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야만전사 (3)
아틸라는 궁금했다.
용기사가 어떤 방식으로 용족과 교감하는 것인가에 대해.
지난 사흘간 아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아틸라가 느낀 건, 그가 지닌 용기사의 힘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었다.
‘용기사는 강압적인 방식으로 용족을 다스리지 않는다.’
용기사와 용족은 주종 관계가 아니다.
마치 동료와도 같다.
용기사는 페어링된 용족에게 자신의 의지를 불어넣고.
용족은 용기사의 의지를 받아들여 그것을 수행한다.
‘때때로 용족은 용기사의 의지를 거부한다.’
용족은 닥쳐온 상황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수행한다.
얼마 전 아벨의 드레이크 세로스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벨을 지키기 위해 홀로 수해를 돌파했을 때처럼.
바토리는 용기사와 용족의 페어링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흐응. 마치 너와 펀치처럼 말이더냐.’
적절한 예시다.
용족과 용기사의 관계는 아틸라와 펀치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물론 펀치는 아틸라의 의지를 거스른 적이 없다.
그러나 아틸라 역시 펀치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
아틸라와 편치는 주종 관계가 아닌 동료 관계다.
“무엇이 궁금하다는 거요.”
아벨의 되물음에 아틸라가 말했다.
“용인(龍人)의 힘. 처음 그 능력을 얻게 된 계기와, 사용 방법을 알고 싶군.”
아틸라는 아벨이 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틸라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심안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의외로 아벨은 질문의 답을 들려주었다.
“능력을 얻게 된 계기라. 그런 건 없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몸 안에서 무언가 개화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으니까.”
당시 아벨은 제국의 기사였다.
또한 아벨이 용인의 힘을 각성했을 땐 이미 제국이 용기사의 운용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래서 아벨은 자신이 용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별다른 의심 없이, 빠르게 받아들였다.
그는 상부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국 3군단 소속의 용기사가 되었다.
“페어링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건가. 자신에게 맞는 용족을 찾는 방법은?”
“인간에게 우호적인 성정을 지닌 용족들이 머무는 장소가 있소.”
아벨이 아틸라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단순했다.
제국의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것을 알고 있다.
다만 쉬쉬하고 있을 뿐.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용의 둥지 말이로군.”
“역시 당신도 알고 있었군. 그렇소. 우린 그곳을 용의 둥지라 부르지. 다만 장소만은 말해 줄 수 없소. 군의 기밀사항이니까.”
그 말에 아틸라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아무튼 용인으로 판명된 자는 용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친 뒤 용의 둥지로 이동하지. 그곳에서 자신과 페어링이 가능한 용족을 찾는 거요.”
“어떤 방식으로?”
아벨은 잠시 고민했다.
용의 둥지에서 처음 세로스를 만나고, 교감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것은 매우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머릿속으론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그래서 아벨은 아틸라에게 그때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제 알겠군.”
그러고는 이어 말했다.
“페어링 가능한 용족이 여럿 있을 수도 있나?”
아벨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건만, 아틸라는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뭐지?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뜻인가.’
아벨은 아틸라와 대화할 때마다 이런 묘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속을 간파당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그러나.
‘그럴 리 없지.’
아벨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로 했다.
“물론이오. 우수한 용인일수록 다양한 용족과 페어링이 가능하지. 그래서 용의 둥지를 찾은 용인들이 그곳을 샅샅이 뒤지며 가능한 많은 용족과 교감을 시도하는 거요.”
“보다 강한 용족과 페어링하기 위해 말인가.”
“그렇소. 반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페어링 가능한 용족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 그런 경우엔 자신에게 맞는 용족을 찾을 때까지 용인으로서의 훈련에 집중하게 되오.”
“페어링할 수 있는 용족은 한 번에 한 마리뿐인가.”
“그렇소. 용기사는 하나의 용족과 페어링하면 다른 용족과는 페어링할 수 없지.”
“이유를 알고 싶군.”
“용인이 용족과 페어링한다는 건 상당한 정신감응력이 필요한 일이오. 게다가 용족의 자아는 인간보다 월등하지. 그래서 대부분의 용기사가 페어링한 용족의 힘을 50퍼센트도 채 발휘하지 못하는 거요.”
용기사도 결국은 인간.
인간의 자아는 용족, 그중에서도 인간과 페어링이 가능한 ‘순혈 용족’의 자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용기사가 중위종 용족과 교감하는 데도 큰 어려움을 느낀다.
강철바위성을 급습했던 중상위종 용족인 암피테르의 용기사는 제국에선 최상급에 속하는 전력이다.
“당신은 제법 수준 높은 용기사로 보이는군. 아벨.”
아틸라의 말은 진심이었다.
아벨은 암피테르보다도 한 단계 위인 드레이크의 용기사.
아벨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뭐, 수준 낮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소.”
아벨은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드레이크의 용기사 중에서도 동조율이 80퍼센트를 넘어가는 실력자였으니까.
아틸라도 심안을 통해 그것을 봤다.
이후 아틸라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용기사에 대한 내용을 어느 정도 확보한 그는 제국을 여행하는 데 도움 될 정보를 추가로 얻어냈다.
한창 대화가 무르익어갈 때쯤 아벨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오?”
아틸라는 물론 황도를 향할 생각이었다.
제국의 힘이 이렇게까지 강력해진 이상, 오르피나의 마지막 성물 확보는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물론 바토리는 불사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성물을 모두 확보한다고 해도, 리베르를 구슬로 만든 아틸라의 의지가 더해지지 않는 이상 바토리가 불사의 몸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일단은 마지막 성물을 확보한다. 사용할지 말지는 차후 선택해도 될 문제.’
“이렇게 남쪽까지 내려왔으니, 다시 북쪽으로 이동할 생각이다.”
아틸라는 그 정도로만 답했다.
그는 아벨에게 자신의 행선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기로 했다.
* * *
이튿날 아침 아틸라 일행은 관문도시를 떠났다.
마침 북으로 움직일 일이 있다며 아벨이 동행 의사를 밝혔지만 아틸라가 거절했다.
물론 제국의 용기사인 아벨이 함께한다면 일행에겐 여러모로 도움이 될 테지만.
그렇게 되면 오토와 카스피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고, 아틸라는 두 사람이 그런 고문을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바토리에게 제국어를 배울 수도 없게 되지.’
게다가 아벨은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곁엔 제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호위격으로 따라붙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아벨과 작별했다.
아벨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 또 만날 일이 있길 바라오.”
아벨은 아틸라에게 동전 주머니를 건넸다.
“약소하지만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한 답례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아틸라는 수해 안에서 그동안 모아온 동전 주머니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제국에서는 남부 대륙의 동전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아틸라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만난다면 편한 말투를 썼으면 좋겠군 아벨.”
아벨이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그거 좋군 아틸라.”
아벨은 오토, 카스피, 바토리와도 인사를 나눴다.
아틸라 일행은 관문도시를 떠나는 길에 말 두 필을 구입했다.
그러고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말에 올라탔다.
당분간은 동전을 아낄 필요가 있다.
“와. 제국 말은 덩치가 큰데?”
도시를 벗어나 일행만 남게 되자마자 카스피가 한 말이었다.
그녀 말대로 제국의 말은 남부의 말보다 덩치가 컸다.
“말만 그런 게 아닌 것 같수. 집 크기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남부보다 모든 면에서 큰 것 같소.”
“하긴. 아까 아벨을 찾아온 병사들도 한 덩치 하던걸? 뭐 아틸라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헤헤.”
본래 추운 지역에 사는 생물일수록 덩치가 큰 법이다.
북부 제국은 남부에 비해 기온이 낮다.
게다가 아틸라는 그중에서도 덩치가 커다란 말로 골라 구입했다.
그래서 일행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두 사람씩 말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오토의 등에서 아저씨 냄새가 난다며 카스피가 투덜댔다.
“아, 아저씨 냄새라니! 깨끗이 씻었단 말이요!”
“흥. 아저씨 냄새는 씻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닌걸.”
“그게 무슨……!”
그러면서도 둘은 오랜만의 대화가 반가운지 쉴 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아틸라의 뒤에 앉은 바토리는 연신 즐거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말 두 필로 움직일 생각이더냐.”
“돈을 조금 더 마련할 때까지.”
“흐응. 그렇다면 계속 돈이 부족했으면 좋겠구나.”
아틸라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바토리에겐 순식간에 재물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펀치의 인벤토리 안에 든 아틸라의 동전 주머니.
그 안엔 남부 대륙의 금화가 있다.
그리고 바토리의 마법이라면, 그것을 녹여 금덩어리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바토리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아틸라 역시 남부 대륙의 금화를 녹여 금덩이로 만들 수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굳이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오토와 카스피를 붙여 놓아 둘의 목소리를 작게 만들 의도도 있었고, 또 바토리와 한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괜찮겠느냐.”
“뭐가.”
“네 생각대로 하워드 스틸숄더가 황도에 있다면 말이다. 그곳을 향하는 여정이 꽤나 길어지지 않겠느냐.”
아틸라는 바토리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현재 남부 대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카스티야 왕국을 점령한 카르타고와 놈의 데스나이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너도 걱정하지 않았더냐. 카르타고가 라일에게 무언가 수를 쓸 것 같다며 말이다.”
“걱정은 무슨.”
오토가 끼어들었다.
“라일이라면 괜찮을 거요. 그 작자 딱 봐도 쉽게 뒈질 것 같은 생김새가 아니었으니까.”
“그건 그래 영주 나리. 하지만 상대는 그 카르타고라고. 아무리 라일이라도 카르타고의 상대는 아니지.”
“그야 그렇지만 라일에겐 키릴이 있지 않수. 그 성기사 아가씨와 크레센시아 성기사들이 라일을 돕는다면 카르타고도 쉽게는 나서지 못할 거요. 게다가 남부 대륙엔 아직 샤를 그 친구가 있고, 슈시아도 있고, 지난번 라일이 말했던 마탑들도 있지 않소. 우리가 없어도 그들이 카르타고를 잘 막아 줄 거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카르타고는 이미 그들에게 뒈져 있을지도 모르지.”
오토가 쉬지 않고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상황에서 남부가 가장 염려되는 사람은 오토였다.
그는 나바라 왕국의 왕이니까.
아틸라는 생각했다.
‘오토의 말대로다. 남부엔 샤를과 키릴, 그리고 슈시아가 있다.’
아틸라는 5대 마탑의 실력보다, 그 세 사람이 지닌 무력과 세력을 더욱 믿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불안감이 일었다.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었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