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62화 (262/425)

262. 야만전사 (2)

관문 도시에 들어온 지 사흘이 지났다.

아벨의 동료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아벨은 스테로페스 작전에 관한 보고를 위해 도시를 떠났다.

‘보고를 마치는 대로 돌아오지.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군.’

아벨은 아틸라 일행의 무력을 높이 샀다.

그는 어떻게든 일행을 3군단에 소속시키고 싶어 했다.

늦은 밤, 아틸라와 오토의 방에 바토리와 카스피가 찾아왔다.

아틸라의 옆에 앉으며 바토리가 말했다.

“그래. 아벨이란 그 제국 기사에게선 좀 알아낸 것이 있었더냐.”

“글쎄.”

“알게 된 내용이 상당할 것 같은데 말이다. 우리에겐 알려 주지 않을 셈이더냐.”

아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토리가 새초롬히 눈을 흘겼다.

“흐응. 역시 그런 게로구나.”

“뭐가.”

바토리의 얼굴이 배시시 웃음을 머금었다.

“그런 게 있느니라.”

“뭐야. 뭔데.”

아틸라는 바토리의 저 웃음이 상당히 얄미워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벨에게 조금 웃음을 던져 주었다 하여 샘을 내는 것이 아니더냐.”

“그런 적 없다.”

“화내지 말거라. 아벨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연극이었느니라.”

“아, 그런 적 없다니까.”

“그래도 난 기쁘구나.”

바토리가 아틸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앉았다.

그러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얼굴을 보며 아틸라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한편에선 오토와 카스피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이고 살쾡이 암살자! 아주 그동안 입술이 착 달라붙어서 그냥 다시는 뗄 수 없을 줄 알았소!”

“내 말이! 아틸라는 정말 너무해. 우리한테는 벙어리처럼 입다물게 하고. 자기랑 바토리는 막 마음대로 말하고.”

“맞소! 뭐 들어보니 제국어도 나름 알아들을 만하지 않소? 처음엔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내가 머리가 좋아 그런가 금세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는 거 아니요!”

“영주 나리도? 나도나도! 귀가 갑자기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니까?”

둘은 그동안 입을 놀리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정말 쉴 새 없이 조잘댔다.

아틸라가 두 사람을 불렀다.

“오토. 카스피.”

아틸라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은 게 찔렸는지 카스피와 오토가 흠칫 놀라며 답했다.

“으, 응? 왜 아틸라?”

“왜, 왜 부르슈?”

“너희들, 오늘부터 바토리에게 제국어를 배워라.”

아틸라는 저 둘이 오랜 기간 말을 참는 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사달이 난다.

그전에 제국어를 가르쳐 두는 편이 좋다.

바토리가 물었다.

“내가 저 둘에게 제국어를 가르친다면, 넌 내게 무얼 해 줄 셈이더냐.”

“뭘. 뭘 또 해 달라고.”

바토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벨이란 제국 기사에게서 알아낸 사실을 우리에게도 알려 주지 않겠느냐.”

어차피 말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틸라는 그간 아벨과 대화하며 많은 정보를 획득했다.

아벨이 신중한 성격이기에 오히려 알아내기 쉬웠다.

그는 늘 말을 조심했고,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오갔다.

다시 말해 심안으로 구워 먹기 딱 좋은 타입.

아틸라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도 알다시피, 구 아스투리아 왕국에 메피스토펠레스의 공간 환술이 드리운 뒤 남부 대륙엔 대격변의 전조가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남부 대륙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었다.

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일 년여 전, 제국의 하늘에 균열이 일었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건 거대한 날개를 가진 파충류, 즉 용족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숫자의.

‘시, 신이시여……!’

‘용족이다! 용족이 나타났다!’

수많은 용족이 하늘을 찢으며 등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상 곳곳에서도 무익종 용족들이 나타났다.

“하늘과 지상의 이변은 한동안 지속됐다. 엄청난 수의 용족이 제국으로 난입했지. 다행인 점은 용족들이 인간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는 거다.”

그러나 모든 일에 예외는 있는 법.

일부 포악한 용족들은 인간을 습격했다.

놈들은 인간을 산 채로 씹어먹었다.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지닌 제국이지만 이렇게 많은 용족을 상대한 적은 없었기에, 그들의 대처는 완벽하지 못했다.

“이윽고 제국의 군주,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나섰다.”

황제는 대책 마련을 위해 군단장들과 수석 마법사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인간을 습격하는 용족은 상대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개체입니다.’

‘맞습니다. 용혈의 순도가 떨어지는 개체들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인간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용혈이라 하였는가.’

‘그렇습니다. 대개 순도 높은 용혈을 지닌 개체들이 지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저마다 이견은 있었지만.

공통된 내용은 어떤 미지의 힘에 의해 중간계로 넘어온 용족들이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거였다.

그중에서도 드래곤의 피를 적게 가진, 이른바 비순혈 용족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샤다이 황제는 각 군단에 정식으로 마법사를 편입시켰다.”

마법사가 합류된 부대는 보다 효율적으로 용족을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정도론 부족했다.

여전히 용족은 강했고, 제국군은 하루가 멀다 하고 죽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용기사다.”

용기사(龍騎士).

수개월 전부터 제국군에 편입된 특수 계급.

“용족들이 중간계에 출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족과 ‘페어링’할 수 있는 자들이 대륙 곳곳에서 나타났다.”

“엥? 페어링?”

“페어링이 뭔데 아틸라?”

“쉽게 말하자면, 한 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용족이 서로 짝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흐응. 마치 너와 펀치처럼 말이더냐.”

“뭐, 비슷하다. 아무튼 황제는 용족과 페어링할 수 있는 존재, 즉 ‘용인(龍人)’만이 이번 재앙을 이겨 낼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제국을 샅샅이 뒤져 용인들을 긁어모았지.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용인 대부분이 고도로 훈련된 기사 중에서 나타났다는 거다.”

멍하니 듣고 있던 오토가 불현듯 물었다.

“아니 근데 아틸라 님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요? 그 아벨이란 제국 기사와는 우리 모두 함께 있었는데.”

“맞아. 아벨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아틸라는 오토와 카스피의 물음에 굳이 답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에게 심안에 대해 알리고 싶지 않았다.

‘바토리는 어느 정도 눈치챈 것 같지만.’

아틸라가 아벨의 머릿속에서 읽은 내용은 상당히 파편적이었다.

아틸라는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추리를 적절히 가미했다.

물론 근거 있는 추리였기에 들어맞을 가능성은 높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제국의 힘이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거다. 물론 용계의 용족들이 나타나 제국의 군사력을 위협하고 있긴 하지. 하지만 전체 용족 중에서 인간을 적대하는 개체는 그리 많지 않고, 게다가 그 숫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제국은 용인을 전략적으로 육성해 용기사로 키우고, 인간을 습격하는 용족을 꾸준히 섬멸했다.

‘게다가.’

아틸라는 아벨의 머릿속에서 봤던 것을 떠올렸다.

자세한 것은 몰랐지만, 제국의 용기사 중엔 엄청나게 강력한 용족을 부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인간이 존재하는 듯했다.

‘실제로 제국에 해악을 끼치던 용족 대부분은 그들의 손에 박멸되고 있는 듯하다.’

그 용기사들에 대해 아벨은 자세히 아는 것이 없었다.

그들이 ‘마스터(Master)’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말고는.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국은 인간을 적대하는 모든 용족을 전멸시킬 테지. 게다가 제국은 강철바위성을 습격해 현(現)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라 불리는 하워드 스틸숄더와 그의 대장장이들을 납치했다. 기존의 기병대를 뛰어넘는 강력한 용기사 부대와, 드워프 장인이 만든 최강의 무구. 제국이 이 엄청난 힘을 어느 곳에 사용할 거 같나.”

오토의 눈이 커졌다.

“서, 설마 남부 대륙을?”

“그래. 하지만 그뿐만이 아닐 거다. 제국은 이제껏 없던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으니까.”

샤다이 황제는 야심이 많은 인간이다.

남부 대륙 정도로 만족할 리 없다.

“아마도 황제의 목적은 크리엘도라 대륙 전체를 제국령으로 만드는 것일 거다. 북부 야만족의 땅도, 그 너머의 미지의 세상도, 심지어 수해와 칼날 산맥까지도 포함되겠지.”

어쩌면 동쪽의 수해 너머 동방의 나라까지도.

“이제부터 어찌할 셈이더냐.”

“일단은 하워드 스틸숄더를 찾는다.”

아벨은 이번 스테로페스 해방 작전에 하콘을 직접 데려오지 않았다.

아틸라는 심안을 통해 그것을 확인했다.

‘아벨은 하콘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하워드의 행방 역시 알 수 없을 테지.’

그러나 아틸라는 현재 하콘이 있는 곳과, 암피테르 용기사에게 납치된 하워드가 이동할 장소를 짐작했다.

‘황도(皇都).’

아틸라의 구상대로라면, 샤다이 황제는 철두철미한 인물이다.

그는 드워프 대장장이의 기술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관리할 것이다.

‘자존심 강한 드워프 대장장이들에게 무기를 제작하게 하려면, 제국의 주인인 황제가 직접 나서야 했을 테지.’

그럼에도 아틸라는 의아함을 느꼈다.

드워프 대장장이는 본래 무구를 만드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남부 대륙에, 아니 강철바위산에 위협이 될지 모를 무구를 제국을 위해 만들고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뭐,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겠군.’

아틸라는 사흘 동안 아벨의 생각을 관찰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아벨의 내면이 상당히 바르고 순진하다는 것이었다.

‘아벨은 우리 일행을 줄곧 의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국의 수해는 철저하게 관리된다.

일개 용병이 수해를 가로막은 관문을 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벨은 아틸라 일행을 수해 한복판에서 만났다.

‘그러나 아벨은 우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

아벨은 아틸라 일행이 자신과 세로스의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꿈틀꿈틀 솟아나는 의심의 싹을 억지로 덮었다.

물론 그 마음이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모른다.

다만 아틸라는 아벨이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동안만큼은 철저히 이용할 생각이었다.

* * *

며칠 후 아벨이 돌아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기에 아틸라는 다소 경계했다.

아벨이 자신들에 대한 보고를 상부에 올렸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벨의 속내를 심안으로 들여다본 아틸라는 그것이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아벨은 아틸라 일행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았다.

다만 외곽부에서 심층부로 변화한 수해에 대한 이야기가 상부의 주목을 받았고, 그것에 대한 증언을 위해 며칠간 그곳에 머물렀던 것.

“떠났을 줄 알았는데, 기다려 주어 고맙군.”

아벨이 품 안에서 술병을 꺼내며 말했다.

아틸라는 그 모습이 라일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술맛은 아주 좋았다.

아틸라가 지금껏 마셔 본 술 중에 제일이었다.

부드럽게 풀어진 분위기 속에서 아벨이 물었다.

“그래. 며칠 동안 생각은 해봤소? 3군단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아틸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묻고 싶었던 것을 물었다.

“용기사의 힘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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