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64화 (264/425)

264. 야만전사 (4)

아틸라는 미래를 봤다.

아니, 그것이 미래가 맞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아틸라는 샤를과 멧돼지 사냥을 경쟁했던 날 샤를의 등 너머로 환각을 봤고, 그때의 감각은 마치 미래를 엿보는 듯했다.

스스슷. 스스스스슷.

샤를의 몸에서 활화산처럼 솟아나는 검은 마력.

그러나 샤를은 그때 검은 마력을 발현하지 않았다.

오히려 샤를이 머금었던 기운은 아레스의 금빛 신력이었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느꼈다.

육안을 통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첨예하게 곤두선 온몸의 감각이 발견한, 사실적이면서도 불온한 기운.

아틸라는 샤를의 듀란달이 검게 변하는 것을 봤다.

검게 변한 검신에서 머리를 드러낸 검은 뱀이 흑철검을 속박하는 광경을 봤다.

이어 샤를의 등 뒤로 발산한 검은 마력이 거대한 군세를 갖추는 광경까지도.

“무슨 생각을 그리하는 것이더냐.”

바토리의 목소리가 아틸라의 상념을 깨웠다.

아틸라는 몇 번 눈을 깜빡거렸다.

부옇던 시야가 선명해지며 질리도록 봤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놈의 풍경은 변하지도 않는군.”

제국의 땅은 광활했다.

땅덩어리가 넓은 만큼 노는 땅도 많았다.

관문도시를 벗어났던 수일 전부터 지금까지, 일행의 주위를 감싼 풍경은 크게 바뀌는 일이 없었다.

바토리의 말대로 길고도 긴 여행이 될 터였다.

“아틸라 님.”

“왜.”

“얼마나 더 이동해야 마을이 있는 거요?”

“글쎄.”

아틸라도 알 수 없었다.

그는 아벨의 머릿속에서 봤던 내용을 토대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아틸라 님. 남부에선 그렇게 모르는 것 하나 없다는 듯 잘난 척을 해대더니, 제국에선 우리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거요?”

“저 새끼가 요즘 안 맞았구만.”

“…….”

“쓰잘데없는 소리 지껄일 시간에 제국어 공부나 똑바로 해라. 우리 정체가 발각된다면 십중팔구는 너 때문일 거 같으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소!”

그렇게 외친 오토가 보란 듯이 카스피와 제국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카스피도 아틸라를 곁눈질하며 오토와의 대화에 열중했다.

하지만 아틸라가 보기에 둘의 제국어는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바토리가 속삭였다.

“아무리 가르쳐도 저 억양이 사라지질 않더구나.”

“그럼 계속 입다물게 시키는 수밖에.”

“가능하겠느냐.”

“아니.”

반쯤 포기한 듯한 아틸라의 말에 바토리가 웃었다.

“너야말로 제국어가 너무 유창한 것이 아니더냐. 북부 야만인 행세를 하고 있는 네가 그런 완벽한 제국어를 구사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지 모른단다.”

바토리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일부러 어눌하게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이 지방 사투리를 흉내 내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것처럼.

“너야말로 제국에 대해 아는 것 없냐. 그래도 명색이 관조자였는데.”

“나 역시 제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단다.”

싱긋 웃으며 바토리가 이어 말했다.

“난 남부 대륙 위주로 세상을 들여다보았느니라. 북쪽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 거군.”

“이것도 나름 정취가 있지 않더냐.”

“정취는 무슨.”

“목표를 향해 너무 서둘러 가려고만 하면 오히려 많은 걸 놓치는 법이란다. 자, 느껴 보려무나. 저 높다란 푸른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평원,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의 노랫소리를 말이다.”

바토리는 즐거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틸라는 바토리가 가리키는 것들을 물끄러미 봤다.

아름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여러 감정이 아틸라의 속에서 피어났다.

바토리의 말에 영향을 받은 오토와 카스피도 미소 띤 얼굴로 자연을 바라봤다.

“바토리 말대로야. 정말 좋다 영주 나리.”

“왠지 제국 하늘이 남부의 하늘보다 더욱 높고 푸른 것 같지 않소?”

“아하하하!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카스피가 웃긴다며 오토의 등을 때렸다.

펀치와 도롱뇽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두 마리 말이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발을 움직였다.

* * *

아틸라가 의도치 않게 제국으로 건너가 용기사에 대해 알게 되고, 하워드 스틸숄더의 행방을 찾으려 점점 더 북으로 이동하는 동안.

남부 대륙에서는 카르타고의 마수가 중간계의 목을 죄고 있었다.

우으으…….

키에에에엑…….

카르타고는 카스티야에서 쓰러뜨린 인간 병력을 언데드로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앞세워 ‘라든 왕국’을 공격했다.

언데드 병사의 수장을 맡은 건 그들과 마찬가지로 언데드가 된 카스티야의 왕자, 알폰소 카스티야였다.

‘쳐라. 살아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도륙하라.’

카르타고의 데스나이트 중 한 명으로 거듭난 알폰소는 본연의 뛰어났던 무력에 불사의 힘이 더해지며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했다.

그는 최전방에서 언데드 병사들을 이끌며 라든의 병력을 제거했고, 마침내 라든 왕국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들만의 힘은 아니었다.

카르타고의 다른 데스나이트들이 알폰소를 도와 가공할 활약을 퍼부었다.

그렇게 라든 왕국은 다른 왕국들의 변변한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카르타고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근처의 왕국들은 그 소식에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라든 왕국이 카르타고의 손에 넘어갔소.’

‘카스티야의 알폰소 왕자가 데스나이트로 변해 카르타고의 수하가 되었다고 하더군.’

그들은 중앙 마탑과 힘을 합쳐 카스티야 왕국을 포위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일시적인 동맹이었을 뿐, 그들은 자국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라든 왕국을 도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다.’

‘먼저 움직이는 자가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는 건 자명한 일.’

그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의 상황을 우려했다.

지금 카르타고의 군대와 전쟁을 벌였다간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훗날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주변 왕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한편으론 어리석고, 다른 한편으론 현명한 선택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사절단을 보내며 실행 없는 계획만을 반복적으로 내놓았다.

‘카르타고는 죽여도 죽지 않는 언데드 부대를 보유하고 있소.’

‘놈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다섯 배 이상이 전력이 필요하겠지.’

‘누구 선봉을 맡아 줄 왕국은 없는 거요?’

카스티야 근방의 왕국들이 그런 탁상공론만을 늘어놓고 있을 때,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세력도 있었다.

아인하르트의 군주 샤를 아인하르트는 나바라 왕국과 샹크리스 왕국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했다.

‘카르타고는 망자를 일으켜 점점 더 강대한 군대를 만들고 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겠지.’

어차피 이들은 불가침 조약을 맺은 사이였기에 연합군 조직은 빠르게 이뤄졌다.

연합군의 총지휘관은 당연히 샤를이었다.

그는 피핀과 제롬, 그리고 금사자 기사단을 이끌고 최전방에서 카르타고와 맞서기로 했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내주지. 카르타고.’

샤를은 얼마 전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오른팔의 힘을 완전히 회복한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번에야말로 카르타고를 쓰러뜨리겠다며 칼을 갈았다.

부지휘관은 키릴 크레센시아가 맡았다.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이여! 지금이야말로 사악한 언데드를 쓰러뜨리고 대륙의 평화에 이바지할 때입니다!’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성기사단은 샤를의 금사자 기사단 못지않은 대(對) 언데드 특화 부대였다.

나바라 왕국 역시 최정예 기사단을 소집해 연합군에 합류했다.

그렇게 그들은 샤를을 중심으로 대부대를 편재하고, 다가올 전투를 대비해 치밀한 준비를 이어 갔다.

* * *

“마을이오! 마을이 보이는 것 같소 아틸라 님!”

“으아아! 드디어 마을이다! 마을이라고 영주 나리!”

오토와 카스피가 말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카스피는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토는 신나게 술을 퍼마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귀 끝까지 입을 찢었다.

“들를 생각이더냐.”

바토리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 또한 카스피처럼 몸을 씻고 싶었다.

아틸라와 같은 말을 타고 이동하며 바토리는 청결에 더욱 신경을 썼다.

오토와 카스피가 꿀꺽 침을 삼키며 아틸라의 눈치를 봤다.

아틸라가 말했다.

“저 두 수다쟁이가 입만 확실히 다물고 있겠다면.”

“아이고 그 무슨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 거요 아틸라 님!”

“마, 맞아 아틸라! 저 마을을 떠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자 지금부터 시이작! 헙!”

“지, 지금부터 시작은 좀 빠르지 않소? 살쾡이 암살자!”

“아 뭐야 영주 나리! 벌써 말하면 어떡해! 으아아 이건 아니야 아틸라! 말은 영주 나리만 했어! 난 아직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지금 말하고 있는 건 대체 누군데!”

“아 쫌 영주 나리는 닥치고 있으라고!”

카스피가 오토의 목을 후려쳤다.

오토의 비명을 들으며 아틸라는 피식 웃었다.

술이 고픈 건 아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머지않아 일행은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성까지 갖춘 대도시에 가까웠다.

“말을 멈추고 신분을 밝혀라.”

무장한 경비병이 일행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바토리가 간단히 처리했다.

약간의 환술을 가미한 그녀의 잡기술은 경비병의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놓았고, 덕분에 아틸라는 투구도 벗지 않은 채 성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질투하지 말거라. 그저 조용히 성문을 통과하고 싶었단다.’

묻지도 않은 말을 바토리가 속삭였다.

아틸라는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커다란 도시였다.

아벨과 함께 머물렀던 관문도시보다도 넓었다.

“편안한 휴식처가 될 것 같구나.”

바토리의 말에 아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선 오토와 카스피가 애써 말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저 여관이 마음에 드는구나.”

일행은 바토리가 가리킨 여관으로 들어갔다.

주인장이 달려와 싹싹한 얼굴로 필요한 것을 물었다.

“방 두 개와 따뜻한 목욕물. 식사와 술도.”

선금을 치르며 아틸라는 수중의 돈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벨이 적은 돈을 주었다기보다는 아틸라가 너무 비싼 말을 구한 탓이 컸다.

게다가 제국의 술은 맛이 좋은 만큼 가격이 상당했다.

‘쯧. 결국 남부 대륙의 금화를 녹여 팔아야 하나.’

아틸라는 술병을 들고 온 주인장에게 금을 팔 수 있는 곳에 대해 물었다.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아틸라는 투구를 벗었다.

아틸라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인장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부, 북부의 야만전사!”

응?

아틸라는 의아한 얼굴로 주인장을 봤다.

아벨을 통해 알아본 바로, 제국인들은 제국에 녹아든 북부 야만인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관문도시에서도 아틸라를 경계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왜.’

주인장만이 아니었다.

식당에 있던 손님들이 비명을 지르며 여관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무장한 병사들이 여관 안으로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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