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 칼날 산맥의 포식자 (4)
아틸라의 몸이 공중으로 솟았다.
그사이 드레이크는 상당한 높이에 올라 있었다.
아틸라는 서둘러 타점을 특정해야만 했다.
[ 타점을 특정합니다. ]
그러나 흔들리는 시야가 그것을 방해했다.
그 바람에 아틸라는 드레이크의 척추에 착지하는 대신, 놈의 한쪽 날개로 추락했다.
콰아아앙!
드레이크의 날개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타점의 뼈가 산산이 부서지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틈으로 아틸라의 몸이 빠졌다.
아틸라는 본능적으로 흑철방패를 뻗어 드레이크의 갈비뼈 사이에 박았다.
키에에에에!
한쪽 날개가 부서진 드레이크가 비명을 지르며 추락했다.
그러나 놈에겐 날개 하나가 더 있었다.
드레이크는 멀쩡한 날개를 퍼덕이며 추락을 거부했고,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드레이크의 추락 속도가 현저하게 늦어졌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직전보다 강력한 개체가 된 드레이크는 파괴된 날개마저 빠르게 수복하기 시작했다.
아틸라도 그것을 느꼈다.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녀석을 지면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만 샤를과 카스피가 놈에게 공격을 가할 수 있다.
‘키릴은……!’
아틸라는 흐릿한 눈으로 키릴을 찾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아틸라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그의 시야와 판단 능력을 크게 제한했다.
그러나 아틸라가 키릴의 모습을 찾지 못한 것과 별개로, 키릴은 브레스의 충격을 이겨 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하늘 위로 떠오른 스켈레톤 드레이크와, 놈의 갈비뼈에 매달린 아틸라를 봤다.
“아틸라……!”
눈앞이 흐릿한 와중에도 아틸라는 해야 할 일을 했다.
흑철검을 갈무리하고, 드레이크의 갈비뼈를 쥐었다.
오직 본능에 의지하며 드레이크의 몸을 등반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비행을 막아야…….’
왼손으로 방패를 꽂고, 오른손으로는 잡히는 것을 쥐며 아틸라는 하늘을 향해 기어올랐다.
하늘 위 구름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구토감이 올라왔다.
거기에 더해 드레이크마저 사정없이 날개를 움직이고, 몸을 비틀며 아틸라를 괴롭혔다.
그 모든 상황을 억눌러 참으며 아틸라는 손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그는 드레이크의 등에 오르는 것에 성공했다.
그사이 드레이크는 한쪽 날개를 상당히 수복했다.
그러나 완전하진 않았고, 그래서 조금씩이지만 놈의 몸은 추락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아틸라도 그것을 알았다.
그의 동물적인 감각이 그것을 느꼈다.
아틸라는 아직 완전히 수복되지 않은 날개를 다시 타격하기로 했다.
놈의 부서진 날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검과 방패를 이용해 날개의 상처를 타격했다.
캉! 카앙! 퍼거거걱!
어디선가 날아든 슈시아의 마력 화살이 아틸라를 도왔다.
그러나 슈시아와 아틸라의 방해에도 드레이크는 차근차근 상처를 수복했다.
나머지 날개 또한 미친 듯이 휘두르며 추락 속도를 늦췄다.
녀석도 알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지면에 발을 디디게 된다면, 자신에게 그리 달가운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 거라는걸.
그래서 녀석은 머리를 썼다.
키에에에!
키에에에에에에!
흰색과 검은색, 두 머리가 동시에 포효했다.
언데드 소환이었다.
주인의 부름을 받은 언데드들이 지면을 뚫고 솟아났다.
게다가 드레이크의 바로 아래쪽에서는 상당한 덩치를 지닌 녀석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야가 부연 아틸라마저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것은 예티였다.
저렇게 커다란 예티는 아틸라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아틸라는 저 거대한 예티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인영을 봤다.
카스피였다.
* * *
드레이크가 언데드 소환을 시전하기 얼마 전.
달리 말하자면 아틸라가 도약 스킬을 사용해 드레이크의 한쪽 날개를 파괴한 직후.
일행은 아틸라의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틸라는 검과 방패를 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고.
심하게 비틀거렸으며.
목표물을 제대로 응시하지도 않은 채 도약 스킬을 시전했으니까.
심지어 누가 봐도 아틸라는 자신이 원하는 타점으로 착지하지 못했다.
착지한 뒤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였다.
“저, 저거 좀 많이 위험한 것 아니요! 바토리 아가씨!”
그러나 일행 중 아무도 아틸라를 돕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일행 중 하늘을 날 수 있는 이는 없었으니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틸라가 드레이크의 한쪽 날개를 상당히 파괴했다는 것과.
그 영향으로 드레이크가 점점 지면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한편으로 드레이크는 멀쩡한 날개를 움직여 추락 속도를 늦추고, 파괴된 날개 또한 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직관의 눈을 뜬 슈시아가 가장 정확하게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드레이크의 파괴된 날개를 향해 마력 화살을 쏘았다.
혹시라도 아틸라가 맞을 염려는 없었다.
슈시아의 활 솜씨는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그러나 슈시아의 지원에도 드레이크는 제 할 일을 계속했다.
거기에 더해 녀석은 언데드 소환을 시작했다.
빠드듯. 빠드드드듯…….
조금 전에 등장했던 언데드보다 더욱 많은 언데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은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덩치도 커졌다.
이유는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까와 달리, 드레이크의 두 머리가 동시에 언데드를 소환하고 있었다.
“바토리 아가씨!”
오토가 바토리를 보호하며 섰다.
덩치가 작은 언데드부터 소환이 완료됐고, 일행에게 달려왔다.
“빌어먹을 해골 새끼들!”
오토가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나머지 일행도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 언데드에 맞섰다.
긍정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바토리는 주위 일행보다 아틸라를 염려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아틸라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야만전사야.’
바토리는 누군가 아틸라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라면 가능했고, 그러고도 싶었다.
바토리는 자신이 있었다.
마멸의 칼날을 사용한다면 아틸라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랬다간 엄청난 숫자의 괴수들이 추가로 몰려올 것이다.
더욱이 이곳은 산맥 초입부도 아닌 중턱.
지금보다 더 많은 적들이 등장한다면 승산은 극도로 낮아진다.
아틸라를 포함한 모든 일행이 여기서 전멸할 것이다.
‘그럴 수는 없다.’
불현듯 바토리의 머릿속에 묘안이 떠올랐다.
자신의 마법으로 일행 하나를 아틸라에게 날려 보내는 것이다.
이전에도 바토리는 아틸라와 도롱뇽을 그런 식으로 날려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바토리의 마력은 강력하다.
그것을 맨몸으로 버틸 수 있는 자는 결코 많지 않다.
‘카스피도, 철혈귀검도 내 마력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엔 그 바토리의 마력을 견딜 수 있을 만한 인물이 둘이나 있었다.
샤를과 키릴.
바토리는 두 사람에게 차례로 눈을 돌렸다.
둘 모두 제대로 된 몸 상태는 아니다.
게다가 자신이 마법을 사용하면 많든 적든 괴수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나 바토리는 해야 했다.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었으니까.
그때였다.
“바토리.”
카스피가 한쪽 팔을 들어 바토리의 앞을 막았다.
카스피는 바토리의 생각을 눈치챘다.
“내가 가겠어.”
그 말을 남기고 카스피는 냅다 도롱뇽의 덜미를 쥐고 품 안에 넣었다.
“꽤액! 나, 나는 또 왜……!”
카스피는 달렸다.
“카스피!”
바토리의 목소리가 등 뒤를 울렸다.
그것을 무시하며 카스피는 드레이크를 향해 똑바로 달렸다.
아니, 실은 드레이크를 향해 달리는 게 아니었다.
드레이크의 아래에서 몸을 일으키는 중인 거대한 언데드.
카스피는 놈에게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붉은 귀기로 덮였다.
‘아틸라를 구해야 해. 어떻게든.’
카스피는 피식 웃었다.
아틸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렇게 불속으로 날아드는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자신이 재미있었다.
‘왜지. 역시 난 아틸라를 좋아하는 건가? 바토리가 있는데도?’
고개 돌려 오토를 봤다.
카스피는 오토가 수오미 왕국의 이무기로부터 자신을 구해 줬던 일을 기억했다.
그를 향해 히죽 웃었다.
“사, 살쾡이 암살자!”
거의 다 몸을 일으킨 예티를 향해 카스피가 몸을 날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그녀의 몸이 예티의 무릎과 어깨를 차례로 밟았다.
관성을 이용해 공중으로 솟았다.
촤르르르륵!
힘차게 내뻗은 사슬낫이 드레이크의 뼈에 감겼다.
카스피는 사슬을 당기며 몸을 회전시켰다.
핑그르르, 순식간에 그녀의 몸이 드레이크 위로 떠올랐고, 척추에 안착했다.
카스피는 곧장 아틸라에게 달렸다.
아틸라는 여전히 검과 방패로 드레이크의 날개를 후려치는 중이었다.
그의 두 눈은 흐릿하게 풀려 있었다.
버서커의 힘을 발현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틸라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 정도로 스켈레톤 드레이크의 힘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카스피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이면 이런 돌연변이를 만나다니.’
카스피는 지면을 내려 봤다.
샤를과 키릴을 주축으로, 일행은 언데드들과 거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이 살쾡이 미물. 아래쪽은 금사자 미물과 성기사 미물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도롱뇽의 말이 옳았다.
아래쪽을 걱정할 거였으면 처음부터 올라오지도 않았을 거다.
그때 아틸라의 손이 카스피의 어깨를 쥐었다.
“……카스피.”
“아틸라! 날 알아보겠어? 아틸라!”
아틸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머리 울리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
아틸라는 회복하고 있었다.
‘나이아드의 눈물’로 강화된 정신력은 이런 상황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
“후욱……! 후욱……!”
아틸라는 거친 숨을 뱉었다.
아까보단 나아졌지만 여전히 시야는 흐렸고, 깨질 듯이 머리가 아팠으며, 몸의 중심을 잡기도 힘들었다.
“이 녀석을…… 반드시 잡아야 해.”
“그, 그야 당연하지! 근데 아틸라. 이 녀석을 잡고 나면 일단 후퇴해야 할 것 같아.”
원래 일행의 목표는 드레이크, 즉 본 드래곤의 심장 두 개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녀석을 쓰러뜨리고, 저 아래 있는 언데드들마저 제거한 뒤의 일행은 또 한 마리의 본 드래곤을 잡을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터.
아틸라가 크게 심호흡했다.
“후욱……! 후우욱……!”
그러고는 직전보다 한층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어 카스피. 우린…… 또 하나의 드레이크를 잡을 필요가 없어.”
상당히 회복한 듯한 아틸라의 목소리에 반색하며 카스피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목표는…… 두 개의 심장이다.”
“그래! 그러려면 드레이크 한 마리를 더 잡아야……!”
카스피의 고함에 아틸라가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말했다.
“스켈레톤 드레이크의 심장은…… 놈들의 머리 안에 있다.”
“뭐, 뭐라고?”
카스피는 순간 아틸라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휘둥그렇게 눈을 떴다.
“그, 그렇다면……!”
“그래. 카스피.”
아틸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녀석을 잡으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두 개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