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51화 (251/425)

251. 제국 (1)

소설 패영전에서 제국이 직접적으로 등장한 적은 없다.

그러나 버서커 카르타고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에 대한 이야기는 흘러가듯 몇 차례 정도 언급이 됐고.

아틸라의 머릿속에도 대략적인 세계관 정도는 잡혀 있는 상태다.

아직도 여러 왕국으로 쪼개져 서로를 견제 중인 남부 대륙과 달리.

북부 대륙은 일찍이 위대한 영웅이 출현해, 당시 왕국들을 통합하며 대제국을 세웠다.

‘황제 폐하 만세!’

‘클라우디우스 황제 폐하 만세!’

그러나 제국은 남부를 침략해 더욱 영토를 넓히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것에 힘을 기울이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북부와 남부 사이의 상당 부분을 수해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대륙이 북부와 남부로 나뉘게 된 것엔 지리적 요인도 크게 한몫을 했던 것.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의 황제들은 고민했다.

‘수해의 몬스터는 강력하다.’

‘게다가 수해를 피해 칠 수 있는 남부 지역은 제한적.’

‘그래서는 제국의 저력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없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지닌 제국의 입장에서는 전선을 넓게 펼치는 편이 유리하다.

그런데 수해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고, 그 덕에 남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으로 제국의 공세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복하려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황제들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남벌(南伐)을 진행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남부 대륙 공략은 후대의 황제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지금은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발달된 문명은 결국 남부로 통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제국을 이끄는 황제는 ‘샤다이 클라우디우스’.

전 세대의 황제들에 비해 남벌의 의지가 대단히 강한 자다.

그는 그간 발전시킨 문명으로 남부를 공략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또 실행에 옮겼다.

그 방안에 대한 것은 아틸라도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생각했다.

‘사육된 용족, 암피테르.’

이 또한 샤다이 황제가 방안한 비책 중 하나인 것은 아닐까.

“제국에서 내려온 용족일 가능성이 있다.”

아틸라의 발언에 오토와 카스피가 놀란 눈을 떴다.

바토리가 말했다.

“제국이라 하였느냐.”

“이 암피테르는 사육됐다. 그리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암피테르를 사육할 수 있는 남부의 지성 종족은 떠오르지 않는군.”

“과연. 그래서 제국을 떠올린 것이더냐.”

바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부 대륙을 살아가는 그 어떤 종족도 ‘순혈 용족’인 암피테르를 사육할 수는 없겠지.”

“순혈 용족이 뭔데?”

카스피의 물음에 바토리가 답했다.

“드래곤의 피를 지닌 특별한 용족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카스피.”

“엥? 드래곤의 피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그냥 드래곤 아니야?”

“케헷헷헷헤! 그건 아니지 살쾡이 미물.”

“그럼 뭔데?”

“용혈(龍血)을 지녔다고 다 똑같은 드래곤은 아니라는 거다.”

오토가 물었다.

“저, 저기 근데 아틸라 님은 이미 저 요망한 도마뱀을 사육하고 있지 않수?”

“뭐라고? 저 하등한 종복 미물 새끼가! 카아아아앗!”

발끈한 도롱뇽이 오토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앞발로 마구 할퀴기 시작했다.

“감히 이몸에게 사육이라고? 난 그저 야만 미물이 너무 약하기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뿐이다!”

“히익! 미친 도마뱀이 또 날 공격한다아아!”

카스피가 끼어들었다.

“그, 그치만 영주 나리 말도 맞는 거 아니야? 아틸라는 도롱뇽을 동료로 만들었잖아. 실제로 전투 때 타고 다니기도 했고. 게다가 도롱뇽은 암피테르보다 강한 드래곤, 그중에서도 드라코니안이라면서.”

이때다 싶었는지 오토가 나섰다.

“어, 어디 그뿐인 줄 아쇼! 아틸라 님 말고도 버서커 카르타고가 있지 않소! 그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를 군마처럼 타고 다니는 망자 새끼 말이요!”

“시끄러 이 종복 미물 새끼야! 오늘 너 죽고 나 산다!”

“히익! 사람 살려!”

아틸라는 오토의 얼굴에서 도롱뇽을 떼어냈다.

도롱뇽이 발악하며 소리쳤다.

“이거 놔! 야만 미물 새끼! 이거 안 놔!”

무심한 목소리로 아틸라가 말했다.

“나와 카르타고의 방식은 이것과는 다르다.”

“뭐, 뭐가 다르단 말이요!”

“이렇게.”

아틸라는 도롱뇽에게 정신 교육을 시전했다.

꾸에엑! 도롱뇽이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오토와 카스피가 꿀꺽, 침을 삼켰다.

“결코 사육될 수 없는 용족이 누군가에게 사육됐다. 만약 그 배후가 제국이 맞는다면, 머지않아 남부 대륙엔 또 다른 피바람이 불어닥칠지도 모르겠군.”

아틸라는 생각했다.

카스티야를 점령한 카르타고.

아인하르트 왕국.

5대 마탑.

그리고 제국.

라일이 말했던 세력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군.’

다가올 대격변에 제국까지 끼어든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테니까.

‘고민해 봐야 달라질 것은 없다.’

아틸라는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동쪽으로 이동한다.”

“이번엔 어디로 갈 셈이더냐.”

“강철바위산.”

탈리 왕국에서 동쪽으로 며칠 이동하면 강철바위산, 즉 강철바위 드워프의 마을이 있다.

바토리가 물었다.

“흐응. 난쟁이들의 마을에서 무얼 할 셈이더냐.”

아틸라의 눈이 빛났다.

“오르피나의 마지막 성물을 찾는다.”

* * *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올랐다.

무심한 검은 눈 한 쌍이 그것을 바라봤다.

먼저 두어 시간 눈을 붙인 아틸라는 홀로 불침번을 서며 술병을 들이켜고 있었다.

‘평온하군.’

그는 이 시간이 좋았다.

흔들리는 불꽃을 보며, 멍하니 나무 타는 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침대에서 자는 게 더 좋긴 하지만.’

아틸라는 마을에 들르는 것보다 야영을 선택했다.

이유는 윅시프 백작의 별장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대참사가 벌어졌다.’

윅시프 백작은 물론이고, 왕국 차원에서 조사를 벌일지도 모른다.

아틸라는 귀찮은 일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그렇고 일곱 마리라.’

도롱뇽이 파악한 암피테르의 숫자는 일곱이었다.

시체가 된 암피테르를 합하면 여덟.

약간의 오차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암피테르는 10마리 전후라 생각하면 될 듯했다.

아틸라는 암피테르의 예상 개체 수에서 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열 마리.’

군대의 1개 분대에 해당되는 숫자다.

“무슨 생각을 그리하고 있는 것이더냐.”

아틸라는 옆을 돌아봤다.

“안 잤냐?”

“자다 깼느니라. 베개가 영 불편하구나.”

“강철바위산에 도착하면 드워프에게 하나 빼앗던가.”

바토리는 황금바위 드워프의 베개를 좋아했었다.

“……그런 말이 아니지 않느냐.”

“또 팔베개 운운할 거면 그만두고.”

“흐응. 들켰구나.”

바토리가 얼굴을 붉히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엉덩이를 살살 움직여 아틸라 옆으로 왔다.

“왜 오는데.”

“날이 춥구나.”

바토리는 아틸라의 팔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머리칼이 아틸라의 살갗을 기분 좋게 간질였다.

“제국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그래.”

“걱정이 되는 것이더냐.”

아틸라는 패영전 세계에 진입하고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사도, 그리고 카르타고.

이들을 제외한다면, 패영전 세계에서 돌아가는 일은 모두 아틸라의 손바닥 안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제국은 다르다.

게다가.

‘대륙엔 대격변이 예정돼 있다.’

오래전 아틸라는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소설 패영전의 마지막 회차, 444화.

남부 대륙을 통일한 샤를이 대제국에게 선전포고하는 내용.

‘나는 크리엘도라 대륙 최초의 통일 제국을 세울 것이다.’

아틸라는 생각했었다.

자신이 그때까지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고.

그로부터 3년이 흘렀다.

아틸라의 등장으로 패영전 역사는 틀어지기 시작해,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

샤를은 아스투리아, 후마이야, 노르드, 발루아를 차례로 점령하며 4개 왕국을 통합한 왕이 되었지만.

이후엔 나바라, 샹크리스와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게다가 카르타고는 카스티야 왕국을 점령해 자신의 거점으로 삼았다.’

그에 앞서 카르타고는 검은 보석의 힘으로 적마탑을 무너뜨렸고.

나바라 왕국을 혼란에 빠뜨렸으며.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를 타락시켜 자신의 환수로 삼았다.

‘그 인과로 수오미 왕국의 대호수가 오염됐다.’

소설대로라면 지금쯤, 샤를은 남부 왕국 통일을 코앞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정섬으로 출발해야 한다.

지금의 아틸라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

아니, 아틸라는 이런 생각마저 했다.

내가 과연 요정섬을 찾을 수는 있을까.

“……강철바위산에 오르피나의 마지막 성물이 있는 것이더냐.”

바토리의 목소리는 직전과 달리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성물을 모두 찾으면 어쩔 셈이더냐.”

바토리가 아틸라의 팔에서 머리를 뗐다.

“그러고 나면, 날 관조자로 되돌릴 셈이더냐.”

아틸라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바토리가 불안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왜 묻는데.”

“넌 나를 다시 불사의 존재로 만들 생각이더냐.”

“너 역시 원하던 일이 아닌가.”

오르피나의 성물을 모두 모으면 리베르를 관조자로 되돌릴 수 있다.

바토리의 짝, 리베르 파테르는 그녀의 오랜 친우다.

“……난 그다지 불사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구나.”

“뭐?”

“내 꿈은 사르데니야 왕국을 부활시키는 것. 그것을 위해 영겁의 시간을 견뎌 왔다. 언제 나타날지 모를 승천자를 기다리며. 나의 친구, 리베르 파테르와 함께.”

바토리의 눈은 머나먼 무언갈 바라보는 듯했다.

“첫 번째 승천 후보였던 카르타고는 파우스트에게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바토리의 입가가 희미하게 위를 향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아틸라, 너를 만났다. 그때의 난 정말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었지.”

“그런데 왜.”

“난 불사의 삶을 너무 오래 살았다.”

바토리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봤다.

그녀의 옆얼굴은 반짝이는 별무리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림 같은 입술이 시를 읊듯 속삭였다.

“불사는 축복이 아닌 저주이니라.”

아틸라는 그 말을 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후마이야의 왕, 테헤누트 하토르의 악행이 밝혀졌던 날.

바토리는 같은 말을 했었다.

“불사자였을 때의 난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네 손에 인간이 되고, 인간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깨달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한 까닭에 잔혹하고, 또 아름답다는 것을.”

바토리는 고개 숙여 모닥불을 봤다.

“사르데니야를 부활시키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겠구나. 내가 정말로 왕국을 부활시키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바토리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물 곳을 찾았다.

“내가 불사자로 돌아가길 원하느냐.”

바토리는 아틸라를 봤다.

“물론 내가 불사의 몸이 되어야만 리베르가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야만전사야.”

그녀의 눈동자가 풀꽃처럼 흔들렸다.

“난 너와 함께 살아가고, 함께 늙어가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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