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8화 (238/425)

238. 칼날 산맥의 포식자 (6)

귀살의 일족에겐 특별한 힘이 있다.

먼저 귀안(鬼眼)은, 전투 중 아주 짧은 미래를 엿보는 기술로.

시전자의 민첩성을 향상시키고, 각종 귀(鬼)의 기척을 알아챌 수 있는 힘이 있다.

다음으로 귀기(鬼氣)는 시전자의 신체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인데.

이 능력이 발전하면 신체뿐 아니라 무기로까지 영역을 넓힐 수 있다.

현재 카스피가 오른 귀살의 경지는 여기까지.

그리고 이 정도 경지에만 올라도 귀살의 일족 중에서는 탁월한 실력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귀안과 귀기는 다른 기술이 아니다.

귀살자가 강한 이유는, 그들이 발현하는 모든 기술의 근간인 ‘귀기’ 때문으로.

귀안 역시 귀기를 시력으로 집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귀살자의 강함이란 얼마큼이나 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가로 정해지며.

그것의 정점이라 불리는 기술이 바로.

콰드득. 콰득.

살갗과 근육이 파열되는 소음이 카스피의 귀를 울렸다.

카스피는 보았다.

오토의 목을 관통한 언데드의 뼈창.

어떻게든 오토를 구하려 애쓰는 바토리와 펀치.

지친 얼굴로 마력 화살을 쏘아 대는 슈시아.

거대 언데드에 맞서는 샤를과 키릴.

그들을 보며 카스피는, 자신의 내면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파우스트의 관조자 노이어를 상대하며 처음 감각했고.

노르드 왕국의 대도시 리옹에서 악귀들과 싸우며 두 번째로 경험했던.

그리고 조금 전, 동료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드레이크의 머리를 향해 달렸을 때 또다시 찾아들었던 그 감각이.

‘아니. 지금까지와…… 달라.’

그보다 몇 배는 강렬해진 느낌으로 그녀의 몸에서 발산됐다.

콰드득. 콰드드드드득.

카스피는 손끝에서 이물감을 느꼈다.

고개를 내려 이물감의 정체를 확인했다.

‘이건……?’

오른손이 변해 있었다.

손톱인지, 아니면 뼈인지 모를 기다란 것이,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에서 일자로 돋아나 있었다.

‘이게 뭐지……?’

자세한 형태를 볼 수는 없었다.

불투명한 붉은 귀기가 손 전체를 짙게 감싸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인간의 것이라 보기 어려울 만큼 기괴했다.

길어진 네 손가락은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하나처럼 굳어져 있었다.

마치 네 개의 날을 지닌 검이나 창날을 쥐고 있는 것처럼.

카스피는 다시금 아틸라의 말을 떠올렸다.

‘귀살자의 진정한 힘은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카스피는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는 말은.

‘귀살자의 육체, 그 자체가 무기가 된다는 것.’

카스피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타오르는 특별한 귀기는 손과 팔을 지나 심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게 바로, 아틸라가 말했던.’

카스피는 일체감을 느꼈다.

본래 무기를 들고 싸우는 자는 자신의 무기를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무기를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단련한다 한들.

‘진짜로 자기 몸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사와 살수들은 육체를 단련하는 것과 더불어, 몸에 맞는 무기를 찾기 위해 평생토록 노력한다.

그리고 카스피는 찾았다.

손에 딱 맞는 무기를 넘어.

자신의 손, 그 자체를 무기로 변화시켰다.

그것도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로.

이때의 카스피는 알지 못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귀살자들이 꿈에 그리는 경지인.

‘귀수(鬼手)의 경지’라는 것을.

아틸라 역시 카스피의 변모한 모습을 봤다.

‘드디어 귀수를 손에 넣었군. 카스피.’

원작에서도 카스피는 귀수의 경지에 다다른다.

그녀는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귀살의 힘을 자각하고, 발전시키고, 마침내 귀수를 뽑아든 초특급 경지의 살수가 된다.

그것이.

현재의 카스피에게도 일어났다.

‘지금의 카스피라면 드레이크의 심장을 꺼낼 수 있다.’

아틸라는 무휼에 성력을 집중했다.

그동안 쌓인 성력이 무휼의 형상을 길게 변환시켰다.

카스피도 오른손의 귀수를 드레이크의 머리에 겨눴다.

콰드득! 콰드드득!

무휼과 귀수가 드레이크의 양쪽 머리를 파고들었다.

동시에 짓쳐든 두 무기에 드레이크는 크게 당황했다.

키에에에에에!

드레이크는 느꼈다.

지금 추락해서는 안 된다.

최대한 하늘 위에서 버텨 낸 뒤, 지상의 인간들에게 브레스 공격을 가해야 한다.

그렇게 지상의 인간들을 말살시킨 뒤 착지하면, 안전하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실수를 했다.

드레이크는 아틸라를 과소평가했다.

또한 카스피가 등 위로 올라오는 것을 저지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카스피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롱뇽과 함께였다.

물론 도롱뇽은 힘을 잃었다.

하지만 도롱뇽이 지닌 ‘강인한 송곳니’는 드레이크를 지금의 위험한 상황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하찮은 미물 드레이크 새끼! 뼈다구 맛도 읍다! 퉤퉤퉤!”

도롱뇽은 드레이크의 날개를 계속 공격했다.

그렇게 드레이크의 수복력을 두 머리뿐만이 아닌, 날개 쪽으로 분산하도록 강제했다.

키에에! 키에에에에에!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진 아틸라와 카스피의 공격에 드레이크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사실 아틸라는 힘을 아끼고 있었다.

조금 전 카스피에게 말했듯, 드레이크의 두 심장을 동시에 적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는 자신의 수복력을 원하는 곳에 집중시킬 수 있다.’

만약 아틸라가 혼자서 놈의 심장을 꺼내려 했다면, 드레이크는 한쪽 머리에 모든 수복력을 집중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틸라 혼자의 힘만으로 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카스피가 왔다.’

그래서 아틸라는 카스피와 동시에 심장을 적출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다면 드레이크는 양쪽 머리로 수복력을 분산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 방법을 유의미하게 실행하려면, 카스피가 귀수의 힘을 발현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아틸라는 심장을 적출하는 것보다는 무휼의 성력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카스피가 각성했고, 귀수의 힘을 발현했다.

도롱뇽도 요령껏 두 사람을 도왔다.

그렇게 강력해진 무휼과 귀수가.

쩌억.

드레이크의 머리를 세로로 쪼갰다.

카스피의 눈이 커졌다.

“이게…… 드레이크의 심장……?”

녹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것이 드레이크의 두개골 속에서 박동했다.

카스피는 왼손을 뻗어 그것을 쥐었다.

아틸라도 오른손을 뻗어 심장을 쥐었다.

그 순간 드레이크의 브레스 쿨타임이 돌아왔다.

푸르게 빛나는 놈의 안광을 본 아틸라가 크게 외쳤다.

“뽑아! 카스피!”

콰드득! 콰득!

두 개의 심장이 동시에 드레이크의 머리에서 뽑혔다.

아가리를 벌리던 드레이크가 움직임을 멈췄다.

타오르던 놈의 안광이 사그라졌다.

그렇게 추락이 시작됐다.

“카스피!”

아틸라는 드레이크의 척추를 향해 달렸다.

이대로 추락하면 위험하다.

자신은 몰라도, 카스피는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아니, 나도 위험하겠지.’

“아틸라!”

아틸라의 생각을 읽은 카스피도 드레이크의 몸통을 향해 달렸다.

도롱뇽은 이미 척추 한가운데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힉! 빠, 빨리 와! 이 느림보 야만 미물 새끼야!”

아틸라보다는 카스피가 빨랐다.

카스피가 도롱뇽을 품 안에 넣었다.

이어 도착한 아틸라가 카스피의 몸을 번쩍 안아 들었다.

“흐에엣! 아틸라가! 아틸라가 날 안았어!”

카스피의 호들갑을 한 귀로 흘리며 아틸라는 지면을 노려봤다.

그는 드레이크의 거대한 몸을 이용해 언데드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생각이었다.

아틸라는 언데드가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을 보며 몸의 각도를 기울였다.

‘좋아. 이 정도 각도라면.’

양 무릎을 구부렸다.

이어 시전했다.

[ 도약(跳躍) ]

퍼어어엉!

아틸라의 몸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와 반대로 생명력을 잃은 드레이크의 몸은 유성처럼 추락을 시작했다.

언데드 무리의 머리 위를 덮쳤다.

콰콰콰콰콰쾅!

수십 마리의 언데드가 드레이크의 몸에 깔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샤를과 키릴이 상대 중인 거대 예티를 찾았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놀랍게도 예티를 상대하고 있는 건 샤를 혼자였다.

‘키릴은……!’

키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유 같은 걸 생각할 틈은 없었다.

누가 봐도 샤를은 위험한 상태였다.

“샤를!”

마침 샤를은 예티의 공격에 방어하다 수 미터 뒤로 밀려난 상태였다.

샤를이 고개를 들었고, 아틸라를 봤다.

“아틸라!”

샤를은 아틸라가 예티를 향해 추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곳에서 가공할 충격파가 발산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샤를은 도주하지 않았다.

“모두 거리를 벌려!”

그렇게 외치며, 오히려 자신은 예티를 향해 달렸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샤를은 아틸라의 목소리와, 그의 눈빛을 보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아아압!”

샤를이 예티의 얼굴을 향해 뛰어올랐다.

다가올 충격파를 겁내지 않고, 예티의 목을 향해 힘차게 듀란달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아틸라가 예티의 덜미로 추락했다.

가공할 충격파가 일었다.

콰아아아아앙!

그런데 샤를은 조금의 충격도 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몸이 무언가 이질적인 힘의 작용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게 무슨……!’

이동한 곳은 마치 태풍의 눈처럼, 충격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었다.

샤를은 자신의 눈앞에 예티의 얼굴이 아닌, 예티의 뒤통수가 있는 것을 봤다.

즉 이곳은 아틸라가 추락했던 위치였다.

‘위치가, 바뀌었어?’

이유는 있었다.

아틸라는 거대 예티의 덜미로 추락한 순간, 샤를의 지근거리에 도달했다.

아틸라의 의지를 본능적으로 읽은 샤를이 예티의 얼굴로 뛰어올라 주었기 때문이다.

아틸라의 입이 길게 찢어졌다.

[ 위치 교환 ]

[ 타깃과 위치를 교환할 수 있습니다. ]

그렇게 아틸라와 샤를의 위치가 바뀌었다.

샤를은 예티의 덜미로 이동했고, 그의 오른팔은 여전히 예티를 향해 검을 뻗고 있었으며, 왼손엔 갑자기 카스피의 허리가 감겨 있었다.

“흐에에엣! 이번엔 샤를이! 샤를이!”

카스피의 알 수 없는 호들갑을 무시하며, 샤를은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한편 샤를의 위치로 이동한 아틸라는.

콰아아아앙!

흑철방패를 들어 도약의 충격파를 방어했지만.

“크으으으윽……!”

두 발아래 긴 고랑을 그리며 사정없이 뒤로 밀려났다.

아틸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멀어지는 예티를 노려보며, 늦지 않게 시전했다.

[ 돌진(突進) ]

파아앙!

뒤로 밀리던 아틸라의 몸이 관성을 무시하며 돌진했다.

순식간에 예티의 앞에 다다른 아틸라가 조금 전 샤를이 그랬던 것처럼, 예티의 얼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예티는 충격파의 영향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죽지는 않았다.

“샤를!”

“아틸라!”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샤를의 입가도 기다랗게 찢어졌다.

샤를의 검이 예티의 목에 닿았다.

아틸라의 흑철검도 반대편 목에 닿았다.

“으아아아아아아!”

파캉!

두 포식자의 검이 가위처럼 예티의 목을 잘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