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만든 세계 속 광전사가 되었다-224화 (224/425)

224. 포이베의 신력 (4)

데비쉬의 마스터, ‘하림 마수드’는 사각에서 날아드는 사슬낫을 보며 놀랐다.

‘이렇게까지 기척을 숨기고 다가왔다고?’

카앙!

하림은 단검을 들어 사슬낫을 막았다.

그러나 튕겨난 사슬낫은 뱀처럼 머리를 흔들며 하림의 몸을 속박하려 했다.

하림은 데비쉬의 절기, 그림자마술을 사용했다.

슈우욱.

하림의 몸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그림자마술은 하싸씬의 절기, 소멸과 유사한 기술.

그리고 그림자마술은 소멸과는 달리, 어두운 곳에서 더욱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아직 완전히 어둠이 내린 것은 아니지만.’

해는 서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밤은 아니었고, 그래서 하림의 그림자마술은 완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림은 걱정하지 않았다.

‘상대가 하싸씬의 마스터가 아닌 다음에야, 날 추적할 순 없다.’

하림의 오판이었다.

그의 상대인 카스피는 이미 특급의 경지에 다다른 살수였으니까.

파팟!

카스피의 손에서 표창이 날아갔다.

그것이 하림의 어깨에 꽂혔다.

“크헉……!”

은신하던 하림의 몸이 드러났다.

그의 눈앞으로 카스피가 나타났다.

하림은 단검으로 카스피를 찔렀다.

카스피는 연체동물처럼 몸을 비틀어 그것을 피했다.

“누구냐! 넌!”

데비쉬의 또 다른 마스터, ‘아메드 하크’가 하림을 도왔다.

그의 단검이 카스피의 배후를 공격했다.

그러나 카스피는 그것마저도 믿기지 않는 몸놀림으로 피했다.

이어 그녀의 몸이 두 마스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퍼엉.

그 순간 하림과 아메드는 상대의 정체를 깨달았다.

“하싸씬의 마스터!”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카스피는 하싸씬의 마스터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발현한 하싸씬의 절기 ‘소멸’은 하림의 그림자마술보다 완벽했다.

그래서 하림과 아메드는 카스피가 하싸씬의 마스터 중 하나일 거라 단정했다.

“하싸씬도 카자르를 노리고 있는 건가!”

“그런데 왜 키릴 크레센시아와 함께……!”

하림과 아메드는 당황했다.

하싸씬의 마스터들은 은밀히 움직인다.

이렇게 대놓고 크레센시아의 성기사와, 심지어 이름도 알 수 없는 용병들과 함께할 리 없다.

얼마 전까지 발루아 왕국에서 하싸씬의 살수들과 전투를 벌였던 하림과 아메드는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크레센시아 성기사단과 밀약이라도 나눈 것인가! 하싸씬의 마스터!”

카스피는 답하지 않았다.

대꾸할 필요도 없었고, 이대로 데비쉬의 두 마스터가 혼란스러워하는 편이 더 상대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글쎄. 어떨까.”

카스피의 신형이 소멸을 뚫고 등장했다.

한발 앞서 그녀의 단검이 타깃의 덜미를 습격했다.

* * *

한편 키릴은 데비쉬의 두 마스터를 무시한 채 마차로 직진하고 있었다.

“키릴 크레센시아를 막아라!”

“카자르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데비쉬의 살수들은 키릴을 알아봤다.

현재 데비쉬에서 가장 요주의 인물로 손꼽히는 대상은 카자르(아틸라)지만.

다음으론 샤를, 그리고 키릴 순이었다.

“하아압!”

키릴은 밀려드는 살수들의 무기를 방패로 막고, 아밍 소드를 뻗어 반격했다.

그녀가 팔을 휘두를 때마다 살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키릴은 자신의 성력이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틸라의 말대로다. 점점 더 성력이 강해지고 있어.’

그러면서 키릴은 저 앞의 마차에 누워 있을 아틸라를 생각했다.

자신이 지금껏 만난 전사 중 가장 강력한 사내.

누구와 싸운대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던 그 사내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카스피.’

키릴은 데비쉬의 마스터들과 격전을 벌이는 카스피를 돌아봤다.

조금 전, 마차를 습격하는 살수들을 발견한 카스피는 키릴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데비쉬 녀석들이야.”

“데비쉬라면……!”

키릴도 데비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카스피의 눈이 핏물처럼 변했다.

귀안을 발현한 카스피는 데비쉬의 살수들 속에서 남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두 명의 사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데비쉬의 두 마스터는 내가 상대하겠어. 키릴. 넌 곧장 아틸라에게 달려가.”

“마스터 둘을 혼자 상대한다고요?”

키릴이 놀라 물었다.

“걱정 마 키릴.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하지만……!”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아틸라를 구하는 거야. 그러니까 잔소리 말고 달려. 너만이 지금의 아틸라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할 수 있어.”

키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후 키릴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피는 발목을 움직여봤다.

키릴이 치유해 준 발목에선 조금의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단해. 이 정도라면 아틸라도 분명.’

카스피는 포이베의 성력이나 신력에 대한 것은 잘 몰랐다.

그러나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키릴의 치유 능력은 하르티칸 대사제보다 우위에 있었다.

“먼저 가겠어. 키릴.”

그렇게 카스피는 데비쉬의 마스터들을 향해 몸을 날렸고.

키릴은 두 마스터를 무시하며 마차를 향해 말을 달렸다.

“히익! 나, 나 좀 얼른 도와주쇼! 성기사 아가씨!”

마차는 조금 전부터 멈춰 있었다.

오토는 십수 명에 달하는 살수들에게 공격당하는 중이었다.

‘오토의 얼굴빛이 좋지 않아. 분명 며칠 동안 한숨도 자지 못한 거겠지.’

그럼에도 오토의 방어력은 놀라웠다.

그는 살수들을 공격하는 것보다 방어에 힘을 쏟고 있었다.

사방에서 살수들이 날아들었지만 아무도 마차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물론 오토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다.

“카아아앗! 빌어먹을 살수 미물 새끼들! 모가지를 따 주마!”

끼아옹!

도롱뇽과 펀치도 아틸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살수들과 싸웠다.

그곳으로 키릴이 들이닥쳤다.

파앙!

키릴의 아밍 소드가 살수들을 베었다.

그러나 살수들은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다 죽어가는 오토보다는 키릴을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건 키릴이 의도한 바였다.

키릴은 자신의 백마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몸에서 가공할 활력이 솟았다.

고오오오오.

성력과 비슷하지만 다른.

키릴을 샤를 버금가는 강자로 만들어 준 그것.

‘신력!’

파카카카캉!

포이베의 신력을 머금은 아밍 소드가 그림처럼 휘둘러졌다.

그렇게 방출된 백색 섬광은 키릴의 아밍 소드를 더욱 사거리 긴 무기로 만들었고.

“크아악!”

“끄아아아아!”

그 한 번의 휘두름에 네 명의 살수가 잘린 고기가 되어 날아갔다.

오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 시벌 뭐여! 그새 또 강해진 건가?’

놀라움은 잠시였다.

오토의 입이 귀 끝까지 찢어졌다.

“그, 그거요 성기사 아가씨! 저것들 얼른 죽여 주쇼! 으하하하하!”

키릴의 놀라운 무력에 오토는 없던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키릴은 마차 근처의 살수들을 빠르게 정리했다.

저만치에서 살수들과 싸우던 용병들도 달려왔다.

“어이 오토 대장! 꼴이 다 죽어 가는 것 같소! 하하하하!”

“개소리 집어치우고 마차나 호위해 이것들아! 크하하하하!”

용병들과 오토가 낄낄대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둥글게 늘어선 용병들이 마차를 등지며 섰다.

“마차 안에 아틸라 님이 있다고 들었소 오토 대장!”

“이렇게 마차를 지키면 되는 거요?”

“내 한 놈도 마차 근처로 다가오지 못하게 하겠소! 으하하하!”

큰 소리로 웃으며 용병들이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목소리와 달리 그들의 몸에서는 피와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데비쉬의 살수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오토도 그것을 알았다.

“이곳은 우리가 어떻게든 막아 보겠소! 성기사 아가씨는 얼른 안으로!”

그 말에 키릴이 마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곳엔 시체처럼 늘어진 아틸라와, 바토리가 있었다.

키릴은 빠르게 아틸라의 상태를 살폈다.

‘체력이 심각하게 떨어졌다.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야.’

그사이 아틸라의 몸엔 상처가 늘어나 있었다.

원래부터 상처투성이였던 그의 몸.

그러나 이젠 평범한 살갗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어떤 것 같느냐 키릴.”

바토리가 물었다.

키릴은 바토리에게 정확한 답을 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키릴 역시 알지 못했으니까.

‘나는 정식 치유사가 아니다.’

카스피에게 듣기로, 아틸라는 하르티칸의 대사제가 아닌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그것이 단순히 무의식 상태에서 내뱉은 군소리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키릴의 힘이 필요하다 생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아틸라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키릴은 책임감을 느꼈다.

‘포이베의 신력이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한 건 최근의 일이다.’

키릴은 여전히 포이베의 신력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어쩌면.

아틸라라면.

“자세한 건 저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키릴의 손에 백색의 신력이 차올랐다.

바토리를 보며 힘주어 말했다.

“최선을 다하겠어요. 바토리.”

* * *

카스피가 뻗은 단검은 아메드의 목을 베었다.

아메드의 덜미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크헉……!”

하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데비쉬의 마스터는 ‘피의 계약’을 통해 고위악마의 마기를 일부 발현할 수 있는 자.

그 와중에도 사슬낫을 감지해 몸을 빼낸 것이다.

카스피도 그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그녀는 소멸을 깨뜨리고 나오기 전에 단검을 뻗었고, 그보다 한발 앞서 사슬낫을 허공으로 띄웠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카스피와, 그녀의 단검에 시선을 팔린 아메드는 머리 위에서 하강하는 사슬낫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림은 아니었다.

한 발 멀리 떨어져 있던 그는 아메드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고, 단두대처럼 추락하는 사슬낫을 봤다.

“아메드!”

하림은 아메드에게 달려가 사슬낫을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카스피가 하림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림은 눈앞으로 등장한 상대에게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상대의 눈동자는 마치 핏물처럼 변해 있었다.

하림의 몸이 굳어졌다.

‘저것은……!’

붉게 변한 눈동자만이 아니다.

상대는 온몸에서 붉은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하림의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아났다.

그는 강렬한 공포를 느꼈다.

눈앞의 상대에게서 느끼는 공포가 아니었다.

‘부, 분명……!’

발루아 왕국의 내전에 참여했을 때, 하림은 수많은 하싸씬의 살수들을 상대했다.

그 와중에 하싸씬의 마스터들을 만난 것은 물론이었고, 몇 번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도 처했었다.

그러나 하림은 뛰어난 살수였고, 데비쉬의 마스터였다.

그는 하싸신과의 여러 전투에서 살아남고, 승리했다.

그러던 그가 단 한 번,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일이 있었다.

하림은 엄청난 강자를 만났다.

‘한심한 실력이군. 데비쉬의 마스터들은.’

그자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성별도 알 수 없었다.

그자는 중성적인 목소리를 가졌고,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다만 그자는 핏물처럼 출렁이는 붉은 눈을 뜨고 있었다.

몸에선 마치 피보라처럼 붉은 기운을 발산했다.

그날, 그자는 무려 여섯 명에 달하는 데비쉬 마스터를 죽였다.

살아남은 마스터는 하림뿐이었다.

하림이 다른 마스터보다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자는 일부러 하림을 죽이지 않았다.

‘나에 대한 것을 네놈들의 단주에게 전하려면, 누군가는 살아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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