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제국 기사 (2)
“내려간다.”
아틸라가 말했다.
도롱뇽의 해방 스킬엔 제한 시간이 있다.
게다가 여기서 수해의 북쪽 경계는 그다지 멀지 않다.
이대로 도롱뇽을 타고 수해를 넘어간다면 어떤 위험이 발생할지 모른다.
‘제국군, 특히 암피테르를 탄 제국 기사와 맞닥뜨릴지도.’
아틸라는 암피테르를 운용하는 제국 기사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찌 됐건 그들은 까다로운 상대일 것이다.
도롱뇽은 성체로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공중전은 아틸라로서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제국에서 일행은 철저한 이방인이다.
남부 대륙에서 쌓아 온 명성이나 권력 같은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강한 경계의 대상일 것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결정했다.
‘지상으로 움직인다.’
등 너머는 보랏빛 수해로 가득했다.
이제 저곳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일단 제국에 발을 들이고, 남부로 돌아갈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하워드 스틸숄더의 행방도 알아봐야겠군.’
도롱뇽이 활짝 날개를 폈다.
그러고는 하강을 시작했다.
* * *
아벨은 제국 3군단 소속의 용기사였다.
그는 자신의 드레이크와 함께 정신없이 수해의 벽을 뚫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아벨은 중요한 임무를 받았다.
내용은 강철바위 드워프족의 왕자 ‘하콘 스틸숄더’의 혈액 샘플을 들고 남쪽 수해로 잠입해.
그곳에 갇힌 거인, 스테로페스를 해방시켜 강철바위산으로 향하도록 유도하는 것.
아벨은 동료 용기사 둘과 함께 수해 외곽부에 잠입했다.
이번 임무를 위해 제국은 남쪽 수해를 면밀히 조사했다.
물론 제국은 오래전부터 수해와 칼날 산맥, 그리고 제국 북부 야만인들의 땅을 넘어 죽음의 땅 근처까지도 조사를 해 왔다.
제국은 건국 이래 영토 확장의 꿈을 놓아 버린 적이 없었으니까.
아무튼 제국은 이번 작전을 위해 수개월간 수해 조사에 더욱 힘을 기울였고.
그렇게 찾은 적임자는.
마력보다 육체 능력을 주로 사용하는 용족인 무익종 드레이크의 용기사였다.
수해의 몬스터들이 마력에 강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외곽부 몬스터는 드레이크보다 강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대일 대결에서의 이야기였다.
다수의 몬스터를 한꺼번에 만난다면, 상황은 크게 위험해질 수 있다.
위험은 또 있었다.
‘용기사와 ‘페어링(Pairing)’된 용족은 본래 지녔던 힘 전부를 발휘할 수 없다.’
여기서 용기사의 자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수한 용기사일수록, 페어링 된 용족의 힘을 백 퍼센트 가까이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벨은 드레이크의 힘을 80퍼센트 이상 끌어낼 수 있는 우수한 용기사였다.
그래서 이번 작전의 지휘는 아벨이 맡았다.
‘최대한 몬스터를 피하며 이동한다. 키클롭스의 감옥은 대략 이 지점으로 추정된다. 쉬지 않고 움직인다면 12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겠지.’
아벨이 가리키는 지도의 위치를 보며 용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임무를 성공시키면 제국은 보다 강한 무기와 방어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것은 제국의 영토를 넓히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잊지 마라. 우리는 클라우디우스 제국의 자랑스러운 용기사들이다.’
용기사들의 눈에서 광채가 흘렀다.
아벨을 포함한 세 용기사가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제국 기사들의 충성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황제의 말 한마디에 스스럼없이 목숨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이다.
‘작전을 시작한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폐하 만세.’
‘클라우디우스 황제 폐하 만세.’
세 용기사는 그렇게 남쪽 수해에 진입했다.
아벨은 선두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살피며 방향을 잡았다.
수해 안은 어두웠다.
울창한 나무와, 빽빽하게 돋아난 나뭇잎 탓이었다.
제국의 분석력으로 만든 지도는 상당히 우수했다.
수 시간을 이동했지만 아벨과 용기사들은 단 두 마리의 몬스터만을 조우했을 뿐이다.
아벨은 감탄했다.
‘과연 대단하군.’
이번 작전을 위해 제국은 남쪽 수해 조사에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쏟아부었다.
수많은 조사병들이 수해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그들의 목숨을 대가로 알게 된 지식들은 아벨과 용기사들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왔다.
마침내 용기사들은 키클롭스의 감옥에 도달했다.
‘시작한다.’
아벨은 하콘의 혈액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눈과 귀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이 작전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잠시 후 용기사 하나가 외쳤다.
‘지금이다 아벨! 암피테르 용기사들의 습격이 시작됐어!’
아벨은 하콘의 피를 제단에 부었다.
공기가 진동했다.
흐르는 핏물이 제단 테두리의 음각 문자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그…….
바위 부딪는 소음을 내며 문이 열렸다.
아벨과 용기사들은 감옥 안에 포박된 스테로페스를 해방시켰다.
물론 위기는 있었다.
- 네이놈드으으을!
스테로페스는 감옥을 벗어나자마자 난리를 쳤다.
하지만 예측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쪽엔 세 명의 용기사와, 세 마리의 드레이크가 있다.
‘전투 개시!’
전투가 시작됐다.
스테로페스는 강했다.
드레이크 한 마리의 힘은 스테로페스를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세 마리였다.
결국 스테로페스는 세 마리 드레이크의 공격을 이겨 내지 못했다.
- 어떻게 용계의 용족들이 이곳에!
스테로페스는 자신의 장기인 전격 마법이 봉인됐다는 것을 알았다.
드레이크의 용혈이 마력 회로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스테로페스는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분노의 대상을 강철바위성으로 돌렸다.
- 신을 배신한 고약한 피조물들 같으니! 산산조각을 내주겠다!
스테로페스가 강철바위성으로 뛰어갔다.
아벨과 용기사들은 안도의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곧장 철수를 시작했다.
격렬한 전투 때문인지 몬스터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 저게 무슨!’
수해의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짙은 녹빛에서, 보랏빛으로.
들은 바 없는 돌발 상황이었지만 용기사들은 직감으로 알았다.
저건 심층부의 수해다.
‘달려!’
아벨은 결단을 내렸다.
그는 아직 색이 변하지 않은 방향으로 드레이크를 몰았다.
‘심층부 수해로 진입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은 정해진 경로로 움직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나머지 두 용기사도 아벨의 판단에 동의했다.
세 용기사는 보랏빛 수해를 피해, 미로를 뚫듯 녹빛 수해를 달렸다.
그러면서 그들은 느꼈다.
수해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대며 자신들을 주시하는 것을.
용기사들의 몸이 공포라는 감각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심층부에 덮이면 끝이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어!’
용기사들은 발악하듯 녹색 수풀을 찾아 달렸다.
외곽부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드레이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오억.
가르르르륵…….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용기사들의 시야가 녹빛과 보랏빛을 정신없이 오갔다.
엄습하는 피로가 용기사들의 정신을 혼탁하게 만들었다.
용기사들은 20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임무를 수행하는 내내 칼날처럼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벨의 정신이 흐릿해졌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크고 작은 그림자들이 그의 시야를 스쳤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수해 속에서 몬스터들의 살기가 수차례 덜미를 습격했다.
‘으, 으아아아악……!’
꿈결 같은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벨은 뒤를 돌아봤다.
동료 용기사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남은 용기사의 얼굴은 처참했다.
무어라 외치고 있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스스스스슷.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아벨은 길을 잃었다.
주위는 온통 보랏빛 숲이었다.
나침반이 기능하지 않았다.
자신은 혼자였다.
아벨은 드레이크를 멈춰 세웠다.
몬스터들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드레이크가 거친 숨을 뱉었다.
용족이라고 하여 체력이 무한정인 건 아니다.
아벨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솨아아아아아.
보랏빛으로 물든 수해는 완벽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저 멀리 흔들리는 잎새의 무리가 끝없이 펼쳐진 먹구름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아벨은 정신이 조금씩 회복하는 걸 느꼈다.
미친 듯한 허기가 찾아왔다.
아벨은 전투 식량을 꺼냈다.
“……너도 먹을래? 세로스.”
아벨이 자신의 드레이크, 세로스의 덜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세로스는 코에서 고로롱, 소리를 내며 아벨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제국의 용기사는 자신의 용족과 교감한다.
교감의 시작은 용족에게 이름을 부여하며 시작된다.
아벨은 전투 식량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물을 마셨다.
피로와 공포에 잠식됐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정말 무지막지한 거인이었어, 스테로페스라는 녀석은. 그렇지? 세로스.”
세로스는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벨은 세로스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아벨은 생각했다.
동료 용기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죽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
아벨은 등 뒤를 울리던 처절한 비명을 기억했다.
“강철바위성의 임무는 무사히 마무리됐을까.”
강철바위 대장장이와, 그들의 왕 하워드 스틸숄더를 납치하는 것이 이번 임무의 핵심이다.
만약 임무에 성공했다면, 제국은 지금까지 없었던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된다.
불현듯 졸음이 쏟아졌다.
아벨은 세로스의 등에 엎드려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위 풍경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보랏빛 수해는 보이지 않았다.
“이건……!”
죽은 듯이 잠들었다 깨어난 아벨의 머리는 맑았다.
아벨은 나침반을 확인했다.
나침반은 다시금 제대로 기능하고 있었다.
“돌아갈 수 있어……!”
아벨은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하며 북으로 달렸다.
세로스는 눈앞을 가로막는 나무들을 가차 없이 부수며 전진했다.
“왜 그래 세로스!”
아벨은 놀랐다.
세로스가 이상했다.
전에 없이 크게 흥분한 상태였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무슨……!’
이내 아벨은 자신과 달리 세로스가 체력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뻔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세로스는 심층부를 벗어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것이다.
‘세로스가……!’
아벨은 정신을 다잡았다.
지금의 세로스는 약화됐다.
이 상태라면 외곽부 몬스터를 만나도 위험할 수 있다.
게다가 세로스의 피로가 중첩된 탓에 페어링마저 약화됐다.
그러던 중 몬스터가 나타났다.
외곽부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로 알려진 오우거였다.
우거걱.
우거거거걱.
오우거는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다섯 마리에 달했다.
오우거를 본 세로스가 더욱 흥분했다.
아벨의 의지를 무시하며 오우거에게 달렸다.
“안 돼! 세로스!”
약화된 세로스는 다섯 오우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하나의 오우거는 죽였지만, 나머지 넷이 세로스의 몸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벨은 검을 들어 오우거를 공격했다.
그러나 아벨의 힘으로 쓰러뜨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오히려 반격당한 아벨의 몸이 뒤로 튕겨났다.
“크흐윽……!”
오우거의 주먹이 아벨을 향해 내리쳐졌다.
아벨은 절망했다.
그때였다.
콰드득!
자신을 향해 쇄도하던 오우거의 팔이 절단돼 날아갔다.
이어 시커먼 갑주를 입은 거구의 사내가 오우거의 면상을 방패로 후려쳤고, 그림처럼 이어진 칼질이 오우거의 목을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