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7화 (237/425)

237. 칼날 산맥의 포식자 (5)

카스피가 놀라 물었다.

“저, 정말이야? 심장이 머리 안에 있다고?”

“그래.”

아틸라는 원래 계획은, 드레이크를 지면으로 추락시킨 뒤 동료들과 힘을 모아 쓰러뜨리는 거였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드레이크는 보다 강력한 언데드 소환을 시전했고.

지상의 동료들은 소환된 언데드들을 쓰러뜨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보였다.

게다가 카스피까지 이곳에 있다.

‘카스피의 공백은 작지 않다.’

그러나 아틸라는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바토리가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고, 또 슈시아의 마력이 고갈되어 간다 해도.

‘샤를과 키릴이 있다.’

또한 카스피가 이곳에 와 있는 건 지상의 동료들에겐 아쉬운 일이겠지만.

아틸라에겐 달랐다.

‘지금의 카스피라면, 귀살의 힘을 완전히 깨우칠 수 있을 거다.’

카스피는 동료를 아낀다.

자신을 도우러 이곳까지 올라온 것도 그렇고.

올라온 뒤에도 불안한 눈으로 지상을 내려 보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카스피는 사바흐의 성격을 닮았다.’

겉으론 아무 걱정이 없는 척 웃는 얼굴만을 보이지만.

그 속엔 누구보다 여린 마음이 웅크리고 있다.

동료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카스피의 안에 도사린 특별한 힘을 끌어낼 것이다.

“카스피.”

“응? 아틸라.”

“너의 손에 동료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

“응?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틸라는 카스피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기로 했다.

“이 드레이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아마도 대격변의 전조로 강력한 변이가 일어난 거겠지.”

카스피는 겁먹은 고양이 같은 눈으로 아틸라를 봤다.

“그, 그런 것 같긴 해…….”

“우리가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동료들은 살아서 산맥을 벗어나지 못할 거다. 드레이크는 계속해서 언데드를 소환할 거고, 강화된 날개를 이용해 공중전을 펼칠 거다. 지상의 동료 중엔 그 상황을 타개할 이가 없어.”

“그,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난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다. 지금의 내 힘으론 놈의 수복력을 초월할 정도의 공격을 가할 수 없어.”

카스피는 아틸라에게 무언갈 말하려 했지만 그만두었다.

아틸라는 카스피의 속마음을 알았다.

“버서커의 힘을 사용하는 건 바토리와 도롱뇽의 힘을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아틸라.”

“네 힘이 필요하다.”

“내 힘……?”

“정확히 말하면, 지금 네가 지닌 힘이 아냐.”

아틸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난 알고 있다. 카스피. 넌 아직 네가 가진 힘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했어.”

“아,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야.”

“패영전에서의 네 힘은 이 정도가 아니야. 넌 패영전 세계관 최강의 관조자인 바토리 에르제베트마저도 어쩌지 못한 초특급 경지의 살수다.”

카스피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무, 무서워 아틸라.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패, 패영전은 뭐고, 또 바토리는 갑자기 왜…….”

그 순간 드레이크의 몸이 상승을 시작했다.

흔들리는 날개 위에서 아틸라와 카스피는 드레이크의 척추로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카스피.”

카스피의 눈을 똑바로 보며 아틸라가 말했다.

“난 너의 미래를 봤다.”

아틸라는 흑철검과 흑철방패를 갈무리하고 무휼을 쥐었다.

그는 이제 흔들리는 드레이크의 등 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만큼 회복돼 있었다.

“드레이크는 수복을 마쳤다. 남은 건 놈이 또다시 언데드 소환이나 브레스를 사용하기 전에 완전히 제거하는 거야.”

카스피는 아틸라를 봤다.

지상에서 분투 중인 동료들을 봤다.

“드레이크의 수복을 막으려면 놈이 지닌 재생력의 근원인 심장을 꺼내야 한다. 하지만 녀석의 심장은 두 개지. 자세히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본론만 말하겠다. 우린 두 개의 심장을 동시에 꺼내야 해.”

“그 말은…….”

“내가 검은 머리 쪽을 맡는다. 다른 머리는 네가 적출하도록. 그리고 카스피.”

아틸라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해. 귀살자의 진정한 힘은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그러고는 드레이크의 흰색 머리를 향해 달려갔다.

카스피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더 극대화된다고……? 그게 무슨……!”

그러나 잠시였다.

방황하던 눈빛은 이내 갈 곳을 찾았다.

카스피는 드레이크의 검은색 머리를 향해 달렸다.

‘내가 구해야 해. 아틸라를. 동료들을. 그리고.’

카스피는 저도 모르게 오토의 얼굴을 떠올렸다.

‘뭐, 뭐얏! 왜 이럴 때 영주 나리의 얼굴이!’

카스피는 고개를 흔들었다.

드레이크의 머리에서 심장을 꺼내는 일만을 생각했다.

그사이 드레이크는 더욱 커다래져 있었다.

날개만 커진 것이 아니라 몸통 전체가 부풀었고, 목도 길어졌다.

이젠 정말로 드래곤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아니야.’

카스피는 진짜 드래곤을 봤다.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와.

성체가 된 도롱뇽.

물론 그 둘도 완전한 상태의 드래곤은 아니었지만.

발밑의 드레이크보다는 압도적인 위용을 뽐냈었다.

‘할 수 있어.’

카스피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집중해 카스피. 난 드레이크의 심장을 꺼낼 수 있어.’

그녀의 눈빛에 귀기가 서렸다.

‘동료들을 구할 수 있어.’

그 순간 카스피의 몸에서 평소보다 강력한 귀기가 뿜어졌다.

아틸라도 그것을 느꼈고, 또한 예측했다.

본래 귀살은 인간을 지키기 위한 힘.

‘동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카스피가 지닌 귀살의 힘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그것만이 아니다.

귀살자의 전투법은 인간이 아닌, 귀(鬼)를 멸하는 것에 특화돼 있다.

마귀 또한 귀(鬼)의 일종.

‘카스피는 직전까지 엄청난 숫자의 마귀(언데드)를 상대했다.’

그것이 카스피의 귀기를 첨예하게 벼려 냈다.

화륵.

카스피의 단검이 새빨갛게 타올랐다.

그러나 아틸라는 저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전 카스피에게 말했듯, 귀살자가 진정한 힘을 내보일 때는.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아틸라는 드레이크의 목을 타고 머리에 도달했다.

무휼을 추켜올렸다.

그와 동시에 흰색 머리에 도달한 카스피도 단검을 고쳐 쥐었다.

전사와 살수의 두 무기가 드레이크를 타격했다.

* * *

한편 지상의 일행들은.

“바, 바토리 아가씨는 내가 지킨다! 와라! 이 해골 새끼들아아아!”

“네 시끄러운 목소리를 듣고 멀쩡한 괴수들마저 달려올 것 같구나 철혈귀검아.”

“바토리 아가씨는 이 오토만 믿으쇼! 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해서 아틸라 님 품 안에 딱 안겨드릴 테니!”

“흐응. 그 말은 조금 솔깃하구나. 정녕 그리해 줄 수 있겠느냐.”

“이 오토. 한 번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신뢰가 무너지는구나.”

오토와 바토리는 한가로이 농을 던졌다.

그러나 대화 내용과 달리, 그들의 상황은 위태로웠다.

‘철혈귀검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바토리는 잡기술을 사용해 동료들을 보조했다.

펀치는 왕성한 체력을 뽐내며 언데드를 공격했다.

그러나 펀치는 거대화 상태가 아니었고, 지금처럼 자그만 상태의 펀치는 오토보다 약했다.

다만 펀치가 지닌 패시브 스킬은 상당한 효율을 발휘했다.

[ 야수의 발톱 ]

[ 발톱에 가격 당한 타깃의 회복력이 10% 저하됩니다. ]

상태창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바토리와 슈시아는 펀치의 능력을 간파했다.

바토리는 오토에게 펀치와 힘을 합쳐 언데드를 상대하라고 말했다.

슈시아의 마력 화살도 펀치를 도왔다.

샤를과 키릴은 거대 예티를 상대하고 있었다.

녀석의 몸은 평범한 예티보다 두 배는 컸다.

‘이것 또한 대격변의 전조인 것인가.’

거대 예티는 샤를과 키릴이 힘을 합쳐도 쓰러뜨릴 수 없는 괴물이었다.

다행인 점은 둘의 신력이 언데드에게 강력한 면모를 보인다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키릴의 신력은 언데드에 특화된 것이 맞지만.

샤를의 신력은 조금 달랐다.

군신 아레스.

그는 모든 전장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최강의 투신이다.

“키릴!”

“샤를!”

키릴이 방패를 들어 막고, 샤를이 듀란달을 찔렀다.

키릴은 틈틈이 아밍 소드로 예티의 뼈를 갈랐다.

샤를도 키릴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예티의 공격을 방어하고,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기이한 감정을 공유했다.

그들은 상대의 신력에서 아주 특별한 끌림을 느꼈다.

‘키릴과 나의 신력이 공명하고 있다.’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먼 옛날 신들의 전쟁에서 아레스와 포이베는 함께 싸웠다.

아레스가 누구보다 앞장서 싸우며 군신의 위엄을 드러냈던 것처럼.

포이베 또한 아레스에게 밀리지 않고, 자신의 특별한 힘을 발휘했다.

즉, 아레스의 신력과 포이베의 신력은 궁합이 좋다.

샤를과 키릴도 그것을 느꼈다.

“하압!”

“하아아압!”

두 전사의 검이 화려한 빛의 선을 그었다.

* * *

카스피는 향상된 귀기를 발현해, 드레이크의 머리에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드레이크의 수복력은 대단했다.

도롱뇽이 말했다.

“녀석은 알고 있는 거다. 자신의 유일한 약점이 심장이 꺼내어지는 것이라는걸.”

“도, 도롱뇽! 방법이 없을까?”

“내가 성체로 변하기만 하면 이런 잡다구리한 놈쯤이야 한 방 감이지.”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후……. 알겠다. 아무래도 녀석은 수복의 마력을 양쪽 머리로 집중한 것 같으니, 내가 최대한 훼방을 놔 보지.”

도롱뇽이 카스피의 품에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 어디가 도롱뇽!”

카스피가 불렀지만 도롱뇽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저 멀리 사라졌다.

카스피는 조바심이 났다.

‘아래쪽 동료들이 위험해 보여.’

카스피는 더욱 맹렬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근거리에서 적을 타격할 땐 사슬낫보다 단검이 효율적이다.

카스피는 아틸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귀살자의 진정한 힘은 무기를 쥐지 않았을 때 더욱 극대화된다.’

카앙!

그 순간 카스피의 단검이 드레이크의 머리 깊숙이 박혔다.

“치잇……!”

카스피는 뽑아내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드레이크는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뼈의 간격을 좁히며 단검을 빨아들였다.

“이이잇! 하필이면 이런 때!”

카스피는 또 하나의 단검을 허리춤에서 뽑아들었다.

때맞춰 드레이크의 몸이 심하게 기울었고, 카스피는 그만 단검을 허공에 떨어뜨렸다.

도롱뇽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렸다.

“케헷헷헷헤! 어떠냐 살쾡이 미물! 내가 해골 드레이크의 날개뼈 하나를 부러뜨렸다!”

카스피는 열불이 뻗쳤지만 화낼 틈은 없었다.

자세가 기울어진 드레이크가 하강을 시작했고, 그 바람에 카스피는 보게 되었다.

언데드의 날카로운 뼈창에, 목이 관통된 오토의 모습을.

“여, 영주 나리이이이!”

오토의 얼굴이 카스피 쪽을 바라봤다.

괜찮은 척 히죽 웃는 그의 입에서 핏물이 쏟아졌다.

카스피의 눈이 파문처럼 흔들렸다.

그 순간 그녀의 안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카스피는 감각했다.

콰드득. 콰득.

길고, 단단하고, 또 날카로운 것이 자신의 손끝을 뚫고 튀어나오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