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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43화 (243/425)

243. 동료 (1)

괴물의 손과 발이 제 몸통을 쥐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뜯었다.

자해라도 하는 듯한 그 모습에 카스피는 놀랐다.

그러나 잠시 후, 더욱 크게 놀랐다.

‘저건……?’

아무렇게나 뜯긴 몸통의 구멍이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뾰족한 송곳니.

그 사이로 튀어나온 돌기 가득한 혀.

진득하게 늘어지는 타액.

그랬다.

그건 거대한 입이었다.

구와와와와와와!

괴물의 아가리가 고함을 질렀다.

막혀 있던 장막이 비로소 뚫린 것처럼, 소리는 직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크흐윽……!”

카스피는 귀를 막았다.

귀를 가린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공기가 울렸다.

땅이 울렸다.

카스피의 심장도 터질 것처럼 박동했다.

그것이 심장을 둘러싼 귀기의 핵(核)을 흐트러뜨렸다.

핵이 무너지자 귀수도 사라졌다.

카스피는 당황했다.

‘일단은 귀를……!’

카스피는 남은 귀기를 양쪽 귀에 집중했다.

그것이 그녀의 청력을 발달시켰다.

아울러 괴물의 포효로부터도 어느 정도 방어벽이 돼 주었다.

귀에서 손을 뗀 카스피는 양손바닥이 핏물로 흥건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렇게나 옷에 닦아 낸 후 다시금 귀기에 집중했다.

그러나 귀수는 뽑아지지 않았다.

그 사이 괴물은 더욱 근접했다.

어쩔 수 없이 카스피는 사슬낫을 들었다.

하지만 귀수가 아닌 일반 무기로 저 괴물을 상대하긴 버거워 보였다.

‘아니야.’

카스피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그래. 난 혼자가 아니야. 지금의 내겐.’

바토리가 있다!

쿵쿵쿵쿵쿵!

괴물의 발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서 따끔따끔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카스피는 물러서지 않았다.

괴물을 향해 마주 달렸다.

그러면서 바토리를 돌아봤다.

카스피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바토리!”

바토리는 두 손과 두 무릎을 바닥에 기댄 채, 힘없이 고개 숙이고 있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가냘픈 숨을 내뱉고 있는 것이, 부상이라도 입은 듯한 모습이었다.

‘설마 그때……!’

카스피는 조금 전 일을 돌이켜 생각했다.

바토리의 보호막을 찢어발겼던 괴수의 팔.

‘내가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한 거야.’

그때의 카스피는 괴물의 팔을 완벽하게 막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카스피는 귀기를 두 다리에 집중했다.

그렇게 주력을 향상시킨 두 발로 괴물의 공격을 연이어 피한 뒤, 바토리에게 달렸다.

원념의 괴물과 싸우며, 카스피는 더욱 세밀하게 귀기를 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물론 정신없이 치러지는 전투 탓에 그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진 못했지만.

“바토리!”

카스피가 바토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어 바토리의 상태를 확인한 카스피가 휘둥그렇게 눈을 떴다.

바토리가 주저앉은 이유는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우욱……! 우웩……! 웩……!”

바토리는 구토하고 있었다.

“흐응…… 카스피……. 아무래도 지난밤의 과음이……. 흐으으응……!”

카스피는 입을 쩍 벌리며 바토리를 봤다.

바토리가 지난밤에 엄청나게 술을 많이 마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전 마을 입구에서 만난 바토리는 취기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카스피는 바토리가 과음했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죽 구토감을…… 참고 있었는데…… 저 괴물의 포효가…… 내 속을 뒤집…… 우욱……! 우우웩……!”

딱 봐도 바토리는 전투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고 귀수의 힘이 사라진 지금의 카스피가 단독으로 괴물을 상대할 수도 없는 상황.

카스피는 바토리를 등에 업었다.

뒤돌아 전속력으로 달렸다.

지금은 피하는 수밖에 없다.

구우와와와와와!

괴물이 카스피를 쫓아왔다.

카스피는 달리는 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러다 문득, 등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꽥 소리쳤다.

“바, 바토리! 내 등에 토하지 마!”

“우욱……! 우웨엑……!”

카스피의 바람과 달리 등은 점점 더 따뜻해지고, 축축해졌다.

그러나 불쾌함보다는 묘한 보호본능이 일었다.

카스피가 생각하기에 바토리는 아틸라 이상의 강자였다.

그동안 카스피는 바토리의 마법 실력을 수없이 봤다.

타깃에게 접근해야만 제 실력을 드러낼 수 있는 아틸라와 달리.

바토리는 원거리에서 수많은 적을 간단하게 몰살시켰다.

게다가 바토리는 일반 마법, 고대 마법, 잡기술, 그리고 왼팔의 마력까지 지닌 아주 특별한 마법사였다.

카스피는 아틸라와 바토리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봐도, 승자는 바토리였다.

그래서 카스피는 내심 일행의 최강자는 바토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바토리가.

“흐응……. 조금만 천천히 달릴 수 없겠느냐……. 내 속이 너무…… 우욱……, 울렁거리는구나…….”

자신의 등에 매달린 채 아이처럼 칭얼대고 있다.

“어, 어떻게 천천히 달리라는 거야! 지금도 저 괴물에게 따라잡힐 판이라고!”

“제, 제발…… 카스피…….”

바토리가 애처롭게 중얼댔다.

그 순간 카스피는 보호 본능과 함께 약간의 정복감마저 느꼈다.

언제나 우러러 바라보던 바토리.

게다가 언젠가부터 아틸라와 더욱 살갑게 지내며, 내심 질투감을 느끼게 했던 바토리.

‘그 바토리가, 이렇게 약해졌어.’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잠시였다.

카스피는 동료들을 아꼈다.

바토리 또한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동료다.

카스피는 달리는 것을 멈췄다.

바토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대로면 어차피 따라잡혀.’

카스피는 바토리를 바위 앞에 앉혔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귀기는 제법 회복했다.

지금이라면 귀수를 발현할 수 있을지 모른다.

카스피는 괴물을 향해 달렸다.

심장을 둘러싼 귀기의 밀도를 확인했다.

카스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할 수 있어!’

차아앙!

카스피의 오른손에서 다시금 귀수가 뽑아졌다.

그와 동시에 괴물이 포효했다.

그러나 카스피는 귀기로 청각을 보호해 두었다.

그래서 괴물의 포효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바토리는 아니었지만.

“우웨에에엑……!”

저토록 괴로워하는 바토리를 위해서라도 카스피는 서둘러 괴물을 제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았다.

괴물은 강하다.

지금까지 카스피가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 중에서 가장 강한 상대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의 카스피에겐 바토리도, 아틸라도 없다.

콰앙!

괴물의 팔이 지면에 꽂혔다.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한 카스피가 괴물과 더욱 거리를 좁혔다.

괴물의 다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었다.

그것마저 카스피는 회피에 성공했다.

카스피는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아틸라도, 바토리도 없지만.’

카스피의 몸이 부웅, 허공을 날았다.

괴물의 몸통을 향해 귀수를 뻗었다.

‘난 더욱 강해졌어!’

타오르는 귀수가 괴물의 몸통 정중앙에 꽂혔다.

괴물이 전신을 비틀며 발광했다.

카스피는 다람쥐처럼 날랜 동작으로 괴물의 몸 위를 뛰어다니며 추가 공격을 가했다.

구와와! 구우! 구와와와와!

귀청이 떨어질 것처럼 괴물이 울부짖었다.

수많은 원념들이 내뿜는 포효가 카스피의 심장을 울렁이게 만들었다.

‘크윽……! 이대로는……!’

카스피는 괴물의 몸통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발을 놀려 거리를 벌렸다.

전신의 떨림이 다소 가라앉았다.

괴물의 포효는 직접 몸이 닿아있을 때 더욱 극대화되는 듯했다.

카스피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내 공격이 통해.’

괴물은 빠르다.

바토리의 마법 공격을 회피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나도 빨라.’

카스피는 초특급 경지를 코앞에 둔 살수다.

인간 중에서 카스피 이상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자는 온 대륙을 뒤져도 흔치않을 것이다.

카스피는 재차 괴물을 향해 달렸다.

괴물을 상대하며 느낀 것이 있었다.

‘괴물은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을 이용해 날 쫓고 있어.’

괴물에겐 눈이 없었다.

분명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 이를테면 청각, 후각, 촉각 등의 감각을 이용해 타깃을 추격하는 듯했다.

‘딱히 청각이나 후각을 감지하는 기관 같은 것도 보이진 않지만.’

그러나 조금 전 괴물의 몸통 위로 올라간 카스피는 어렴풋이 남아있는 인간의 머리를 봤다.

그것은 마치 포도알처럼 괴물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희미하게나마 코와 귀 같은 것도 달려 있었다.

‘저걸 통해 감각하는 걸까.’

그러나 인간의 머리에서도 눈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카스피는 괴물이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에 의존한다는 가설을 세웠고, 그걸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파앙! 팡! 콰드득!

괴물의 팔과 다리가 연이어 지면을 꿰뚫었다.

그 과정에 카스피의 귀수가 몇 개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더욱 공격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귀기의 힘을 앞세운 카스피는 빨랐고, 그 모든 공격을 회피했다.

카스피가 괴물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괴물은 타깃을 찾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였다.

‘역시. 괴물은 지근거리로 다가선 타깃을 감지하지 못해.’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카스피는 조금 전 괴물의 몸통 위에 올라갔을 때, 괴물이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팔과 다리를 자르는 걸론 부족해. 완벽하게 숨통을 끊을 방법을 찾아야 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귀기를 사용했다.

귀수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구와아아악!

괴물이 쩌억 입을 벌렸다.

그와 동시에 카스피가 만들어 낸 괴물의 상처가 꿈틀거렸다.

카스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었다.

구루룩. 구룩.

카스피는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괴물의 상처들이 카스피를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 괴물이 자해를 통해 거대한 입을 만들어 낸 것처럼.

이번엔 카스피가 낸 상처를 이용해 눈을 만들었다.

“저게 무슨……!”

여섯 개의 안구가 카스피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어 수많은 팔과 다리가 카스피를 습격했다.

시각을 획득한 괴물의 공격은 정확했다.

카스피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내가 괴물에게 당한다면.’

다음은 바토리의 차례일 테니까.

그 생각이 카스피에게 용기를 줬다.

카스피는 회피 대신 공격을 택했다.

괴물의 몸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달라붙었다.

파캉! 창!

날아드는 괴물의 팔다리를 귀수로 잘랐다.

그러나 극히 일부일 뿐이었고, 수많은 팔다리가 쇄도해 카스피를 타격했다.

카스피는 끝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난 이렇게…… 죽는 건가.’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몰래 빠져나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심지어 셰이카도 아닌.

이런 이름도 알지 못하는 괴물의 손에.

‘바토리.’

카스피는 고개를 돌렸다.

바토리는 여전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있었다.

‘……저건?’

낯익은 흑마가 바토리의 곁에 서 있었다.

그리고 카스피의 발달된 시력은, 흑마의 바로 앞에서 잔상처럼 하늘로 솟은 어떤 형체를 봤다.

카스피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틸라!’

카스피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생각한 인물이 그곳에 떠올라 있었다.

“그대로 놈에게 달려! 카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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