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포이베의 신력 (2)
오토는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달리고 있었다.
빠른 속도를 위해서라면 마차보다는 각자 말을 달리는 것이 빠르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아틸라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군신 아레스와 맞짱을 떠도 끄떡없을 것 같았던 아틸라 님이……!’
카르타고가 아에스투스를 타고 사라진 뒤, 일행은 서둘러 아틸라의 몸 상태를 살폈다.
처음엔 아틸라가 죽은 줄 알았다.
그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틸라는 미약하게나마 호흡을 하고 있었다.
그사이 마력의 일부를 회복한 라쿠나가 아틸라에게 마법을 시전했다.
“물 속성 마법은 치유의 힘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샹크리스의 사제들이 발하는 치유 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제 마법은 응급처치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그 정도도 감지덕지였다.
바토리는 마력을 완전히 소모했고,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이 전무했다.
처음에 일행은 도롱뇽을 타고 샹크리스 왕국으로 향하려 했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곳의 사제라면 역시 그곳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게다가 샹크리스 왕국은 일행을 국빈으로 대접하는 곳.
무사히 도착하기만 한다면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서! 도롱뇽!”
그러나 도롱뇽은 카르타고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마자 원래의 조그만 몸으로 돌아왔다.
“뭐 하는 거야 도롱뇽! 다시 커져! 커지라고!”
카스피가 도롱뇽을 움켜쥐고 협박했지만 소용없었다.
도롱뇽은 스스로의 의지로 해방을 시전할 수 없다.
일행은 아틸라를 말 위에 태우고 달렸다.
그러나 흔들리는 말이 그에겐 큰 부담이었는지, 아틸라의 안색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카스피가 나섰다.
“내가 먼저 달려가 하르티칸 대사제를 데려오겠어!”
카스피는 하르티칸의 대사제에게 치유를 받은 적이 있다.
오토가 나섰다.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살쾡이 암살자는 발목에 부상을 입지 않았소! 내가 가겠소!”
“영주 나리는 나보다 승마술이 좋지 않잖아! 적임자는 나라고!”
그때 아틸라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뭐라고? 뭐라 하였느냐 야만전사야!”
바토리는 거의 울 듯한 얼굴로 아틸라의 입가에 귀를 가져갔다.
“나 여기 있단다……! 말을 해보거라 야만전사야……!”
꺼져가는 목소리로 아틸라가 말했다.
“키릴……. 키릴에게……. 키릴의…… 신력이…….”
의식을 잃은 후 처음으로 꺼낸 이름이 키릴이라는 것에 바토리는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 한번 울상이 되었다.
그러나 잠시였다.
“카스피. 서둘러 말을 달릴 수 있겠느냐.”
“물론이지! 이 정도 부상은 끄떡없다고!”
“그럼 하르티칸으로 달려가 키릴을 찾거라.”
“뭐? 대사제가 아니고?”
카스피 역시 아틸라가 키릴의 이름을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러나 바토리마저 키릴을 데려오라 할 줄은 몰랐다.
“아틸라에겐 키릴의 신력이 필요할 것 같구나.”
카스피는 순간 멍한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말을 몰아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넌 이만 청마탑으로 돌아가는 편이 나을 것 같구나. 라쿠나.”
“하지만…….”
“너에겐 대호수의 상황을 청마탑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걱정하지 말거라. 아틸라에겐 나와 철혈귀검이 있으니.”
라쿠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가까운 마을까지 동행해 일행에게 마차를 구해 주었다.
라쿠나는 아틸라가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충분히 몸을 눕힐 공간이 있는 마차를 골랐다.
거기에 더해 푹신한 이불과, 가는 길에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물을 구해 왔다.
“고맙구나 라쿠나.”
“크흑! 고맙소! 정말로 고맙소 마법사 아가씨!”
바토리와 오토는 라쿠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국경까지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그 뒤로 오토는 마부석에 앉아 마차를 몰았다.
바토리와 라쿠나는 아틸라를 뒷자리에 눕히고 그의 몸 상태를 주시했다.
펀치와 도롱뇽도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아틸라를 바라봤다.
오랜 시간을 달려 마차는 국경에 도착했다.
“청색 마탑의 마법사, 라쿠나 야르미다. 마차 안엔 청마탑의 귀한 손님이 계시니 어서 관문을 열어라.”
역시 수오미 왕국에서 청마탑 마법사가 가지는 권력은 대단했다.
마차는 기다림 없이 국경을 통과했다.
“부디 몸조심하시길.”
라쿠나는 마지막으로 아틸라의 몸에 치유의 힘이 담긴 마법을 시전했다.
라쿠나와 헤어져 샹크리스 왕국으로 접어든 오토는 남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경로는 미리 카스피와 정해 두었다.
이제는 어서 빨리 카스피가 키릴을 데려오고, 그때까지 아틸라가 버텨 주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야만전사야.”
마차를 달리는 내내 바토리는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다 바토리 아가씨마저 쓰러지겠소.”
오토가 그리 말해도 바토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저 약간의 물만을 마실 뿐이었다.
“너야말로 힘들지 않더냐 철혈귀검아. 며칠간 한숨도 못 자지 않았느냐.”
오토의 눈 밑엔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쉴 수 없었다.
혹여 잠시라도 잠들었을 때 아틸라에게 무슨 변고라도 벌어진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자신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바토리와 번갈아 마차를 모는 것도 불가했다.
바토리는 마력이 조금 회복될 때마다 끊임없이 아틸라에게 무언가 잡기술을 시전했다.
즉, 오토와 바토리는 현재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바토리와 오토는 샹크리스의 북쪽 관문에서 호위병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샹크리스의 영원한 국빈이니까.
그러나 바토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것엔 또 다른 위험이 따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펀치를 보며 바토리가 말했다.
“이러다 습격자라도 나타난다면 펀치야. 너밖에 믿을 이가 없구나.”
“카아앗! 무슨 소리! 나도 있다!”
도롱뇽이 깨알 같은 비늘을 부풀리며 외쳤다.
그런 도롱뇽을 보며 바토리가 미소했다.
그녀는 도롱뇽이 목숨을 걸고 카르타고의 앞을 막아섰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광룡 드라콘 이스메니오스가 한낱 인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다니. 세월이란 참으로 많은 것을 변하게 하는구나.’
그러거나 말거나 펀치는 끼아옹! 외치며 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얄미웠는지 도롱뇽이 펀치에게 덤볐지만 역시나 앞발 공격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카스피에게는 몹쓸 짓을 했구나.’
카스피의 발목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라쿠나의 물 마법과 바토리의 잡기술로도 그녀의 부상은 쉬이 완화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홀로 말을 달려 떠난 것이다.
‘무슨 변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전 같으면 카스피가 부상을 입었다 해도 크게 걱정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륙은 전과 다르다.
카르타고의 말처럼, 대격변의 전조가 시시각각 드러나고 있다.
- 다가올 승천의 전장은 신계(神界)가 아닐 것이다.
카르타고의 목소리가 바토리의 머리를 울렸다.
그녀는 그 말의 의미를 알았다.
대격변이라는 게 무얼 뜻하는 것인지도.
그때였다.
“바토리 아가씨.”
마부석에서 오토가 말했다.
“관문 놈들이 뒤를 따라오고 있소.”
바토리는 마차 밖을 내다봤다.
저 멀리 흙먼지를 날리며 말을 달려오는 병사들이 보였다.
“왜 따라오는지는 모르지만,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 것 같소.”
“그런 듯하구나.”
오토는 계속 마차를 몰았다.
그러나 마차는 말보다 느리다.
게다가 오토는 아틸라가 염려되어, 마차가 심하게 덜컹일 정도로 빠르게 마차를 몰 수 없었다.
“펀치야. 벌써 네 활약의 시간이 온 것 같구나.”
“카아앗! 나도 있다니까!”
끼아옹! 펀치가 외치며 눈을 빛냈다.
바토리도 몸 안의 마력을 확인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오토 역시도 한 손으론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론 언제든 강철검을 뽑아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병사들이 마차를 따라잡았다.
다짜고짜 검을 뽑아드는 모양새가 역시, 우호적인 이유로 일행의 뒤를 쫓은 게 아니었다.
“우린 샹크리스 왕국의 국빈들이오! 무기를 거두시오!”
그러나 병사들은 검을 거두지 않았다.
오토는 병사들이 쥔 검의 생김새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바토리도 그것을 봤고, 그 즉시 그녀는 깨달았다.
‘데비쉬!’
관문 병사들이 손에 든 것은 파형(波形) 단검.
저 검은 남부 대륙 최강의 살수 집단인 하싸씬을 유일하게 견제할 수 있는, ‘데비쉬’의 살수들이 즐겨 쓰는 검이다.
퍼엉!
바토리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펀치가 마차 벽을 부수며 뛰쳐나갔다.
펀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병사 한 명의 턱에 앞발 공격을 명중시키고, 낙마시켰다.
언제 나갔는지 도롱뇽도 병사 하나의 목울대를 뜯었다.
“카아앗! 맛도 없다!”
오토도 마차 옆으로 다가오는 병사에게 강철검을 그었다.
카앙! 검과 검이 부닥치며 마차가 흔들렸다.
그 여파로 아틸라의 몸이 기울어졌고, 바토리는 사력을 다해 아틸라를 끌어안았다.
“쳐라! 카자르의 목을 따는 자에게 포상을 내리겠다!”
역시 저들의 목적은 아틸라였다.
아틸라는 카자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데비쉬 마스터 둘을 죽인 적이 있었다.
하나는 노르드 왕국을 침공한 샤를군에 숨어 있던 삼검(三劍), 리오넬 뒤퐁.
다른 하나는 리오넬 뒤퐁의 죽음을 조사하며 아틸라를 찾아온 우마르 알 갈라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아틸라가 직접 손을 쓴 것은 아니지만, 노르드 왕국의 대도시 리옹으로 아틸라를 추격한 마스터 둘이 사바흐에게 죽었다.
아틸라가 연루된 사건으로 무려 네 명의 마스터가 죽은 것이다.
그러나 데비쉬는 네 명의 마스터를 잃은 뒤, 더는 아틸라를 추격하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발루아 왕국에서 내전이 벌어졌고, 데비쉬가 그 전쟁에 참여했기 때문.
그러나 내전은 종료됐다.
데비쉬는 그간 전력을 회복하며 차근차근 내실을 다졌을 것이다.
그리면서 아틸라, 아니 카자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여기저기 첩자를 심어 놓았다.
이곳, 샹크리스 왕국 또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괜찮은 거요! 바토리 아가씨!”
오토의 목소리는 위태로웠다.
바토리는 아틸라의 안전을 확보하며 마력을 집중했다.
저 정도 인원의 살수가 등장했다.
당연히 저들을 이끄는 마스터가 있을 것이다.
바토리는 감각을 날카롭게 벼렸다.
데비쉬 단주는 고위악마의 화신(化身).
그리고 데비쉬의 마스터는 단주와 ‘피의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데비쉬 마스터들은 몸에 마기를 지니고 있고, 바토리는 그것을 감지할 생각이다.
데비쉬의 마스터는 강하다.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오토와, 거대화하지 못한 펀치는 결코 쓰러뜨릴 수 없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제거해야 한다.’
바토리는 자신의 마력이 바닥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두 번의 여력은 없다.
그녀의 발달된 감각이 타깃을 찾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다.
‘마스터가 셋이라고!’