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46화 (246/425)

246. 동료 (4)

오토가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카스피를 구하기 얼마 전.

다시 말해 펀치가 아틸라를 향해 한창 달리고 있을 때.

펀치의 입안에 도사리고 있던 도롱뇽은 등 뒤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들었다.

“아이고 펀치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오토였다.

무언갈 느끼고 잠에서 깬 오토가 펀치와 도롱뇽의 뒤를 쫓아온 것이다.

도롱뇽이 반색했다.

“오! 빨리 와라! 이 종복 미물 새끼!”

끼아옹! 펀치가 오토의 말 위에 올라탔다.

말의 달리는 속도는 펀치보다 빠르다.

“어, 어딜 가는 거냐 요망한 도마뱀! 그건 그렇고 아틸라 님은! 바토리 아가씨랑 살쾡이 암살자는!”

“닥치고 달리기나 해! 내 짐작이 맞는다면 놈들은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을 테니까.”

“이, 이상한 울림이 느껴지던데! 혹시 그것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러니까 빨리 달리라고!”

오토는 전속력으로 말을 몰았다.

땅에서 지속적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공기도 흔들렸다.

그리고 머지않아 오토는 난생처음 보는 흉측한 괴물과, 그 괴물과 싸우는 아틸라와 카스피, 그리고 저만치 널브러진 바토리를 발견했다.

“히익! 바, 바토리 아가씨가!”

“죽은 거 아니니 신경 쓸 거 없어!”

그렇게 외치며 도롱뇽은 보았다.

괴물의 머리 위에서 수많은 원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을.

‘저거 해골 드레이크 녀석의 브레스보다 강력할 거 같은데.’

그것만이 아니다.

괴물에게선 고위악마 벨리알의 힘이 느껴졌다.

‘벨리알의 화신이 무슨 이유로 폭주한 거지?’

벨리알의 화신이라면 하나뿐이다.

‘데비쉬의 단주, 살라딘.’

그러나 길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아틸라와 카스피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이 종복 미물. 날 힘껏 집어던져라. 야만 미물을 향해.”

“뭐, 뭐라고?”

습관처럼 되묻긴 했지만 오토도 금세 상황을 알아챘다.

도롱뇽의 몸통을 쥐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고, 도롱뇽이 꽥 소리쳤다.

“살살 쥐어 미물 새끼야! 아프잖아!”

“머, 멀리 던지려면 세게 쥐어야지 이 요망한 도마뱀아아아!”

그동안 당했던 것의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오토는 엄청난 기세로 도롱뇽을 던졌다.

그런데 너무 힘을 준 탓인지, 그만 공중이 아닌 바닥에 꽂아 버렸다.

“꾸에에엑……!”

“히익! 너, 너무 힘을 줬나!”

펀치가 말에서 뛰어내려 덥석 도롱뇽을 물었다.

그러고는 아틸라를 향해 달렸다.

오토는 카스피에게 말을 몰았다.

그의 눈에 비친 카스피는 상당히 위태로웠다.

파카카캉!

아틸라의 돌진을 괴물이 막아섰다.

‘뭐, 뭐라고……?’

오토는 아틸라의 돌진이 막히는 광경을 처음 봤다.

아틸라의 입에서 쿨럭, 핏물이 쏟아졌다.

이어 아틸라를 노리는 괴물의 다리를 카스피가 막았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카스피의 손에서 귀수가 사라지더니, 그녀의 몸을 휘돌던 붉은 귀기가 일거에 증발한 것이다.

오토는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괴물이 카스피를 향해 또 다른 다리를 뻗어 냈기 때문이다.

오토는 카스피를 향해 힘껏 몸을 날렸다.

콰앙!

강철방패가 괴물의 다리를 막았다.

오토는 검을 뻗어 괴물의 다리를 공격했다.

“살쾡이 암살자!”

“여, 영주 나리……!”

오토가 믿을 수 없는 힘을 내며 괴물의 다리를 밀쳤다.

그러고는 뒤돌아 소리쳤다.

“다, 다친 곳은 없소! 살쾡이 암살자!”

카스피의 눈이 흔들렸다.

지난번 이무기와 싸울 때도 그랬지만.

오토는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자신을 구했다.

카스피는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뭐, 뭐지……?’

아니다.

심장은 처음 괴물을 조우했을 때부터 뛰고 있었다.

카스피는 헷갈렸다.

이토록 터질 듯이 심장이 박동하는 이유가 괴물 때문인지.

아니면 오토 때문인지.

구와와와와와!

괴물이 포효했다.

오토가 두 귀를 가리며 괴로워했다.

“크학……! 헉……!”

그 와중에도 오토는 아틸라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틸라는 오토에게 어서 이쪽으로 오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오토는 그렇게 했다.

카스피의 허리를 안고, 아틸라를 향해 달렸다.

아틸라가 마주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아틸라의 머리 위엔, 성체가 된 도롱뇽이 쩌억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키랴랴랴랴랴랴!

도롱뇽의 입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그보다 한발 앞서, 괴물은 원념의 소용돌이를 일행에게 던졌다.

파드드드드……!

원념의 덩어리와 브레스가 맞부딪쳤다.

두 힘은 처음엔 막상막하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한쪽으로 기울었다.

도롱뇽이 쌩쌩한 상태인데 반해, 괴물은 아틸라, 바토리, 카스피를 상대하며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괴물도 그것을 느꼈다.

처절하게 절규하는 괴물의 몸 위로 브레스가 쏟아졌다.

구와왁! 구와와와왁……!

불에 타는 오징어처럼 괴물이 몸을 꼬았다.

그러면서 괴물은 몇 번이고 부활하려 했다.

하지만 부활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도롱뇽이 등장한 시점에서의 괴물은 이미, 자신의 힘을 대부분 소진한 뒤였다.

그래서 원념의 덩어리를 이용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했던 것이다.

키이이……!

끼에에에에……!

아아아아……!

수많은 원념들이 도롱뇽의 브레스에 분쇄됐다.

잠시 후 괴물의 본체마저 잿개비로 변해 사라졌다.

그렇게 원념의 괴물이 소거됐다.

* * *

카스피는 눈을 떴다.

언제 정신을 잃었던 걸까.

‘…….’

낯익은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는 깜깜한 밤이었다.

상체를 일으킨 카스피는 저만치 잠든 바토리를 봤다.

카스피는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그녀가 일행을 떠나기 위해 몰래 일어났던 새벽과 같았다.

‘……설마, 그 모든 게 꿈이었다고?’

아니다.

카스피는 확신했다.

격렬한 전투를 치른 뒤 찾아드는 극심한 근육통이 전신을 찌르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과 바토리는 지난밤과 다른 옷을 입고 있다.

바토리의 토사물 때문일 것이다.

스르륵.

완전히 몸을 일으킨 카스피는 창가로 다가갔다.

달의 위치를 보니, 괴물과의 전투로부터 정확히 하루가 지난 듯했다.

카스피는 창문 아래 1층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걸 발견했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

카스피는 한동안 자리에 서있었다.

그러고는 무언갈 결심한 듯, 뒤돌아 방문을 열고 나갔다.

복도로 진입하자 아래층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향해 발을 움직였다.

삐걱대는 계단을 내려가자 익숙한 얼굴이 그녀를 맞았다.

“화장실에 간다더니 왜 2층에서 내려오는 거유? 살쾡이 암살자.”

오토의 맞은편엔 아틸라가 앉아 있었다.

두 사내는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그런데 신기했다.

사람은 두 명뿐인데, 테이블엔 네 명분의 식사와 술잔이 놓여 있었다.

“얼른 와 앉으슈.”

카스피는 오토의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술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바토리 아가씨는 너무 취했길래 방에 눕혔수. 후……. 안 올라가겠다며 어찌나 떼를 쓰던지. 내 얼마나 고생했는지 살쾡이 암살자는 짐작도 못할 거요! 아니 글쎄 이 할퀸 자국 좀 보시오!”

오토가 목의 상처를 보여 줬다.

과연 그곳엔 여인의 손톱에 긁힌 듯한 상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그보다 더욱 커다란 멍 자국도 보였다.

마치 수많은 원념이 뭉쳐 만들어 낸, 어떤 거대한 괴물의 다리에 얻어맞은 것처럼.

카스피는 아틸라에게 눈을 돌렸다.

아틸라는 갑옷을 벗고 앉아 있었는데, 그 역시 몸 곳곳이 성치 않았다.

옷으로 대부분 가려져 있긴 했지만 카스피는 알 수 있었다.

아틸라와 오토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원념의 괴물과 싸웠다.

두 사내는 갑옷을 입지 않고, 검과 방패만을 들고 싸웠다.

심지어 아틸라는 무휼과 드라칼리온도 챙겨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렇게 당한 거야.’

원념의 괴물은 엄청나게 강했다.

그런 괴물을 상대로 아틸라는 갑옷도 없이 싸웠다.

오토 또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카스피는 괴물의 몸통에서 솟아오른 살라딘의 말을 기억했다.

- 너……. 귀살자 카스피…….

분명했다.

그 괴물은 자신을 노리고 달려왔다.

바토리가 없었더라면.

아틸라가 없었더라면.

그리고 오토와, 도롱뇽과, 펀치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일 것이다.

괴물과의 전투를 떠올린 카스피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는 오토를 바라봤다.

그제서야 카스피는 오토의 두 귀를 대충 둘러 감은 붕대를 발견했다.

“그 붕대는…….”

“아, 이거 말이요? 별것 아니우. 지난밤에 꿈을 꿨는데, 아주아주 흉측한 괴물이 나타났지 뭐유. 그런데 그 괴물이 바토리 아가씨는 물론이고 아틸라 님마저 대번에 쓰러뜨리더니, 이번엔 살쾡이 암살자를 공격하는 게 아니겠수! 그래서 이 오토가! 한달음에 달려가 살쾡이 암살자를 딱 보호했다는 거 아니요! 그런데 그 꿈속의 괴물이 화가 났는지 갑자기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는 거요! 그게 너무 시끄러워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았는데, 그만 너무 깊게 찔러 넣는 바람에 상처가 생긴 거요. 그래서 이렇게 대충 둘러 감아 놨는데 뭐, 하루 이틀 지나면 낫지 않겠수?”

그렇게 말하면서 오토는 카스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지 못했다.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던 그가 술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며 카스피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잠시 후,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

“뭐, 뭐요! 왜 웃는 거요!”

시원하게 웃는 그녀의 눈가에 슬쩍 눈물이 고였다.

오토는 그런 카스피를 보며 덩달아 웃었고, 아틸라는 처음처럼 묵묵히 술을 마셨다.

계단이 삐걱대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비비며 내려온 건 바토리였다.

바토리는 아주 잠시 일행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어 풀어진 실타래처럼 희미해진 얼굴로 아틸라의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그러고는 아틸라에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흐으응……. 아무래도 오늘 너무 많이 마신 것 같구나…….”

“가서 자라.”

“흐응……. 그럼 같이 가겠느냐.”

“뭐?”

“뭘 부끄러워하는 게냐. 자, 난 준비가 되었느니라.”

아틸라는 대답 없이 술을 마셨고, 그런 아틸라를 보며 바토리는 헤실헤실 웃었다.

이어 도롱뇽을 등에 태운 펀치마저 계단을 내려왔다.

구시렁대던 도롱뇽은 테이블 위에서 맛 좋은 음식을 찾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펀치는 카스피의 무릎에 올라와 동그랗게 몸을 말았다.

펀치의 털을 쓰다듬으며, 카스피는 동료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제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카스피를 도왔고, 덕분에 카스피는 이렇게 동료들과 술을 마시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바토리에게 속삭이는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이제 뻔한 연기는 그만둬도…….”

“연기라니.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아아, 또 취기가 올라오는구나……. 아틸라……. 아틸라아아앙…….”

대놓고 표나게 연기하는 바토리를 보며 카스피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슬며시 몸을 기울여 오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두 번 다시 동료들과 헤어지지 않겠노라고.

* * *

알폰소 왕자는 카스티야 왕국의 자랑이었다.

비록 얼마 전 치러진 샹크리스 왕국의 토너먼트에서 아깝게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그 후 알폰소 왕자는 더욱 검술 훈련에 매진했고, 이제는 왕국제일검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 그가.

지금.

왕성을 침공한 거구의 전사 한 명을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올려 보고 있었다.

“크흑……! 크헉……! 컥……!”

시꺼멓게 뚫린 가슴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자신 외에 살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놈이 끌고 온 흑기사들은 카스티야 왕국의 자랑인 붉은장미 기사단을 눈 깜짝할 사이에 괴멸시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