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30화 (230/425)

230. 달빛우물 엘프 (3)

아틸라의 예상대로, 달빛우물 엘프는 일행을 반기지 않았다.

슈시아가 외쳤다.

“활과 화살을 거둬라! 우린 달빛우물 엘프와 싸울 생각이 없다!”

달빛우물 엘프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활시위를 더욱 당기며 위협의 신호를 보냈다.

슈시아가 재차 외쳤다.

“난 서리나무 엘프의 왕, 슈시아 세이나자르다! 달빛우물숲의 왕을 만나러 왔다!”

이번엔 반응이 있었다.

“……세이나자르?”

“슈시아 세이나자르라고?”

슈시아의 본래 성은 호어프로스트.

세이나자르는 발키리의 힘을 개화한 엘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이름이다.

달빛우물숲의 엘프들도 그것을 알았다.

“들은 적이 있다. 서리왕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의 핏줄, 슈시아 호어프로스트.”

“그래. 분명 타리엘 페살라스가 이야기했던.”

달빛우물 엘프들이 저들끼리 속삭였다.

활은 여전히 일행에게 똑바로 겨눠진 채였다.

그래서 아틸라, 오토, 키릴은 방패를 들고 자신과 일행의 몸을 보호했다.

“샤를.”

키릴이 샤를에게 붙어 서며 말했다.

샤를은 방패를 사용하지 않는 전사다.

키릴의 백금빛 방패를 샤를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곳에선 성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달빛우물 엘프들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의 은은한 성력이.

‘저것이 성 크레센시아 기사단의 성력이로군.’

샤를로서는 처음 마주하는 성스러운 힘.

그러나 한편으로, 그렇게까지 대단한 힘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강한 힘이다. 그러나 나의 상대로는 부족하다.’

샤를은 키릴을 처음 봤을 때, 아틸라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경험했다.

그런데 지금의 키릴에게서 그 정도의 존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잘못 판단한 건가. 아니다. 그럴 리가.’

샤를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키릴 크레센시아에겐 숨겨진 힘이 있다.’

달빛우물 엘프들의 수군거림이 멎었다.

전방의 나무 위에서 엘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우물숲의 순찰대장, 넬다 문샤인웰이오.”

남자가 서늘한 눈으로 일행을 내려 봤다.

그는 다른 엘프보다 훤칠한 키에, 모든 엘프가 그렇듯 상당한 미남자였다.

그런데 묘한 부분이 있었다.

몹쓸 병에 걸린 환자처럼 남자의 안색은 극도로 창백했다.

아틸라는 웃었다.

‘마침 적절한 녀석이 나타났군.’

넬다 문샤인웰.

달빛우물숲의 수장이자 대드루이드인 ‘요르그 문샤인웰’의 아들로.

그는 요르그마저 치유하지 못하는, 어떤 희귀병에 걸려 있는 상태다.

넬다가 말했다.

“그대가 세이나자르라는 것을 증명해 보시오.”

넬다의 손짓에 사방의 엘프들이 활을 내려놨다.

그러나 그를 호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전방의 일곱 엘프만은 예외였다.

그들은 언제라도 화살을 쏘아 낼 수 있도록 팽팽하게 시위를 당긴 채 슈시아를 노려봤다.

슈시아는 등 뒤의 활을 꺼냈다.

시위를 당겨 허공을 조준했다.

슈욱. 슈우우욱.

슈시아의 오른손에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생성됐다.

아틸라는 놀랐다.

지난번 만났을 때의 슈시아는 다섯 개의 마력 화살을 쏘아 내는 것이 한계였다.

‘또다시 성장했군. 슈시아.’

아틸라는 인정했다.

슈시아는 엘프 세계관 최강자다.

한편 아틸라보다 더욱 놀란 건 달빛우물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발키리의 힘을 태어나 처음 보았다.

그러나 저것이 발키리의 마력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슈시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어이. 호위병 활잡이들.”

그리고 속삭였다.

“잠깐 움직이지 말아 달라고.”

일곱 개의 마력 화살이 슈시아의 손에서 쏘아졌다.

팟파파파파파팡!

시위를 떠난 화살이 하늘을 비행했다.

이어 생명을 지닌 새처럼 방향을 틀어 각자의 타깃에 적중했다.

텅! 터터터터텅! 텅!

일곱 호위병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허공에 쏘아진 슈시아 세이나자르의 마력 화살.

그것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방향을 바꿔, 그들의 화살을 절단한 것이다.

슈시아가 활을 갈무리했다.

넬다를 향해 씩 웃어 보였다.

“이 정도면 확인이 되었나?”

넬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말했다.

“충분히.”

* * *

일행은 달빛우물숲으로 입장했다.

원래 넬다는 엘프인 슈시아만을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슈시아가 반발했고, 약간의 언쟁 끝에 넬다는 고집을 꺾었다.

아무리 다른 일족이긴 해도.

서리나무숲을 이끄는 수장이자, 발키리의 새로운 시조인 슈시아의 뜻을 끝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던 것.

“아름답군.”

슈시아가 중얼거렸다.

서리나무숲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

슈시아는 다른 일족의 은거지에 와 본 것이 처음이었고, 순수하게 감동했다.

“타리엘의 말이 맞군.”

타리엘은 슈시아에게 달빛우물숲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정말로 아름답네요. 엘프들의 숲은.”

키릴이 말했다.

다른 일행들도 주위 풍경에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아틸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전에 서리나무숲을 처음 방문했을 때, 아틸라는 적잖이 놀라며 이렇게 생각했었다.

‘내 머릿속 상상과 완전히 동일하다.’

또한 이런 상상도 했다.

‘나 자신이 직접 이곳을 경험한 뒤 소설로 옮긴 것처럼.’

그때는 후자의 생각을 웃어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버지의 꿈을 꾼 뒤로, 아틸라는 점점 후자의 생각 쪽으로 기울어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일행을 발견한 달빛우물 엘프들이 수군거렸다.

“인간이다.”

“인간이 왜 이곳에.”

“이끄는 이가 넬다 순찰대장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다른 일족의 엘프도 있어.”

그들의 눈빛을 뒤로하며 일행은 달빛의 성으로 들어갔다.

서리나무 엘프의 성처럼 크진 않지만, 그 못지않게 아름다운 성이었다.

넬다는 거침없이 왕의 알현실로 향했다.

그 덕에 일행은 생각보다 빠르게 달빛우물숲의 수장, ‘요르그 문샤인웰’을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

넬다가 요르그에게 다가가 무언갈 속삭였다.

잠시 후 넬다가 요르그 곁에서 떨어졌다.

요르그가 말했다.

“슈시아 세이나자르.”

“그렇습니다. 달빛우물숲의 왕이자 대드루이드인 요르그 문샤인웰.”

“서리나무 엘프의 왕이시라 들었소.”

“제 어머니이자 선대왕이신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는 임종하셨습니다. 그래서 후계자인 제가 새로운 수장이 되었지요.”

“안타까운 일이로군. 그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가.”

무언갈 생각하던 요르그가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는 서리나무 엘프의 왕이자, 부활한 발키리의 시조가 되겠군.”

“그 또한 그렇습니다.”

슈시아는 일리시아를 만나 발키리의 힘을 계승한 과정을 짤막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 속엔 아틸라와 바토리도 있었고, 그래서 요르그와 넬다는 종종 두 사람을 바라봤다.

잠시 후 슈시아가 이야기를 끝냈다.

요르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그녀의 본래 이름은 일리시아 문샤인웰이오. 혹시 알고 있었소?”

“알고 있었습니다.”

“본래 발키리의 마력은 일족의 구분 없이 모든 엘프가 지녔던 힘이었지. 그 힘을 일리시아 문샤인웰이 지켜 냈고, 그대가 계승 받은 것이로군.”

요르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달빛우물숲을 찾은 이유가 무엇이오. 새로운 발키리의 시조여.”

대답은 아틸라가 했다.

“대드루이드인 당신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요.”

요르그의 눈이 아틸라를 바라봤다.

“전사 아틸라. 들은 적이 있소. 타리엘 페살라스를 쓰러뜨린 새로운 무적자라고.”

“타리엘을 쓰러뜨린 건 나 혼자만이 아니오.”

아틸라가 샤를을 돌아봤고, 샤를은 어깨를 으쓱했다.

요르그와 넬다는 그것의 의미를 알았다.

“엘프 영웅 타리엘 페살라스. 그를 쓰러뜨린 두 명의 전사가 함께 이곳을 찾아오다니.”

“샤를 아인하르트다.”

요르그와 넬다의 눈빛이 변했다.

남쪽의 패왕, 샤를 아인하르트.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이제 남부 대륙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틸라가 말했다.

“샤를은 수년 전, 오른팔이 절단된 적이 있소. 그 즉시 치유하긴 했지만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는 없는 상태지. 요르그 문샤인웰. 당신이 도움을 주었으면 하오.”

“내가 그대들을 도와야 할 마땅한 이유라도 있소?”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좋소. 그 문제는 잠시 차치하도록 하지. 그러나 전사 아틸라. 드루이드의 치유력은 만능이 아니오. 난 샤를 아인하르트의 오른팔을 완전하게 되돌릴 수 없소.”

샤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틸라가 말했다.

“물론 당신의 힘만으로 완벽한 치유는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가져왔소.”

아틸라는 알키미야가 만든, 드루이드용 현자의 돌을 꺼내 요르그에게 건넸다.

요르그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이것은…….”

“현자의 돌. 당신의 치유력을 증폭시켜줄 거요.”

“노움의 연금술로 만든 물건인 것 같군.”

“그렇소. 샤를의 팔을 치유해 주는 대가로 그걸 드리겠소.”

요르그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확실히 대단한 물건이군. 그러나 이것만으로 완전히 절단된 팔을 처음처럼 기능하도록 만드는 건 어렵소. 아니, 그 어떤 힘으로도 불가능하지. 신의 은총이라도 내리지 않는다면 말이야.”

“알고 있소. 당신의 말처럼, 신의 은총이라도 내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혹은.”

“혹은?”

“그에 준하는 특별한 재료가 존재하거나.”

아틸라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요르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요. 전사 아틸라.”

“본 드래곤.”

아틸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이곳 칼날 산맥 중턱에 본 드래곤의 서식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소. 동료들과 함께 그곳으로 가, 놈의 심장을 꺼내오지.”

본 드래곤(Bone Dragon).

쉽게 말해 해골용이다.

언데드인 놈의 심장은 의외로 드루이드의 마력과 궁합이 좋다.

이유는.

‘심장만큼은 언데드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넬다가 발끈해 외쳤다.

칼날 산맥의 괴수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심지어 초입도 아니고, 중턱에 서식하는 괴수 중에서도 상당한 강자인 본 드래곤이라니.

슈시아가 끼어들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이오. 실제로 나와 아틸라는 발키리들과 함께 두 마리의 예티를 사냥한 적이 있으니까.”

“뭐, 뭐라고?”

넬다의 눈이 부릅떠졌다.

‘서리거인’이란 이명을 지닌 예티는, 칼날 산맥 중턱에 서식하는 무시무시한 괴수다.

“농담이 지나치시오! 슈시아 세이나자르!”

슈시아의 얼굴 표정이 차가워졌다.

“농담? 서리나무의 왕인 나, 슈시아 세이나자르가 타 일족의 왕을 앞에 두고 농담이나 지껄일 자로 보인단 말인가.”

슈시아의 기세에 넬타의 몸이 움찔했다.

아틸라가 말했다.

“이것으로 요르그 문샤인웰, 당신이 샤를을 치유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설명된 것 같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오. 전사 아틸라.”

“본 드래곤의 심장 두 개를 가져오지.”

그렇게 말하며 아틸라의 시선이 흘끗 넬다를 바라봤다.

“하나는 샤를의 팔을 치유하는 데 사용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물로 드리지.”

아틸라의 입가가 확연한 미소를 머금었다.

“나머지 하나로, 당신은 넬다의 병을 치유할 수 있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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