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 습격 (2)
카르타고의 검과 라일이 마력이 충돌했다.
콰콰콰쾅!
온몸으로 짓쳐드는 가공할 살기.
라일은 부드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조금만 시전이 늦었다면, 자신의 몸은 앞선 세 마법사와 같은 꼴로 전락했을 것이다.
투트트트트……!
라일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카르타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라일은 눈동자를 굴려 하늘의 드래곤을 봤다.
제 주인이 아래에 있기 때문인지, 당장은 브레스를 쓸 생각이 없는 듯했다.
- 과연 제법이군. 라일 플라마.
카르타고가 말했다.
- 아니, 메피스토펠레스의 망령이라 불러야 할까.
카르타고의 안광이 즐겁다는 듯 춤을 추었다.
- 네겐 감사하고 있다. 네가 사도 아자젤과 힘을 합쳐 중간계에 공간 환술을 드리운 덕에, 내가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까.
“난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다. 카르타고.”
- 그러나 네 안에서는 여전히 메피스토펠레스의 기척이 느껴지는군.
“메피스토는 메피스토펠레스와는 다른 존재다.”
카르타고의 안광이 가늘게 좁혀졌다.
- 메피스토라. 네 안의 그 존재가 그렇게 말한 것인가.
라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 재미있군 라일 플라마. 그리고 메피스토.
“목적이 뭐냐. 카르타고.”
- 목적이라. 넌 너무도 당연한 것을 묻고 있군. 메피스토펠레스와 사도 아자젤은 중간계를 새로운 승천의 전장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네가 말한 ‘대격변’ 말이로군.”
- 승천의 전장은 기회의 장이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울 수 있는. 대격변의 승리자는 다가올 세계의 새로운 주신이 될 것이다.
“넌 새로운 주신이 될 수 없다. 카르타고.”
라일의 눈동자가 파충류처럼 좁혀졌다.
“내가 지금, 네 목숨을 취할 테니까.”
그 순간 카르타고의 눈앞 풍경이 변했다.
아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카르타고는 불지옥 속에 서있었다.
화르르르……, 콰쾅……!
사방에서 화산이 분화했다.
바닥 위엔 용암이 흘렀다.
붉게 물든 하늘에서 불덩이가 쏟아졌다.
-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인가.
고위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환술의 대가다.
물론 그보다 강력한 환술을 지닌 대악마도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이 약한 것은 아니다.
- 그렇군. 메피스토펠레스의 또 다른 자아인 메피스토. 그 메피스토의 힘을 흡수한 너라면 이 정도의 환술을 구가할 수 있다는 건가.
카르타고의 눈앞에 용암 거인이 솟아났다.
우어어! 포효하는 거인의 발이 카르타고를 짓밟았다.
이내 거인의 발등 위로 몇 차례의 검격이 지나갔고, 거인은 산산이 조각나 용암 속에 녹아들었다.
그 위를 카르타고가 걸었다.
- 그러나 조악하군.
이번엔 불새들이 카르타고를 습격했다.
카르타고는 직전과 마찬가지로 검에 오러를 둘렀고, 빠르게 휘둘렀다.
그것에 직격 당한 불새들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 환술은 환각이다. 진짜가 아니다. 물론 환술의 타깃이 된 자가 그것을 진짜라 믿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두려운 마술이 되지만.
카르타고에게 덤벼들던 존재들이 티끌이 되어 사라졌다.
- 아니라면, 환술은 그저 조악한 사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카르타고가 검을 내려뜨렸다.
그것을 기회 삼아 불의 망령들이 달려들었다.
그럼에도 카르타고는 더 이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환술을 꿰뚫어보는 그의 정신은 대단했고, 그래서 의지만으로 자신의 몸을 덮은 망령들을 모조리 소거했다.
- 이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어떤가. 라일.
카르타고의 안광이 불을 뿜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검이 정면을 갈랐고, 마치 장막이 벗겨지듯 환술의 세계가 반으로 쪼개졌다.
프스스스슷……!
무너진 세상이 카르타고의 등 뒤로 소멸했다.
카르타고의 눈은 현실의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 세계의 사각에서, 라일이 오른팔을 뻗었다.
그의 오른손엔 마력의 창자루가 쥐여 있었다.
그것이 카르타고에게 쏘아졌다.
조금 전 아에스투스의 한쪽 날개를 뚫어 버렸던, 거대한 화염의 창날.
파카아아앙!
이번의 카르타고는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이 라일의 화염 창날과 부닥쳤다.
가공할 충격이 카르타고의 전신을 습격했다.
이번의 공격은 그도 손쉽게 방어할 수 없었다.
카르타고를 노려보는 라일의 코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라일은 이번 공격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신이 지닌 모든 화속성 마력을 끌어모으고, 집약했다.
몸에 부하를 일으키면서까지, 익숙지 않은 환술을 시전해 시간을 벌었다.
라일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화르르륵……!
그의 왼손이 검게 타올랐다.
메피스토를 흡수하며 운용할 수 있게 된 마기(魔氣).
라일은 메피스토의 마기를 화염 창날에 덧씌웠다.
마치 용수철과 같은 모양으로 마기가 창을 휘감았다.
카르타고의 안광이 흔들렸다.
- 이것은.
라일은 그간 메피스토의 힘을 숨겨왔다.
적마탑을 비롯한 5대 마탑의 마법사들이 알게 되어 좋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동료들이 모두 죽어 사라진 지금, 그는 더 이상 자신의 힘을 감출 이유가 없어졌다.
“이것으로 끝이다. 카르타고.”
파아아아앙!
화염과 마기의 창날이 카르타고를 습격했다.
이번만은 카르타고도 당황한 듯했다.
그는 검에 두른 오러를 더욱 강하게 발산했다.
콰지지지지짓……!
두 마력의 충돌은 엄청났다.
마력의 파편과 흙먼지가 사방으로 일어 시야를 잠식했다.
카르타고는 검을 밀어 화마(火魔)의 창날을 튕겨 내려 했다.
그러나 라일의 힘은 카르타고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카르타고는 인정했다.
오랫동안 지속 가능한 힘은 아닐지언정, 지금의 라일은 바토리 에르제베트 못지않은 실력자라는걸.
아울러 카르타고는 깨달았다.
중앙 마탑을 포함한 5대 마탑주 중, 라일 플라마를 가장 먼저 제거하기로 결정한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 재미있군. 라일 플라마.
그 말과 함께 화마의 창날이 카르타고의 검을 밀어냈다.
카르타고의 몸에 창날이 박혔다.
라일의 눈이 커졌다.
그는 승리를 직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저것은……!”
카르타고의 오른 어깨에서 기묘한 형상이 떠올랐다.
한 마리의 시커먼 뱀 같기도, 혹은 거인의 팔 같기도 했다.
그것이 화마의 창날을 붙잡았다.
그그그그그그……!
창자루가 부서졌다.
물론 카르타고의 몸엔 창날이 박혔고, 그것은 그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치명상은 아니었다.
- 잔재주는 끝인가. 라일 플라마.
카르타고의 기형적인 오른팔이 그의 몸에서 창날을 뽑았다.
마력을 잃은 창날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라일은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낸 일격.
그것이 저리도 간단하게 파쇄됐다.
메피스토의 목소리가 들렸다.
‘벨리알의 마력이다.’
‘……벨리알이라고?’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 이제야 알겠군. 벨리알이 카르타고에게 권능을 부여했다. 적마탑을 습격했던 검은 보석의 힘 역시 벨리알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는 건가. 메피스토.’
짜증 내는 듯이 말했지만 라일은 인정했다.
아무리 메피스토라 해도, 메피스토펠레스가 알았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
- 역시 넌 살려 두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라일 플라마.
카르타고의 오른팔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검을 움켜쥐었다.
- 어차피 죽을 운명이니 재밌는 것을 알려 주지.
“무엇을 말인가.”
- 너의 말대로, 난 새로운 주신이 될 수 없다.
카르타고의 안광이 고요해졌다.
카르타고는 떠올렸다.
메피스토펠레스의 공간 환술이 남부 대륙을 뒤덮었을 때.
파우스트 관조자들의 소환 의식을 통해, 중간계로 돌아왔던 순간을.
‘오오. 성공했노라!’
‘버서커 카르타고를, 마계에서 다시 현세로 불러 냈다!’
소환사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 못했다.
카르타고는 마계에서 온 것이 아니다.
그는 마계를 넘어 ‘명계(冥界)’에 도달해 있었고.
그곳에서 어떤 특별한 힘을 손에 넣었다.
‘벨리알의 눈.’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벨리알의 눈’은 카르타고의 죽음 직후부터 그의 곁에 있었다.
다만 카르타고는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다.
카르타고가 처음으로 벨리알의 눈에 대해 자각한 것은, 마계를 넘어 명계로 떨어진 이후의 일이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을 명계로 보낸 힘이 ‘벨리알의 눈’이라는 것을.
또한 벨리알이, 자신의 죽음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것도.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
카르타고는 벨리알의 힘을 느꼈다.
그것은 신비롭고 강력한 힘이었다.
아울러 벨리알의 눈은 파우스트 소환사들로 하여금 명계로 추락한 카르타고를 찾아 현세로 불러올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
그렇게 카르타고는 현세로 돌아왔다.
그리고 벨리알의 눈이 지닌 특별한 힘을 이용해, 파우스트 소환사들이 지닌 ‘사령’의 힘을 갈취했다.
‘이게 무슨……!’
‘소환술로 불러 낸 꼭두각시가 어떻게 이런 마력을……!’
‘끄아아아아……!’
벨리알의 눈 덕분에 카르타고는 자신을 소환한 소환사들을 모두 제거하고도, 명계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데스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이후 카르타고는 샤를과 아틸라를 만났다.
두 사내와의 만남은 카르타고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오랜 세월 동안, 난 나의 대적자를 찾아왔다.’
‘샤를 아인하르트. 너와 버서커 아틸라의 존재는 나의 현재와 과거를 반추하고 있다.
카르타고는 샤를과 아틸라를 죽이지 않기로 했다.
저 두 사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거라 확신했다.
또한 자신이 현세에 부활하게 된 목적과도 중요한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부활은 결코 우연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카르타고의 예상은 적중했다.
샤를과 아틸라는 자신의 뒤를 이은 강력한 승천 후보자였고.
심지어 아틸라의 뒤엔 바토리 에르제베트가 있었다.
먼 옛날, 자신을 관조했던 그녀가 그리했듯이.
그러던 중 벨리알의 눈이 카르타고의 정신을 침투했다.
‘이것은.’
벨리알의 눈은 카르타고에게 과거와 미래의 일부를 보여 주었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미지의 존재인 사도 아자젤과 결탁하고.
결국은 그의 계략에 빠져 소멸하리라는 것을.
‘사도 아자젤.’
카르타고는 아자젤의 존재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 그와 조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 직감은 현실이 되어 카르타고를 찾아왔다.
‘버서커 카르타고.’
카르타고는 아자젤을 만났다.
그리고 그의 입을 통해, 매우 중대하고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사도 아자젤이, 무가치의 악마 벨리알이 내게 보여 주었다.
카르타고의 안광이 라일을 바라봤다.
“무엇을 말인가.”
- 이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의지.
“……뭐라고?”
- 이 세계는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다.
카르타고가 라일에게 다가왔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라일은 남은 마력을 끌어모으려 했다.
그러나 되지 않았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도 많은 마력을 소모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상당한 마력을 소모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라일이 마지막까지 이 전투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 죽을 것인가.
카르타고의 검이 라일을 겨눴다.
- 아니면 영원히 싸울 것인가.
카르타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검이 휘둘러졌고, 라일의 옆구리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