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5화 (235/425)

235. 칼날 산맥의 포식자 (3)

키릴은 샤를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내심 생각했었다.

샤를과 일대일의 결투를 벌인다면, 자신이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샤를을 우습게 본 건 아니다.

다만 그녀는 제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아틸라를 제외한 다른 전사가 자신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샤를 아인하르트는 아틸라에 미치지 못하는 전사가 아니었다.

오른팔이 망가져 있다는 말도 믿기 어려웠다.

그 순간 키릴은 깨달았다.

이번 여정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샤를이 오른팔의 힘을 완전히 되찾게 된다면.

‘어쩌면 아틸라보다도 더……!’

파카카카캉!

샤를의 검이 드레이크의 갈비뼈를 잘랐다.

아레스의 신력은 카스피나 슈시아가 지닌 것과는 다른 종류의 힘으로 언데드의 수복력을 방해했다.

샤를의 맹공에 힘입어 키릴도 보다 적극적으로 검과 방패를 휘둘렀다.

그들의 머리 위에선 슈시아의 마력 화살이 쏟아졌다.

마치 수년 동안 함께 전장을 뒹군 이들처럼 일행의 호흡은 뛰어났다.

아틸라는 머릿속 불안감을 털어 냈다.

‘불확실한 감정이 전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해선 안 된다.’

아틸라는 솔직히 감탄했다.

이렇게까지 강력하고, 또 호흡이 잘 맞는 파티를 다시 결성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스켈레톤 드레이크다.’

드레이크는 최상위 용족인 ‘드래곤’의 바로 아래 해당하는 존재.

게다가 눈앞의 스켈레톤 드레이크는 두 개의 머리를 지니고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상황은 반전될 수 있다.

키에에에에!

드레이크의 흰색 머리가 비명을 질렀다.

이어 녀석의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

아틸라는 놀랐다.

저것은 스켈레톤 드레이크가 브레스를 쏘기 직전에 보이는 안광이기 때문이다.

‘벌써 브레스를 사용한다고?’

아틸라의 판단은 맞았다.

놈의 아가리에서 브레스가 뿜어졌다.

아틸라는 흑철방패로 그것을 막았다.

그러나 아무리 아틸라라도 스켈레톤 드레이크의 브레스를 혼자 힘으로 막을 순 없다.

처음 동굴 속에서 브레스가 날아왔을 때도, 샤를과 키릴이 있었기에 손실 없이 막을 수 있었던 것.

그렇지만.

아틸라는 대비가 되어 있었다.

[ 축성의 인장 발동 효과가 한계치에 도달했습니다. ]

아틸라는 드레이크를 상대하며 주무기로 무휼을 들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차곡차곡 성력을 모았다.

[ 모든 성력을 무휼의 형상 변환에 집중합니다. ]

아틸라는 의지를 집중했다.

드레이크의 브레스는 생각보다 빠르게 쿨타임이 돌아왔다.

그것은 일행이 차곡차곡 쌓아 온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지 모른다.

‘그럴 수는 없지.’

아틸라는 정신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에겐 지금 같은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는 특별한 아이템이 있었으니까.

[ 나이아드의 눈물 ]

[ 물의 정령왕 나이아드의 마력으로 빚어 낸 영롱한 보석입니다. ]

[ 착용자의 정신력을 강화시킵니다. ]

나이아드의 눈물로 강화된 정신력은 아틸라의 의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틸라는 이전에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을, 다시 한번 구현할 수 있었다.

[ 성검, 무휼이 ‘성스러운 방패’로 형상을 변환합니다. ]

아틸라는 흑철방패를 바닥에 던지고, 왼손으로 성스러운 방패(무휼)를 쥐었다.

[ 보조무기 숙련도가 20% 증가합니다. ]

그것으로 브레스를 막았다.

파드드드드드드!

성스러운 방패는 드레이크의 브레스를 효과적으로 막았다.

아틸라는 오른손으로 흑철검을 들었다.

그 순간 아틸라의 눈에, 키릴이 맡은 검은 머리 드레이크의 안광이 푸르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키릴!”

아틸라의 외침을 들은 키릴도 상황을 직감했다.

마기의 브레스가 키릴에게 쏟아졌다.

키릴은 방패를 들어 브레스를 막았다.

그러나 버티지는 못했다.

키릴의 몸이 방패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키릴!”

브레스에 직격 당한 키릴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키릴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검은 머리 드레이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머지 일행을 향해 브레스를 뿜기 시작했다.

“여, 영주 나리!”

“흐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오토는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방패를 뻗었다.

그러나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간발의 차로 바토리가 보호막을 둘러 주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아틸라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시전했다.

[ 도발의 외침 ]

일행에게 브레스를 뿜던 검은 머리 드레이크가 아틸라로 타깃을 바꿨다.

졸지에 아틸라는 하얀 머리와 검은 머리, 양쪽의 브레스를 동시에 막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막을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할 수밖에 없었고, 해야만 했다.

아틸라는 두 개의 머리에서 뿜어지는 두 브레스를 향해 성스러운 방패를 뻗었다.

폭발적인 굉음이 울렸고, 아틸라의 몸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크헉……!”

아틸라의 입에서 절로 신음성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틸라의 몸은 굳건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성스러운 방패의 방어력은 대단했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아틸라는 성스러운 방패 옆에 달라붙은 또 하나의 방패를 발견했다.

조금 전 바닥에 던졌던 흑철방패였다.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샤를!”

파드드드드드드드!

흑철방패를 성스러운 방패에 붙여 방패벽을 만든 건 샤를이었다.

샤를이 말했다.

“너라면 분명 드레이크의 양쪽 머리 모두를 네 쪽으로 끌어당길 거라 생각했다. 아틸라.”

샤를은 이전에 아틸라와 함께 크라켄을 상대했던 일이 있다.

그때 샤를을 보았다.

아틸라가 도발의 외침으로 촉수들의 공격성을 그에게 집중시키는 광경을.

그래서 샤를은 이번에도 아틸라가 그렇게 할 것이라 직감했고, 그의 판단은 옳았다.

샤를은 아틸라가 던진 흑철방패를 들고 아틸라에게 달려왔다.

그것에 아레스의 신력을 주입해, 아틸라와 힘을 합쳐 방패벽을 세웠다.

샤를이 아틸라를 보며 웃었다.

아틸라도 웃었다.

“잘 왔다. 빌어먹을 새끼.”

“그것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움을 주러 온 동료에게 할 만한 말인가.”

샤를은 아틸라에게 ‘동료’라는 표현을 썼다.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원래 동료란 그런 거야. 새끼야.”

아틸라와 샤를은 방패벽을 밀어붙이며 드레이크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몸의 관절이 욱신거렸다.

그럼에도 둘은 이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응원하듯 바토리의 보호막이 두 전사의 몸에 둘러졌다.

일행은 코앞에서 쏘아지는 브레스에 굴하지 않고 드레이크에게 다가가는 두 전사를 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섣불리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아틸라와 샤를에게 고정된 브레스가 다른 곳으로 튈지 모른다.

그것은 분명 아틸라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윽고 방패벽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아틸라와 샤를은 드레이크의 브레스가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방패벽을 밀어붙이며 이동한 덕에 두 전사는 드레이크와 상당히 가까워져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드레이크에게 몸을 날렸다.

[ 무휼의 성력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

[ 성스러운 방패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

성력을 소진한 무휼이 원래 형상으로 돌아왔다.

아틸라에겐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양손에 하나씩 검을 쥔 모습이 됐으니까.

아틸라는 흑철검과 무휼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샤를은 듀란달에 신력을 집중했다.

“아틸라!”

“샤를!”

서로의 이름을 외치며 두 전사가 검을 뻗었다.

세 자루 검신이 드레이크의 목을 습격했다.

아틸라는 이번의 공격이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뼈의 장막이 두 전사를 가로막았다.

파캉! 카아앙!

그것이 드레이크의 치명상을 막았다.

갑작스레 나타난 장막의 정체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뼈의 장막이 두 전사에게 휘둘러졌다.

샤를은 손에 든 흑철방패를 뻗었다.

그것으로 자신과 아틸라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거대한 뼈의 군체가 두 전사를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샤를과 아틸라가 벼락처럼 바닥에 꽂혔다.

둘은 자신을 가격한 것의 정체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드레이크과 너무도 가까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드레이크의 몸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육안으로 확인했다.

“저, 저게 대체 뭐요……!”

오토가 눈을 부릅떴다.

카스피와 슈시아는 이를 악물며 드레이크를 봤다.

좀처럼 놀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바토리마저 눈을 부릅뜨며 그것을 봤다.

카스피가 중얼거렸다.

“나, 날개……?”

그랬다.

스켈레톤 드레이크의 등엔 한 쌍의 거대한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그만 날개가 아니었다.

놈의 브레스가 끝남과 동시에, 자그맣던 날개가 엄청난 속도로 확장했다.

그러고는 일격을 가하려는 아틸라와 샤를에게 카운터를 꽂았다.

“바, 바토리 아가씨! 저게 말이 되는 거요! 놈의 날개가 갑자기 몇 배는 커졌지 않소!”

바토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저런 건 처음 보았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것도 대격변의 전조 중 하나란 말이더냐. 카르타고.’

처음부터 저 드레이크는 평범하지 않았다.

머리가 둘 달린 드레이크는 바토리의 긴 삶 속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저 드레이크는 이제 단순히 평범하지 않은 단계를 넘어섰다.

그야말로 드래곤에 가까워졌다.

“크으윽……!”

샤를이 몸을 일으키며 신음을 토했다.

온몸에서 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후욱……! 후우욱……!”

그보다 한발 앞서 아틸라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방패를 들고 있던 샤를과 달리, 아틸라는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아틸라는 눈앞이 핑그르르 회전하는 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눈앞이…….’

아틸라는 널브러진 흑철검과 흑철방패를 더듬거리며 쥐었다.

무휼도 찾아 허리춤에 갈무리했다.

드레이크의 네 발이 지면을 박찼다.

공중으로 떠오른 녀석이 활짝 날개를 폈다.

그제서야 아틸라와 샤를은 녀석의 몸에 벌어진 이변을 확인했다.

‘저게…… 무슨……!’

아틸라는 머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드레이크를 공중으로 올려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녀석은 드래곤만큼이나 날개가 강화돼 있다.

드레이크의 약점 중 하나였던 짧은 비행시간.

그것이 사라졌을 가능성이 짙어졌다.

‘그렇다면…….’

자신을 포함한 모든 근접 딜러는 드레이크의 몸을 타격할 수 없게 된다.

공격의 주도권이 완벽하게 놈에게 넘어갈 것이다.

물론 일행 안엔 두 명의 원거리 딜러가 있다.

그러나 바토리가 마법을 쓰는 것은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고, 슈시아 또한 상당량의 마력을 소모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드레이크에겐 여전히 브레스와, 언데드 소환이 있다.

이대로 녀석을 공중으로 올려 보낸다면 사냥의 성공이나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일행이 전멸할지도 모른다.

아틸라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주저 없이 시전했다.

[ 도약(跳躍)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