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26화 (226/425)

226. 카스피의 과거

키릴의 신력은 아틸라를 구했다.

아틸라는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도, 지금의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이가 키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원작에서 키릴은, 샤를이 악마의 힘에 타락하려 할 때마다 그를 구해 내는 존재.

‘샤를! 정신을 차려요 샤를!’

‘나를 봐요! 무너져선 안 돼요 샤를!’

또한 아틸라는 자신이 지닌 힘과, 버서커의 권능이 샤를에게 숨겨진 ‘악마의 힘’과 비슷한 종류라는 것을 조금씩 감각하고 있었다.

그것을 가장 뚜렷하게 느낀 건 샤를과 힘을 합쳐 카르타고에 대적했을 때.

‘아틸라!’

아틸라는 샤를이 악마의 힘을 발현해 카르타고와 싸우는 광경을 봤다.

또한 카르타고의 ‘검은 오러’ 역시, 자신과 샤를이 지닌 힘과 동류라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아틸라는 원작에서 샤를을 구해 내는 키릴이라면, 자신 또한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게다가 키릴은 원작보다 강해졌다.

그녀는 포이베의 신력을 더욱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아틸라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키릴은 아틸라를 구했다.

그녀가 지닌 올곧은 성품과 강대한 성력,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신력은 아틸라를 죽음의 문턱에서 끌어냈다.

그래서 일행은 오토의 예견대로.

샹크리스의 어느 마을 여관 식당에서, 데비쉬 살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판을 벌일 수 있었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말이오! 데비쉬 마스터 하나가 번개 같은 속도로 내 목을 공격하려는 거요! 물론 난 뱀처럼 빠르고 유연한 동작으로 그 공격을 피했소! 그러니까 마스터 놈이 이렇게 말하더란 말이요!”

오토가 데비쉬 마스터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목소리를 깔았다.

“과연 오토마이어 나바라. 대단한 실력이다. 크윽……. 아무래도 나 혼자의 힘으론 무리일 것 같군.”

비장한 표정으로 말한 오토가 껄껄대며 웃었다.

바토리가 말했다.

“그건 사실과 좀 다른 것 같구나. 내가 듣기론 데비쉬 마스터가 ‘모가지를 뜯어주마.’ 라고 말한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니 그, 그건……!”

“게다가 철혈귀검 넌 그 마스터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목에 제법 깊은 상처가 남지 않았더냐.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마법을 시전해 녀석을 쓰러뜨린 것이고 말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부, 분명 난 피했단 말이오! 게다가 바토리 아가씨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난……!”

“응? 여기 이 상처 말하는 거 같은데? 영주 나리.”

카스피가 오토의 목 상처를 꼬집었다.

오토가 꽤애액! 비명을 질렀다.

원망 가득한 눈으로 카스피를 흘겨보던 오토는 주섬주섬 말을 정정했다.

“크흠! 큼! 그, 그러고 보니 약간 스치긴 한 것 같소.”

“엥? 이 정도가 스친 거라고? 플레이트 아머가 아니었으면 목이 뎅겅 잘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인데?”

“사, 살쾡이 암살자가 뭘 안다고 자꾸……!”

“에에엥? 잊었어? 나 살수잖아. 살수의 공격법에 대해 여기서 나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자, 여기 봐봐. 갑옷에 상처가 있잖아. 이게 데비쉬 마스터의 단검을 막아 준 덕에 영주 나리가 이렇게 어깨 위에 모가지 붙이고 주절댈 수 있는 거라고.”

“아, 알았으니 그만 좀 하쇼!”

오토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자리엔 용병들도 많았기에 웃음소리는 여관이 떠나갈 듯했다.

“그, 그럼 피곤해서 먼저 올라가겠소.”

“오토 대장도 상처 입은 몸에 무리하지 말고 푹 쉬쇼.”

얼큰하게 술에 취한 용병들이 하나둘 방으로 올라갔다.

신나게 먹고 떠들어 지치기도 했고, 또 아틸라 일행만의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어서 꺼지라는 듯 그들을 쏘아보는 살쾡이의 사나운 눈동자 때문이었지만.

용병들이 모두 사라졌다.

자리엔 아틸라, 바토리, 오토, 카스피, 키릴만이 남았다.

카스피가 말했다.

“데비쉬 마스터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어.”

“무슨 말 말이더냐.”

“그가 말하길, 나와 같은 자를 만난 적이 있대.”

오토의 표정이 변했다.

“뭐요? 설마 살쾡이 암살자와 같은 자라면.”

“그래. 귀살자 말이야. 그리고 그 귀살자는 하싸씬의 살수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어.”

카스피는 바토리와 아틸라를 번갈아 봤다.

그들이라면 무언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아틸라가 입을 열었다.

“하싸씬의 단주는 귀살의 일족이다.”

카스피의 예상대로였다.

하싸씬의 단주.

단주 직속 살수부대인 ‘암부’와, 하싸씬의 일곱 마스터만이 만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카스피는 단주를 직접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일곱 마스터 중 하나인 사바흐는 단주와 대면할 수 있다.

카스피가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렇다면 스승님은, 하싸씬의 단주가 귀살의 일족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알고 있다.”

아틸라는 딱 잘라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귀살의 일족은 멸망했고.

당시 갓난아기였던 카스피를 죽음으로부터 지켜 낸 게 바로 사바흐니까.

“……뭐라고? 스승님이 날 구해? 그런데 왜 내겐 아무 말도…….”

“네가 귀살의 일족이라는 걸 숨겨야 했기 때문이지.”

“대체 왜.”

“단주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널 죽이려 할 테니까.”

아틸라의 말은 카스피를 혼란스럽게 했다.

“단주가 날 죽여? 단주는 귀살의 일족이라면서. 같은 일족인 날 왜 죽인다는 거야?”

아틸라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싸씬의 단주가 귀살의 일족을 멸망시킨 장본인이니까.”

아틸라는 설명했다.

20여 년 전.

하싸씬의 단주, ‘셰이카 라딤’은 귀살의 일족의 은거지를 찾았다.

셰이카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귀살자가 대륙에서 사라지길 원했다.

그래서 당시의 마스터들, 그리고 암부와 함께 귀살자들의 은거지를 습격했다.

“셰이카가 귀살자들을 죽이려 한 것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바로 데비쉬의 단주, ‘살라딘 쿠르드’ 때문이지.”

살라딘은 고위악마 벨리알의 화신.

“고위악마 벨리알은 자신이 지닌 권능 중 하나를 무기의 형태로 집약해 살라딘에게 선물했다. 살라딘은 그 힘을 이용해 엄청난 강자로 성장했지.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자신의 힘을 소수의 측근들에게 나눠주며 하싸씬을 위협할 만큼의 강력한 살수 집단, 데비쉬를 만들었다.”

카스피가 물었다.

“하지만 살라딘이 데비쉬를 만든 것과, 셰이카가 귀살의 일족을 멸망시킨 게 무슨 관계가 있는 건데?”

“살라딘이 지닌 특별한 힘, ‘흡혈’ 때문이다.”

“흡혈?”

“살라딘은 벨리알의 권능 중 하나인 ‘흡혈’을 사용하는 화신이다. 살라딘의 단검, ‘사타나일’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지.”

카스피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살라딘은 사타나일을 이용해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아틸라의 눈이 카스피를 똑바로 바라봤다.

“살라딘은 카스피, 네가 될 수 있다.”

살라딘이 가진 흡혈의 권능.

그것은 상대의 육체와 더불어, 상대의 모든 힘을 빼앗는 기술이다.

“살라딘은 자신의 영혼을 상대의 육체로 이전시킬 수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녔던 모든 능력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그릇이 된 자의 능력마저 흡수할 수 있지. 그렇게 그는 평범한 인간보다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놀라운 이야기였다.

카스피, 오토, 키릴은 멍하니 아틸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바토리만이 덤덤한 표정으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20여 년 전, 귀살자들의 은거지를 먼저 발견한 건 셰이카가 아닌 살라딘이었다. 이전에 셰이카를 만나 패배한 적이 있었던 살라딘은 셰이카가 귀살자라는 것을 알게 됐지.”

이후 살라딘은 귀살자의 힘을 원했다.

그러나 살라딘에게 셰이카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고.

그래서 살라딘은 혹시 모를 다른 귀살자들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정보력을 동원했다.

“그렇게 살라딘은 귀살자들의 은거지를 찾았다. 그리고 살라딘이 귀살의 힘을 흡수하는 걸 막기 위해 셰이카가 나섰다.”

귀살자들은 막강한 상대였기 때문에 살라딘으로서는 준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셰이카는 달랐다.

셰이카는 귀살의 일족 역사상 최강의 전사였고, 그가 키운 일곱 마스터와 암부는 뛰어난 살수부대였다.

첩자의 보고를 통해 살라딘의 계획을 알게 된 셰이카는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귀살자들의 은거지를 습격해, 모든 귀살자들을 죽였다.

“그렇다면…… 나는…….”

“당시 귀살의 일족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막내 마스터, 사바흐가 널 살려 준 거다.”

카스피의 눈이 파문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아틸라는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이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말은 모두 사실이다.”

카스피도 그것을 알았다.

아틸라는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아틸라가 이제 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할 리도 없다.

카스피는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술기운과 합쳐지며 그녀의 머릿속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카스피는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 속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렸다.

갓난아기가 되어있는 자신.

그런 자신을 품에 안고 달리는 이.

흔들리는 시야.

다급한 발소리.

낯익은 냄새.

카스피의 눈이 흐릿하게 풀어졌다.

그녀의 시선은 그날의 기억을 엿보고 있었다.

원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환술을 경험했던 그녀는 그때의 일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헉……. 헉…….’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핏물이 떨어져 얼굴을 적신다.

카스피는 또렷하게 눈을 뜨려 애쓰며, 자신을 안고 달리는 이의 얼굴을 봤다.

걱정 어린 얼굴 너머로 익숙한 무기가 눈에 들어왔다.

사슬낫.

‘스승님.’

사바흐.

젊은 날의, 아니 어린 날의 사바흐였다.

당시 사바흐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그 정도로 어린 나이에 하싸씬의 마스터가 될 정도로, 그는 빼어난 살수였다.

‘주, 죽으면 안 돼. 내가 어떻게든, 어떻게든 널 살려 주겠어!’

사바흐는 어릴 적 여동생을 잃은 적이 있다.

사바흐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그의 마을은 살수들의 습격을 받았고, 마을은 전멸했다.

왜 살수들이 마을을 습격했고, 그의 부모가 죽음을 맞아야 했는지 당시의 사바흐는 몰랐다.

그가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여동생의 죽음이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여동생의 시신을 끌어안은 사바흐를, 살수들이 발견했다.

‘살아 있는 꼬마가 있군.’

‘목격자는 남기지 않는 편이 좋아. 제거하자고.’

‘잠깐.’

죽음의 문턱에서 사바흐를 살린 건 어느 장년의 남자였다.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갈 테냐.’

사바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어떻게든 힘을 키워, 살수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다.

‘네 이름이 뭐냐.’

‘……사바흐.’

‘내 이름은 라시드다. 라시드 앗 딘. 다시 만날 날이 있을진 나도 모르겠구나.’

남자는 사바흐를 데리고 교단으로 돌아갔다.

본래 살수는 고아 출신이 대부분이다.

교단에 도착한 사바흐는 열심히 훈련했고, 그에겐 재능이 있었다.

머지않아 사바흐는 하싸씬의 마스터가 되었다.

그리고 단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힘을 키우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귀살의 일족을 멸하는 임무에서, 여동생을 닮은 아기를 만났다.

단주의 눈을 피해 아기를 숨긴 사바흐는 오래전 자신을 구해 줬던 살수를 찾아갔다.

그에게 아기를 맡겼다.

‘이 아이의 이름은.’

사바흐는 아기에게 여동생의 이름을 붙였다.

“카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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