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동료 (3)
펀치는 허겁지겁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펀치의 입안에서 도롱뇽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빌어먹을 야만 미물 녀석. 왜 갑자기 부르고 난리야.”
말과 달리 도롱뇽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공기와 땅이 불길하게 진동했고, 이질적인 존재의 포효가 들려왔으며, 이렇게 먼 거리에서도 코를 찌를 정도의 고약한 마기가 느껴졌으니까.
“얌전히 잠이나 퍼잘 것이지. 왜 괜히 기어나가서 일을 만들어, 만들긴.”
- 내 친구 도롱뇽아.
- 그건 아닌 거 같아.
“뭐가 아닌데.”
- 먼저 나간 건 카스피야.
- 그러고 나서 바토리가 나갔고.
- 아틸라는 맨 나중에 나갔어.
“엥?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
- 나.
- 무서운 꿈을 꾸는 바람에 깼어.
- 그때 들었어.
- 카스피 나가는 소리.
“무슨 꿈을 꿨길래. 아, 아니지. 살쾡이 미물하고 바토리 할망구가 먼저 나갔다고?”
- 응.
“바토리 할망구는 어제 그리 술을 퍼마시더니 어떻게 나갔대?”
바토리의 술 주정을 떠올리던 도롱뇽이 배를 잡고 웃었다.
“케헷헷헷헤! 그렇게 풀어진 바토리 할망구는 처음 봤지.”
도롱뇽은 술에 취해 잠든 바토리의 콧속에 꼬리를 넣어 간지럽히던 일을 떠올렸다.
바토리는 영문도 모른 채 재채기를 하다 다시 잠들었고.
도롱뇽은 잠든 바토리의 콧속에 다시금 꼬리를 넣어 간지럽혔다.
물론 오래지 않아 아틸라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 근데 도롱뇽아.
- 카스피와 바토리는 왜 나간 걸까?
“그야 뻔하지.”
- 이유를 알아?
“살쾡이 미물은 우리 일행을 떠나려 했을 거다.”
- 정말?
- 무슨 이유로?
도롱뇽은 펀치에게 그것에 대해 설명했다.
도롱뇽은 진즉부터 카스피의 생각을 눈치채고 있었다.
- 아.
- 그래서 카스피가.
“바토리 할망구는 살쾡이 미물을 잡아 보겠다고 따라나섰겠지. 야만 미물도 그걸 감지하고 뒤따라 간 걸 테고. 그러다 어디서 괴물 한 마리를 만난 거다. 그제서야 이몸의 힘을 깨달은 야만 미물이 애새끼처럼 우릴 부르고 있는 거고. 알겠어?”
- 와.
- 내 친구 도롱뇽 똑똑하다.
“당연하지 곰새꺄! 캬캬캬!”
도롱뇽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얼마나 강력한 괴물이 등장했길래, 야만 미물이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니지. 바토리 할망구와 살쾡이 미물까지 함께 있을 가능성이 커.’
도롱뇽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무언갈 생각하던 도롱뇽이 펀치에게 말했다.
“어이 곰탱이. 좀 더 빨리 달려 봐.”
- 지금.
-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 거야.
“더 빨리. 분명 야만 미물이 위험에 처했을 거다.”
- 하지만 아틸라는 강한걸.
“으휴, 생각을 좀 하고 살아라. 야만 미물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 굳이 우릴 호출했겠냐?”
- 아.
그러나 펀치의 발은 더 이상 빨라지지 않았다.
말했던 대로, 펀치는 이미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었으니까.
‘영 느낌이 좋지 않은데.’
도롱뇽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그때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 * *
아틸라는 원념의 괴물을 상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괴물은 강했다.
파앙! 팡!
흑철검이 휘둘러졌고, 괴물의 팔다리가 절단됐다.
그러나 괴물은 상처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기관을 만들며 회복했고.
구르륵. 구륵…….
그래서 괴물은 싸우면 싸울수록 점점 더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젠장. 이래선 끝이 없겠군.’
물론 괴물의 마기는 무한정이 아니다.
마치 체력이 소모되는 것처럼, 괴물의 마기는 줄어들었다.
그러나 괴물은 컸고, 방대한 양의 마기를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아틸라의 체력 소모가 더욱 빨랐다.
다행인 것은 카스피가 제법 매서운 공격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귀수를 꺼내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카스피는 강했다.
‘바토리만 정신을 차려도 충분히 해볼 만할 텐데.’
아틸라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것일까.
바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괜찮느니라……. 아무렇지도 않느니라…….”
아틸라와 카스피가 반색하며 바토리를 돌아봤다.
바토리가 고대 마법을 영창했다.
그녀의 손에서 날카로운 불의 채찍이 쏘아졌다.
그것이 아틸라에게 똑바로 날아왔다.
“이런 미친!”
아틸라는 간발의 차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덜미에 식은땀이 흘렀다.
저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분명 중상을 입었을 거다.
그 생각을 증명하듯 괴물이 비명을 질렀다.
아틸라가 피한 불의 채찍은 괴물을 향해 날아갔고, 그 갑작스러운 공격에 괴물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아틸라와 카스피에겐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마법 쓰지 말고 그냥 누워 있어! 바토리!”
크게 소리친 아틸라가 괴물에게 달렸다.
카스피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바토리는 막무가내였다.
“흐응 보았느냐……. 내가 괴물에게 치명타를 날렸느니라……. 허나…… 이건 시작에 불과하단다…….”
바토리가 다시 고대 마법을 읊었다.
이번엔 화염의 장막이었다.
고개 돌린 아틸라의 얼굴이 새빨간 빛으로 덮였다.
‘빌어먹을 그냥 누워 있으라니까!’
아틸라는 카스피를 한 손으로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방어태세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그것을 견뎠다.
퍼퍼펑!
아틸라의 몸에 불이 붙었다.
카스피의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괴물이었다.
바토리는 더욱 거침이 없어졌다.
그녀가 왼팔을 들었다.
그 광경을 본 아틸라와 카스피가 기겁했다.
“바토리!”
“잠자코…… 보고 있거라…….”
카아아아앙!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바토리의 머리 위에 핏빛 칼날이 생성됐다.
“아, 아틸라! 바토리가 우릴 죽이려 해!”
무서운 속도로 마멸의 칼날이 쇄도했다.
하나도 아닌, 두 개였다.
아틸라는 카스피를 안은 채 저것을 완벽하게 피할 자신이 없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 도약(跳躍) ]
아틸라의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발밑으로 마멸의 칼날이 지나갔다.
그것이 괴물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구와악! 구와와와와왁!
괴물이 절규했다.
그것이 바토리의 속을 다시금 울렁이게 했다.
그러나 바토리는 뱃속에 있는 것을 모두 게워 낸 상태였고, 그래서 괴물의 포효에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파캉!
괴물의 몸을 관통한 마멸의 칼날 하나가 공중으로 솟았다.
바토리가 제어에 실패한 그것이 아틸라와 카스피에게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흐에에엣!”
카스피가 소리쳤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아틸라를 믿었다.
카스피의 눈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틸라가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마자 기겁하며 소리쳤다.
“흐에에에에엣!”
아틸라는 어쩔 수 없이 타점을 잡았다.
그러나 타점이 괴물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마멸의 칼날을 향해 전력으로 부닥치는 꼴이 될 테니까.
‘할 수밖에 없나.’
아틸라는 바토리를 바라봤다.
바토리를 믿는 수밖에 없다.
아니 믿어야 한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아틸라가 바토리를 향해 추락했다.
마멸의 칼날은 아틸라의 등을 스치며 지나갔다.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바토리를 보며 아틸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도약의 타점이 된 대상과도, 위치 교환을 할 수 있을까.
콰아아앙!
아틸라의 몸이 무언가에 부닥쳤고, 충격파가 일었다.
이내 아틸라는 깨달았다.
바토리와 위치 교환을 할 수 없었다.
자신은 여전히 카스피를 안은 채, 도약의 충격파를 발산시키고 있다.
그리고 바토리는.
“바토리이이이!”
카스피가 소리쳤다.
바토리가 저만치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보호 마법을 사용했는지, 그녀의 몸에선 별다른 상처가 발견되지 않았다.
아틸라의 도박이 성공한 셈이었다.
구루룩! 구와와와왁!
아틸라가 고개 돌려 뒤를 바라봤다.
괴물이 이쪽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놈의 모습은 처참했다.
아틸라와 카스피가 공을 들여 협공한 것보다, 바토리의 마멸의 칼날에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은 듯했다.
‘바토리가 이렇게까지 강하다고?’
아틸라는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바토리는 인간이 된 후, 줄곧 아틸라와 함께 여행했다.
그러면서 많은 적을 만났고, 마찬가지로 많은 경험치를 획득했다.
그 경험치는 아틸라만을 성장시킨 것이 아니다.
동료 모두를 레벨업시켰다.
그리고 그 수혜를 가장 크게 입은 것은.
아틸라와 가장 오랫동안 붙어 다닌, 바토리다.
‘빌어먹을 할망구. 여태 강해진 티를 안 내고 있었군.’
어찌 됐든, 물러설 곳은 없다.
아틸라는 검과 방패를 콰앙! 부딪쳤다.
쇄도하는 괴물의 팔다리를 자르며 질주했다.
카스피도 사슬낫을 이용해 아틸라를 도왔다.
아무리 귀수가 사라졌다 해도 카스피는 강한 살수다.
그오아아아아!
괴물이 주춤거렸다.
바토리의 마법은 괴물에게 큰 타격을 입혔고, 아틸라와 카스피의 협공은 놈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괴물의 몸이 기화하기 시작했다.
방대한 마기가 중심을 잃고 흩어졌다.
카스피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이길 수 있어!’
그 순간 살라딘의 머리가 쩌억 입을 벌렸다.
놈의 입안에서 시커먼 기운이 솟아올랐다.
그것은 단순한 마기가 아니었다.
그동안 사타나일이 흡수했던 영혼.
그 영혼에 담긴 원념이 형상화됐다.
고오오오오오.
마기는 거대한 구의 형태를 갖췄다.
그 안에서 수많은 원념들이 소용돌이쳤다.
강력한 힘이었다.
아틸라는 이어질 상황을 직감했다.
괴물은 저 거대한 원념의 덩어리를 이쪽으로 집어던질 셈이다.
그리고 물리력에 기반을 둔 아틸라와 카스피는, 저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바토리!”
아틸라가 소리쳤다.
그러나 바토리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바토리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틸라는 결정을 내렸다.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한다!’
[ 돌진(突進) ]
아틸라가 돌진했다.
그러나 괴물의 팔과 다리가 그를 가로막았다.
파카카캉!
아틸라는 괴물의 몸통에 도달하지 못했다.
괴물은 팔과 다리를 교차해 효율적으로 아틸라를 막았다.
돌진이 막힌 충격이 아틸라의 몸을 습격했다.
아틸라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그의 옆구리로 괴물의 다리가 쇄도했다.
“아틸라!”
그것을 카스피가 막았다.
어느새 카스피의 오른손엔 귀수가 뽑아져 있었다.
그러나 괴물의 다리를 베어 낸 직후, 다시금 모습을 감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카스피는 자신의 몸을 감싼 귀기가 수증기처럼 증발해 버린 것을 알았다.
‘어떻게……!’
그런 카스피를 향해 괴물이 또 다른 다리를 뻗었다.
카스피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귀기가 사라진 사슬낫과 단검은 괴물의 공격을 막는 용도로 적합하지 않았다.
괴물의 다리가 카스피를 가격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콰아앙!
카스피는 괴물의 공격에 맞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든 강철방패가 카스피를 보호했기 때문이다.
‘이건……?’
이번엔 강철검이 괴물의 다리를 공격했다.
강철검과 강철방패의 주인.
오토였다.
“살쾡이 암살자!”
아틸라도 그것을 봤다.
이어 아틸라는 저만치에서 달려오는 펀치와, 녀석의 입안에 담긴 도롱뇽을 봤다.
도롱뇽이 소리쳤다.
“케헥! 야만 미물! 저 종복 미물 녀석이 날……!”
아틸라의 입술이 말려 올라갔다.
반격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