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망자의 목적 (1)
아틸라 일행은 칼날 산맥을 향해 걷고 있었다.
후우, 슈시아가 한숨을 뱉었다.
“난데없이 본 드래곤이라니. 아틸라. 적어도 내게는 미리 말을 해 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요르그 문샤인웰에게 아틸라가 한 이야기는 슈시아를 크게 놀라게 했다.
드루이드용 현자의 돌.
본 드래곤의 심장.
넬다 문샤인웰의 희귀병까지.
그에 대해 슈시아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아틸라. 본 드래곤은 예티보다 강하다. 특히 놈들은 하늘을 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그렇다면 네 역할이 더욱 막중해지겠군. 슈시아.”
아틸라가 웃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던 슈시아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바토리가 말했다.
“현자의 돌을 제외하고는 나도 몰랐단다.”
그러면서 바토리는 아랫입술을 내밀며 아틸라를 돌아봤다.
“슈시아 말대로, 미리 언질 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느냐.”
“미리 말하면 시끄럽게 떠들 바보가 하나 있어서 말이지.”
오토가 물어왔다.
“엥? 시끄럽게 떠드는 바보라면 누굴 말하는 거요?”
그 말에 모든 일행의 눈이 오토에게 꽂혔다.
오토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나, 난 그리 시끄럽지 않소!”
“벌써부터 시끄럽구나. 철혈귀검아.”
“시끄러워. 영주 나리.”
“빌어먹을.”
구시렁대던 오토가 아틸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본 드래곤이니, 예티니, 그것들은 다 뭐요? 얼마나 강한 괴물들이길래 엘프 새끼들이 그리 허둥대는 거요?”
“여기도 엘프 새끼가 하나 있다는 걸 인지했으면 좋겠군. 오토마이어 나바라 왕.”
슈시아의 말에 오토가 놀라 정정했다.
“크흠! 흠! 달빛우물 엘프들 말이오. 헤헤.”
아틸라가 대답했다.
“오토. 네가 상대해 본 그 어떤 놈보다 강하다.”
“엥?”
오토가 몇 번 눈을 꿈뻑거렸다.
그러고는 꽥 소리쳤다.
“뭐, 뭐요? 그, 그럼 그 빌어먹을 크라켄 문어 새끼보다, 중급 악마 다크 나가보다, 그리고 브, 블루 드래곤 아에스투스보다 세다는 말이요?”
“넌 아에스투스와는 안 싸웠잖아. 뭘 은근슬쩍 끼워 넣고 있냐.”
“그러게나 말이다. 뭘 은근슬쩍 끼워 넣는 게냐 철혈귀검아.”
“하여간 영주 나리. 어디 가서 또 드래곤하고 싸웠다는 둥, 버서커 카르타고와 막상막하의 승부를 벌였다는 둥 헛소리하고 다니려는 거지?”
“그, 그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지 않소!”
오토의 항변에 샤를이 말했다.
“왕이 된 후로 조금은 바뀌었나 싶었더니. 처음 봤을 때의 엉터리 용병단장 시절과 똑같군.”
오토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그러나 자신이 샤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빠르게 직감하고는, 한 마리 순한 양으로 돌아왔다.
샤를이 물었다.
“아틸라. 본 드래곤이라는 녀석을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지?”
“너도 걱정하는 건가. 샤를.”
“걱정이라니. 다만 어떻게 싸울 것인지 알아야 효율적인 전투를 치를 수 있기 때문에 확인차 물은 것뿐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이 파티의 전력이라면 본 드래곤 두어 마리 잡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말했다.”
“그래. 그렇다 치자고 그럼.”
아틸라의 말대로.
현재의 일행은 다시 조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파티다.
‘이 정도 멤버로 본 드래곤을 잡지 못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아틸라는 자신이 있었다.
상당한 힘을 잃었지만, 바토리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실력의 마법사다.
‘샤를 녀석이야 뭐, 두말할 것도 없지.’
키릴 또한 샤를에 준하는 실력자.
아울러 아직 귀살의 힘을 완전하게 개화하진 못했지만, 카스피 역시 상당한 실력의 살수다.
아틸라는 잠시 상상해 봤다.
키릴과 카스피가 일대일로 맞붙는다면 어떻게 될까.
‘열에 아홉은 키릴이 이기겠지.’
물론 그건 중무장 방패 전사와, 살수 간의 상성 탓도 크다.
‘그게 아니더라도 키릴의 실력이 우위에 있긴 하지만.’
그러나 머지않아 카스피가 귀살의 힘을 완전하게 개화한다면.
‘재밌는 싸움이 되겠군.’
그뿐만이 아니다.
일행엔 오토, 펀치, 도롱뇽이 있다.
오토는 비록 이 파티에서는 가장 전투력이 떨어지지만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는 실력자고.
펀치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도롱뇽에겐 ‘해방’이라는 무시무시한 한방이 존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시아.’
달빛우물숲의 활잡이 엘프들을 농락했던 슈시아의 신기.
그것을 보며 아틸라는 깨달았다.
‘슈시아의 존재는 크다.’
슈시아는 분명 이번 여정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칠 것이다.
숲의 낯은 짧았다.
조금씩 저물어가는 태양을 보며, 일행은 이곳에서 야영을 하기로 했다.
“내가 사냥을 다녀오지.”
샤를이 말했다.
그는 왕 노릇에서 벗어난 이번 여행이 즐거웠다.
그래서인지 야영을 할 때면, 샤를은 직접 사냥감을 구해 오는 것을 즐겼다.
그때마다 키릴이 함께했다.
샤를이 키릴에게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키릴 또한 샤를에게 점점 끌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게 함께 사냥하는 키릴을 보며, 샤를은 오래전 금사자의 용병들과 사냥하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아틸라가 말했다.
“함께 가지. 샤를.”
샤를의 눈썹이 들어 올려졌다.
지금껏 야영을 하며 가장 많이 사냥을 나선 건 아틸라와 샤를이다.
그러나 둘이 함께 사냥을 나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샤를의 뒤를 따르려던 키릴이 흠칫 놀라 발을 멈췄다.
나머지 일행도 아틸라와 샤를을 번갈아 쳐다봤다.
묘한 정적이 흘렀다.
샤를은 아틸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시 후 피식 입가를 올렸다.
“그래. 함께 가지. 아틸라.”
* * *
아틸라와 샤를은 말없이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너무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간격을 두고 걸었다.
사냥감은 보이지 않았다.
두 사내의 몸에서 발하는 미묘한 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건 샤를이었다.
“어째서냐. 아틸라.”
“우리가 함께 사냥을 나서지 말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그걸 묻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을 텐데.”
물론 아틸라는 알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그럼 질문을 똑바로 하던가.”
“왜 내 오른팔을 치유하려는 거지?”
샤를은 줄곧 그것이 의문이었다.
물론 힘을 합쳐 대격변을 대비하자는 취지는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샤를과 아틸라는 결코 동료라고는 말할 수 없는 관계.
따지고 들자면 적에 가까웠다.
그래서 샤를은 의아했다.
아틸라의 행동은, 자신의 가장 강대한 적이 가진 약점을 제 손으로 없애려는 것이니까.
샤를의 눈에서 엷은 살기가 피어올랐다.
“설마 죄책감을 갖고 있는 거라면.”
“웃기고 있군. 내가 왜 죄책감을 가지고 있냐.”
아틸라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아틸라는 샤를의 오른팔이 망가진 뒤로, 늘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갖고 있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다. 아틸라.”
“안 미안해한다고.”
이번엔 아틸라가 물었다.
“넌 왜 그런 거지?”
“너야말로 질문을 똑바로 했으면 좋겠군.”
“그때 왜, 날 구했느냐고.”
아틸라 또한 지금껏 궁금했지만 묻지 못한 말이었다.
아틸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샤를에게 자신을 투영한 아틸라와 달리.
샤를에게 아틸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잠시 힘을 합쳤을 뿐인 적대적 관계였으니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모르겠다고?”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그때 난 널 구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크라켄의 위협을 뿌리치려면 네 존재가 필요하긴 했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샤를은 기억했다.
크라켄의 흑편이 아틸라를 습격하는 광경을.
‘그리고 그때의 나는.’
크라켄을 물리치려면 아틸라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그런 실리적인 판단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행동이 생각보다 빨랐을 뿐이다.
그 인과로, 샤를은 오른팔을 잃었다.
“그때의 난,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몸이 먼저 움직였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군.”
“단지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는 건가. 샤를.”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와 비슷하다 생각되는군.”
“나 역시 그렇다.”
“뭐라고?”
아틸라가 샤를을 돌아봤다.
“네 오른팔,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서 되돌리는 거라고.”
샤를은 물끄러미 아틸라를 봤다.
잠시 후 샤를의 입술이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후회할 텐데. 아틸라.”
“글쎄. 난 네 오른팔이 원상복구된대도 네게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거짓말이다.
샤를이 완전한 육체를 되찾는다면.
이제 더는 샤를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오른팔이 정말로 회복된다면. 그리고 그 후, 카르타고와 놈의 군대를 섬멸하게 된다면.”
샤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때는 꼭 너와 다시 겨뤄 보고 싶군. 아틸라.”
“그러던지.”
아틸라를 응시하던 샤를의 눈빛이 변했다.
“아틸라.”
“왜.”
“넌 누구지?”
갑작스럽고, 또 앞뒤가 생략된 질문이었다.
그러나 질문의 의미를 아틸라는 알고 있었다.
“넌 평범한 인간이라기엔 필요 이상으로 많은 걸 알고 있다. 네 정체가 뭐냐. 아틸라.”
아틸라는 답하지 않았다.
“너를 떠나 내게 왔을 때의 제롬은, 널 가리켜 이렇게 말했었다.”
“뭐라는데.”
“마치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신한 것 같다고.”
“녀석 다운 생각이군.”
아틸라는 소리 없이 웃었다.
얼마 전까지의 자신이었다면, 제롬이 했다는 저 말에 긍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나야말로 궁금하군. 내가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리고.”
아틸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때였다.
저만치 수풀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아틸라와 샤를은 발을 멈추고, 숨소리를 죽였다.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멧돼지였다.
샤를이 피식 웃었다.
“일단 지금 가야 할 곳은 정해진 것 같군. 아틸라.”
아틸라도 웃었다.
“그런 것 같군.”
“먼저 가겠다. 뒤처지고 싶지 않으면 잘 따라오도록.”
“너나 잘해.”
아틸라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샤를이 바짝 추격했고, 순식간에 추월했다.
“거북이처럼 느리군 아틸라. 하하하하!”
샤를이 기분 좋게 웃으며 달렸다.
역시 스피드에선 샤를이 한수 위였다.
그러나.
아틸라에겐 샤를에겐 없는 특별한 스킬이 존재한다.
[ 돌진(突進) ]
아틸라는 돌진을 시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아틸라가 돌진 스킬을 쓸 것을 예상한 샤를이 빙글, 뒤를 돌며 그의 앞을 막았다.
어느새 뽑아든 듀란달에서는 아레스의 금빛 신력이 방출되고 있었다.
아틸라도 흑철검을 꺼냈다.
두 자루 검이 맹렬하게 서로를 물어뜯었다.
콰아아앙!
아틸라와 샤를의 몸이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났다.
놀라운 일이었다.
샤를은 아틸라의 돌진 스킬을 무식한 방법으로 막아 버렸다.
‘그래. 지금 한번 붙어 보자 이거냐! 샤를!’
자세를 바로잡은 아틸라가 후욱, 숨을 뱉었다.
샤를도 흔들리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러고는 뒤돌아 멧돼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 승부는 멧돼지를 먼저 사냥하는 자가 승리하는 거다! 아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