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제국 기사 (1)
아틸라는 바토리를 번쩍 안아들고 달렸다.
오토와 카스피도 꽁무니가 빠져라 발을 움직였다.
“히익! 아, 아틸라 님! 저것들이 다 뭐요!”
“심층부다. 수해가 심층부로 변하고 있어.”
“흐에에에엣!”
아틸라는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이유가 뭘까.
무슨 이유로 외곽부 수해가 심층부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걸까.
“수해는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생각인 듯하구나.”
바토리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아틸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드레이크, 그리고 스테로페스.’
둘 모두 수해 외곽부의 몬스터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존재다.
그리고 수해의 습성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도 같다.
수해는 감지한 것이다.
‘외곽부의 위협을.’
그래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과 공생하는 몬스터들을 보호하기 위해 외곽부의 모습을 바꿨다.
다시는 드레이크와 스테로페스 같은 존재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아니, 어쩌면.’
이 또한 대격변의 전조 중 하나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유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아틸라 일행이 강한 인간들로 모여 있다 해도.
저 정도 숫자의 심층부 몬스터는 결코 상대할 수 없다.
무시무시한 발소리가 일행의 등 뒤를 울렸다.
가장 먼저 소리친 건 역시 오토였다.
“흐이이익! 사람 살려!”
어느새 주위는 밤처럼 어두웠다.
높아진 수해의 그늘이 완전히 지면을 덮었기 때문이다.
마치 머리 위 나뭇잎들이 구름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 아래를 십여 마리의 심층부 몬스터들이 달렸다.
놈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시무시하게 강해 보였다.
아니 실은 수해의 어둠 때문에 제대로 된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행은 알 수 있었다.
“어, 어떡해 아틸라!”
“우, 우리 모두 여기서 죽는 거요? 뭐라고 말 좀 해 보시오 아틸라 님!”
다행인 것은 놈들의 발이 빠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발이 느린 것이 아니라, 외곽부의 숲에 진입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일행은 아직은 외곽부인 녹색 숲을 달리고 있다.
그러나 영원히 안전하지는 못할 것이다.
심층부의 몬스터들뿐 아니라, 심층부로 변해 가는 보랏빛 수해마저 뒤를 쫓고 있기 때문이다.
“닥치고 달리기나 해 오토! 잡히는 순간 넌 걍 한 방에 끔살이다!”
“히이익!”
보랏빛 수해가 덜미까지 추격해 왔다.
바토리의 입에서 고대의 마법이 흘러나왔다.
아틸라는 순간 흠칫했지만, 이 상황에서 바토리가 마법을 사용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갑작스레 등장한 심층부 몬스터들 탓에 외곽부 몬스터는 모조리 종적을 감췄다.
어쩌면 심층부로 변한 수해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먹잇감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퍼퍼퍼퍼펑!
바토리의 손에서 불덩이들이 쏘아졌다.
그것이 심층부 몬스터들의 몸에 꽂혔다.
몬스터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놈들은 없는 듯했다.
바토리의 입술이 뒤틀리듯 위를 향했다.
“흐응. 그렇단 말이더냐.”
바토리의 왼팔에서 가공할 마력이 솟아났다.
이어 마멸의 칼날 두 개가 몬스터들에게 쏘아졌다.
츠커커커커컹!
이번엔 효과가 있었다.
마멸의 칼날은 몬스터들의 하체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이동 속도를 늦췄다.
바토리는 몬스터의 숨통을 끊는 것보다, 발 빠른 녀석들 위주로 골고루 피해를 입히는 쪽을 택했다.
쿵쿵쿵. 쿵쿵쿵쿵쿵.
바토리의 마력에 흥분한 심층부 몬스터들이 추가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일행이 향하는 북쪽 방면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심층부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틸라로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풍경이었다.
오토가 소리쳤다.
“아, 아틸라 님! 제발 바토리 아가씨 좀 말려 주쇼!”
“무슨 소릴 하는 것이더냐 철혈귀검아. 지금부터가 시작이니라.”
키이이잉.
바토리는 마멸의 칼날 하나를 추가로 꺼냈다.
그것이 코앞까지 달려온 몬스터의 발목을 잘랐다.
쿠웅! 몬스터가 쓰러졌고 마치 지진이라도 인 것처럼 지면이 울렸다.
당황한 오토는 그만 넘어질 뻔했다.
“히익! 제, 제발 그만 좀 해 주쇼 바토리 아가씨!”
그러나 그것에 아랑곳없이 바토리는 몬스터들을 도륙했다.
그 광경을 아틸라는 똑똑히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바토리의 실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심층부 몬스터보다도 무서운 할망구 같으니!’
카스피가 외쳤다.
“아, 아틸라! 정면을 봐!”
아틸라는 고개 돌려 정면을 봤다.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눈앞의 북쪽 숲마저 보랏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변화하는 수해의 속도가 결국 일행의 발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때였다.
“무얼 그리 걱정하는 것이냐.”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럽고 태연한 목소리.
아틸라는 고개를 내렸다.
품에 안긴 바토리가 빤히 자신을 올려 보고 있었다.
직전까지 몬스터들을 도륙하던 무시무시한 할망구는 그곳에 없었다.
바토리가 싱긋 웃었다.
“네겐 이 녀석이 있지 않더냐.”
바토리가 품에서 무언갈 꺼냈다.
파닥파닥 발버둥 치는 그것을 본 순간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바토리가 몬스터들을 최대한 상처 입히며, 일행의 뒤를 따라오게 만든 이유를.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그리고 시전했다.
[ 해방(解放) ]
파닥거리던 도롱뇽의 몸이 순식간에 거대해졌다.
아틸라는 바토리를 안은 채로 도롱뇽의 등에 올라탔다.
오토와 카스피도 서둘러 도롱뇽의 비늘에 매달렸다.
인간 넷에 펀치까지 올라탈 수 있을 정도로 도롱뇽의 몸체는 커다랬다.
해방의 권능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이다.
[ 해방의 권능이 ‘3레벨’로 진화합니다. ]
[ 환수, 도롱뇽의 봉인된 힘이 ‘3레벨’만큼 해방됩니다. ]
오토와 카스피가 반색하며 외쳤다.
“그, 그렇지! 도마뱀에겐 이 기술이 있었지!”
“어, 얼른 날아서 도망치자 아틸라!”
그러나 아틸라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펄럭!
날개를 휘둘러 허공으로 솟은 도롱뇽이 빙글 몸을 돌렸다.
눈앞의 풍경이 수많은 몬스터들로 바뀌었다.
오토와 카스피가 꽤액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커다란 소음에 묻혀 버렸다.
키랴랴랴랴랴랴!
흑염의 브레스가 상처 입은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마멸의 칼날에 당했던 많은 몬스터들이 그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물론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험치가 파티원에게 배분된 것을 확인했고, 자신의 레벨업을 느꼈으며, 칭찬을 바라는 고양이처럼 자신을 올려 보는 바토리를 봤다.
“이만하면 위험에 대한 대가로는 충분하지 않느냐.”
“그렇긴 하군.”
아틸라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도롱뇽에게 의지를 전달해 더 높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지상의 몬스터들은 성체가 된 도롱뇽을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카스피가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이, 이제 안전한 거지? 우리.”
“아니. 아직이다.”
아틸라는 방심하지 않았다.
“왜? 이대로 하늘 위로 솟아오르면 몬스터들도 우릴 못 잡는 거 아니야?”
“우린 하늘 위로 오르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그, 그게 무슨 말이요 아틸라 님.”
아틸라의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눈에 닿는 모든 것을 세밀히 살피고 있었다.
심층부 몬스터는 지상에서만 서식하는 것이 아니다.
구름처럼 솟아오른 나무 역시 놈들의 서식지다.
그래서 아틸라는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류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울창한 나뭇잎 사이에 숨은 몬스터들에게 기습당할 수 있다.
또 위험을 무릅쓰고 하늘로 오르는 데 성공한다 해도, 모든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심층부 위의 하늘은 결코 안전한 장소가 아니니까.
아틸라는 그것에 대해 일행에게 설명했다.
카스피가 놀라 소리쳤다.
“그,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아틸라는 웃었다.
도롱뇽은 지상의 몬스터들에게 잡히지 않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북으로 날고 있었다.
그리고 아틸라가 도롱뇽의 비행 방향을 북쪽으로 유지한 것엔 이유가 있었다.
스스스스슷!
눈앞이 일순 밝아지는가 싶더니 녹빛의 숲이 일행을 맞이했다.
물론 상대적으로 밝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일행은 어두운 수해 속을 날고 있었다.
다만 심층부에서, 외곽부로 건너왔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여, 여긴……!”
그 순간 도롱뇽이 활짝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솟았다.
눈부신 하늘이 일행을 반겼다.
높고 푸른 하늘이 이렇게나 안전한 장소라고 느껴지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오토가 두 팔을 번쩍 들며 소리쳤다.
“사, 살았다! 살았단 말이요 살쾡이 암살자!”
“으앙! 영주 나리!”
카스피가 눈물을 글썽이며 오토를 껴안았다.
그러나 이내 오토를 밀어내며 목을 후려쳤다.
“왜, 왜 갑자기 껴안고 난리야! 음흉한 영주 나리!”
“켁! 내, 내가 언제……!”
오토는 기침하느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아틸라는 뒤를 돌아봤다.
북쪽을 제외한 나머지 구역은 보랏빛 숲으로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래선 돌아갈 수 없겠구나.”
바토리의 속삭임이 귀를 울렸다.
그녀는 아틸라의 목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맞닿은 바토리의 몸이 엷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틸라는 생각했다.
심층부의 몬스터들이 내심 무서웠던 것일까.
아니면 이토록 높은 하늘이 두려운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당분간 남쪽을 향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바토리의 왕국, 사르데니야는 북부 대륙에 있다.
그리고 바토리는 왕국이 멸망한 후, 처음으로 북쪽 땅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 가정을 증거하듯 바토리의 눈이 먼 북쪽을 향했다.
손을 뻗었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손 내밀면 닿을 것만 같은 그곳을 향해.
“걱정 마라.”
들려온 목소리에 바토리는 고개를 돌렸다.
파아란 하늘 위를 수놓은 길고 검은 머리카락.
그 안에서 빛나는 검은 눈이 자신을 똑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이뤄 줄 테니까.”
바토리의 눈이 흔들렸다.
두 사람은 그렇게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저만치 북쪽 지면을 가리키며 오토가 크게 소리쳤기 때문이다.
“아, 아틸라 님! 저거 그 드레이크 아니요!”
아틸라는 오토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봤다.
녹빛으로 펼쳐진 수해에 기다란 가르마가 펼쳐져 있었고, 그 속에서 드레이크로 보이는 녀석이 나무들을 부수며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저 녀석인가? 스테로페스의 감옥을 열었던 건.’
그러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테로페스가 감옥을 탈출한 지 만 하루 가까이 지났다.
아직도 저런 곳을 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해의 노여움을 산 것이 아니겠느냐.”
바토리 역시 수해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여기는 듯했다.
어쩌면 그건 진실일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이 수백조 마리에 달하는 균과 공생하듯.
수해는 몬스터라는 이름의 균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롱뇽이 말했다.
- 드레이크의 등 위에 무장한 인간이 타고 있다. 암피테르에게서 발견한 것과 비슷한 가죽끈도 보이는군.
카스피가 외쳤다.
“서, 설마 제국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