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2화 (232/425)

232. 망자의 목적 (2)

뭐라고?

아틸라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잘못 들었나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샤를은 아틸라를 버려둔 채, 멧돼지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쟁놀이라도 하는 소년처럼 해맑게 웃었다.

그런 샤를의 모습은 아틸라에게 다른 종류의 투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식으로 승부를 보자 이거지.’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상대의 도발에 응해 줄 생각이었다.

나름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 해보자고. 샤를.”

아틸라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상대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닌, 오직 달리는 것에만 집중한 아틸라의 두 다리는 거침이 없었다.

파파파파팟!

그의 양발이 번갈아 지면을 밟을 때마다 움푹움푹 팬 자국이 생겼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인간이 달리는 모습이라 믿기 힘들 것이다.

그는 마치 검은 늑대 같았다.

사냥감을 향해 내달리는, 거대한 늑대.

“아우우우우우우!”

아틸라가 포효했다.

그는 즐기고 있었다.

달리는 것이 이렇게나 즐거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샤를보다 빠르진 못했다.

‘빌어먹을 자식. 엄청나게 빠르군.’

샤를과 몇 번이고 격돌했던 아틸라는 잘 알고 있었다.

힘에선 자신이 우위에 있다.

하지만 기술과 스피드 면에선 샤를이 앞선다.

‘어떻게든 따라잡아 주지. 샤를.’

아틸라는 도주하는 멧돼지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멧돼지는 숲의 지형지물에 따라 요리조리 방향을 바꾸며 달리고 있었다.

놈을 추격하는 샤를도 그에 맞춰 달리는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아틸라는 달랐다.

그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멧돼지의 도주 경로를 예측했고, 동선의 낭비 없이 일직선으로 달렸다.

물론 문제는 있었다.

아까도 말했듯, 멧돼지가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달리는 이유는 지형지물 때문이다.

따라서 아틸라는 직선으로 달려 거리를 좁히는 대신, 많은 장애물을 만나야 했다.

‘까짓것.’

아틸라는 눈앞을 가리는 지형지물을 흑철방패로 박살 냈다.

또는 흑철검으로 베어 버렸다.

단순무식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아틸라처럼 괴물 같은 힘을 지닌 전사에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좋아. 좁혀진다.’

머지않아 아틸라는, 다시 한번 멧돼지를 돌진 사거리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샤를은 귀신같이 그것을 눈치챘다.

“그렇게 둘 것 같은가! 아틸라!”

샤를이 아틸라의 동선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이번의 아틸라는 샤를의 그 행동을 예측했다.

‘그럴 줄 알았다. 샤를.’

아틸라의 허벅지 근육이 괴물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시전했다.

[ 도약(跳躍) ]

아틸라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았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샤를은 입을 벌리며 허공을 올려다봤다.

‘저것은.’

샤를은 떠올렸다.

파우스트가 아인하르트 왕국을 침공하고, 북쪽의 괴물이라 불리던 카르타고와 처음으로 조우해 전투를 벌였을 때.

아틸라는 지금처럼 허공에서 나타나 카르타고를 습격했었다.

‘그렇다면!’

샤를은 지체 없이 뒤돌아 멧돼지에게 달렸다.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아틸라는 멧돼지의 머리 위로 추락할 것이다.

샤를의 생각은 맞았다.

아틸라가 멧돼지의 척추를 향해 추락했다.

그 순간 아틸라는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빌어먹을.’

도약 스킬은 강력한 충격파를 동반한다.

이대로 멧돼지의 등에 추락한다면, 멧돼지는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것이다.

그러나 아틸라는 이미 타점을 특정했고, 추락을 시작했다.

아틸라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고기를 자를 수고를 덜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낙천적인 생각을 하며, 그의 흑철검이 멧돼지의 덜미를 파고들었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파카캉!

아틸라의 흑철검은 멧돼지를 타격하지 못했다.

찬란한 금빛의 신력을 발하는 듀란달이 그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아틸라의 눈이 커졌다.

‘돌진 스킬에 이어, 도약까지 막는다고?’

그러나 샤를의 행동과 상관없이, 타점으로 추락한 아틸라의 몸에선 가공할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샤를도 그것을 감지했다.

극한으로 신력을 끌어올려 충격파를 방어했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멧돼지는 내 차지다! 아틸라!”

퍼어어어어엉!

충격파를 막은 샤를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아무리 샤를이라도 도약의 충격파를 손실 없이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 버서커 카르타고마저 크게 당한 적이 있었던 도약 스킬이니까.

“크으윽……! 크헉……!”

그럼에도 샤를은 샤를이었다.

바닥을 구르던 그가 어느 순간 퉁기듯 몸을 일으켰다.

자세를 바로잡은 샤를이 가장 먼저 확인한 건 멧돼지의 안위였다.

“무사했구나!”

멧돼지는 여전히 도주를 이어 가고 있었다.

샤를의 희생(?) 덕에 멧돼지는 무사했다.

게다가 샤를은 도약의 충격파에 튕겨 난 덕에 멧돼지와의 거리를 상당히 좁혔다.

아틸라는 조급해졌다.

‘빌어먹을 괴물 같은 새끼!’

샤를은 역시 강했다.

분명 카르타고와의 결투가 그를 더욱 강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질 것 같냐!’

아틸라는 멧돼지를 향해 달렸다.

샤를이 방해한 탓에 멧돼지는 다시 돌진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아틸라는 문득, 카르타고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봤다.

카르타고는 자신과 샤를을 죽이지 않았다.

‘첫 전투 때도 그랬고, 최근의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였지.’

아틸라는 카르타고와 아에스투스를 상대했던 최근의 전투에서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과 샤를이 카르타고의 대적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카르타고가 말한 대로, 자신과 샤를이 그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도록 만들기 때문인가.

그러나 그때의 아틸라는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때의 아틸라는 아에스투스의 입안에 있을지 모를 ‘나이아드의 눈물’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또한 카르타고를 쓰러뜨리겠다는 의지에 집중했다.

아틸라는 성공했다.

그는 나이아드의 눈물을 손에 넣었고, 카르타고를 상대로 부분적인 승리를 거뒀다.

또한 이전에 나가라자 탁샤카를 상대한 뒤 정리했던 ‘광폭의 권능’에 대한 분석이, 어느 정도 맞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카르타고는 나와 샤를을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가. 자신의 앞길에 가장 큰 방해물이 될 나와 샤를을 왜 제거하지 않는 거지.’

카르타고의 행동은 묘하다.

녀석에겐 분명 숨겨진 목적이 있다.

무엇일까.

그 목적이란 것은.

타타타타탓!

멧돼지를 쫓아 달리는 동안 아틸라의 머릿속은 전에 없이 맑아졌다.

생각의 폭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이윽고 아틸라는 하나의 가능성을 도출해 냈다.

‘카르타고는 나와 샤를이 더욱 강해지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대적자나, 녀석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한다는 등의 단순한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고작 그런 이유일 리 없다.’

아틸라는 더욱 깊숙이 생각의 늪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샤를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가변적인 의식의 흐름이 아틸라의 사고를 샤를에 대한 것으로 넘겼다.

어느새 아틸라는 샤를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샤를의 목적은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사는 것.’

샤를은 그것을 위해 대륙을 하나로 통일하려 한다.

그렇게 전쟁이 사라진 세상을 만들려 한다.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제 손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오류를 범하면서도.

‘샤를은 패왕의 자리에 군림하려 한다.’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샤를의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힘을 잃고 요정섬에서 추방됐다.

그리고 인간이 벌인 전쟁 속에서, 인간의 손에 죽임당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샤를의 어머니는 샤를이 인간으로 살길 원했다.

샤를이 지닌 특별한 피가,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길 바랐다.

샤를은 어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그의 몸에 흐르는 요정의 피는, 샤를이 평화로운 시대의 인간으로서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샤를의 또 다른 피는.’

샤를의 몸에 흐르는 악마의 피.

그것은 지금의 샤를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또 거머쥐려 한다.

그 순간 아틸라의 뇌리에 번개가 쳤다.

예고 없이 찾아든 깨달음.

아틸라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랬다.

샤를은 인간이 아니다.

요정도 아니다.

샤를은 요정과 악마의 피를 한 몸에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다가올 대격변은.

‘샤를이 지닌 대악마(大惡魔)의 피를 더욱 강력하게 발현하는 최고의 무대가 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격변의 영향으로, 중간계엔 이제껏 없었던 강력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중에선 카르타고보다도 강력한 존재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대단한 실력자인 카르타고마저 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틸라는 지금껏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대격변은 원작에서는 벌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랬어.’

카르타고 역시, 원작에서는 먼 과거의 인물로만 묘사될 뿐이다.

카르타고는 원작에서 활약하지 않는다.

과거의 존재로 스치듯 비칠 뿐이다.

그래서 아틸라는 착각했다.

‘나와 샤를은 카르타고의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등장할 초월적인 존재들에 비하면 더없이 나약한 존재들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르타고의 목적이란 바로.’

그 순간 아틸라의 눈에 멧돼지에게 검을 뻗는 샤를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멧돼지가 돌진 사거리에 들어왔다는 신호가 잡혔다.

아틸라는 홀린 듯이 돌진을 시전했다.

[ 돌진(突進) ]

그것을 감지한 샤를이 뒤돌아 대응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아틸라는 보았다.

스스스스스스슷.

샤를의 등 뒤에서, 무형의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아틸라의 착각이었다.

샤를은 악마의 힘인 검은 마력을 발현하지 않았다.

요정의 신비로 벼려진 샤를의 검, 듀란달은 여전히 아레스의 신력을 발하고 있다.

악마의 기운 따윈 조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틸라는 느꼈다.

그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첨예하게 곤두선 자신의 온몸을 통해 감지되는 불온한 감각이었다.

마치 미래를 엿보는 듯한.

콰아앙!

아틸라의 몸이 샤를과 겹쳐졌다.

흑철검이 듀란달과 부닥쳤다.

아틸라는 듀란달의 검신이 새까맣게 변하는 것을 봤다.

그곳에서 불쑥 머리를 드러낸 검은 뱀이 기다란 혀를 날름대며 흑철검을 속박하는 광경을 봤다.

파카카카캉!

이번에도 아틸라와 샤를은 서로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났다.

아틸라의 두 발이 지면에 기다란 고랑을 그렸다.

샤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샤를은, 기나긴 도주 끝에 탈진해 쓰러진 멧돼지를 봤다.

멧돼지는 샤를의 바로 옆에 있었다.

스컹!

듀란달이 멧돼지의 목을 베었다.

아틸라는 그 광경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이겼다! 아틸라!”

소년처럼 환히 웃는 샤를을 보며 아틸라는 자신의 불온한 감각이 더욱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샤를의 등 뒤에서 검은 마력이 솟아나는 환각이 보였다.

그것이 무언가의 형상을 갖췄다.

수천, 아니 수만에 달하는 거대한 군세.

아틸라는 카르타고의 목적을 깨달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