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야만전사 (6)
“으하하하! 이것 좀 보시오! 오늘도 물고기 풍년이오! 하하하하하!”
오토가 강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한 아름 안고 달려왔다.
오늘 아침, 케렌시아를 떠난 일행은 북으로의 이동을 잠시 보류하고 남서쪽으로 움직였다.
레비아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남서쪽의 깊은 숲에 요툰 하나가 등장했어.’
‘놈을 쓰러뜨려 줘. 내가 원하는 보답은 그거야.’
바토리는 아틸라에게 반드시 들어 주어야 하는 부탁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레비아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빚을 진 기분을 가지는 건 그리 탐탁지 않은 일이었고, 또 다른 이유는 요툰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기 때문이다.
해 질 무렵이 되어 일행은 숲속에 야영 장소를 잡았다.
그리고 마침 근처에 강이 있었기에, 오토가 실력 발휘를 하겠다며 달려갔었던 것.
“와. 제국은 물고기까지 큰가 봐 영주 나리.”
“무슨 소리요! 내가 큰 녀석만 골라서 잡은 거요!”
“종복 미물 새끼. 그래도 잘 하는 거 하나는 있는 게 신기하군.”
“넌 처먹지 마라 이 요망한 도마뱀아아아!”
“헤헤, 맛있다.”
일행은 모닥불 앞에서 생선구이로 배를 채우며 잡담을 나눴다.
술도 부족함 없이 있었다.
케렌시아의 영주 레비아는 상당량의 제국 금화와 말 두 필, 거기에 더해 맛 좋은 술까지 내주었으니까.
벌컥벌컥 술병을 들이켜며 오토가 말했다.
“캬아! 맛 좋다! 그런데 그 레비아라는 영주 말이요. 나이가 상당히 젊어 보이지 않았수?”
“맞아맞아.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던데? 부모를 일찍 여의어 젊은 나이에 영주가 된 건가?”
“그런 게 아닐 거다.”
아틸라의 말에 카스피가 물었다.
“응? 그럼 어떻게 된 건데?”
“저 음흉한 할망구한테나 물어봐.”
“음흉한 할망구라니. 말이 심하구나.”
“맞아. 바토리는 그 레비아라는 여자를 어떻게 아는 거야?”
바토리가 손에 든 생선을 후후 불며 말했다.
“너희도 듣지 않았더냐. 나의 오랜 친구라고.”
“응. 듣긴 했지. 근데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데?”
바토리가 생선 살을 한입 베어 물었다.
뜨겁다는 듯 입을 벌리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던 바토리가 잠시 후 이어 말했다.
“레비아는 관조자란다.”
정적이 일었다.
레비아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그것을 직감하고 있던 아틸라와 달리, 오토와 카스피는 그 사실에 크게 놀란 얼굴을 했다.
도롱뇽은 멀뚱멀뚱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제국에 들어선 이후 도롱뇽은 일행만 있는 상황이 아니면 펀치의 인벤토리 안에 갇혀 있었고, 그래서 레비아를 만나지 못했다.
오토가 소리쳤다.
“힉! 정말이요? 그 여자가 관조자라고?”
“오랜 친구라는 게 그런 의미였어? 그, 그럼 그 여자는 몇 살인데?”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관조자는 딱히 나이를 헤아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오토와 카스피는 오래전 만났던 파우스트의 관조자 ‘노이어’를 떠올렸다.
카스피는 노이어를 상대하며 처음으로 귀살의 힘을 각성했었다.
아무튼 그 이후 처음으로 다른 관조자를 만난 것이다.
“그, 그런데 관조자라면 불사의 육체를 지닌 엄청난 실력자 아니요? 왜 그 요툰인가 하는 괴물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우리에게 부탁한 거요?”
오토의 물음은 아틸라 역시도 궁금한 것이었다.
바토리가 말했다.
“물론 레비아는 강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허나 요툰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지.”
“그, 그럼 요툰이 관조자인 레비아보다도 강하다는 거야?”
“그건 나도 모른단다 카스피. 요툰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만큼 강한 정도에도 큰 차이가 있으니까.”
“흐에엣! 그 말은 요툰이란 녀석들 중엔 관조자보다 강한 녀석도 있다는 거잖아!”
“흐응. 말이 그렇게 되는구나.”
오물오물 생선을 씹던 바토리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레비아가 요툰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니란다.”
“무슨 이유인데?”
“레비아는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 말에 아틸라는 움찔했다.
지금의 바토리 역시 인간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에엥? 하지만 관조자는 불사의 몸을 가지고 있잖아. 그런데 어떻게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산다는 거야?”
“당연히 레비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단다. 다만 레비아는 그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인간처럼 살아가길 원하지. 그래서 제국 변방의 도시에서 홀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고 있는 거란다.”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레비아는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겉으로 보이는 나이를 속일 수 있다. 거기에 약간의 잡기술을 더해 여러 명의 인생을 살고 있는 거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레비아는 레비아의 어머니의 삶을 살았고,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삶도 살았다. 불멸의 삶을 지닌 레비아가 인간 세상에 녹아들기 위해 선택한 재미있는 방법이지.”
그제서야 오토와 카스피는 이해했다.
그러면서 무슨 이유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불사의 마법사가 그렇게 해서까지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려 하는 걸까, 생각했다.
불현듯 무언갈 떠올린 카스피가 물었다.
“그럼 레비아의 짝은? 관조자는 두 명씩 짝을 이루고 있다고 했잖아.”
“레비아의 짝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자세한 내용은 레비아만이 알고 있겠지. 아무튼 레비아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고, 그것이 지속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때마침 자신을 찾은 우리에게 요툰을 없애 달라 부탁한 거지. 제국에서 다른 용기사가 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테고, 또 살해된 용기사 사건도 해결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오토와 카스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한동안 잡담을 더 나눈 뒤 바토리에게 제국어를 배웠다.
특유의 억양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의 배움 속도는 빨랐다.
“흐응. 둘 다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정말이요? 바토리 아가씨!”
“그, 그럼 이제 제국인들 앞에서 막 말할 수 있는 거야?”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구나.”
“흐에엥…….”
식사를 마친 아틸라는 먼저 잠을 청했다.
한두 시간 자고 일어난 뒤 아침까지 불침번을 설 생각이었다.
잠시 후 아틸라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도 오토와 카스피는 제국어 공부에 열중이었다.
“앗. 아틸라 일어났다.”
졸음을 참고 있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한 카스피가 헤헤 웃으며 자리에 누웠다.
“나 잘게. 매번 불침번 고마워 아틸라.”
아틸라는 대충 손을 휘저으며 답했고, 카스피는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오토와 바토리도 자리에 누웠다.
두 사람도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아틸라는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불씨가 하늘 위에서 춤을 추었다.
아틸라는 멍하니 그것을 보며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평범한 인간의 삶을 갈망하는 레비아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의식의 흐름은 자연스레 후마이야의 왕이었던 테헤누트 하토르에게로 이어졌다.
불사의 삶을 살고 싶어 했던 테헤누트.
반면 불사의 육체를 지니고 있지만 평범한 인간의 삶을 원하는 레비아.
흥미로운 대비였다.
레비아 또한 한때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갈 향한 강한 갈망이 그녀를 불사의 관조자로 탈바꿈시켰을 것이다.
아틸라는 레비아가 인간이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아틸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각. 사각.
들풀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발소리.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한둘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틸라는 잠든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깨울까 생각하던 아틸라는 그냥 내버려 두는 쪽을 택했다.
발소리를 보아 다가오는 것은 인간이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쓰러뜨릴 자신이 있다.
“펀치. 일어나.”
아틸라는 펀치를 깨웠다.
펀치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동료들을 깨우라는 의지를 전달한 그가 발소리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머지않아 숲의 어둠을 뚫고 몇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중 하나가 제국어로 말했다.
“응? 이런 곳에서 형제를 만나다니.”
아틸라는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의 발달된 시력은 이미 한참 전부터 사내의 얼굴을 알아봤다.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
검은 머리에 검은 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검은색에 가까운 진갈색이었다.
아틸라의 완전한 검은색과는 달랐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쉬이 구분할 수 없는 차이이기도 했다.
사내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언어를 구사하며 말했다.
“반갑다 형제여. 난 붉은바위 부족의 울딘이다.”
그 순간 아틸라의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 북부 야만족의 공용어 패치가 완료되었습니다. ]
아틸라가 답하지 않자 울딘이 중얼거렸다.
“음? 설마 우리 말을 할 줄 모르는 건가?”
울딘의 눈빛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아틸라는 울딘과, 그 옆의 전사들을 봤다.
칼날처럼 벼려진 눈빛.
그들에게선 인간이라기보다는 맹수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맹수들의 시선이 천천히 아틸라를 훑었다.
아틸라가 입을 열었다.
“반갑군 형제여. 내 이름은 아틸라. 너희와 마찬가지로 북쪽에서 왔다.”
아틸라의 입에서 야만족의 언어가 흘러나오자 울딘의 표정이 풀어졌다.
옆에 있던 전사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울딘이 말했다.
“역시 우리의 형제였군. 그런데 이런 곳에서 혼자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동료들과 야영 중이었다. 그러던 중 발소리가 들려 이쪽으로 걸어왔지.”
“하하하. 귀가 무척 밝은 형제로군.”
그렇게 말한 울딘이 품에서 술병을 꺼냈다.
“한 모금 할 텐가? 제국령에선 흔히 구할 수 없는 밀주지.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아틸라는 사양 않고 그것을 받아 마셨다.
지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었고, 술맛도 매우 좋았다.
아틸라는 그 자리에서 술병을 비웠다.
울딘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하하! 술 깨나 하는 형제였군그래!”
울딘이 아틸라의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깨가 짓눌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었지만 상대는 아틸라였다.
무심한 얼굴로 아틸라가 말했다.
“밀주 더 없나?”
울딘이 다시금 큰 소리로 웃었다.
옆에 있던 전사들도 낄낄대며 웃었다.
다른 전사 하나가 아틸라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아틸라는 그 술병마저 단번에 비워 버렸다.
짝짝 손뼉을 치며 울딘이 물었다.
“아까도 말했듯 난 붉은바위 부족 출신이다. 이쪽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지. 아틸라. 넌 어느 부족에서 왔지?”
“굳이 밝히고 싶지 않군. 부족을 떠난 지 제법 오래되어 말이야.”
울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러나 이내 호방하게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멀리서 불빛을 보고 왔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이미르(Ymir)의 뜻일진대, 하룻밤 함께 보낼 수 있으면 좋겠군. 뭐 뜻이 맞으면 함께 움직이게 될지도 모르고 말이야.”
아틸라는 물끄러미 울딘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렇게 만난 것도 이미르의 뜻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