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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9화 (239/425)

239. 치유

쿠웅!

예티의 거대한 몸이 쓰러졌다.

도약의 충격파에 이어, 아틸라와 샤를에게 협공 당한 예티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난 건 아니었다.

드레이크와 예티가 쓰러졌지만, 아직 언데드들이 남아 있었다.

아틸라, 샤를, 카스피는 남은 언데드들을 공격했다.

[ 거대화(巨大化) ]

거대하게 몸을 부풀린 펀치도 시원스럽게 언데드를 두들겨팼다.

모든 일행이 지친 와중에 거대화로 힘을 얻은 펀치는 종횡무진 눈밭을 뛰어다녔다.

우어어어어!

펀치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언데드의 머리가 폭발했다.

남은 언데드 중에 드레이크나 거대 예티만큼 강한 개체는 없었다.

언데드 소환으로 등장한 개체 대부분은 서리곰 정도의 전투력을 지녔다.

그리고 일행에겐 그 정도의 적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일행은 순조롭게 언데드를 박멸했다.

그리고 아틸라와 카스피는.

예티를 상대하던 키릴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아냈다.

“나, 난 이제 죽을 것 같소……. 크흑……! 이럴 줄 알았으면 살쾡이 암살자의 그 탱탱한 엉덩이나 한 번 만져보…… 응?”

오토의 눈이 동그래졌다.

키릴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죽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오토.”

오토가 제 목을 더듬더듬 만졌다.

그러고는 잠시 후 비명을 질렀다.

“히이익! 내 목이! 내 목이!”

오토가 언데드의 무기에 목이 관통됐을 때, 샤를은 그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키릴을 오토에게 보냈다.

물론 키릴은 선뜻 샤를의 말을 따를 수 없었다.

‘하지만 샤를!’

오토의 상처를 서둘러 치유해야 하는 건 맞지만, 거대 예티를 상대로 샤를만 두고 가는 건 너무도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릴은 샤를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키릴은 샤를을 두고 오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서둘러 오토에게 치유의 마력을 행사한 끝에, 그의 목숨을 살렸다.

“고, 고맙소! 성기사 아가씨!”

“영주 나리이이이!”

되살아난 오토를 카스피가 끌어안았다.

그녀의 눈에서 펑펑 눈물이 흘렀다.

오토는 엉겁결에 카스피를 마주 안은 채 콧구멍을 발름댔다.

그러나 둘의 포옹은 길지 못했다.

철혈귀검이 살쾡이 암살자의 엉덩이를 만지지 못해 아쉬워하더라는 바토리의 증언을 듣자마자, 카스피가 오토의 목을 후려친 것이다.

“이, 이런 변태 영주 나리 같으니! 다 죽어가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

오토는 아직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는데 목을 때리면 어떡하냐고 항변했지만.

별문제 없을 거라는 키릴의 말에 수차례 더 목을 얻어맞았다.

“죽엇! 그냥 콱 죽어 버리라고 변태 영주 나리!”

“히이이익! 사, 살려 주쇼!”

이러다 진짜로 죽겠다고 비명을 지르는 오토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며 고래고래 소리치는 카스피.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일행을 보며 아틸라는 후우, 한숨을 뱉었다.

손안에 쥐여진 드레이크의 심장을 내려다봤다.

임무는 성공했다.

* * *

일행은 조심조심 칼날 산맥을 내려왔다.

이번에도 도롱뇽의 후각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내려오는 길에 괴수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지친 와중에도 일행에겐 여력이 있었고, 드레이크와의 전투로 한층 더 호흡이 좋아진 일행은 어렵지 않게 괴수들을 쓰러뜨렸다.

“칼날 산맥의 괴수가 그리 무시무시하다 하더니! 역시 우리 일행의 무력과 호흡이면 아무 문제도 없는 거였소! 으하하하하!”

오토가 으스대듯 외쳤다.

그의 말에 틀림은 없었기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아틸라는 오토의 시건방진 얼굴을 보며 피식 입가를 올렸다.

“많이 걱정했었느니라.”

바토리가 아틸라의 망토 속으로 숨어들며 속삭였다.

물끄러미 자신을 올려보는 바토리의 눈동자.

그것을 보며 아틸라는 지구에서 함께 지내던 고양이의 눈을 떠올렸다.

힘들었던 삶 속에서, 자신에게 작게나마 마음의 안정을 주던 고양이.

고양이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희미하게 미소하던 아틸라가 표정을 굳혔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른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진짜가 아니니까.’

그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고양이는. 그리고 어머니는.’

춥다며 몸을 부비는 바토리의 행동이 아틸라를 상념에서 끌어냈다.

아틸라는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상념을 억지로 지웠다.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그저, 앞을 향해 나아갈 뿐.’

머지않아 일행은 칼날 산맥을 벗어났다.

울창한 숲 지대가 일행을 반겼다.

“이제야 오른팔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게 됐군. 샤를.”

“흠. 역시 죄책감을 갖고 있던 건가 아틸라.”

“빌어먹을. 아니라니까 또 시작이네.”

아틸라의 표정에 불쾌함이 어렸다.

샤를이 피식 웃었다.

“거짓말할 필요 없다. 네가 겉모습과 다른 면이 있다는 건 이미 눈치챘으니까.”

“내 겉모습이 어떤데.”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는 것인가.”

“네놈이야말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지.”

“쓸데없는 질투심이군. 설마 아틸라, 내가 너보다 잘생겼기 때문에 그런 소릴 하는 건가.”

“뭐라고? 나도 그리 나쁜 외모는 아니거든.”

“일행에게 물어보는 편이 좋겠군.”

그러더니 정말로 샤를은 일행에게 아틸라와 자신 중 누가 더 잘생겼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 물음을 던지기 전에 자신의 화려한 금발을 손으로 말끔히 빗어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야 당연히 샤를 아니겠수? 애초에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음……. 뭐 생긴 걸로만 보자면, 나도 영주 나리 생각과 같아. 헤헤.”

“샤를이죠. 포이베를 섬기는 성기사로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안하군 아틸라. 나 역시 저들의 생각과 같다. 비록 인간이긴 하지만, 샤를의 외모는 엘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으니까.”

“케헷헷헷헤! 야만 미물! 설마 너 지금까지 내심 잘생겼다 생각하고 있던 거냐? 케헷헷! 케헷헷헷헤!”

심지어 펀치도 샤를을 보며 끼아옹! 울었다.

오직 한 명, 바토리만이 아틸라의 손을 들어 주었다.

“내 눈엔 아틸라가 억만 배는 잘 생겼구나.”

그러고는 아틸라를 향해 싱긋 웃었다.

아틸라는 푸욱,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결과가 이리 될 건 알고 있었기에 마음 상할 일도 아니었다.

슈시아가 말했다.

“마중을 나온 것 같군.”

그녀의 말대로였다.

저만치 달빛우물숲의 엘프들이 보였다.

인솔자는 넬다였다.

* * *

수 시간 후.

샤를은 달빛우물숲의 치유실에 누워 있었다.

그의 마음이 유례 없이 뛰었다.

‘정말로 가능한 것인가. 오른팔의 완전한 치유가.’

대드루이드 요르그를 기다리면서도 샤를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지.’

아틸라를 믿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아틸라가 말한 것과 별개로, 샤를은 자신의 오른팔이 완전히 치유될 거라 믿기 어려웠다.

그럴 만도 했다.

샤를은 그간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많은 약재를 먹고, 재활 훈련을 하고, 거기에 더해 제롬도 샤를의 팔을 되돌리기 위한 많은 연구를 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었다.

샤를의 마지막 희망은 샹크리스 왕국의 대사제였다.

그러나 제롬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조차도 그 정도의 치유력은 지니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러던 중 아틸라가 왕성을 찾아왔다.

‘동맹의 조건으로, 네 오른팔을 원래대로 되돌려줄 생각이니까.’

다른 이의 말이었다면, 샤를은 꿈쩍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아틸라였다.

샤를은 마음을 정했다.

피핀과 제롬의 만류를 무시하며 아틸라 일행에 합류했다.

그들과 함께하는 여정은 재미있었다.

왕좌에서 내려와, 모두가 동등한 관계를 맺으며 떠나는 모험은 즐거웠다.

비가 오는 날엔 함께 젖고.

모닥불을 피워 함께 몸을 말리고.

사냥해온 짐승으로 끼니를 때우고.

또 그럴 때면 언제나 술이 곁들여졌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내가 말이요! 아틸라 님과 함께 샹크리스의 토너먼트에서……!’

술이 들어가면 오토는 더욱 시끄러워졌다.

카스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 영주 나리가 말이야! 아하하하하!’

어떤 상황에서도 바토리는 해바라기처럼 아틸라만을 바라봤다.

‘흐응. 제법 즐겁지 않느냐 야만전사야.’

그런 바토리를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아틸라는 은근히 바토리를 세심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뜨거우니 조심히 먹어라.’

샤를은 아틸라의 새로운 면모를 봤다.

그가 기억하던 아틸라와, 지금의 아틸라는 많은 것이 달랐다.

자신이 그동안 몰랐던 건지, 아니면 아틸라가 변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아울러 샤를은 키릴에게서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

키릴 또한 자신에게 비슷한 감정을 가지는 것 같았다.

아니, 키릴만이 아니다.

샤를은 아틸라를 포함한 모든 일행과 유대를 쌓았다.

그들은 샤를의 동료였다.

그리고 그 동료들이 지금, 샤를의 곁에 앉아 있다.

“새끼. 떨고 있냐.”

아틸라의 농담에 샤를이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아틸라.”

잠시 후 요르그 문샤인웰이 들어왔다.

그의 손엔 현자의 돌이 쥐여 있었다.

그는 아틸라 일행이 칼날 산맥에 다녀오는 동안, 현자의 돌에 적응을 마쳐 둔 상태였다.

“시작하겠네.”

요르그의 다른 손엔 드레이크의 심장이 쥐여 있었다.

요르그는 주문을 읊었다.

엘프의 언어였다.

잠시 후 드레이크의 심장을 쥔 그의 손에서 녹빛의 줄기가 자라났다.

그것이 샤를의 오른팔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 모습을 보며 키릴은 신비를 느꼈다.

자신이 지닌 치유의 마력과는 다른 종류의 힘.

키릴은 기원했다.

저 미지의 힘이, 샤를의 오른팔을 완전히 치유하길 바랐다.

‘빛의 신이시여.’

한편 슈시아는 아틸라에게 언질 받은 대로, 직관의 눈을 뜨고 치유의 과정을 지켜봤다.

확실히 대드루이드의 힘은 대단했다.

‘놀랍군. 자연의 마력이 샤를의 몸 안으로 침투해, 끊어진 신경을 세밀하게 잇고 있다.’

또한 현자의 돌과, 드레이크의 심장이 그 힘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슈시아는 요르그에게 엘프의 언어로 말을 걸었다.

그녀는 직관의 힘으로 요르그를 보조했고, 그때마다 요르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세하게 마력을 조정했다.

치유의 시간은 짧지 않았다.

요르그는 최선을 다했다.

아틸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이후 넬다의 치유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넬다를 치유할 때도 슈시아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요르그는 호어프로스트 가문이 지닌 ‘직관’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슈시아는 선대왕인 아이리스를 뛰어넘는 힘을 지녔다.

‘넬다의 병을 반드시 치유할 것이다.’

이윽고 녹초가 된 요르그가 긴 한숨을 뱉었다.

일행의 눈이 요르그를 바라봤다가, 슈시아를 돌아봤다.

보랏빛의 눈으로 샤를의 오른팔을 지켜보던 슈시아가 눈을 감았다.

다시금 눈을 뜬 그녀의 눈빛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슈시아의 입에서도 조용한 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일행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성공이다.”

샤를의 오른팔은 완전하게 치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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