰이자, 요툰의 왕.
그래서 울딘이 아틸라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이미르(Ymir)의 뜻일진대, 하룻밤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겠군. 뭐 뜻이 맞으면 함께 움직이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틸라는 레비아의 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당연히 요툰의 피를 이어받은 북부 야만인들의 힘도 강해진 거지.’
아틸라는 요툰이 얼마나 강력한 종족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요툰은 종(種)이 아니다.
‘요툰은 요툰헤임을 살아가던 모든 생명을 뜻한다.’
거인과 설인뿐 아니라 짐승이나 괴물의 형태를 한 여러 생명체들.
그것들 모두가 요툰이다.
그리고 요툰은 신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인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
그래서 아틸라는 경계했다.
‘정말로 북부 야만인들이 요툰의 피를 이어받았다면.’
아틸라가 지금껏 만나 왔던 대륙의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일 가능성이 충분했으니까.
게다가 아틸라는 이들이 우호적인 자들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대장으로 보이는 울딘의 관심을 끌었고, 심안을 발동해 울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에 성공했다.
- 이상한 자로군.
- 생김새를 보나 언어를 보나, 북부의 형제인 건 분명한데.
- 무언가 수상하다.
울딘의 머릿속을 읽으며 아틸라는 천천히 야영지로 걸어갔다.
- 왜 부족명을 밝히지 않는 거지?
- 붉은바위 부족에게 악감정이 있는 자인가.
- 아니다.
- 분명 이전엔 부족끼리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기가 있었지만.
- 제국과의 마찰 이후부터, 부족들은 해묵은 감정을 버리고 하나로 합쳐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북부 전사들은 제국이라는 공통된 적을 만났다.
그들은 제국의 강대함을 경험했고.
여러 갈래로 나뉜 부족의 힘을 하나로 합쳐야만, 제국이라는 공통된 적을 몰아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그렇다면 왜인가.
울딘은 아틸라가 부족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을 미심쩍게 여겼다.
그것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북부 전사들은 자신의 부족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낼 때, 자신의 이름보다 부족의 이름을 앞에 두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 북부의 전사는 모두 형제다.
형제는 형제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울딘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그렇다면 저자는.
- ‘변절자’인가.
‘변절자’라는 단어에 아틸라는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울딘이 자신을 변절자라 인정한다면, 야만인들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아틸라는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등 뒤의 야만인들을 토막 내 버리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아틸라는 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고, 그런 상황에서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추가로 아틸라는 요툰의 힘을 이어받았다는 북부 야만전사의 힘에 대해 알지 못했다.
“여기다.”
야영지에 도착한 아틸라는 동료들을 봤다.
예상대로 그들은 잠에서 깨어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펀치를 깨워 두었던 것이 주효했다.
“오밤중에 어디 산보라도 다녀오시는 거요?”
오토가 히죽 웃으며 물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예기로 가득했다.
조금 전까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던 얼간이는 그곳에 없었다.
카스피도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아틸라가 데려온 사내들을 봤다.
바토리만이 무심한 얼굴이었다.
울딘이 말했다.
“저들이 너의 동료라고?”
아틸라는 울딘의 목소리에서 엷은 동요를 느꼈다.
“그래. 우리는 용병 일을 하고 있다.”
태연하게 말한 아틸라가 바토리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모닥불 안에 장작을 던져 넣었다.
푸스스, 불티가 날리며 연기가 퍼져나갔다.
“앉지 않을 건가? 울딘.”
울딘은 앉지 않았다.
직전까지 웃는 표정을 유지하던 그의 얼굴이 무생물처럼 차가워졌다.
“역시 변절자였던 건가. 너는.”
“변절자?”
아틸라는 울딘의 머릿속을 주시했다.
그리고 울딘이 말하는 변절자의 정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북부를 버리고 제국과 손을 잡은 동족.’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울딘. 나는 제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럼 네 옆에 있는 자들은 뭐지? 분명 넌 저들을 동료라고 말했다.”
아틸라는 즉답할 수 없었다.
이들이 제국인이 아닌, 남부 왕국에서 건너온 자들이라 말할 수도 없었다.
또한 그렇게 말한다 한들 믿을 리도 없다.
한편 오토와 카스피는 아틸라와 울딘의 대화 내용을 쉬이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는 것만은 직감했다.
울딘이 도낏자루에 손을 얹었다.
그 순간 아틸라가 말했다.
“그거 뽑으면 넌 죽는다. 울딘.”
아틸라의 살기는 대단했다.
그 가공할 살기에 울딘은 저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다시 묻겠다 아틸라. 넌 어느 부족 출신의 전사인가.”
“말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넌 우리의 형제가 아니다.”
울딘이 도끼를 뽑았다.
그와 동시에 튕기듯 몸을 일으킨 아틸라가 울딘에게 쇄도했다.
아틸라의 움직임은 섬광처럼 빨랐다.
그의 흑철검이 울딘의 가슴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파캉!
날붙이가 부딪는 소음이 공기를 울렸다.
세상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 같던 아틸라의 공격을 울딘은 막아 냈다.
그 모습을 보며 오토는 경악했다.
조금 전 아틸라의 공격이 자신에게 날아왔다면, 저렇게 완벽하게 방어하진 못했을 것이다.
‘시, 시부럴! 보통내기들이 아니잖아!’
창! 차앙! 차아앙!
수많은 날붙이들이 주인의 손에 의해 꺼내어졌다.
오토, 카스피, 그리고 울딘의 곁에 서있던 야만전사들.
그들 모두가 짐승처럼 사나운 눈을 뜨고 각자의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울딘이 도끼에 힘을 주며 흑철검을 밀쳤다.
그러나 아틸라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울딘의 한쪽 입꼬리가 비릿하게 위를 향했다.
주문을 읊듯 말했다.
“이미르시여.”
그 순간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
울딘의 도낏날에 서늘한 광채가 어리는가 싶더니 마른하늘에서 낙뢰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