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 제국의 무기 (2)
수해엔 여러 몬스터가 서식한다.
그리고 몬스터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한다.
외곽부 몬스터들은 심층부로 진입하지 않고, 심층부 몬스터들은 어지간해선 외곽부를 찾지 않는다.
물론 수해 가장 깊숙한 곳은 최심부라 불리고 있지만.
그곳은 칼날 산맥 상단부와 마찬가지로, 아틸라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또한 수해의 몬스터들은 외곽부, 심층부, 최심부 경계와는 다른, 각자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남쪽 수해 외곽부 최강의 포식자 트롤은, 북쪽 수해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
중부 지역에서 자주 출몰하는 오크 역시 마찬가지.
놈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함부로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중부 지역 수해에도 트롤은 존재하고, 마찬가지로 남쪽에도 오크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강철바위산 근처의 수해 외곽부에는.
트롤과 오크 같은, 이곳만의 최상위 포식자가 있다.
“흐에에엣! 뭐, 뭐가 저렇게 커!”
그 포식자의 이름은 바로.
“오우거.”
우거걱. 우거거거걱.
수해의 그늘 속에서 오우거들이 등장했다.
눈에 보이는 숫자는 여섯.
그러나 추가로 들려오는 발소리들로 보아, 전부 도착하진 않은 듯했다.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시작부터 오우거라니. 운이 좋군.”
“우, 운이 좋긴 뭐가 좋단 말이요! 딱 봐도 엄청 세 보이는데!”
오토가 호들갑을 떨만 했다.
오우거는 스테로페스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덩치가 컸다.
트롤보다도 컸다.
아틸라가 콰앙! 검과 방패를 맞부딪쳤다.
‘어차피 목적은 레벨업이다. 강한 놈을 상대하는 편이 나아.’
게다가 일행은 이전에 황금바위산의 수해를 찾았을 때보다 강해졌다.
거기에 더해 칼날 산맥 중턱의 괴수들까지 쓰러뜨렸다.
물론 그땐 샤를, 키릴, 슈시아라는 엄청난 강자들이 동료로 있긴 했지만.
‘여긴 수해 외곽부다. 산맥 중턱의 괴수보다는 약한 놈들뿐이다.’
아틸라는 자신했다.
“오토! 카스피! 한 마리씩 맡아!”
아틸라가 돌진했다.
“아, 알겠수!”
“알았어 아틸라!”
오토와 카스피도 각자의 타깃을 향해 달렸다.
“도롱뇽! 펀치!”
“알았다! 야만 미물!”
끼아옹!
도롱뇽과 펀치도 달렸다.
누가 어떤 오우거를 맡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생사를 오가며 호흡을 맞췄다.
전투 중 서로의 눈빛만 봐도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콰드득!
아틸라는 가장 덩치가 큰 오우거의 옆구리에 흑철검을 꽂았다.
그러고는 근처에 있던 오우거들을 모았다.
아틸라가 상대해야 할 오우거는 모두 네 마리였다.
[ 휩쓸기 ]
파카카캉!
휘둘러진 흑철검이 네 마리 오우거를 동시에 베었다.
그러나 오우거의 피부는 질겼고, 그 정도로는 치명타가 되지 못했다.
아틸라는 침착을 유지했다.
서두르면 안 된다.
지금의 아틸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네 마리의 오우거를 동시에 상대해 쓰러뜨리는 건 위험한 일이다.’
설령 쓰러뜨릴 수 있다 해도, 많은 체력이 소모될 것이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그래서는 다음 전투가 위험해진다.
몬스터들과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카스피가 올 때까지 버틴다.’
그것이 아틸라의 계획이었다.
자신과 오토는 탱커로서의 역할을 한다.
숨통을 끊는 건 딜러인 카스피, 펀치, 그리고 이번 레벨업의 주된 이유인 도롱뇽의 몫이다.
동료들의 전투를 보며 바토리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내 호위가 없는 것이더냐.”
사실 바토리는 웬만해선 호위가 필요치 않다.
그동안 아틸라가 바토리의 호위를 붙인 이유는 그녀의 안전을 염려한 까닭도 있었지만.
적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가할 수 없는 동료를 바토리 곁으로 보내, 오히려 보호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이제 강해졌다.
오토도, 펀치도, 수해 외곽부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상당한 타격을 입힐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틸라가 바토리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다.
“내 근처로 와라! 바토리!”
이름을 불러 준 것과, 자신을 곁으로 오게 한 것이 그저 좋았는지 바토리는 총총걸음으로 아틸라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라도 위험에 빠진 동료들에게 잡기술로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흐응. 잘들 싸우는구나.”
바토리는 여유 있는 얼굴로 동료들을 바라봤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해 몬스터를 불러들인 이유도, 동료들을 믿었기 때문이다.
‘카스피는 이제 하싸씬의 그 어떤 마스터에게도 지지 않을 실력자가 되었구나. 물론 셰이카에 비한다면 아직 부족함이 있지만.’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
바토리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다.
셰이카는 귀살의 일족 중에서도 압도적인 실력자였고, 스스로의 손으로 일족을 멸망시키며 더욱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초특급의 경지를 넘어선, 그야말로 인간 같지도 않은 무시무시한 실력자.
불사의 몸을 지닌 관조자들마저 셰이카를 두려워했다.
‘셰이카 라딤.’
‘저자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주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유는 셰이카가 수많은 관조자들의 숨통을 끊어 버린 화려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하싸씬의 암부는 어느 관조자 파벌과 전투를 벌인 적이 있다.
그리고 셰이카의 등장으로, 그 관조자 파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셰이카는 강하다.
먼 옛날의 카르타고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런 대단한 강자인 셰이카가 승천 후보자가 될 수 없었던 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신의 주목을 받을 정도의 뛰어난 영웅이 자신의 대의를 위해 적을 쓰러뜨리면 ‘신격(神格)’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인 격은 영웅의 힘을 점점 더 강력하게 만들며.’
‘마침내 그것을 한계까지 쌓아올린 자는 ‘승천(昇天)’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셰이카의 ‘대의’는 신들의 이상과 맞지 않았다.
셰이카는 자신의 일족을 멸망시켰고, 그것은 신들에게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그래서 신들은 셰이카를 외면했다.
셰이카는 승천의 후보자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셰이카에게 관심을 갖는 존재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신의 외면을 받은 이에게 더욱 관심을 갖는 존재들이 있다.
그것은 악마였다.
콰드득!
카스피의 귀수가 오우거의 목을 잘랐다.
거대화한 펀치가 오우거를 확실히 붙잡고 있었던 덕이다.
“잘했어 펀치!”
우어어어!
펀치가 가슴을 두드리며 화답했다.
쓰러진 오우거의 가슴에 직립한 도롱뇽이 앞발을 탁탁 털며 말했다.
“별것도 아닌 미물 새끼가 뒤질라고. 칵!”
그 모습을 보며 카스피는 웃었다.
오토의 오우거를 향해 달렸다.
전투에 돌입하자 두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나 왔어! 영주 나리!”
“빠, 빨리 좀 오쇼! 나 지금 죽을 위기에 처한 거 안 보이슈!”
“엄살은. 잘만 싸우고 있으면서.”
카스피의 말대로 오토는 잘 싸우고 있었다.
오우거를 상대로 일대일의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전사는 온 대륙을 뒤져도 흔치 않다.
끊임없이 성장하는 오토를 보며 바토리도 내심 놀란 얼굴을 했다.
오토는 싸우면 싸울수록 강해졌다.
아틸라나 샤를과는 다른 결의 성장세였다.
마치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해 나아가는 듯했다.
‘대단한 아이로구나. 철혈귀검도.’
카스피, 펀치, 도롱뇽이 가세하자 오토가 맡았던 오우거는 맥도 못 추고 쓰러졌다.
오토와 카스피가 시시덕대며 아틸라에게 달렸다.
둘은 서로 엄지를 추켜올리며 히죽 웃기까지 했다.
그 사이 아틸라는 오우거 하나를 쓰러뜨렸다.
탱커의 역할만 수행하려 했지만, 그의 몸에 흐르는 야만전사의 피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리고 셋만 남은 오우거는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파캉! 팡! 촤르르륵! 퍼어엉!
오우거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쉴 틈도 없이 또 다른 오우거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일행은 비슷한 방법으로 놈들을 사냥했다.
마침내 일행이 자리에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무렵, 주위에 널브러진 오우거 시체는 무려 열셋이었다.
* * *
수해는 강한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행이 감옥을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풀과 나무는 점점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니, 대체 하루 만에 이렇게 회복할 수가 있는 거요?”
자세한 이유는 아틸라도 몰랐다.
그저 수해의 풀리지 않는 신비 중 하나라는 것 말고는.
“어째 몬스터가 더는 나타나지 않는 것 같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수차례 추가 몬스터를 만났다.
그러나 일행은 큰 어려움 없이 놈들을 소탕했다.
성과도 제법 있었다.
오토와 카스피가 한 단계씩 레벨업했고, 펀치는 두 단계, 도롱뇽은 무려 세 단계나 레벨업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도롱뇽의 해방과 포식이 나란히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었다.
[ 해방의 권능이 ‘3레벨’로 진화합니다. ]
[ 환수, 도롱뇽의 봉인된 힘이 ‘3레벨’만큼 해방됩니다. ]
[ 포식의 권능이 ‘20레벨’만큼 개화합니다. ]
[ 이제 동족 중에서, 중위종에 해당하는 대상에게도 스킬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
더욱 강력해진 해방은 물론이고, 중하위종까지 포식할 수 있었던 도롱뇽이 이제는 중위종 용족도 포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만족하지 않았다.
도롱뇽의 스킬은 추가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래야 제국을 상대하기 더욱 수월해질 테니까.’
의외로 바토리도 한 단계 레벨업을 했다.
오토나 카스피와 달리, 바토리는 레벨업할 때의 현상을 선명하게 자각하는 듯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몸 안의 활력을 감각하는 그녀의 모습은 일순 아찔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아틸라는 저도 모르게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봤고, 새로촘히 눈을 뜬 바토리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급히 시선을 돌렸다.
‘흐응. 뭘 그리도 뜨거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더냐.’
‘내가 언제.’
아틸라는 레벨업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도 다음 레벨까지의 경험치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일행은 마침내 스테로페스의 감옥에 도달했다.
“문이 열려 있구나.”
열려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스테로페스의 영향인지, 문 근처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져 있었다.
“급하게도 뛰어나온 모양이구나.”
아틸라는 안으로 들어가기 앞서 주변을 살폈다.
분명 제국군은 하워드의 아들인 하콘의 피를 이용해 문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하콘을 여기까지 데려왔었다는 건데.’
아틸라는 스테로페스의 몸에서 봤던 상처를 떠올렸다.
그건 암피테르가 낼 수 있을만한 상처가 아니다.
낙하시킨 돌덩이로도 그 정도의 상처는 낼 수 없다.
‘수해의 복원력 때문에 흔적이 상당히 지워졌군.’
아틸라는 세밀히 주위를 탐색했고, 머지않아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다.
감옥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건?’
짐승의 발자국.
게다가 평범한 짐승이 아니다.
도롱뇽이 말했다.
“엥? 야만 미물. 이거 드레이크 발자국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