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동료 (2)
사실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잠귀도 밝았으니까.
그래서 옆방의 카스피가 몰래 여관을 떠날 때, 아틸라는 기척을 감지했다.
‘…….’
아틸라는 조금 고민했다.
카스피가 뭘 하려 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틸라는, 카스피가 일행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만 카스피에게 떠나지 말라는 식의,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영 불편했다.
그러던 중 아틸라는 바토리가 카스피의 뒤를 쫓아 여관을 벗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카스피의 일은 바토리에게 맡기고, 결과에 순응할 생각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다시 잠이 들기 직전, 아틸라는 번쩍 눈을 떴다.
바토리가 잔뜩 술에 취해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바토리는 술이 세지 않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밤 바토리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대로 말을 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흐응. 아틸라. 아틸라아아앙…….’
자신에게 달라붙어 잔뜩 콧소리를 내던 바토리.
아틸라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 귀찮게 하기는.’
옆에선 오토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새근새근 잠든 펀치와, 녀석의 털 속에 파묻혀 꿈나라 여행 중인 도롱뇽도 보였다.
아틸라는 괜히 심술이 나 오토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으아아……! 엉덩이에…… 내 엉덩이에 불이 붙었다아아아……!”
아틸라는 마구간으로 가 흑마 위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여관을 벗어난 아틸라는 마을 입구에서 마주친 주민에게 두 여인의 행방을 물었다.
다행히도 주민은 바토리와 카스피를 봤고,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틸라는 산보라도 하는 기분으로 두 사람을 쫓았다.
새벽 공기는 맑고 시원했다.
절로 콧노래가 새어 나왔다.
그러던 중이었다.
불길한 땅울림이 아틸라를 습격했다.
‘……이건?’
아틸라는 울림의 진원지를 향해 말을 달렸다.
달리는 동안 땅울림은 계속됐고, 무언가가 포효하는 소리도 들렸다.
빌어먹을. 아틸라는 바토리와 카스피에게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두 환수에게 주인의 영역을 시전했다.
[ 주인의 영역 ]
[ 환수, 펀치를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 환수, 도롱뇽을 강제로 영역 안에 불러들입니다. ]
서둘러 말을 달린 덕에 아틸라는 늦지 않게 동료들을 조우했다.
바토리는 바닥에 엎드려 토사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괴물에게 달리는 카스피의 등에도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바토리와 카스피의 말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카스피가 바토리를 업고 달린 모양이다.
[ 도약(跳躍) ]
아틸라는 도약을 시전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카스피가 고개를 들어 아틸라를 봤다.
아틸라가 외쳤다.
“그대로 놈에게 달려! 카스피!”
한편 카스피는 아틸라의 얼굴을 보며,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직감했다.
그녀는 떠올렸다.
칼날 산맥에서, 자신을 안아든 아틸라가 언데드 예티를 향해 추락하던 기억을.
그리고 그 아래 있던 샤를이 어떻게 아틸라와 호흡을 맞췄었는지를.
카스피는 마음을 정했다.
그때의 샤를이 그랬던 것처럼 괴물의 아가리를 향해 달렸다.
괴물의 팔다리가, 돌기 가득한 혀가, 톱날처럼 날카로운 송곳니가 카스피에게 쇄도했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카스피는 애써 그것을 무시했다.
그녀는 아틸라를 믿었고, 자신의 선택을 믿었다.
카스피의 코앞으로 아틸라가 추락했다.
콰아아아앙!
그 순간 카스피는 기묘한 감각이 전신으로 난입하는 것을 느꼈다.
[ 위치 교환 ]
이어 눈 한 번 깜빡일 새도 지나지 않아 괴물의 몸통 위로 이동한 자신을 발견했다.
그곳은 도약의 충격파로부터 안전한 구역이었다.
반대로 아틸라는 카스피의 위치로 이동했고, 흑철방패를 들어 충격파를 막았다.
그그그그그긋……!
사정없이 뒤로 밀려나면서도 아틸라는 괴물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리고 시전했다.
[ 돌진(突進) ]
카스피는 언데드 예티를 상대했을 때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지는 것을 봤다.
그때의 아틸라는 샤를과 힘을 합쳐 예티의 목을 절단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샤를이 없다.
‘내가 해야 돼!’
카스피는 아틸라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예측해 봤다.
예티와 달리 이 괴물에겐 목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틸라는 어떻게 괴물의 숨통을 끊으려는 것일까.
해답은 즉시 나왔다.
트카카카캉!
돌진으로 쇄도한 아틸라의 몸이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휘두른 흑철방패가 놈의 송곳니를 산산이 깨부쉈다.
이어 휘둘러진 흑철검은 괴물의 혀를 잘랐다.
카스피는 발밑에서 진동을 느꼈다.
그것의 의미를 깨달은 그녀가 자세를 낮춰 괴물에게 귀수를 꽂았다.
그 상태로 괴물의 등 뒤로 달렸다.
콰드득! 콰득! 콰드드드드득!
괴물의 피부는 매우 두껍고 질겼다.
아무리 귀수가 길고 날카롭다 해도 단번에 절단할 수는 없을 정도로.
하지만 카스피는 혼자가 아니었다.
괴물의 입안엔 아틸라가 있다.
아울러 카스피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지금, 아틸라는 괴물의 입천장에 흑철검을 박아 넣은 채 카스피와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카스피의 예측은 맞았다.
쩌어어어억!
괴물이 몸통이 수박처럼 쩌억, 쪼개졌다.
그 과정에 괴물의 눈알이 튀어나오고, 몇 개인가의 사람 머리가 압착되어 터졌다.
카스피는 발밑으로 귀기를 집중했다.
그것이 괴물의 포효로부터 그녀를 지켜 주었다.
구와와와와왁!
괴물이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녀석은 반항다운 반항도 해보지 못한 채 반으로 쪼개졌다.
그 사이로 아틸라의 몸이 드러났다.
아틸라는 멈추지 않았다.
괴물의 각종 체액에 범벅이 된 채로,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키에에! 구와와와왁! 구왁!
이번에도 괴물은 상처에서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 냈다.
갈라진 괴물의 단면에서 수많은 촉수가 돋아났다.
아틸라는 괴물의 생명력에 놀랐다.
‘빌어먹을. 역시 도롱뇽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완전히 반으로 갈라졌음에도 괴물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 아틸라와 카스피를 공격했다.
아틸라는 괴물이 심상치 않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그가 지닌 패영전의 지식 속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괴물이었다.
[ 발 구르기 ]
아틸라는 발 구르기를 시전했다.
[ 지면, 혹은 그와 비슷한 지물 위에 힘껏 발을 굴러 일정 반경 내에 강력한 진동을 발생시킵니다. ]
[ 진동에 노출된 대상은 일정 시간 평형 감각을 잃어버리고, 민첩 능력이 10% 감소합니다. ]
카스피는 눈치 좋게 뛰어올라 그것을 피했지만, 괴물은 아니었다.
괴물의 몸이 흔들렸다.
그 바람에 촉수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아틸라가 노린 건 진동 효과보다는 민첩 능력 감소 쪽이었다.
괴물과 싸우며 아틸라는 깨달았다.
놈의 민첩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아틸라! 이 녀석 엄청나게 빨라! 바토리의 마법도 피할 정도로!”
때마침 카스피도 그렇게 외쳤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아틸라가 물었다.
“왜 여기에 있냐. 옆방에서 자고 있던 게 아니었나.”
아틸라는 여전히 카스피에게 떠나지 말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카스피가 이번 전투를 계기로 유야무야 일행에 남길 바랐다.
카스피는 대답이 없었다.
아틸라 또한 잠자코 대답을 기다릴 틈은 없었다.
“일단은 이놈을 처리해야겠군.”
반으로 갈렸던 괴물이 촉수의 힘으로 다시 붙었다.
아틸라의 눈엔 얼핏 그것이 뱃가죽이 갈라진 거대한 대게처럼 보였다.
물론 대게보다 팔다리는 훨씬 더 길고, 많았지만.
‘빌어먹을 대게 먹고 싶다.’
아틸라는 괴물에게 도발의 외침을 시전했다.
놈의 공격성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한눈에 봐도 카스피는 많이 지쳐 보였고, 부상도 입고 있었다.
[ 도발에 성공했습니다. ]
[ 일정 시간 동안 대상이 오직 시전자만을 공격합니다. ]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파상적인 공세를 펼치는 괴물의 팔다리를 막았다.
콰앙! 콰앙! 콰아앙!
엄청난 힘이었다.
얼마 전 칼날 산맥에서 상대했던 드레이크보다 더욱 강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아틸라는 괴물의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놈의 몸에서 뿜어지는 기운이 낯익다는 것을 느꼈다.
카스피가 외쳤다.
“아틸라! 바토리가 저 괴물에게서 벨리알의 마기가 느껴진다고 했어!”
“벨리알이라고?”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현재 벨리알의 마기를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카르타고뿐이다.
하지만 저 괴물은 카르타고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살라딘!’
아틸라의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졌다.
살라딘은 죽었다.
아마도 살라딘을 죽인 이는 셰이카일 것이다.
또한 셰이카는, 살라딘이 지닌 특별한 힘을 알고 있다.
‘사타나일. 그리고 흡혈.’
벨리알의 권능, ‘흡혈’은 상대의 몸으로 전생해 힘을 빼앗는 기술이다.
그것엔 사타나일이 필요하다.
사타나일은 살라딘이 상대의 몸으로 전생하기 위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그리고.
‘상대의 영혼을 담아 두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아틸라는 깨달았다.
셰이카는 살라딘을 죽인 뒤, 살라딘의 심장에 사타나일을 꽂은 거다.
그에 앞서, 죽기 직전의 살라딘은 사타나일을 통해 흡혈을 시도했다.
그렇게 흡혈의 권능이 살라딘의 심장을 향해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사타나일에 갇힌 수많은 영혼들의 원념과 함께 살라딘의 몸에서 폭주했다.
‘그 인과로 만들어진 괴물이 바로, 이 녀석이라는 건가.’
아틸라의 가설은 맞았다.
그는 눈으로 확인했다.
반으로 갈라진 괴물의 정중앙에서, 살라딘의 머리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 너……. 귀살자 카스피…….
살라딘의 머리가 말했다.
그의 눈은 동공이 보이지 않았다.
새까맣게 뚫린 눈구멍에서 자그만 촉수들이 바글거렸다.
구역질이 치밀 정도로 흉측한 광경.
“아, 아틸라!”
아틸라는 카스피를 돌아봤다.
카스피의 손에서 귀수가 사라져 있었다.
아직 카스피는 셰이카처럼 능숙하게 귀수를 다룰 수 없다.
그리고 귀수를 다룰 수 없는 카스피는 지금의 상황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거 조금 위험하겠는데.’
상대는 살라딘과, 놈이 흡수했던 강자들의 원혼이 폭주하며 탄생한 괴물이다.
게다가 고위악마 벨리알의 힘이 놈에게 가호의 힘을 부여하고 있다.
그 상황에 바토리는 제정신이 아니며, 카스피도 귀수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아틸라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
‘그렇다면.’
아틸라는 도롱뇽의 도착 시간을 가늠해 봤다.
제 발로 달려온다면 느리겠지만.
펀치를 타고 이동한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펀치는 군마가 달리는 속도엔 미치지 못할지언정, 웬만큼 단련된 인간보다는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때까진 내 힘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는 거군.’
아틸라는 웃었다.
그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그래. 까짓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