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29화 (229/425)

229. 달빛우물 엘프 (2)

일행은 서리나무숲의 왕성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슈시아는 서리나무 엘프의 왕이 되었다.

선대왕이자 슈시아의 어머니였던 아이리스 호어프로스트는 얼마 전, 긴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발키리의 수장이자 서리나무 엘프의 왕이라니. 무거운 직책을 두 개나 맡았군. 슈시아.”

아틸라의 말에 슈시아는 웃었다.

그러고는 아틸라의 새로운 동료들을 돌아봤다.

“그대가 남쪽의 패왕이라 불리는 샤를 아인하르트로군요.”

샤를을 대하는 슈시아의 어투는 아이리스를 닮아 있었다.

샤를이 답했다.

“슈시아 세이나자르. 그러지 않아도 피핀과 제롬을 통해 이야기는 들었다. 늦었지만 파우스트 소멸에 도움을 준 것에 깊은 감사를 표하지.”

슈시아와 발키리 부대는 아인하르트 왕국을 침공한 파우스트를 섬멸하는 전쟁에서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슈시아는 부드럽게 미소하며 고개를 까딱했다.

그 여유롭고도 자연스러운 모습에 아틸라는 슈시아를 처음 봤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슈시아는 덩치만 자란 어린아이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슈시아에게선 왕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아틸라는 내심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성장했군. 슈시아.’

슈시아는 오토, 카스피와도 인사를 나눴다.

슈시아는 이들을 처음 보았다.

아틸라는 크라켄을 쓰러뜨린 뒤 오토, 카스피와 헤어진 적이 있었고.

그즈음 새로운 동료로 합류한 게 슈시아였다.

이후 슈시아는 발키리의 힘을 획득한 뒤 서리나무숲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아틸라는 오토와 카스피를 재회했다.

슈시아는 카스피에게 관심을 가졌다.

“말로만 듣던 귀살의 일족이라니.”

이어 슈시아는 키릴과 인사를 나눴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키릴 크레센시아.”

역시 키릴은 이곳에서도 유명인이었다.

인사가 끝난 뒤, 아틸라와 바토리는 현재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슈시아는 간간이 미간을 찌푸리고, 또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대격변이라. 세계선이 무너지고 있는 것에 대해선 우리 역시 감지하고 있었지.”

슈시아가 아틸라를 돌아봤다.

“그래서, 나를 찾은 이유가 뭐지? 아틸라.”

“첫 번째 이유는 다가올 대격변에서 힘을 보태 달라는 것.”

“그건 대환영이지. 이계의 것들이 중간계를 침범한다는데 멍하니 있을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군.”

슈시아가 너스레를 떨자 아틸라는 피식 웃었다.

“그다음 두 번째 이유는?”

“우리와 함께 어딜 가 주었으면 한다.”

슈시아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어디를 말이지?”

“달빛우물숲.”

슈시아의 얼굴 표정이 대번에 차가워졌다.

“아틸라.”

“알고 있다. 엘프들이 다른 일족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엘프는 폐쇄적인 종족이다.

다른 일족과 스스럼없이 지내는 드워프와 달리.

엘프는 다른 일족을 경계하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그것에 가장 큰 이유를 부여한 건 다름 아닌 파우스트.

먼 옛날 파우스트와 엘프 간의 격돌로 엘프들은 약화됐다.

그러면서 생겨난 여러 갈등과 불신이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고, 싹을 키웠다.

“그런데도 내게 달빛우물숲으로의 동행을 요구하는 건가. 아틸라.”

“부탁이라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슈시아는 한숨을 뱉었다.

그녀는 달빛우물숲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부탁하는 대상이 아틸라다.

슈시아는 아틸라에게 큰 신세를 졌고, 아틸라의 부탁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달빛우물숲이라니.’

달빛우물숲.

그곳에 사는 달빛우물 엘프들은 먼 옛날 파우스트와의 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일족이다.

‘일리시아 세이나자르.’

망자의 저주에 걸린 채, 자신의 육체에 발키리의 힘을 봉인하고, 마침내 슈시아에게 그 힘을 전달했던 영웅 일리시아.

그녀가 바로 달빛우물 엘프다.

‘달빛우물 엘프들은 일리시아의 힘을 흡수한 날 달가운 눈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슈시아는 아틸라가 한 부탁의 의미를 안다.

서리나무숲과 마찬가지로, 달빛우물숲은 아무나 그 입구를 찾을 수 없다.

‘오직 달빛우물숲의 엘프만이, 그들의 은신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슈시아는 달빛우물숲의 가장 뛰어났던 영웅, 일리시아의 힘을 이어받았다.

그러므로 슈시아는 달빛우물숲의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다. 슈시아.”

아틸라가 이어 말했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어도 넌 언젠가 달빛우물숲을 찾아야 한다. 네가 지닌 발키리의 힘은 일리시아의 것보다 강하다. 다가올 대격변을 대비하려면, 네 힘을 보다 많은 엘프들을 위해 써야 해.”

“인간이 언제부터 우리 엘프들을 걱정했지?”

슈시아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아니, 모든 엘프는 인간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슈시아의 그런 표정은 잠시였다.

슈시아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틸라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

“미안하군 아틸라. 지금의 말은 사과하겠다.”

“신경 쓸 것 없다.”

“달빛우물숲을 찾으려는 이유가 뭐지?”

아틸라의 눈이 샤를을 돌아봤다.

“샤를 아인하르트의 오른팔을 치유하기 위해서다.”

“오른팔을?”

슈시아의 눈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직관의 눈을 뜬 슈시아가 샤를의 몸을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저 오른팔은 한번 절단된 뒤 이어붙인 거로군.”

샤를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런 것을 알 수 있나?”

“한번 깨어진 그릇은 완벽하게 이어붙일 수 없는 법입니다 샤를.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뛰어난 치유의 힘이라 해도, 그 정도로 망가졌던 몸을 완벽하게 수복할 수는 없지요. 심지어 그것이 전사의 가장 큰 무기인 오른팔이라면 더더욱.”

역시 슈시아는 샤를의 몸 상태를 한눈에 알아봤다.

아틸라로서는 그녀를 달빛우물숲으로 데려가야 할 이유가 늘어난 셈이다.

샤를의 팔이 제대로 치유가 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슈시아가 지닌 직관의 힘이 필요할 테니.

“비겁하군. 아틸라.”

슈시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틸라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뭐가 말이지?”

“넌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않나. 내가 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걸.”

“백 퍼센트 확신은 아니었다.”

“그럼?”

“99퍼센트 정도?”

아틸라의 농담에 슈시아는 큰 소리로 웃었다.

고민을 마치고 결정을 내린 자의 후련한 대소.

의자를 밀치고 일어서며 슈시아가 말했다.

“좋아 까짓것. 바로 출발하자고.”

* * *

강과 호수의 나라라 불리는 수오미 왕국.

그곳의 북서쪽 끝단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광활한 대지가 있다.

이유는 그로부터 조금 더 서쪽으로 이동하면.

대륙을 감싸듯 펼쳐진 수해와 더불어, 또 하나의 미지(未知)라 불리는 칼날 산맥이 펼쳐져 있기 때문.

칼날 산맥의 괴수는 강하다.

즉, 이곳은 인간이라면 감히 접근조차 꺼리는 땅.

그렇게 칼날 산맥의 문지기와도 같은 너른 대지를 지나면.

급속도로 낮아진 기온과 어울리지 않는 울창한 밀림이 존재하는데.

그곳 깊숙한 어딘가에.

달빛우물숲으로 통하는 입구가 있다.

“확실히, 갑자기 추워지는군.”

아틸라는 망토를 끌어올려 추위를 막았다.

바토리는 펀치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있었다.

도롱뇽은 진즉 펀치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으으……. 뭐가 이렇게 추운 거야 영주 나리.”

“나, 나도 추워 죽겠소 살쾡이 암살자.”

주르륵 콧물을 흘리며 오토가 바토리를 봤다.

“바, 바토리 아가씨. 이 빌어먹을 추위 좀 마법으로 어떻게 할 수 없소?”

“흐응. 왜 없겠느냐.”

그 말에 오토가 반색했다.

“그, 그럼 어떻게 좀 해 주쇼! 태어나 이렇게 추운 지역에 온 건 처음이란 말이오!”

“그게 타인에게 무언갈 부탁하는 태도더냐. 철혈귀검아.”

“앗. 부, 부탁드립니다 바토리 아가씨. 헤헤.”

“거절하겠다.”

“에엥?”

“이곳은 달빛우물 엘프의 영역이다. 괜히 마법을 사용해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구나.”

“아니 그럼 왜 부탁하는 태도 가지고…….”

“날도 추운데, 그냥 한번 보고 싶었다.”

“……!”

그러나 마법을 쓰지 않겠다는 바토리의 말엔 일리가 있었다.

오토도 그것을 알았기에 더는 뭐라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괜히 아틸라에게 심통을 부렸다.

“아니 아틸라 님. 이렇게 추운 줄 알고 있었으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시던가. 아니, 분명 알고 있었을 거 아니요!”

“뭐야. 왜 불똥이 나한테 튀어.”

“그, 그도 그렇잖수! 듣자 하니 아틸라 님은 칼날 산맥도 전부터 왕래한 적이 있는 것 같고! 미, 미리 말해 주었으면 준비라도 하지 않았겠소!”

오토는 너무 추운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그럴 만도 했다.

오토의 말대로, 그는 지금껏 따뜻한 지역에서만 생활했으니까.

아틸라가 내뱉듯 말했다.

“추우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던가. 네 나라로.”

“아아니 누가 그런다고 했수? 푸념 좀 한 거 가지고 또 저렇게 못되게 구신다.”

오토도 자신이 너무 기어올랐다는 걸 깨달았는지 이후론 목소리를 낮췄다.

웬일로 샤를이 오토를 거들었다.

“오토마이어의 말이 맞다. 확실히 추운 날씨로군.”

“보시오 아틸라 님! 남쪽의 패왕 샤를도 그리 말하지 않소!”

만족한 오토가 샤를을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냥 오토라 부르게. 오토. 헤헤.”

오토의 능글맞은 표정 때문인지, 아니면 추위 때문인지 샤를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던 중 무언가 생각났는지 품 안을 뒤졌다.

“그렇군. 제롬은 지금 같은 상황을 대비했던 건가.”

샤를이 품에서 꺼낸 건 얇고 기다란 천 조각이었다.

그것엔 마법적인 처리가 되어 있었고, 추위를 상당히 막을 수 있었다.

샤를이 제롬에게서 받은 건 두 개.

잠시 고민하던 샤를은 키릴과 카스피에게 천 조각을 하나씩 건넸다.

“목에 둘러라. 제법 효과가 있을 테지.”

“응? 고, 고마워 샤를.”

“고마워요. 샤를.”

엉겁결에 천 조각을 받은 두 여인은 그것을 목에 둘렀다.

둘의 표정이 금세 따스해졌다.

제롬의 선물은 효과가 확실했다.

바토리가 물었다.

“내건 없는 것이더냐. 샤를.”

“그 곰털이 훨씬 따뜻해 보이는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바토리가 웃었다.

그러고는 아틸라의 망토 속을 비집고 들어갔다.

“뭐야. 왜 들어오는데.”

“날이 춥구나. 함께 가면 안 되겠느냐.”

“뭐, 그러던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추위에 익숙한 슈시아가 아틸라와, 그의 망토 속 바토리를 봤다.

슈시아의 입가가 피식 올라갔다.

‘너도 많이 바뀌었군. 아틸라.’

일행은 그 뒤로도 한참을 걸었다.

“여기서 가깝다.”

슈시아는 멀지 않은 곳에서 틈새의 기운을 감지했다.

그녀 스스로도 반신반의했지만, 역시 슈시아는 달빛우물숲의 틈새를 찾을 수 있었다.

불현듯 슈시아의 표정이 변했다.

발을 멈췄다.

길잡이였던 슈시아가 멈춰 서자 나머지 일행도 자리에 멈췄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이유를 알았다.

사방의 나무 위에서, 수많은 활과 화살이 일행을 겨냥하고 있었다.

미소하는 아틸라의 입가에 송곳니가 드러났다.

“예상 그대로의 손님맞이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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